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03
68화 괴물들
“이 무슨!”
그린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롱도 이런 조롱이 없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소울아머 유저가 맞아 죽을 때까지 동료들이 아무도 돕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문제였다.
“궁수가 신경 쓰일 줄이야…….”
소울아머 유저가 가장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바로 궁수였다.
물론 화살 공격도 맞으면 소울포스의 소모가 있기에 누적되면 좋지는 않지만 소울아머 유저의 전투는 말 그대로 난전 돌입이 주였다.
그렇기에 화살이라는 병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완전 달랐다. 소울아머의 유리함이 완전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그린 백작의 생각과 일치했는지 일부 소울아머 유저가 위험을 무릅쓰고 포위하듯 파고들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오십여 명의 적 병력이 들이닥치면 위험할지 모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놈!”
소울아머 유저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리며 이리저리 피하던 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설픈 포위이기는 하지만 소울아머 유저들의 신체적 능력을 생각한다면 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같은 소울아머 유저라 쳐도 말이다.
“내래 만만하게 보인 거디?”
이리저리 내빼며 화살을 날리던 우루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달려드는 소울아머 유저의 표정이 마치 사냥감을 궁지에 몬 사냥꾼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소울포스를 끌어올린 소울아머 유저가 단박에 그의 목을 날려 버리겠다는 듯 롱소드를 휘둘러왔다. 하지만 우루는 그대로 공격을 흘려 내며 오히려 파고들었다.
“칫!”
상대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오히려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파고드는 우루의 목을 잡아갔다.
“니런 고사리 같은 손모가지로…….”
적의 손이 목에 와 닿는 동시에 우루가 턱을 당겨 내렸다. 그러자 목을 잡으려던 손이 오히려 우루의 가슴팍과 턱 사이에 끼었다.
“어엇!”
순간 소울아머 유저의 눈에 당황감이 어렸다. 당연했다. 아무리 손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우루가 턱으로 고정한 소울아머 유저의 팔뚝을 밖에서부터 후려쳤다.
두두둑!
“크아악!”
팔뚝이 그대로 부러져 나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우루가 활줄을 머리통에 걸었다. 이어서 비틀듯이 당기자 활줄이 빠져 나왔다.
“어어?”
활줄이 빠져나가고 몇 걸음 더 걸음을 옮긴 소울아머 유저가 당황한 표정으로 우루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자신이 벗어났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내 다시 롱소드를 들고 달려들다가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엎어진 소울아머 유저의 뒤편으로 아직 왜 죽었는지 모르는 표정의 머리통이 뒹굴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란 소울아머 유저들을 향해 우루가 활을 쥔 채 남은 한 손으로 그들에게 오라는 듯 까딱거렸다.
“날래 오라우.”
“크읏!”
치욕을 당했다는 표정을 지은 소울아머 유저들이 거세게 달려들었다
전 후 좌 우.
네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우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만있어 봐야 동시에 공격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전방으로 달려 나간 우루가 내리그어지는 롱소드를 활로 비껴 치며 손바닥으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아악!
손바닥 며적이 큰 만큼 울림소리도 적지 않았다.
“어억!”
꽤 충격이 컸는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듯 달려 나가는 소울아머 유저였다. 그런 동료를 풀쩍 뛰어넘으며 후방에서 기습해 오던 소울아머 유저가 육중한 메이스를 내리 찍어왔다.
그때 우루의 몸이 재빠르게 회전을 했다. 이어서 나온 것은 우루의 맴돌며 후려 차는 동작이었다. 큰 동작이었지만 그가 펼치니 오히려 빠르게만 느껴졌다.
퍽!
“윽!”
우루가 맴돌려 차낸 발차기에 메이스를 쥔 손이 맞았다. 타격점이 어긋나며 팔이 벌어졌다. 우루의 회전은 멈추지 않았다.
벌어진 가슴팍으로 다시 한 바퀴 돈 우루의 팔뚝이 내리꽂혔다. 동시에 우지끈 하는 소리가 울리며 소울아머의 몸뚱이가 마치 전속으로 달려오던 소에 받히기라도 한 듯 몸이 꺾이며 뒤로 퉁겨져 나갔다.
와당탕탕!
“커억!”
“어억!”
비명이 연달아 울렸다.
뒤통수를 맞고 비틀거리며 나아가다 겨우 균형을 잡은 이와 우루의 팔꿈치에 가슴팍을 맞고 날아간 이가 뒤엉키며 나자빠졌던 것이다.
그사이 양 옆으로 달려왔던 이들이 방향을 틀어 우루의 좌우를 협공해 왔다.
순간 우루가 활을 들어 올리며 양쪽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 내었다.
카가각!
“활로 공격을 흘려?”
두 소울아머 유저의 눈동자 가득 놀라온 감정이 채워졌다. 한 명은 찌르고 한 명은 베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어진 두 공격을 한 쪽으로 몰며 공격을 흘린 것이었다.
놀랄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조, 조심해!”
그들의 공격을 활로 들어 비껴낸 것만 해도 놀라울 따름인데 그 비껴 낸 활에 화살이 한 대 메어져 있었다.
투학!
근접거리에서 쏘아진 화살을 소울아머 유저가 몸을 틀며 피해 냈다.
“무슨 화살이…….”
쏘아진 화살이 닿지도 않았는데 투구로 가려지지 않았던 피부가 찢어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크아아악!”
흐르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재빨리 물러서며 비명이 터진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안타까움 그리고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그런 느낌의 표정이다.
그를 스치고 날아간 화살이 뒤엉켜 자빠지고 있던 동료의 엉덩이 중앙에 날아가 꽂힌 것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위치상 큰일을 보는 부위 같았다.
심지어 깊숙이.
그게 틀린 답이 아니라는 듯 그곳에 화살을 맞은 소울아머 유저가 몸을 일자로 세웠다. 두 눈은 핏발이 섰으며 그대로 꼿꼿이 몸을 세운 채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나무토막마냥 뻣뻣한 자세로 넘어갔다.
“똥은 다 싼기야.”
우루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리자 얼굴이 붉어진 소울아머 유저들이 분노로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
“뎀비라우. 다들 하나씩 꽂아 줄 테니.”
순간 달려들려던 소울아머 유저들이 흠칫하며 동시에 한 곳에 힘을 줬다. 마치 그곳에 당하기라도 한 듯 긴장하며 말이다.
“비, 빌어먹을 죽었습니다!”
“하아…….”
그린 백작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이건 아니었다.
“항문에 화살을 맞아 죽다니…….”
거기도 급소라 불리는 곳인지라 저 정도 깊이 박혔으면 솔직히 살기는 글렀다고 봐야 했다. 옆으로 넘어진 뒤에도 피를 게워 내는 모습이 이미 글러 보이기는 했다.
그때 또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카악!”
“저런 미친!”
그린 백작의 동공이 커지며 욕설이 절로 나왔다.
수하 중 하나의 몸뚱이가 허공에 들려 이리저리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뚱이에 날아든 칼들이 그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그 상처로 인한 비명이었다.
“사람을 방패로 쓰다니!”
아까 수하 하나의 안면을 때려 죽인 건장한 숲적이 이번에는 사람을 붙잡아 방패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시끄러운 것 빼고는 효율이 좋군.”
진천이 방패 대용으로 쓰고 있는 소울아머 유저의 팔다리는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쓰기 편하게 미리 팔다리를 분질러 놨던 것이다.
“비겁한!”
여기저기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진천은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우습다는 듯 중얼거렸다.
“욕조차 창의적이지 못한 놈들.”
“상관하지 말고 쳐라! 그게 동료의 죽음에 대한 예의다!”
누군가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공격하던 이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본 진천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중얼거렸다.
“뭐 나쁠 거 없지. 그럼 성능을 올려 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환두대도를 쥔 손으로 들고 있는 소울아머의 소울스톤을 잡았다. 그 행동에 진천의 방패 대용으로 다 죽어 가던 소울아머 유저가 비웃었다.
“쿨럭. 그게 될 거, 것 같으냐. 내, 내가 아니면 처음부터 도, 돌아가지 않는 것을…….”
“…….”
꾸역꾸역 피를 게워 내며 말을 내뱉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곤 환두대도를 그대로 그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푸푹!
“꺼어억!”
관통당한 옆구리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소울아머 유저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래 이만 죽여…… 라.”
그런데 진천이 옆구리에 환두대도를 꽂고 나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흐느적거리는 소울아머 유저의 손을 잡아끌었다.
“무, 무슨 짓!”
“알려줘서 고맙군.”
그리고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소울아머 유저의 손을 소울스톤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돌렸다.
우두둑!
손가락이 으스러지면서 소울스톤도 함께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푸른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생명력이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아아아!”
“좋군.”
다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 지은 진천이 옆구리에 잠시 꽂아두었던 환두대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한층 성능이 높아진 인간방패를 들고 누비기 시작했다.
“저, 저런 악마 같은 자가 있나…….”
쏜튼 백작은 강제로 소울스톤을 돌려 버리는 모습에 이빨을 딱딱거리며 떨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을 많이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꼴 못 볼꼴 다 본 쏜튼 백작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 그린 백작! 적은 단둘이오! 단둘이란 말이오!”
평소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쏜튼 백작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다섯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죽어 나자빠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 방패 대용으로 쓰이고 있는 아군을 제외하고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남긴 그린 백작이 이를 갈며 나서는 모습을 보며 쏜튼 백작은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저런 악마 같은 자들이 있다니…….”
항문에 화살을 꽂아 넣지를 않나 인간을 방패 삼아 쓰지를 않나…… 하는 짓을 보면 뭐 하나 인간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푸르릉.”
난데없는 말 울음소리에 소울아머 유저 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들의 전마들을 위협했던 복면을 한 늙은 말이었다.
“미물 주제에!”
이를 악물은 소울아머 유저가 목을 쳐내려 롱소드를 휘둘렀다. 그러나 우연인지 아닌지 말이 몸을 틀며 피해 내었다. 아무리 대충 휘둘렀다지만 소울아머 유저의 공격이 빗나간 것이었다.
“이, 이게!”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 소울아머 유저가 도망치려는 듯 엉덩이를 보이고 나아가는 숲적이라는 자들의 늙은 말을 향해 다시금 롱소드를 휘둘러 갔다.
그때였다.
“응?”
몇 걸음 가던 말이 갑자기 몸을 움츠리는가 싶더니 뒷발을 모으며 슬쩍 들어올렸다. 마치 본능적으로 말이 뒷발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미친 종자 같으니!”
오히려 그 모습에 말에게조차 우습게 보였다는 생각에 그대로 롱소드를 그어 갔다. 그런 그의 눈에 말의 뒷발이 사라졌다. 아니 잔상처럼 흐려졌다.
콰직!
“쿠웩!”
순간 그의 눈알이 터질 듯이 부릅떠졌다. 언제 닿았는지 가지런히 모은 두 개의 뒷발이 소울아머 유저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소울아머 유저가 믿기지 않는 듯 찰나의 시선을 보내었다. 그 늙은 말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휘어 있었다. 저 표정이 사람의 것과 같다면 그게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비웃음.
그걸 느끼는 순간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끄으아아아아아!”
싸우던 소울아머 유저들이 화들짝 놀라 허공을 바라보았다. 왜냐면 누군가의 비명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기습인가?”
동료로 보이는 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서 숲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사이 할 일을 마친 늙은 말의 탈을 쓴 괴수는 여유롭게 자리를 옮겨 풀을 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