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12
77화 실패
묵갑귀마대원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곳에 넝마가 있었다.
“저것도 능력이면 능력이네.”
“그렇지? 끝까지 막아 내는 걸 보면.”
리셀이 쏘아 보낸 마법화살이 비록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 하지만 그 숫자가 천 단위를 넘어서면 그건 재앙이다. 막다가 지칠 것이 뻔했다.
그런데 지금 넝마가 되어 있는 그린 백작은 그걸 피하고 또 막아내었다. 물론 중간 중간 우루가 화살을 날려 방해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저렇게 형체를 파악하기 힘든 넝마가 되어 최후를 맞이했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생명력이 고갈된 것이 원인이었다.
“어떤가?”
진천의 질문에 리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합니다. 마법사들의 대응 방식이 조금 달라져야 할 듯 하옵니다.”
리셀이 이번 실험을 한 것은 만약, 적의 소울아머 유저가 묵갑귀마대나 혹은 진천 일행이 없는 곳에서 맞닥트리게 되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마법 전력이라던지.
해서 지금 마법 화살 공격을 하며 기본적인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확인한 것이었다.
사실 갑주에 마법 공격을 해소하기 위해 마법진을 장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것보다는 효율만으로 볼 때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생명력을 담보로 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이지만 말이다.
“술법이 아닌 마법이라지만 공통적으로 원소나 무형의 기운에 저항하는 것은 같은 모양입니다.”
“그렇군.”
리셀의 설명에 진천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울아머 유저를 처음 맞닥트렸을 때만 해도 이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숫자가 한정적일 것이라는 삼국의 판단과는 달리 계속해서 튀어나오다 보니 여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제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왔다지만 아직 가우리라는 나라는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경제활동에 비해 가진바 부가 너무 적었다.
오랜 시간을 버틸 힘이 없다는 의미였다. 국가의 국력은 단순한 무력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개 단체의 무력만으로 따진다면 솔직히 어디 가서 모자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가 간의 전쟁에 있어 승패는 무력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의 내구력 또한 중요했다.
먼 미래의 세상을 다녀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결국 이 원정은 가우리의 미래를 위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피해는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는 점. 한 번의 패배가 국가의 존립까지 흔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안한 최강세력.
그게 바로 가우리의 약점이었다.
절대 패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였다. 모든 전쟁이 배수진인 것이다. 그걸 아는 고진천이기에 오히려 더 강한 모습을 보여 줘야만 했다.
지금까지야 이런 모습에 적대적인 상대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런 부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알기에 오히려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동맹을 강화하고 재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번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고생 좀 하겠군.”
“허허허, 어쩔 수 없지요. 병사들 하나하나가 귀하니 말입니다.”
리셀 역시 이런 진천의 마음을 잘 아는지 너털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럼 돌아가 볼까?”
고개를 끄덕인 진천이 잠시 발걸음을 옮기다 멈칫했다. 뭔가가 뒤늦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아까 그 마차는?”
그러자 묵갑귀마대원들의 모습이 일제히 경직되었다.
“놓쳤습니다. 술법을 이용한 듯했습니다.”
돌아온 보고에 진천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지. 누구에게나 한 수는 있는 법이니까.”
그의 말에 묵갑귀마대원들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생각보다 진천이 쉽게 수긍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천이 이곳으로 이동해 온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강쇠와 우루가 뒤따랐다.
널찍한 공터에 도착한 그들은 마법진 가운데로 가서 섰다.
이 이동마법 역시 가우리군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물론 리셀이 고생을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묵갑귀마대 역시 마법진으로 향했다. 그때 마법사가 달려오더니 입을 열었다.
“저, 말만 보내랍니다.”
“응?”
“말만 보내시랍니다.”
순간 묵갑귀마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그들에게 진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체력훈련.”
“…….”
“뛰어와라.”
잠시 후 묵갑귀마대원들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진천과 말들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남겨진 이들 중 하나가 맥이 풀린다는 음성을 내뱉었다.
“그럼 그렇지. 뒤끝이 왜 없나 했다.”
“죽겠네. 먹을 거 좀 있는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때 그들 중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먹을 게 문제가 아니지 않아?”
“뭐 사냥을 하면 되기는 하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야 사냥을 하면 된다. 고기만 질리게 먹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던 이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기 어딘지 아는 사람.”
“…….”
문제는 이거였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거. 그리고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대무덕의 등쌀에 밀리듯 나온 그들이었다. 이 지역의 지도를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알고 있는 건 말로 며칠을 달려온 거리라는 것과 그 거리를 뛰어가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미치겠네.”
누군가의 한숨에 모두가 하늘만 바라 볼 뿐이었다. 심정은 모두 똑같았다.
미쳐 버릴 것 같은 마음.
***
기사의 보고를 받고 있는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쏜튼 폴리어 백작이 구상한 필리어리 왕국의 전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가 왔던 것이다.
“실패?”
“예.”
굳은 표정의 프라임 공작이 다시 질문을 이었다.
“3전단의 피해는?”
프라임 공작의 질문에 보고를 올리던 기사의 얼굴위로 침통함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전멸입니다.”
“확실한가?”
“마지막 보고가 그 소식이었습니다. 다른 제반 사항도 없었습니다. 작전은 실패했으며, 3전단은 전멸했다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필리어리 왕국에 있던 밀정 역시 그 수장이었던 듀란 페이서 백작이 죽자 노출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늘이 없어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들 역시 작전의 실패와 동시에 보고를 올리고 그대로 일망타진당한 것이었다.
더 이상의 보고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침묵이 흘렀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프라임 공작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필리어리 왕국에 그만한 전력이 있었을까?”
전쟁이라는 것이 소울아머 유저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다. 임시단원 포함 오십여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한 자리에 있었다면 그에 준하는 숫자가 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필리어리 왕국의 입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필리어리 왕국의 모든 소울아머 유저들은 끌어모으면 가능한 숫자기는 했다.
일리언 공작의 배신을 사전에 눈치를 챘다면 말이다. 그러나 일리언 공작가가 아무리 바보라도 그걸 모를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 정도 숫자를 모으려면 정말 전 왕국내의 소울아머 유저를 모아야 하는데 귀족파의 소울아머 유저가 빠져나가는 것을 일리언 공작이 모를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변수는 하나다.
“가우리.”
필리어리 왕국의 사신단을 호위하며 온 이들의 실력 역시 상당하다는 보고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 때문에 일이 틀어진 것이라면 실력이 상당하다는 보고는 잘못된 것이다.
최소 노블기사단 3전대를 꺾을 만한 전력이라는 것.
“아마도 사전에 뭔가 준비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분석입니다. 카말 왕국쪽에서 우리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경고를 해 줬으니 말입니다.”
“그럼 헤머튼 왕이 절반을 준비하고 나머지 절반의 준비를 가우리가 했다고 봐야 하나?”
“아무래도 그게 설득력이 있을 듯합니다.”
기사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푸흣. 할 말이 없군. 이거 쏜튼이 꽤 실망하겠어. 꽤나 자신 만만해 있었는데.”
프라임 공작의 말에 기사는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프라임 공작이 다시 질문을 했다.
“지금 쏜튼이 어디쯤 왔지? 실패로 돌아갔다면 추적이 붙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마중을 나갔으니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2전대가 호위를 하고 있잖습니까.”
“그래. 그린 백작이 호위하고 있으니…….”
[공작 각하! 급보이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프라임 공작이 다시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오늘따라 급보가 자주 오는 느낌인데?”
문이 열리자 또 다른 기사가 서두르는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런 그의 급한 모습에 프라임 공작이 씁쓸하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왜, 이번엔 2전단이라도 당했다는 보곤가?”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
프라임 공작의 표정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금 들어온 기사가 보고를 이어갔다.
“아직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쏜튼 백작과 네 명의 단원만이 빠져나와 겨우 합류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린 백작과 잔류 인원은 한나절이 지나도 합류를 못했다는 보고이옵니다.”
“…….”
보고를 받은 프라임 공작이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할 게 많은 표정이었다. 그가 다시 질문을 했다.
“쏜튼은?”
“무사하다는 보고이옵니다.”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허탈한 음성을 담은 말에 보고를 위해 들어왔던 두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프라임 공작이 입을 열었다.
“말을 준비하라.”
“행선지는 어디로…….”
“쏜튼을 마중가야겠다.”
프라임 공작의 말에 두 기사가 고개를 숙이고는 그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텅 빈 집무실에 남은 프라임 공작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2전단과 3전단이라…… 꼴이 우습게 됐군. 정말로 우습게 됐어.”
중얼거리는 프라임 공작의 눈길에는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차오르는 분노 때문이었다.
***
센시아 리어 공주는 필리언 제라르의 몸에 난 상처에 조심스럽게 약을 발랐다.
“앗 따가!”
“어머 따가워요?”
제라르가 몸을 움찔거리며 따갑다고 방정을 떨자 센시아 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공주에게 제라르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따갑소 공주.”
“제 손이 서툴렀나요?”
센시아 공주의 말에 제라르가 느끼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서툰 게 아니라 당연한 거요.”
“예?”
“장미에는 원래 가시가 있잖소.”
“어머…….”
제라르의 느끼한 비유에 센시아 공주는 뭐가 좋은지 배시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걸 바라보던 계웅삼이 옆에 있던 삼두표에게 질문을 했다.
“쟤 많이 늘었다.”
“킁, 저게 늘은 걸로 보입니까?”
“왜 달달하니 좋구먼.”
그런 웅삼을 보며 두표는 둘이 전생에 쌍둥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때 그런 제라르를 바라보는 또다른 눈이 있었다.
“역시 여심을 저격하는 대사로군.”
그곳에는 이번 반란 제압에 작은 공을 세운 카사 노바 남작이 제라르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웅삼이 두표에게 넌지시 물었다.
“쟨 또 뭐냐?”
“뭐, 장군이나 제라르 경이나 비슷한 부류라 보시면 됩니다.”
“멋진 놈이군.”
그런 웅삼을 보며 두표는 아예 외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