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09
74화 이게 아닌데…….
“어억!”
마차 안에 탄 쏜튼 백작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함께 타고 있는 소울아머 유저가 그를 붙잡아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바닥을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마, 마차가 왜 기운 것인가!”
“아까 말 한 마리가 마차를 걷어찼는데, 그것 때문에 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 걷어찼다고 마차가 부서지는가!”
“그건…….”
쏜튼 백작이 역정을 냈지만 소울아머 유저는 딱히 할 만한 변명이 없었다.
말이 걷어찼다고 귀한 인원을 모시는 마차 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되긴 했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마차 정비를 안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는 게 먼저입니다.”
덜커덕!
“어이쿠!”
뭘 밟았는지 마차가 다시 덜컥거리면서 쏜튼 백작의 엉덩이가 강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마차는 속도를 점차 높여 나갔다.
“오라!”
말에서 떨어진 동료가 함성을 토해 내고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마차 위에 남은 소울아머 유저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꽤 열 받았군. 그냥 오지, 좀.”
“뭐 알아서 시간을 끌고 전단장 님과 합류하겠…….”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동료의 말을 받아서 대꾸하던 이의 음성이 끊어졌다.
기마대의 앞을 막아선 동료가 그대로 휩쓸려 버리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저들의 속도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부딪히는가 싶더니 말발굽 아래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뭔가 투덕거림도 별로 없었다.
일제히 찔러진 창질에 롱소드를 휘두르며 대응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벌어졌던 일이다.
“뭐, 뭐가 저리 어이없게…….”
오라고 뛰어가더니 으악, 이란 말로 마무리한 것이다. 정말로 어이없었다. 뭔가 후다닥 지나간 느낌이랄까.
시간을 끌어주기는커녕 지금 몸이 온전할까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조금 전 상황으로 봐서 말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 걸로는 왠지 불안했던 것이다.
“젠장! 더 빠르게 안 되는가!”
다급해진 소울아머 유저가 외쳤고, 술법사는 진땀을 흘렸다. 그래도 조금씩 거리를 늘릴 수 있어 다행이기는 했다.
“어쩌지?”
계속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묵갑귀마대원들은 똥 씹은 얼굴을 했다. 쫓자면 쫓겠지만 지금 그들의 임무는 열제의 수호였다.
저 마차를 쫓는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추격이 아니라 추적 임무로 바뀌어야 할 판이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더 멀어질 수는 없잖아.”
한숨을 내쉰 그들이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지금으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병력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솔직히 도주한 자를 쫓는 것보다는 진천의 곁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었다.
“죽겠네.”
“끙.”
되돌아가는 그들의 입에서는 연신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가 되었든 후환이 두려워진 그들이었다.
그린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제외하고 남은 소울아머 유저 열넷, 아차 하는 사이 죽어나간 소울아머 유저가 열하나다.
수풀 속으로 사라진 수하가 죽거나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할 말이 없군.”
그린 백작이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지난번에 몰살한 장거리 타격대의 희생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 역시 소울아머 유저라지만 처음부터 기본 실력이 달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블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총 네 개의 전단.
그 중 일반적인 삼개 전단과 한 개의 친위전단.
각 전단의 앞에 붙는 고유 숫자는 실력을 대변한다. 즉, 노블 기사단에서 2전단의 위치는 삼인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말이 삼인자이지 그 어디에도 그들과 같은 전력은 없었다.
아니, 그 누구도 소울아머 유저를 이렇게 집단적으로 운용하지 않는다.
굳이 뭉치지 않아도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방심이란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분명한 실력 차가 있었다.
그들도 예상치 못한 그런 실력차 말이다. 희생 없이는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결론이 섰다.
‘삼조와 육조…….’
두 개 조 합쳐서 여섯이 남았다.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명령을 내리면 그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어설프게 하다간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었다.
이미 둘을 상대하는데 있어 피해가 열 명 가까이다. 물론 처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변명 축에도 못 낀다.
“삼조, 육조. 각 세 명씩 달라붙는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이 함께 상대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우렁찬 외침이 되돌아왔다.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되묻지도 않는다. 망설이지도 않는다. 여섯 명의 인원이 일제히 소울스톤을 잡아 돌렸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소울포스가 파도처럼 몰려나와 넘실거렸다.
이어 시간이 아깝다는 듯 그들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뒤를 남은 인원들이 비장미 넘치는 표정으로 달려 나갔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린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 최소한 저 둘의 목이라도 들고 가야 할 말이 생긴다. 그린 백작 역시 롱소드를 부여잡고 달려 나갔다.
“흐음.”
진천은 달려오는 적들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망설이지 않는 모습도 그렇지만, 조금 전까지 손을 섞어 본 결과 꽤 강한 무위들을 자랑했다.
실력은 일반적으로 기사라 불리는 계급보다 위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신성제국과의 전쟁에서 알려진 강자들에 비하면 분명히 손색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다.
벌써 상대한 적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네댓 정도면 하나랑 비슷할까?”
생명을 불태우며 달려드는 적들을 보며 진천이 가늠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약한 놈들 실력 비교하는 게 더 어렵군.”
피식 웃어 버린 진천이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숫자부터 줄여야갔군.”
달려오는 이들을 보며 우루가 슬슬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뒤쪽 수풀을 향해 소리를 쳤다.
“내 활 던지라우!”
그 말과 함께 숲 안에서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던 마법사 하나가 힘껏 활을 던졌다. 장정 키만한 거대한 활이 우루를 향해 날아갔다.
우루가 펄쩎 뛰더니 그걸 한 팔에 장착했다. 이어서 날아온 단창이라 불러도 좋을 화살들의 묶음을 받아들며 활에 재었다.
투드드등!
공성병기급의 거대한 활에 화살이 채워졌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가던 우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소울아머 유저들이 모두 진천에게 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이거이 아닌데…….”
진천 하나를 어찌해 보자고 열댓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몰려들어 열심히 칼질하는 모습에 우루가 울상을 지었다.
그 순간 진천과 얼굴이 마주쳤다.
재빨리 화살을 날렸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날려야 했다.
“죽여!”
“목을 잘라 개 먹이로 주마!”
“개새끼!”
“소새끼!”
“…….”
최근에 들은 욕 중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은 진천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혼자 뒤로 빠져 있는 우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나고 보자.”
진천의 이빨이 빠득 하고 갈려 나갔다.
갑자기 적 중 하나가 빠지자 자연스럽게 갈렸던 인원이 하나를 목표로 달려들었다.
“차라리 잘 됐군.”
그린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하나를 처리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시야에 뒤로 빠졌던 이가 뭔가를 팔에 매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활? 저게 활이라고?”
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육중한 크기였다. 심지어 재는 화살마저 상당히 컸다. 마치 활 형태의 소형 공성병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저건 위험하다!’
생긴 건 희안해도 활 솜씨 하나는 귀신같은 이였다. 그런 이가 준비했다면 이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모두 조심해라!”
이미 전단원들은 저자가 쏘는 화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다시 한 번 조심하라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화살이 쏘아졌다.
쾌애액!
소름 끼치는 파공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에 있던 소울아머 유저가 롱소드를 휘둘러 쳐냈다. 정확히는 쳐내려 했다.
따아앙!
화살을 쳐내는 것 치고는 과한 타격음이 울려왔다. 동시에 소울아머 유저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미친!”
그린 백작의 동공이 커졌다.
분명히 화살을 제대로 쳐 내었다. 방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화살을 쳐내기는커녕 소울포스를 담은 무기가 되레 튕겨 나갔다.
그렇게 쳐 내는데 실패한 소울아머 유저는 그대로 꼬치에 꿰이듯 꿰여 날아가 버렸다.
쿠우웅!
“크억!”
뒤쪽에서 무언가 크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내질러졌다.
그대로 화살에 꿰여 날아가 나무기둥에 부딪쳤던 것이다. 아니, 나무기둥에 화살째 박혀 그대로 매달렸다. 소울아머 유저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단지 관통만 당한 것이 아니라 충격을 꽤 입은 듯했다. 부르르 떨더니 그린 백작의 눈을 마주쳤다.
이내 결심한 듯 몸을 고정하고 있는 화살대를 잘라 내곤 소울스톤을 돌렸다.
다 죽어 가던 눈빛에 활력이 솟듯 생명을 불태우며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향해 아까 그 화살이 연달아 날아왔다.
“저걸 연사한다고?”
놀란 그린 백작이 다시 고개를 돌려 우루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쏘아진 화살이 연달아 날아오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에게 날아왔다.
수하가 당한 모습도 있기에 몸을 돌리며 화살을 쳐 냈다.
따아앙!
“크윽!”
담긴 힘이 무지막지했다. 당해보고 나서야 왜 아군이 당했는지 알 정도였다. 그러나 다시 달려나가던 수하는 그처럼 튕겨 내지 못했다.
넘치는 소울포스를 끌어올려 하나는 피해 내었지만 이내 날아드는 화살은 막지 못했다.
아니, 마치 화살에 휘말리듯 비틀거리더니 세 번째 화살에 그대로 박혀 다시 날아갔다.
이번에는 바위에 통째로 틀어박혔다.
푸르른 생명의 불길이 그를 삼켰다. 더 이상 달려 나오지 못했다.
“막지 말고 피해라!”
그와 동시에 이미 상황의 심각함을 파악한 소울아머 유저들이 뒤늦게 뒤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절대로 거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 배웠을 뿐이었다.
그사이 진천을 포위한 움직임이 흐트러졌다.
물론 그 정도의 합공에 무너질 진천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콰앙!
진천이 진각을 밟자 그 발아래에 있던 소울아머 유저의 발등이 박살났다.
그 충격에 비명을 지를 법도 하건만 오히려 이를 악물며 공격을 해 왔다. 그런 소울아머 유저의 목줄을 쥐고 그대로 비틀었다.
목이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몸뚱이가 딸려오며 동료의 공격을 등판으로 받아야 했다.
그런 소울아머 유저의 양팔을 마치 가지치기하듯 잘라 낸 진천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좋군.”
진천에게 두 번째 인간 방패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