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24
89화 미아 찾기
폭풍전야.
시에라 제국의 야망이야 전부터 알고 있던 상황이지만 필리어리 왕성에서 벌어진 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수월한 점령을 위해 회유책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소울아머 유저를 쏟아부으며 작전을 펼쳤던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그러고도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혹은 허구의 존재라고까지 했던 제국 가우리의 등장은 대륙에 큰파장을 일으켰다.
그 상황에서 공통적인 의문은 ‘대체 그 가우리라는 제국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함구하고 있어 아직도 혼란이 남아 있었다.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 수십을 무너트린 전력만 보면 제국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데, 그 위치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결과를 보면 믿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믿기 힘든 근거라 할까?
베일에 싸인 노블 기사단에 대해서도 말이 많아졌다. 그동안 그들이 참여했던 작전에서 생존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그들이 실패하면서 경악할 만한 규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예상으로는 스물에서 서른 정도의 규모였다.
사실 이것도 반신반의할 정도였는데, 이번 일로 밝혀진 것만 해도 노블 기사단이 전단 단위로 운영되고 있고, 또 그 일개 전단의 규모가 정단원과 임시단원 포함 오십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울아머 유저를 국가 단위로 끌어모아도 그 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소울아머 자체가 시에라 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숨겨진 전력이 있음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하던 숫자와 그 차이가 너무 컸던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전단의 수는 삼개전단.
그러나 그 편제가 다 밝혀진 것이 필리어리 왕국에 침투했던 삼전단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남은 숫자가 얼마인지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 숫자가 대단하더라도 이번 실패로 인해 시에라 제국이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전쟁이 늦춰지지 않을까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건 희망에 불과했다.
시에라 제국은 오히려 보란 듯이 제국령에 전군 동원령을 내렸다.
그 내용은 남부 대륙의 통일이었다.
“아주 대놓고 하는군.”
카말 왕국의 바사 론 카말 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필리어리 왕국의 헤머튼 리어 2세가 푸념을 내뱉었다.
“그럴 힘이 있다는 것 아니겠소?”
“혹시 똥배짱을 부리는 건…….”
이전 같으면 저급한 언사에 인상을 찌푸릴 법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가우리라는 배경을 등에 업은 바사 왕은 친해져야 할 대상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번 필리어리 왕국 왕성의 습격 때 그가 직접 와 준 것만으로도 뭔 짓을 해도 좋게 보일 뿐이었다.
“차라리 똥배짱이라면 좋겠소이다. 하나 이번 일로 드러난 것만 봐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니.”
“우리 다음이 북부지역이라는 걸 알 텐데. 왜 가만히 있는지…….”
바사 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끝을 흐리자, 헤머튼 왕도 그에 동조하듯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쪽도 내전이 벌어진 모양이오. 거기에 초원부족들이야 일정한 거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사막과 초원지대라는 완충지역을 믿는 것도 있지 않겠소?”
“젠장. 사막이라도 가로막고 있으면 좋으련만.”
“아마 그들도 시에라 제국의 내전이 이렇게 빨리 수습될 줄은 몰랐을 것이오.”
“뭐 그거도 있겠지만, 우리가 적당히 버텨 주며 시간을 벌어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있을 수 있소. 뭐 그들이야 안정되면 적당히 지형을 이용해 지공을 펼치면 그만이라 생각할 것이고. 그러나 이 정도 전력이 드러났으면 바보들도 아닌 이상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오.”
“서신을 보냈으니 호응을 할지 안 할지는 곧 답이 오지 않겠습니까?”
바사 왕의 말에 헤머튼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시에라 제국의 숨겨진 힘이 알려졌으니 경각심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북부만 맡아 준다면 지금처럼 시에라 제국이 전력을 남부에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신에는 그들의 희망과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며칠 후 답신이 도착하고 다시 만난 두 왕은 굳은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사 왕의 목소리가 커졌다.
“북부에는 머저리만 산다는 것이오!”
“후우.”
헤머튼 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온 답신에는 시에라 제국과는 불가침조약을 맺었기에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살피니 또 다른 것이 담겨 있었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것이었다.
이쪽이 시에라 제국의 전력을 부풀려 말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일부러 이 사실을 크게 공표한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전달이 될 줄이야.”
헤머튼 왕이 참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북부지역은 이들이 시에라 제국의 전력을 부풀려서 그들의 참전을 이끌어 내려는 수작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답신이 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답답함을 느낀 헤머튼 왕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가우리의 인물들이 요즘 보이지 않는구려.”
지금 헤머튼 왕이 와 있는 곳은 바로 카말 왕성이었다.
리셀의 협조로 두 왕성 간에는 고정된 이동마법진이 존재했다. 물론 리셀이 매번 올 수 없기에 마나석을 대량으로 동원하는 식의, 조금은 비효율적인 수단이기는 했다.
그러나 정력석으로 치부되는 마나석은 필리어리 왕국에서도 꽤 많은 양이 존재했다.
유흥이 발달되다 보니 그쪽으로 개발이 많이 되어 있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이다.
카말 왕국과 같은 대규모 산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많다고 할 만큼의 정력석 광산이 있었던 것이다.
바사 왕이 약간 걱정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쪽 대륙에도 무언가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무슨 큰 문제가…….”
문제라는 말에 헤머튼 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시에라 제국은 이전처럼 삼국이 멀쩡한 상태에서 막는다 해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우리의 도움은 필수였다.
바사 왕이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었다.
“그게 그쪽 대륙의 정세가 변한 부분이 있어 정리를 한다 합니다.”
“으음.”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답답한 두 사람이었다.
그때 문득 헤머튼 왕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바사 왕을 보더니 너털웃음을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오. 이렇게 둘이 얼굴을 마주하다는 게 아직 신기해서 그렇소.”
“하하핫 저도 그렇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들이 얼굴을 마주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지난 전쟁 때에도 한번인가 보았을 뿐이었다.
한 나라의 구심점이 이렇게 자주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때, 뭔가가 떠오른 듯 헤머튼 왕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고 보니, 이러면 어떻겠소?”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가 싶었던 바사 왕이 상체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반문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각국의 정예를 모아 시에라 제국의 황성을 직접 타격하는 겁니다.”
헤머튼 왕의 말에 바사 왕이 김빠진 얼굴로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안 되는 것이오?”
그의 반응에 헤머튼 왕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그게 아무 곳이나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합니다. 일종의 좌푠지 뭔지도 필요하고, 그게 아니라면 대응마법진인가 뭔가를 그려야 한답니다.”
“아…….”
“결국 황성까지 직접 침투해 가서 대응마법진인가 뭔가를 그려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물론 그것도 감안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시에라 제국의 내부로 갈수록 그 방비는 철통같았다. 그리고 시에라 제국쯤 되면 외부 혹은 내부의 공격에 민감했기에 제국 황성 지하에는 미로와 같은 길이 있다는 말이 있기까지 했다.
만에 하나 실패하면 이쪽은 핵심 전력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말씀하신 방편을 쓸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에 가우리도 여러 방향으로 방법을 찾아본다고 합니다.”
“그렇구려.”
헤머튼 왕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사 왕의 말을 들으니 이미 나왔던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알았기에 기대감이 사라졌던 탓이다.
사실 이런 믿기 힘든 이적을 행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헤머튼 왕이 살짝 눈을 빛내며 입을 영렀다.
“혹시 그럼 제국의 지리를 잘 아는 이를 한 명 추천해 달라 했던 일이 그와 연관 있는 것이지 않겠소?”
“아, 그 일 말입니까?”
“그 일로 우리 카사 백작을 참여시키기로 했소만…….”
헤머튼 왕의 말에 바사 왕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를 오해한 헤머튼 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사위인 제라르 경과 계웅삼이라든가?”
“내 사위요.”
“그렇소. 두 강자가 함께하는 일이잖소.”
“그게 참…….”
바사 왕이 머뭇거리자 그제야 약간 이상하다고 눈치를 챈 헤머튼 왕이 얼굴을 굳히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직 나를 못 믿는 것이요?”
“후우, 그게 아니라 정말 이건…….”
바사 왕이 말을 흐리다가 헤머튼 왕을 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 상황에서 날 못 믿으면 어쩌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바사 왕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미아 찾기입니다.”
“뭘 찾는다고?”
“길치 오십을 찾아오는 특명이랍니다.”
“…….”
얼굴을 구긴 헤머튼 왕을 본 바사 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솔직히 자신도 막 나간다고 생각했지만, 고진천을 알게 된 이후 그는 정말로 정상의 범주에 있다는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설명이 이어졌고, 헤머튼 왕의 얼굴은 구겨졌다.
***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행적이 밝혀진 것이 시에라 제국의 정찰기지였다 이거지?”
계웅삼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자 길안내를 맡은 카사 노바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나마 소문이 나서 알 수 있었습니다.”
카사 백작의 대답에 필리언 제라르가 고개를 내밀며 중얼거렸다.
“거긴 왜 갔지?”
제라르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갸웃한 웅삼이 나름 대답이라고 생각한 것을 꺼내었다.
“보급?”
“뭔 보급을 그리 거창하게 해!”
“약……탈?”
“그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카사 백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급은 이상하고 약탈은 정상이란 말인가?’
왠지 가시밭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 카사 백작이었다.
[슬슬 출발하지.]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카사 백작이 고개를 돌렸다. 바닷물 위에 모로 누워 있는 사내가 눈에 보였다.
바로 머맨인 페일이었다.
그를 본 제라르가 배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뭐 붙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 그런데 이거 돛도 없이 잘 가기는 하나?”
웅삼이 눈앞의 배를 보며 걱정어린 시선으로 중얼거리자 제라르 역시 걱정된다는 듯 대답했다.
“몰라. 트렌든 말로는 배 밑에 선풍기라는 거 비슷한 것을 달았다던데.”
“갑시다!”
트렌든이 재촉하자 담소를 나누던 그들이 배 위에 올라탔다.
카사 백작 역시 배를 찔러 보더니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올라탔다.
“꼭 느낌은 돼지 방광 같은데…… 질긴 것 보면 가죽 같기도 하고.”
그들이 올라탄 배는 바로 고무보트였다. 그것도 침투용 보트. 물론 연료는 리셀이 개조한 마나석이었다.
그렇게 구출대가 필리어리 왕국의 조용한 부두에서 천천히 출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