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36
101화 기회, 그 소중한 가치
“무슨 이런 괴물들이…….”
미켄 산 산적의 두령 라임은 창백한 안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채가 초토회되었다.
처음 습격을 알았을 때는 토벌대가 온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토벌대가 아님을 알았다.
각기 다른 복장의 무장을 갖추고 들이닥친 이들의 모습은 정규군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맨손으로 수하들을 때려눕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으아아아!”
맞아서 날아가는 놈.
“쾍!”
맞는 순간 눈을 까뒤집는 놈.
“흐엑!”
맞지도 않았는데 기절하는 놈.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나서야 할 듯합니다.”
“크윽!”
수하들로는 답이 없다는 걸 안 라임의 호위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반인을 상대로 제법 힘 조절이 수월해진 강구신이 고개를 돌렸다. 이 산채 두령의 호위로 보이는 이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을 본 구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그들의 행색이 산적이라 보기에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경갑이었지만 나름 정갈하게 손질된 것을 입고 있었고, 지금까지 보았던 산적들과는 달리 제법 단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다들 조심해라.”
구신의 말에 걸어 나오던 호위들이 굳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이미 늦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호위들의 숫자는 다섯이었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소울아머를 입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챈 묵갑귀마대원 중 하나가 구신의 말에 동조하듯 입을 열었다.
“아 진짜, 똥 밟았네.”
“그러게.”
이들의 반응에 두령의 호위들이 하나같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중 처음에 서늘한 음성을 뱉었던 이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오로지 네놈들의 목숨으로…….”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저번처럼 시에라 제국 비밀기지인 거 아냐?”
“몰라. 그래도 황자는 아니겠지.”
“살살해라! 저번처럼 싹 죽이거나 살아도 병신 만들지 말고!”
연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호위들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자신들을 가볍게 보는 언사에 열이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비밀기지? 황지?”
대원들의 대화에서 무언가 걸리는 단어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저, 저놈들 숲적입니다!”
그때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수하 중 하나가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
숲적.
최근 그들처럼 악명을 떨친 이들은 없었다.
오죽했으면 숲적을 가장하여 활동하는 이들이 생겨났을 정도일까.
문제는 그 악명을 떨친 배후에는 이들이 소울아머 유저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황자 살해설 또한 마찬가지.
최근에는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에라 제국의 토벌대가 미친 듯이 근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뭔가 저질렀을 거라는 의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저놈들, 제국의 비밀 시설을 털었었나 봅니다.”
“미친!”
이제야 산채 주변에 깔린 토벌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긴장해라. 놈들의 실력이 꽤 있는 듯하니. 뭉치기 전에 처리한다.”
중앙에 있는 소울아머를 입은 사내의 말에 주변의 호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의 앞에는 네 명이 있었다. 아니, 한 명이 추가되었다.
“저놈이 두목입니다!”
추가된 이는 을지수호였다.
“소울아머? 산적이? 이거이 뭡네까? 또 똥 밟은 겁네까?”
수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오자 구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기래요?”
“몰락한 어디 도련님쯤 될지 모르지. 또 알아? 저번엔 황자였으니 왕자쯤 될지. 크크크.”
“어, 어떻게?”
순간 호위 중 하나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여기 있는 이들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모두가 구신을 바라보았다. 왠지 소름 끼친다는 표정들이었다.
“노, 농담인데.”
“일단 조지고 보자. 농담인지, 진짠지.”
“저 새끼랑은 같이 못해 먹겠다. 말 꺼낼 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져서.”
“놈들을 잡아!”
그때 호위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소울아머 유저 역시 갑주를 활성화시키며 달려들었다.
“저놈은 내가 맡는다!”
여태껏 맨손으로 적을 상대하던 구신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붉은색 곤봉이었다.
콰앙!
“헙!”
구신의 곤봉을 일격에 베어 버리는데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소울아머 유저 포보스의 얼굴 위로 당황감이 서렸다.
소울포스를 담은 그의 롱소드가 곤봉과 부딪치는 순간 그 충격에 팔이 저릴 정도였던 것이다.
“어라? 솜씨가 꽤 있네?”
구신의 말에 포보스는 이를 악물며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연신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에 부담감이 서렸다.
“커억!”
눈앞의 적을 먼저 처리하고자 했던 그의 수하들이 나자빠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초조함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수하들은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 적에게 덤벼들었다.
“빌어먹을!”
포보스가 소울포스를 끌어올려 맹공을 가했다.
쩌정! 쩡!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철벽처럼 막아 내고 있었다.
순간 그의 마음에 갈등이 서렸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사이 산채가 정리되었는지 적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다행히 함께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시간문제였다.
포보스가 이를 악물며 소울스톤을 움켜쥐었다.
‘죄송합니다.’
눈을 질끈 감은 그의 귓가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복하겠소!”
그 소리를 들은 포보스가 뒤돌아보며 외쳤다.
“안 됩니다!”
“그만합시다. 이제…….”
산채의 두령인 라임이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저항하지 않겠다는 듯 들고 있던 무기마저 버리고 말이다.
그의 모습을 본 포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라임이 다시 피투성이가 된 채 수호와 대원들에게 매달리듯 저항하던 호위들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경들도 그만하면 됐소.”
그의 말에 포보스의 소울포스가 풀리며 소울아머가 무장 해제되었다.
포보스가 라임의 앞에 무릎 꿇으며 허망한 음성을 내뱉었다.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저언하!”
그 외침이 터지는 순간 묵갑귀마대대원들이 일제히 구신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
비행기의 개발 실패 이후, 한동안 칩거했던 고진천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뭔가를 또 만들었다고 하지 않아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안도하는 사이 진천이 향한 곳은 바로 우중만의 거처였다.
“흐음.”
울타리 안에 들어선 진천의 앞에는 중만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떨고 있었다. 본능에 새겨진 공포 때문이었다.
그 뒤로 오크들이 그런 중만을 지키려는 듯 서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본능이 발달된 그들은 진천이 최상위 포식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게 가상할 따름이었다.
“꽤 든든해 보이는군.”
“아, 아닙니다.”
“반란이라도 일으키게?”
순간 중만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이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저, 절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상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리는 것들 중에는 오크보다 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접었다.
소 몰러 간다는 소리에 ‘이곳에도 소가 있군.’ 하는 생각으로 구경하다가 얼마나 놀랐는가.
한 사 미터는 되어 보이는 크기의 직립보행을 하는 소는 그야말로 신화에나 나올 법한 괴물이었다.
문제는 그걸 코뚜레에 꿰어 끌고 다니는 모습에 더욱 기겁을 했었다. 혹시 유순한가 싶어 오크들 중 나이가 적잖이 먹은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창백한 얼굴로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이 숲에서 먹이사슬 상위권에 위치하는 위험한 종족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상위권은 바로 이 가우리라는 인간들이었다.
오크들 역시 이 인간들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자면 서울에서 보인 진천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괴물이라 불릴 만했으니 말이다. 현대 병기를 든 외국의 용병들을 칼 한 자루로 다 작살낸 게 바로 진천이었다.
심지어 헬기까지 말이다.
인간이 아니었다.
“제법 우두머리 티가 나는군.”
“예…….”
진천의 칭찬 아닌 칭찬에 중만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인으로 살 때는 몰랐던 감정을 이곳에서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처지에 있다는 동질감에 자신도 모르게 오크들을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이 울타리 안에서는 그가 왕이니 말이다.
“원하는 게 있나?”
진천의 질문에 중만이 움찔했지만 이내 침착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크들도…….”
“음.”
다시 한 번 중만이 눈치를 살피자 진천이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중만이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애써 열었다.
“기회를 주십시오, 폐하!”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그렇게 외치고는 넙죽 엎드렸다. 그 말에 진천이 한쪽 눈썹을 슬쩍 끌어올리며 반문했다.
“기회?”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 감정을 읽어 낸 중만이 기회라는 듯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오, 오크들도 이 가우리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재미있구나.”
진천이 허연 이를 드러냈다.
사실 진천이 이곳에 온 이유는 몇몇 의견 때문이었다. 그동안 오크들을 단순한 노동력이나 공성병기 혹은 배의 노잡이 등으로만 써왔었다.
하지만 지금 중만으로 인해 오크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본 마법사들이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중만이 이런 제의를 하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오크들은 인육을 먹는 데에도 서슴지 않는 부류다. 그런데 그 말이 가당키나 한가?”
진천의 말에 중만이 울컥했다.
인육을 먹는 그 무리에 자신을 집어던진 게 바로 진천이지 않은가. 하지만 부패했어도 정치인이다.
이런 마음을 깊이 숨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도 인간을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오크들은 인육을 먹던 이들이 아니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 오크들은 가우리의 울타리에서 길러진 것들이었다.
하지만 중만이 이들과 함께하며 놀란 것 중 하나는 오크들도 기억을 전승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처럼 글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말로써 선대의 기억 혹은 경험을 전달해 왔던 것이다.
“인간도 인간을 먹는다라…… 그건 그렇군.”
중만의 말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역사까지 들추지 않아도 그런 일은 있어 왔다. 굶주림 때문에 혹은 미신에 의해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는 건 진천 역시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였다.
물론 오크들처럼은 아니지만 말이다.
진천이 다시 물었다.
“허나 이들이 변화했다지만 그걸 믿기는 어렵지.”
“하, 하지만 기회조차 없다면…….”
“이 가우리는 피 흘린 자들이 일군 곳이다. 스스로 피를 흘린 이들이 아니라면 그 자격이 없다는 말이지.”
진천의 말에 중만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귀가 있어 소문을 들었다. 전쟁 말이다.
중만이 입을 열었다.
“그 자격을 가질 기회, 주시는 겁니까?”
중만이 고개를 들어 진천을 보며 물었다. 그 표정에 더 이상 이전의 혼탁한 기운은 없었다.
“재미있어. 개과천선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보군.”
“예?”
“그 기회, 주도록 하지.”
진천의 한마디에 중만의 표정이 밝아졌다.
진천이 뒤돌아서며 다시 한마디를 더 던졌다.
“네놈에게도 말이야.”
중만의 얼굴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