There Is No World For ■■ RAW novel - Chapter (97)
을 위한 세계는 없다-97화(97/817)
〈 97화 〉 운명을 위한 스승은 없다 (8)
* * *
***
…거의 다 왔다.
황금빛 마나에 휩싸여있던 여명은 불현듯 그렇게 확신했다.
여전히 온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고, 쉴 새 없이 학대당한 혈관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티와 자매들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발버둥 치며 옥새의 마법에 저항하고 있었다.
‘나와.’
여명은 망치로 문을 부수는 것처럼 더욱더 강하게 옥새의 마법을 휘둘렀다.
세심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금제, 혹은 금제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게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이제 조금만…조금만 더.’
여명은 마나를 움직여 자매들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다음 순간, 투둑 그의 미세혈관이 끊어지며 코피가 흘러내렸다.
곧이어, 세티와 자매들의 코에서도 코피가 흘렀다.
마나를 감당하지 못한 몸이 지르는 비명.
하지만 마나를 견뎌내기만 하면 되는 자매들과 달리, 직접 마나를 쏟아내는 여명의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손이 덜덜 떨리고, 눈의 실핏줄이 터지며 피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내린 피 한 방울이 턱 아래로 떨어질 때쯤.
여명은 기어코 자매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그것을 붙잡았다.
‘…잡았다.’
망설임 없이, 끄집어낸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옥새가 터질 듯 빛나고, 자매들의 머리 위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덩어리진 채, 꿈틀거리는 검은 마나.
한국 정부와 얽히며 수도 없이 마주했던 뒤틀린 마나와는 달랐다.
눈앞의 마나 덩어리는 그보다 몇 배는 더 역겹고, 수십 배는 더 불길했으니까.
일반인, 혹은 나약한 초인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구토를 쏟아냈겠지만… 여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노려봤다.
이 세상 그 어떤 불길함도, 그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거대한 악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촛불에 불과했으므로.
‘이제 끝내자.’
그는 그대로 오른 손바닥을 펼쳐 손날을 만들고, 파양결을 일으켰다.
검기가 손을 따라 고이고, 여명이 손을 내려치려는 순간.
…! …! …!!!
그것이 비명을 질렀다. 입이 없었기에, 정신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분노, 당황, 그리고… 공포?
죽음의 두려움인가? 짧은 순간이나마 그것의 감정을 읽은 여명은 의아함을 느꼈다.
물론, 손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
내려치는 여명의 손에서 번쩍, 빛이 폭발했다.
빛이 지나간 자리로 날카로운 정적이 뒤따르고, 끊어진 목줄이 떨어졌다.
***
누가 그랬던가?
좋은 꿈은 구름과 같아서 지나간 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지만, 악몽은 태풍과 같아서 오랫동안 흉터를 남긴다고.
언니였던가? 아니면 쇠똥구리였던가?
분명 누가 해준 말인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누가 한 말이라도 상관없었다.
그건 틀린 말이었으니까.
악몽이라고 언제나 기억되는 건 아니었고, 좋은 꿈이라고 모두 잊혀지는 건 아니다.
조금 전에 꾼 꿈이 바로 그 증거였다.
양에서 사람이 되고, 여명의 첫 번째가 되는 꿈.
이렇게나 선명하게, 영혼에 찍힌 낙인처럼 기억할 수 있는 꿈이 악몽일 리 없다.
만약 이것이 악몽이라면.
그녀가 여전히 양이고, 여명에게 첫 번째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그냥 깨어나지 않기를.
이대로 악몽 속에서 영원히…
아, 좀! 언니! 일어나!
영원히…
우리 말고 왕자님이 깨워야 일어날걸.
막내 너는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내기할래?
내기는 무슨, 여명 오빠! 이리로 좀 와줘요!
영원…
이거 봐, 안 되잖아.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아, 그래. 키스를 안 해서 그런가 봐.
이 정신줄 빠진 년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오빠? 이대로 언니한테 키스 한 번만…
…잠깐.
***
“…아.”
세티는 눈을 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심호흡 두 번, 깜빡임 다섯 번, 눈을 비비기까지 3초.
선명해진 그녀의 시야로, 내려다보는 한 쌍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걱정이 가득한 금색의 눈동자.
“일어났어?”
“…여명.”
그는 눈을 깜빡이는 세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물었다.
“몸 상태는 어때?”
“그게… 괜찮은 거 같아. 그, 저기… 금제는…? 어떻게 됐어?”
“당연히 풀었지.”
여명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으나, 세티는 그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줄어든 그의 마나와 그의 눈 주변에 선명히 남아있는 피눈물의 흔적이 그 증거였다.
“그게… 저기….”
온갖 단어와 감정들이 세티의 머릿속으로 떠올랐지만, 입으로 나온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여명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세티는 그를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코끝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꾹 다물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감정을 전하기도 하는 법.
금빛 눈동자 위로, 푸른 눈동자가 겹쳐졌다.
마주 본 두 색은 섞이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가까워졌고, 이윽고…
이윽고…
‘…잠깐, 다른 애들은?’
흠칫, 세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옆을 바라봤다.
마법진은 흔적만 남은 옥상 구석에는, 익숙한 네 쌍의 눈동자가 그녀와 여명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네티, 흥미진진한 듯 눈을 빛내는 막내와 쇠미리, 그리고…
“…왜 멈춰? 분위기 좋은데. 계속해.”
뚱한 표정으로 코피를 닦고 있는 시리까지.
…!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세티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뒤늦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홍당무 같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베고 있던 게 여명의 무릎이라는 걸 깨닫고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언니로서의 위엄이 간신히 그녀의 입을 막았다.
짧은 침묵.
세티는 여명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모두 괜찮은 거 맞지?”
질문에 대답한 건 시리였다.
“거 참, 빨리도 묻네. 이래서 남자 생기면 자매는 뒷전…”
“…시리, 적당히 하자?”
세티가 말을 끊기 무섭게, 시리는 크흠, 헛기침했다.
“…모두 괜찮아. 금제는 풀렸어. 여기 있는… 쇠미리 씨랑 자매들 모두 확인했어.”
“….”
“후유증도 없고, 마나도 모두 멀쩡해. 굳이 잘못된 점을 찾자면, 코피 좀 흘린 게 전부야.”
시리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자매들을 바라봤고, 자매들도 모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세티는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았다. 그녀와 자매들은 목줄을 풀고,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누구 덕분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천여명, 나의 신이 선택한 내 운명의…
운명의…
세티는 부끄러움에 때문에 뒷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입 밖으로는 더더욱 꺼낼 수 없었고.
그녀가 붉어진 볼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 여명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세티. 잠깐 이것 좀 봐줄래?”
그의 손바닥 위에는 엄지손톱만 한 검은 결정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세티는 결정과 여명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금제의 마나가 남긴 흔적이야. 혹시나 해서 챙겨놨어.”
금제가 남긴 게 있다고? 세티는 여명의 손에서 결정을 집어 속을 살폈다.
시꺼멓게 빛을 흡수하는 결정에선 특별한 건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 꺼림칙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어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아니, 아무것도.”
“흐음, 그럼 그냥 결정일 뿐인가.”
두 사람이 결정을 보며 잠시 머리를 맞대고 있던 그 순간.
파직! 결정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세티는 반사적으로 마나를 끌어 올리려 했지만, 그보다 여명의 손이 빨랐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결정을 낚아챈 뒤, 세티를 보호하듯 밀어냈다.
“뭐야? 언니? 무슨 일이야?”
자매들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와중에도, 결정은 계속해서 붉은 스파크를 뿜어냈다.
“괜찮아?”
그의 손 위에서 번쩍이는 결정을 보며 세티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조금 따끔한 정도야.”
“뭔가 느껴지는 건?”
“별건 없는데… 흐음, 잠깐만.”
여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결정을 살폈다. 주먹을 쥐어보기도 하고, 마나를 불어넣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결정을 만지작거리기를 한참, 그는 스파크의 정체를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결정, 외부에서 마나를 수신받고 있네.”
“외부에서?”
“꽤 가까운 곳에서 오는 마나야. 마법인가?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 마나인데… 정확히 모르겠어.”
“내가 한 번 봐도 될까?”
여명은 대답 대신 결정을 내밀었다.
세티는 진지한 표정으로 결정을 받아들고 결정의 마나를 탐색했다.
그의 말처럼, 따끔거리는 스파크의 정체는 기숙사 바깥에서 날아오는 마나였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 마나가 세티에게 너무나 익숙하단 점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녀와 자매들의 목줄을 죄던 양치기들의 마나를.
“이거… 정말 금제가 남긴 흔적이구나.”
세티가 결정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여명이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결정에 수신되고 있는 마나, 양치기들이 금제를 발동할 때 쓰는 주문이야.”
“뭐? 그럼…”
“…가까운 곳에서 금제를 발동시키고 있단 소리지. 전화 안 받아서 화났나 본데?”
그녀는 결정을 만지작거리며 키득거렸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자매들이 그런 세티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건 말건, 그녀의 머릿속에는 결정을 이용할 온갖 계획이 떠오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목줄을 당기는지 알아낼 수 있는 결정.’
잘만 사용하면, 아카데미로 찾아온 ‘그년’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을 선물해줄 수도 있으리라.
세티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여명에게 물었다.
“여명, 오늘 아카데미로 찾아온 한국의 교사 후보들… 허가증 받았을까? 아니면 불법 침입일까?”
“…글쎄, 아마 후자겠지?”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아도 할 말 없을 거야. 그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챈 걸까, 여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사다난한 밤이 되겠군.”
***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1학년 여자 기숙사 주변의 어둠 속.
복면을 쓴 남녀가 조용히 주문을 읊고 있었다.
특정 금제를 자극해 대상의 의지를 꺾고, 고통을 가하는 끔찍한 주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제 마법 재판소에 끌려가야 하는 주문이었으나, 주문을 읊는 남녀에게선 죄책감이나 망설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 아직도 버티지? 이러다가 죽을 텐데?
“…여기서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복면의 여성이 주문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기숙사를 노려보고 있던 그녀의 상사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이다. 저쪽에서 먼저 연락할 때까지 계속해.”
“하오나… 더 하면 영구적인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검은 양이 아무리 튼튼해도 수십 분이나 금제를 버티는 건 무립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조언이었으나, 상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녹색 양이 치유하면 될 일이다.”
“…녹색 양은 성녀가 아닙니다. 자칫 뇌출혈이라도 일어나면, 아무리 검은 양이라도…”
그녀의 말은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상사의 두 눈동자에서 번들거리는 광기를 읽은 까닭이었다.
“상관없다.”
“….”
“신성을 잃은 반푼이 양 한 마리로 나머지 세 마리에게 다시 애국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
상사의 말은 단호했다.
“계속해.”
여성은 반박하지 않고 다시 주문을 외웠다. 작전의 책임자는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찮은 반항으로 목숨을 내다 버리는 검은 양에 대한 약간의 애도가 전부였다.
‘…부디 다음 생에선 애국자로 태어나거라.’
그렇게 다시 주문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지이잉
그녀의 군용 휴대폰으로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누군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번호를 아는 건 오직 목장의 가축들밖에 없었으므로.
복면의 여성은 휴대폰을 들어 통신을 연결했다. 그 즉시, 익숙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기는 붉은 양. 반복합니다! 붉은 양입니다!
양 자매의 넷 째, 오시리.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상사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쏠렸다.
“…듣고 있다. 왜 이렇게 연락이 늦었는지 설명하라.”
그, 그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저희 언니가… 언니가 납치당했어요.
“…무슨 소리냐?”
납치라고? 옆에서 주문을 읊고 있던 거구의 남자조차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휴대폰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저,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 미친놈이 가, 갑자기 언니를 공격하더니…
“잠깐, 정확히 설명해라. 미친놈이 누구지?”
그, 그놈이요! 최근 성녀와 함께 아카데미에 편입학한…
“…천여명.”
상사가 말을 받았다. 복면 너머로 드러난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확히 설명해라. 녀석이 왜 검은 양을 납치했지?”
그, 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 그저… 녀석이 최근 언니를 따라다녔다는 것밖에…
“….”
짧은 침묵.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일행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여태껏 금제에 반응이 없던 게, 그런 이유였단 말인가?
제, 제발 언니를 구해주세요. 지금 녀석에게 무슨 꼴을 당하고 있을지 몰라요….
휴대폰 너머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정심이 절로 일어나는 목소리였지만, 상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제 할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녀석의 위치는 알고 있나?”
푸, 푸른 양이 기숙사 북쪽 공원으로 간 거까지만 확인했어요. 그 이상은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어서…
“알겠다. 그럼 너희의 현재 위치는?”
저, 저희는 지금 전부 기숙사에 있어요. 푸른 양은 부상을 입었고, 녹색 양은 그녀를 치유하느라…
붉은 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훌쩍였다.
상사는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가, 휴대폰 너머의 시리를 향해 명령했다.
“지금 당장 기숙사에서 나와 서쪽에 있는 밤나무 앞으로 나와라. 기다리고 있겠다.”
어, 언니는요? 언니는 어떻게 하고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통신 종료.”
자, 잠깐…!
시리가 뭐라고 말하건, 복면의 여성은 그대로 휴대폰을 끊었다.
똑같은 번호로 오는 연락을 무시한 채, 그녀는 상사에게 물었다.
“어쩌실 겁니까? 검은 양의 처녀성이 훼손되는 건…”
상사는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오히려 좋은 기회니까.”
“…좋은 기회요?”
“검은 양을 미끼로 천여명을 우리나라로 끌어들인다.”
“….”
복면의 남녀는 말을 잃었다. 그 짧은 사이에 그런 생각을 떠올렸단 말인가?
아니,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계획이었다. 이미 털 빠진 양으로 미래의 신예를 손에 넣는다?
씨도 얻고, 골칫거리도 치우고. 나라 입장에선 그만한 거래도 없었다.
“…나는 먼저 현장을 찾으러 가겠다. 너희 둘은 양들과 합류해서 뒤를 쫓아오도록.”
상사는 즉시 기숙사에서 등을 돌려 북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멀어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다가, 양들이 오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들이 숨어 있던 기숙사 주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커다란 밤나무가 서 있는 그곳에서, 복면의 남녀를 맞이한 건 예상외의 선객이었다.
“…둘이라.”
그들의 상사가 쫓아간 금색 눈동자의 편입생.
검은 양을 납치했다던 녀석은 두 사람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딱 적당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