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25
90화 불운을 부르는 무리들
을지수호를 포함한 오십 인의 숲적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무슨 부대에 지도 한 장 달랑이냐.”
“그것도 근처 지리만 있는 걸로.”
지도를 얻기 위해 큰맘 먹고 시에라 제국의 군부대를 털었다. 물론 지도만 턴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목숨도 탈탈 털었다.
그 덕에 지도를 구하기는 했지만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이곳의 위치를 모르는데 근방 지도를 얻어서 뭘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좀…… 그런 감은 있지?”
사실 좀이라기에는 저지른 일이 적지 않았다. 지방군이지만 그들이 털어먹은 목숨이 수백에 달했다.
“그나저나 적 병력이 너무 자주 보이는 거 아냐?”
“저번에 들른 요새에 고위층이라도 있었나?”
“그럴지도.”
묵갑귀마대 대원들의 대화에 수호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일단 제대로 붙잡고 털어 보디요.”
“또 털어?”
“아무래도 현상수배 걸린 것도 좀 수상쩍고, 제대로 알아봐야 갔습네다.”
수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보이는 족족 멱을 땄다. 그러다 보니 지금 상황에 대해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 지도도 있으니 이곳을 한 번 터는 건 어떻습네까?”
“어딘데?”
수호가 조심스럽게 얼마 전 얻은 인근 지리가 담긴 지도를 내밀었다. 그 중에 특이한 표시가 있는 것을 지목했다.
다른 곳은 왠지 군부대 같았는데, 여기만 표시가 남달랐던 것이다.
“군부대는 아무래도 부담이 가지 않갔습네까?”
“그건 그래. 그런데 글자를 모르니 갑갑하네.”
누군가의 불평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같은 게 있어도 중요한지 안 중요한지를 모르다 보니 여간 갑갑한 게 아니었다.
“여기는 군부대가 아니겠지?”
“몇 군대 확인했을 때 병력이 주둔한 지역은 이런 깃발 표시들이 있었잖아.”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이쪽을 휘저으며 다니다 보니 조금씩이지만, 정보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도 모르니 일단 정찰부터 하고 덮치디요. 놈들의 눈길을 너무 끄는 것도 안 좋습네다. 마침 근방이니 근처에서 정찰을 한 뒤에 움직이디요. 표기해 놓은 것을 보니 그리 특징이 있어 보이디는 않디만 차라리 지금은 그게 낫갔습네다.”
수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출정은 정보를 자세히 캐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목표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국경에서 제법 들어간 위치의 정찰 요새가 몰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아무리 내전에서 패배했다 해도 제국의 황자를 시해한 무리였다. 그런데 그들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정찰부대의 거점이 전멸했다는 건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그게 놈들이 오히려 허를 찌르는 바람에…….”
토벌 책임을 맡은 귀족이 쩔쩔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고정하시지요. 저들이 후방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오히려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올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쏜튼 폴리어 백작이 두둔하듯 말했지만 프라임 공작은 좀처럼 찌푸린 표정을 펴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의도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정찰 및 교란이 목적인 것 같은데 수효가 너무 적다 보니……. 게다가 최근 들어 숲적을 사칭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제국의 치안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나?”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백작이 죄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쪽 지역은 병탄 지역이라 모자람이 많습니다.”
“으음.”
그동안 시에라 제국의 급격한 몸 불리기로 인해 일부 지역은 아직 안정화가 덜된 면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해당 지역의 귀족들은 명문가라기보다는 소외되었던 이들이 많았다.
숲적이라 자칭한 이들에게 비명횡사를 당한 마일로 황자 역시 그 때문에 그곳을 떠돌았고 말이다.
“확실히 하도록 하지.”
“예. 명 받드옵니다.”
프라임 공작의 말에 진땀을 흘리며 보고하던 귀족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가 나가고 없자 프라임 공작이 쏜튼 백작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 탓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기는 왜 숙이는가.”
“제가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탓입니다.”
쏜튼 백작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쪽 지역은 신경 써서 관리하는 곳인데, 영 찜찜해.”
정확히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곳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은 쏜튼 백작이 차분한 음색으로 대답해 나갔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외부적으로 크게 특징이 있는 곳이 아니니 별 문제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
밤이 깊은 시간.
수풀이 움직이며 복면인들이 나타났다.
“적당하니 좋네.”
“뭐 예상했던 대로 별 특징 없는 곳이니 부담 없디 않갔습네까? 상단의 창고 비슷한 것이 말입네다.”
“그런 것치고 좀 외지긴 했네.”
“외진 곳이니 더 좋디 않갔습네까?”
을지수호의 말에 대원들이 시시덕거렸다.
“니 말이 맞다. 막내가 제대로 짚었네.”
“흐흐흐흐.”
“기럼 조용히 움직이디요.”
수호가 복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숲을 벗어나 목표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던 경계병들은 그대로 깨지 못할 영원한 꿈나라로 향했다. 그렇게 열 남짓한 경계 병력을 제거한 그들이 건물로 조심스럽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예상대로 물품이 많이 적재되어 있었다.
“경계가 영 허술하네?”
“뭐 이 정도가 딱이지, 뭐. 안쪽으로 가 보자. 뭔가 아는 게 많은 놈 같으면 일단 죽이지 말고 사로잡자고.”
안으로 들어선 묵갑귀마대원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여기 이 안쪽에 인기척이 느껴집네다.”
“이런데 문이 있네? 지하로 향하는 곳인가?”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다면 모를 곳에 문이 있었다. 그걸 본 대원들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 비밀기지 그런 거 아니야?”
“푸흐흐. 비밀 좋아하네.”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르르륵!
벽면에 건물의 형태를 그려놓은 판 위에 붙어 있던 술법지 하나에 불이 붙으며 사그라졌다.
그 모습에 졸고 있던 술법사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 침입자다!”
그의 짧은 외침에 문밖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 달려왔다. 그리고 이내 밖으로 다시 뛰어나갔다. 침입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기사들이 달려왔다.
“침입자가 맞는가?”
“아직 내부로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입구 쪽에 붙여 놓은 경계 봉인이 제거된 것으로 보아…… 아!”
또다시 벽면에 붙은 술법지가 불에 타 사그라졌다.
“내, 내부로 들어섰습니다!”
“젠장!”
기사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호와 대원들은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너 때문이야!”
대원 중 하나가 버럭 소릴 지르자 본의 아닌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대원 하나가 발끈했다.
“왜!”
“니가 비밀기지 운운해서 말이 씨가 된 거잖아!”
“그, 그건…….”
순간 대원은 할 말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고 나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길고긴 복도, 그리고 무장을 제대로 갖춘 병력은 건물 밖에서 보았던 어설픈 경계병과는 전혀 달랐다. 기사로 보이는 자도 있었다.
“내, 내가 여기 오자고 했냐!”
억울한 듯 항변하는 순간 수호가 뛰어나갔다
“어서 가디요!”
“막내가 가자고 했지.”
“눈치 빠른 놈.”
“끙.”
멀어지는 뒤꽁무니를 보며 다들 한숨을 쉬고 달려 나갔다.
수호는 달리며 똥 씹은 얼굴을 했다. 만만한 걸 고른다고 한 게 이런 것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범죄세력이나 뭐 불법적인 것을 다루는 놈들일 수도 있디. 암, 기렇고말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달리던 수호가 멈칫하며 부창을 휘둘렀다.
퍼어엉!
폭발음과 함께 화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순간 복도를 너울거리며 날아드는 불의 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너편에는 술법사들의 모습도 있었다.
왠지 더 불안해졌다.
“일단 조져!”
뒤에서 뛰어온 대원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의 외침에서 수호는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일단 조지라는 말.
여기를 정리하고 나면 마치 자신을 갈구겠다는 말로 들려왔다.
“니엔장!”
아무래도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싸워야 할 것만 같았다.
“노, 놈들의 무력이 엄청납니다!”
“대체 정체가 뭐야!”
술법사들이 당황한 모습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술법들을 그대로 정면 돌파해 오는 적들의 모습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그들이 술법을 부리는 동안 막아섰던 병사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때 마침 뒤에서 기사단이 달려왔다. 그들을 본 술법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서걱!
데구루루.
달려 나갔던 기사 중 하나의 머리통이 날아와 벽면에 튕겼다가 술법사들에게로 굴러왔다.
“아, 안 되겠다! 실험실로 가서 일단 소각 작업을 준비해! 이곳이 발각된 듯하다!”
“알겠습니다!”
술법사들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술법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그들을 내보내지요?”
“하지만 아직 불완전할 텐데.”
“차라이 이참에 실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소각 작업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술법사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달려갔다.
“세이븐 백작님께 가서 허락을 구해! 어서!”
“알겠습니다!”
술법사들이 복도를 역주행해 나갔다.
“허먼 경, 그대가 나서줘야겠소.”
지하라 그런지 비명이 더욱 크게 울리는 가운데 술법사들의 우두머리인 세이븐 터너 백작이 소울아머 유저인 허먼 브라운 자작에게 부탁을 했다.
“걱정 마십시오. 허나 놈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으니 방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부탁하오. 남은 자료가 혹여 외부로 유출되는 건 막아야 하니까.”
“별 문제 없을 것입니다.”
그때 술법사들이 달려 들어왔다.
“헉헉! 놈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으음, 허먼 경이 나설 것이다.”
“그, 그렇습니까? 하지만 숫자가 많습니다. 혹시나 놈들이 갈라지면서 들어오면…….”
“그 정도인가?”
“기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할 정도의 실력자들입니다.”
술법사들의 말에 세이븐 백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술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험 중인 그들을 쓰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들을?”
“실전도 겸해서 말입니다.”
술법사들의 말에 세이븐 백작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것 같지는 않군. 그럼 실험체들을 움직이게.”
“알겠습니다!”
세이븐 백작의 명령에 술법사들이 다시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세이븐 백작을 보며 허먼 자작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이거 제가 나설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허허, 허먼 경이 실험체들의 평가를 제대로 해 주면 좋을 듯합니다.”
세이븐 백작은 이미 적들을 소탕한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적의 분멸은 시간문제라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