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33
98화 진천, 하늘을 지배하다
그때 카사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지급 받는 기준이라도 있습니까?”
카사 백작의 질문에 빌리 자작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왜? 자네도 탐이 나나?”
그의 웃음 속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비록 유흥 쪽에서 만난 친분이 있다지만, 그의 위치와 지금 바이블 남작으로 위장한 카사 백작과의 위치에는 차이가 컸다.
빌리 자작은 점령지에서 시작한 작은 개척 영지이지만 자신의 영지를 가진 영지귀족이었다.
하지만 카사 백작이 가지고 있는 귀족 지위는 그야말로 뜨내기 지위였다.
영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귀족의 지위는 당대에 그만한 영지를 얻거나 공을 세우지 못하면 소멸되는, 영지귀족 소속의 장원을 가진 기사만도 못한 위치인 것이다.
“솔직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아시다시피 이대로 가다간 제 대에서 가문이 무너질 수도 있고…….”
카사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불쌍한 척을 했다.
그의 웃음 속에 섞인 비웃음을 모를 리 없지만, 차라리 그걸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거참, 그러게 평소에 공을 좀 세우지 그랬나.”
빌리 자작의 말에 카사 백작이 헛웃음을 머금었다.
빌리 자작이 공을 세운 건 없다. 그가 세운 것이 아니라 그나마 그의 아비가 세운 것이고, 그 덕에 정복지에 개척 영지를 하사받았을 뿐이다.
그가 잘한 것은 술 먹고 노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카사 백작과 인연이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따지자면 카사 백작도 그의 말마따나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물론 가진 능력이 유흥이라 사교계에 나름 연줄을 만들어 접대 쪽으로 특출 난 능력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필리어리 왕국에서의 공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자작님처럼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됩니다.”
“하하핫!”
카사 백작이 슬쩍 띄워 주자 빌리 자작이 즐거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과거지만 우린 불같은 청춘을 함께 보낸 사이가 아닌가?”
“그럼요. 하루하루 불타는 밤이었습죠.”
“일단 장당은 어렵다는 걸 알지?”
“예, 그럼요.”
로우 급으로 명명되었지만 무려 소울아머다. 그걸 쉽게 구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빌리 자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야망이 있네. 그래서 많은 이들을 모으는 중이기도 하고.”
“역시! 자작님이십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욕심이 없다면 오래전에 술친구였다 해서 카사 백작을 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귀족들이 지위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하위 귀족들을 아우르는 것이다.
영지라는 구심점이 있는 귀족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영지가 없는 작위 귀족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나 모으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상은 재물이 있거나 기사를 조금이라도 거느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중에 빌리 자작이 기억하는 카사 백작은 적당한 재물을 가진 귀족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전 그가 후계 자리에 있을 때 카사 백작에게 종종 얻어먹었다.
또 허술하기는 하지만 호위기사도 둘이나 있고 말이다.
나름 구색은 맞췄다고 볼 수 있었다. 병사야 재물로 맞추면 되니 말이다.
“나만 따르면 되네. 알지?”
빌리 자작의 말에 카사 백작이 은근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제가 이 자리에 왜 있겠습니까?”
“흐흐흐! 역시 난 자네가 마음에 들어!”
카사 백작이 슬슬 추켜세워 주자 빌리 자작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어떻습니까? 이 근방에 좋은 곳이 있던데.”
“요 근방은 별 재미가 없던데.”
“제가 좀 손을 써보겠습니다. 저 믿으시지요?”
카사 백작의 말에 빌리 자작이 눈을 빛냈다.
인간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다. 빌리 자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사실 노는 것도 누구와 노느냐가 중요했다.
잘 놀지 못하는 이와 함께하면 노는 재미도 없다. 그런 면에서 카사 백작은 최고의 술친구였다.
“내 믿지. 흐흐.”
“기대하십시오. 제가 허송세월을 보낸 만큼 그쪽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위로 승차하시려면 접대도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제가 그 부분을 충족시켜 드리겠습니다.”
빌리 자작은 카사 백작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웅삼과 제라르는 기가 차자는 표정을 애써 지우며 시립해 있었다.
만족스러운 대화를 마친 빌리 자작이 웅삼과 제라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둘은 군기가 든 모습으로 몸을 꼿꼿이 했다.
그런 둘을 보며 빌리 자작이 말문을 이었다.
“흐음, 내가 검은 좀 하잖은가.”
“그럼요!”
“내 안목으로 보건데, 바이블 남작 자네는 기사 전력을 보충해야겠어. 딱 봐도 비리해.”
“하, 하하. 나름 실력 있는 친구들입니다.”
“쯧. 그러니 자네가 아직 가문을 일으키지 못하는 걸세. 내 아는 자유기사들이 있는데 차라리 그들이 낫겠어. 이거 로우 급이라 한들 가져다줘서 소화나 하겠나?”
순간 웅삼과 제라르, 둘의 미간에 핏대가 섰다.
그런 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빌리 자작이 말을 이었다.
“잘들 해. 바이블 남작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쯧.”
둘은 대답 대신 목례를 했다. 입을 열었다간 쌍욕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런 둘의 행동을 본 빌리 자작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쫄긴. 사람은 죽여 보기라도 했나 몰라.”
그렇게 혀를 차며 빌리 자작은 밖으로 나섰다.
막사 안은 싸늘해졌다.
그때 밖에서 한마디가 더 들려왔다.
“차라리 이 친구가 더 듬직하겠네.”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죽일까?”
제라르가 중얼거리자 웅삼이 대꾸했다.
“그건 너무 쉽잖아.”
“그치?”
“팔다리 다 끊어놓고 울절님께 치료해 달래서 던져 놓는 건 어때?”
“그걸로 되겠어? 고추도 떼어야지.”
“오! 좋은 방법이야!”
둘의 대화를 들으며 카사 백작은 두 괴수를 건드린 빌리 자작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
계웅삼 일행 쪽에서 보내온 내용을 받은 가우리와 동맹국 일원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더 까다롭겠습니다.”
로셀린의 헬리오스 바이칼 공작이 침묵 끝에 입을 열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묵갑귀마대가 떼거지로 움직인다 생각하니…….”
이어진 바이칼 공작의 말에 로셀린은 물론이고 말린이나 하이안 왕국에서 나온 이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묵갑귀마대의 비유는 그들에게 있어 더욱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사 론 카말 왕이나 필리어리 왕인 헤머튼 리어 2세의 표정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묵갑귀마대원들의 활약은 그들도 겪어 봐서 알았다.
“안 그래도 전체 전력의 차이가 얼마나 날지 모르는데, 그 질까지 높아졌다니.”
쉬람 마잘 공작이 한숨 섞인 말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마따나 전력 차이가 극심한데 거기에 평균적인 기사 전력이 더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동맹군의 합류로 좋았던 기분을 구덩이에 파묻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기존 소울아머와 다른 것이 또 하나 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으음.”
말을 꺼낼수록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바이칼 공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도 소울아머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의 말에 고진천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저쪽이 그렇게 나오면 이쪽도 질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울아머가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눈앞의 일을 처리해야 했다.
“혹시 대마법사께서 연구하시는 것은 진척이 좀 있습니까?”
“글쎄.”
이어진 바이칼 공작의 질문에 진천이 고개를 저었다.
일일이 그의 연구를 파악하지 않았던 탓에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친전이 입을 열었다.
“허나 내가 개발 중인 건 있지.”
진천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바사 왕과 헤머튼 왕은 기대에 찬 눈빛이었고, 나머지는 불신의 눈빛이었다.
진천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뭘 개발하는 쪽의 두뇌는 아니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를 모르는 바사 왕이나 헤머튼 왕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였다.
“어쩔 수 없지. 보여 주겠다.”
진천이 벌떡 일어서자 곁에 있던 을지우루가 환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드디어 공개하는 겁네까?”
“음.”
진천이 걸음을 옮기자 바사 왕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진천이 바사 왕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하늘?”
멍한 표정을 지은 바사 왕을 비롯한 일행들은 진천을 따라나섰다.
마법진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무언가가 이동해 온 듯했다. 그런 분주한 움직임을 본 바이칼 공작은 확실히 뭔가가 있는가 하는 마음에 기대감을 키웠다.
“이건 뭡니까?”
공터에 거대한 천이 있었다. 길이만도 건장한 장정 열을 뉘어 놓아도 될 법했다.
그 앞에 선 진천이 명령했다.
“천을 치워라.”
“예.”
진천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을 치웠다. 그걸 본 이들이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마치 새처럼 날개가 있는 그것은 물고기와 같은 철제 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여 주지.”
진천이 성큼 걸어가더니 동체 위에 있는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궁금함이 도진 바사 왕이 우루에게 질문을 했다.
“저 물건은 뭐요?”
“비행기라 부르는 것이디요.”
“비행기?”
그때 좌석에 앉은 진천이 입을 열었다.
“이륙하라.”
그러자 거대한 동체가 천천히 하늘로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동체가 떠오르는 모습에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던 바이칼 공작마저 놀란 눈을 했다.
“허어?”
하늘로 치솟은 그것은 유유히 방향을 틀어가며 허공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잠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땅으로 서서히 내려왔다.
“이, 이것이 뭡니까?”
“내가 비밀리에 만든 것이다.”
“비행기라는 것 말입니까?”
바이칼 공작의 질문에 진천이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이것을 이용해 적진 위에서 기름과 불을 끼얹는다든지 돌을 쏟아붓는 등의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있다니!”
바이칼 공작은 물론이고 모두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동체문이 열리며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구구.”
“끄응.”
“허어어.”
딱 봐도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이 힘 빠진 표정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법사 아닙니까?”
“그렇지.”
“…….”
잠시 입을 다물었던 바일칼 공작작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었다.
“설마 비행마법은 아니겠지요?”
“경량화마법도 있지.”
밖으로 나온 마법사의 숫자는 여섯.
바이칼 공작이 다시 질문했다.
“다른 기능은 없습니까?”
“나를 태우고 날 수 있지. 편하더군.”
“…….”
결국 진천이 개발한 것은 하늘을 나는 인력거였다.
할 말을 잃은 바이칼 공작을 본 바사 왕과 헤머튼 왕이 조심스럽게 우루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때문에…….”
“무슨 문제라도 있소?”
마법 전력에 무지한 두 사람의 질문에 우루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안 태워 줘서 그런 것 같습네다.”
“아!”
“그렇군.”
“…….”
바이칼 공작은 우루와 두 왕을 바라보며 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