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00
65화 숲적이라니까!
대무덕과 계웅삼.
단 두 사람의 개입이 가져온 여파는 엄청났다. 물론 단둘만이 지원을 온 것은 아니었다. 대응 마법진의 규모 때문에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병력의 수가 적을 뿐이었지 지속적으로 인원이 투입되었다.
그 와중에 먼저 투입되었던 이중 바사 론 카말 왕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으하하하!”
바사 왕의 일격에 소울아머 유저의 갑주가 갈라졌다. 하지만 그를 도우러 오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무덕과 웅삼에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숨을 고른 기율과 두표 역시 소울아머 유저들을 쉴 틈 없이 밀어붙였으며, 아군의 가세로 기세가 오른 묵갑귀마대원들도 다시 공세로 돌아섰다.
그들의 뒤로 속속들이 도착하는 또 다른 묵갑귀마대원들도 마치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듯 거세게 몰아쳤다.
“아…….”
미온 자작은 이게 꿈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놀랐지만, 그들이 하나같이 상대하던 이들보다 더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강자들이라는 것이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단기전에 한하지만 이 정도 숫자의 소울아머 유저라면 작은 소국 하나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산산이 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전투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어억!”
무덕을 상대하던 소울아머 유저의 허리춤이 길게 갈라지며 피를 뿌렸다.
이목을 빼앗긴 사이 누군가가 뒤를 쳤던 것이다.
전쟁판에서 신성한 대결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보통은 소울아머 유저가 대결을 할 때 뒤에서 기습을 가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상대하는 이들이 같은 급이 아니라면 있을 수는 없다. 일반 병사들과 기사들을 던져 주고 뒤에서 습격하는 건 약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러나 무덕은 약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습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싸우고 있었다.
허리가 갈라져 빈틈을 보였던 소울아머 유저는 무덕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갔다.
심지어 무덕 역시 누군가를 상대하느라 한눈을 팔고 있는 소울아머 유저의 발목을 잘라 내고 그대로 지나쳐 갔다. 발목이 잘린 소울아머 유저의 몸뚱이로 아귀처럼 달려든 적들의 칼들이 쏟아져 내렸다.
비명을 내지르며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 내던 소울아머 유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걸치고 있던 소울아머는 그 강력한 방호력이 무색하게 걸레짝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미온 자작이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외쳤다.
“모두 물러난다! 본대와 합류하라!”
미온 자작의 외침에 소울아머 유저들이 일제히 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의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미온 자작은 함께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소울스톤을 붙잡고 그대로 돌렸다.
콰콰콰콰!
미온 자작의 온몸을 타고 흐르며 소울 포스가 폭주를 시작했다.
“자작님!”
그 모습에 철수하기 위해 물러서던 소울아머 유저들이 놀란 눈을 했다. 그래 봐야 남은 건 그를 제외하면 이제 둘뿐이었다.
“빨리 알려야 한다! 어서!”
미온 자작의 외침에 만신창이 상태에서 겨우 몸을 빼낸 소울아머 유저 둘은 눈물을 머금고 빠져나갔다.
이미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 그런지 미온 자작의 표정은 오히려 차분하게 보였다.
“후우.”
숨을 깊게 내뱉은 미온 자작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나를 쓰러트리지 않고는 이 길을 지날 수 없다!”
미온 자작의 외침이 홀을 빠져나가는 소울아머 유저 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들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불사른 부단장의 모습을 떠올린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달려나갔다.
미온 자작이 외쳤다.
“오라!”
그런 미온 자작을 향해 무덕과 웅삼, 두표와 기율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별다른 답변도 없었다.
콰쾅! 콰직!
뒤편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에도 소울아머 유저 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 미온 자작이 벌어 주는 시간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본대와 합류해야 했다.
“엇!”
그 순간 뒤쪽에서 뭔가 날아오는 느낌에 소울아머 유저 둘이 양옆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등을 노리고 날아온 것이 앞쪽으로 지나치다가 벽면에 부딪치며 나뒹굴었다.
“미, 미온 자작님?”
순간 둘이 어버버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뒤에서 날아온 것은 미온 자작의 머리통이었다. 무언가를 각오한 그 얼굴 표정 그대로였다.
당황한 그들은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스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연회장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이리저리 흩어져 버린 미온 자작의 몸뚱이와 그것을 밟고 밖으로 나서는 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객기도 적당히 부려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무덕과 눈이 마주친 둘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미온 자작의 죽음은 개죽음이었다.
***
“오오오! 역시 우리 사위!”
헤머튼 왕이 적들을 사정없이 몰아치는 제라르를 바라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고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딸내미 팔아먹고 그런 표정이 나오나요?”
“이 정도면 잘 판 거다.”
“…….”
듣기에 왠지 비정하면서도 당당하게 들려오는 헤머튼 왕의 대답에 센시아 공주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길을 느낀 헤머튼 왕이 슬쩍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요조숙녀라도 된 듯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안 어울리게 그러느냐?”
“그러는 아버지는 딸내미 내놓기도 싫어하던 양반이 이러시나요?”
계속되는 센시아 공주의 반박에 헤머튼 왕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되물었다.
“그래서 싫냐?”
“꼭 팔려 가는 것 같잖아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백마 탄 왕자와의 로맨스는 누구나 꿈꾸는 그림이란다.”
헤머튼 왕의 말에 센시아 공주가 반사적으로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제라르는 달려들던 소울아머 유저의 팔목을 잡아당기며 그대로 어깻죽지를 잘랐다.
그러고는 잘린 팔뚝으로 뒤쪽으로 다가오던 기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이어서 팔이 잘려 비명을 내지르는 소울아머 유저의 입에 잠시 사용했던 그의 팔뚝을 쳐 넣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센시아 공주가, 마찬가지로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던 헤머튼 왕에게 말을 이었다.
“마왕에게 팔려 가는 공주 같은데요.”
“원래 동화는 미화되기 마련이란다.”
“크하하하!”
피범벅이 된 채로 포효하는 제라르의 모습을 보니 과연 마왕이라는 비유에 너무 잘 어울렸다.
***
“수, 숲적?”
숲적이라는 말에 쏜튼 폴리어 백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주변은 숲이지 산은 아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린 베이커 백작이 나섰다. 신중해 보이는 말과 달리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주변으로 다가온 소울아머 유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은 오십여 정도입니다.”
“큭.”
오십이라는 말에 그린 백작이 실소를 흘렸다.
이쪽의 전력을 숨긴 덕에 적들이 제대로 오판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쏜튼 백작이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필리어리 왕국의 사신단이 귀환할 때 습격을 당했는데, 그들이 바로 숲적이라는 해괴한 자들이라 했었지.”
쏜튼 백작의 중얼거림에 그린 백작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끼고 이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는 두 복면인.
“일국의 황제가 아니라 황제인 척하는 놈일 것 같습니다.”
“으음, 그럴지도.”
설마하니 황제쯤 되는 이가 이런 짓을 할 리 없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황제가 아니라 열…… 읍!”
건장한 복면인의 입을 작고 우람한 복면인이 황급히 막으며 외쳤다.
“우리는 숲적이야. 헛소리 말라우.”
“…….”
그 사내의 말을 들은 그린 백작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차라리 말을 말든가.”
그의 중얼거림에 입이 막혔던 건장한 사내가 작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죄, 죄송합네다.”
죄지은 이처럼 움츠린 작은 사내를 무시한 사내가 천천히 무기를 뽑아들며 말했다.
“우린 숲적이다. 있는 거 다 내놔.”
“크크큭!”
그 말에 그린 백작이 웃음을 흘리며 쏜튼 백작에게 말을 붙였다.
“살다 살다 산적 토벌은 해 봤지만 숲적 토벌은 처음입니다. 어디까지나 숲적이니 모조리 목을 잘라다가 매달아 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린 백작의 말에 쏜튼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화적인지 숲적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니까 그래도 되겠구먼.”
쏜튼 백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블 기사단 2전단의 단원들이 일제히 로브를 젖히며 소울아머를 활성화시켰다.
이어서 따라온 술법사들이 일제히 술법지를 뿌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들의 상대는 따로 있었다.
화아악!
수많은 빛의 다발이 술법사들을 향해 쏟아져 왔다.
“마, 막아!”
술법사들이 일제히 준비 중이던 술법을 취소하고 방어술을 펼쳤다.
그 위로 날아든 빛의 화살들이 쉴 새 없이 두들겨 댔다.
파팡! 파파파팡!
“크윽! 술법사가 있다!”
“대체 이건 무슨 술법이지?”
술법사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 사이 숲에서 또 한 명의 복면인이 나타났다.
“큼, 나도 숲적이네.”
자신이 말하고도 민망해하는 복면인.
정확히는 복면 노인이었다.
“큼, 그나저나 대응이 꽤 빠르구먼.”
그렇게 칭찬 아닌 칭찬을 내뱉은 노인 숲적은 멋쩍은 음성을 내뱉으며 서 있었다.
“쳐라!”
그린 백작의 외침과 동시에 노블 기사단 2전대가 달려 나갔다.
***
“어, 어서 놈을 잡으란 말이오!”
일리언 공작의 외침에 노블 기사단 3전단장인 케이브 백작이 인상을 구겼다.
마음 같아서는 닥치라고 하고 싶은데, 눈앞의 결과 때문에 차마 그 말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블 기사단의 단원이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나마 아까 제라르의 일격에 쓸려 나가고 남은 술법사들이 정신을 차리며 열심히 두들겨 대는 통에 헤머튼 왕을 보호하는 요상한 술법사가 힘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케이브 백작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어차피 왕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니까.”
퍼퍼펑!
술법이 작렬하며 또다시 방어마법이 깨져 나갔다. 물론 거의 동시에 다시 방어마법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 여파는 적지 않았다.
“커억!”
피를 토하는 마법사의 모습이 버틸 수 있는 한계의 끝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괘, 괜찮나!”
온몸에 상처를 매달고 있던 류화가 놀라 외쳤다.
그러자 마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한곕니다!”
“젠장!”
류화가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주변에 빼곡하게 쌓인 시체를 보면 그가 얼마나 분전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제라르 역시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나가 싸우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 싸움은 적을 쓰러트리는데 의의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필리어리 왕국의 왕을 보호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제라르의 머릿속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 있었다.
‘뭐, 여왕도 있으니까.’
안 되면 하나는 과감히 포기할 선택까지 마친 제라르였다. 그리고 그 포기의 대상은 그런 제라르의 뒷모습을 보며 든든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힘내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