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38
103화 협조세력
라임 왕자와 호위대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
“이렇게 보는 건가?”
“여기 위치는 어디지?”
“뭐라 적혀 있는 거야?”
그는 지금 포로다. 그것도 일개 산적이 아닌 한 나라의 왕자였던 이다.
그런 위치의 라임 왕자는 처음 포로로 붙들렸을 때보다도 더 큰 자괴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후우.”
긴 한숨이 밀려왔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들에게 잡혔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가치가 지도 한 장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숨결에 묻어 나왔던 것이다.
차마 이런 치욕을 주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저들은 지도를 받는 순간 이쪽에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그때 포브스 자작이 조심스럽게 안위를 물어봤다.
그의 질문에 라임 왕자가 쓴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몸 상태를 묻는 거라면 아무 문제없소. 그리고 마음을 묻는 거라면…… 이미 너덜너덜해졌소이다.”
“죄송합니다.”
라임 왕자의 한마디에 포브스 자작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때였다.
“이거 좀 도와줘야겠는데.”
구신이 그들에게 다가와 지도를 보여 줬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까막눈이라.”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오.”
이렇게나마 관심을 받으니 라임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위안을 느꼈다.
“여기 위치가 어디요?”
“이곳이오.”
한곳을 지목하자 구신을 비롯한 일행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수호가 다시 질문을 이었다.
“기럼 카말 왕국으로 가려면 어케 가야 하는 거이네?”
“카말 공국 말이오?”
라임 왕자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호위 기사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길티.”
“카말 공국, 아니지. 이제는 왕국으로 선포를 했다니 왕국이겠구려. 왜 그리로 가려는 것이오?”
“기거이 온 곳이니 가야…….”
대답을 하던 수호가 말끝을 끊었다.
“숲적이 아니구려.”
“큼. 우리는 모종의 임무를 부여받고 왔디.”
“아까 길을 잃었다는 말은 무슨…….”
라임 왕자의 질문에 구신이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수호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전투 도중에 지도가 사라진 거이디.”
“음…….”
수호의 말에 라임 왕자는 다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대원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알려는 드리겠소만, 이 주변과 달리 그곳은 도적질할 만한 곳이 아니오.”
“도적질하러 가는 거이 아니니 걱정 말라우.”
수호의 대답에 대원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러자 라임 와자가 그들의 표정을 읽고 확신하듯 입을 열었다.
“그대들 숲적이 아니군.”
“무슨 소리하는 거이간! 우린 숲적이야! 숲적!”
“그럼 도적질 하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카말 왕국으로 가는 이유가 뭐요? 게다가 제국의 황자를 살해한 것이 맞소? 비밀기지도 털었다는 소리도 맞고?”
“기, 기거야 상인인 줄 알고 까부쉈는데 황자가 있었을 뿐이고…… 비밀기지는 워낙 비밀로 잘 꾸며놔서 비밀인지 모르고 친 거이디.”
“무슨 말도 안 되는…….”
“기러니까 우린 평범한 숲적인 기야.”
수호의 적극적인 해명에 대원들이 왠지 라이송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허.”
라임 왕자는 정말로 허탈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우연이라 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짓을 벌이고 다니는 이들이었다.
그때 포브스 자작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몰락했다지만 황자의 곁에 호위로 소울아머 유저들이 있었을 것인데, 말이 된다 생각하시오? 심지어 주변에 깔린 병력을 보면 그 비밀기지란 곳도 중요한 곳이었을 터. 그 방비를 허투루 해 놓지 않았을 것이오.”
“있기는 했는데 뭐…….”
“우리가 좀 센 숲적이니 그렇지.”
“맞아. 소울아머가 배탈이 났었는지 좀 비리비리하더라고. 죽이고 나니 응가 나오더만.”
“가끔 죽이면 나오는 거 아니냐? 그건?”
수호가 얼버무리자 곁에 있던 대원들이 한마디씩 던지며 변명을 해 댔다.
물론 그 와중에 이상한 소리들이 섞여들었지만 말이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소울아머가 배탈이 났다 해도 가능한 것이라 보시오? 그리고 내 비록 포로나 마찬가지인 신세지만 칼 한 자루로 누구에게 쉽게 무릎 꿇을 사람이 아니오! 정체를 밝히시오!”
포브스 자작이 일갈했다.
그의 외침에 대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들이 생각했을 때도 변명이 좀 어설펐다.
그때 그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수호가 고개를 돌려 포브스 자작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쩌억!
이어서 수호의 큼직한 손바닥과 포브스 자작의 뒤통수도 마주쳤다. 차진 타격 음과 함께 포브스 자작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억!”
“자작님!”
“포브스 자작! 이게 무슨 짓이오!”
라임 왕자가 붉어진 얼굴로 항의하자 수호가 다시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라임 왕자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뒤로 뺐다. 마치 뒤통수 맞는 것을 피하려는 듯.
그런 라임 왕자를 바라보며 수호가 답했다.
“포로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포로인 거디. 알간?”
“아, 알고 있소.”
“질문은 내가 하는 거이야. 알간?”
“아, 알겠소.”
“기래. 대답 잘 하라우. 안 그럼 뒤통수 머릿가죽이랑 안면 가죽이랑 맞닿을 일은 없으니까네.”
수호의 최후통첩에 뒤통수를 맞고 고꾸라져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포브스 자작을 본 라임 왕자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답변은 공손했다.
그 모습에 대원들은 저마다 감탄했다.
“때론 단순한 게 확실하네.”
“하긴. 전에 그 양반도 포로 하나는 잘 다뤘지. 포로 다섯 잡아놓고 셋을 때려죽이고 나니, 남은 이들이 알아서 다 말했잖아.”
“그건 질문도 안 해 놓고 불라고 팬 거고. 그때 못 봤냐? 정말 말할 수 있으니 제발 뭘 물어보는지 좀 해 달라고 절규하며 죽은 애.”
“아, 그랬나?”
“맞다. 그때 죽은 애 보고 ‘미안.’ 이렇게 말하고 다음 놈 패려고 했었지.”
그들의 대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엎어졌던 포브스 자작은 잠시나마 이들을 카말 왕국 혹은 그쯤 관련된 정규군으로 착각한 자신을 원망했다.
저런 인간들은 절대로 정규군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기렇군.”
라임 왕자의 적극적인 협조로 수호와 대원들의 얼굴은 잠시 밝아졌다.
하지만 이어진 라임 왕자의 말에 그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쪽으로 가는 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뭔 소리네?”
“제국의 병력이 그 일대에 모여 있습니다. 남하 작전 준비 중이지요. 확인은 못 했지만 얼추 수만 이상의 병력이 집결되어 있고, 또 계속 집결 중이라 들었습니다.”
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그 정도 숫자라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지금도 누적된 피로로 인해 피로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어쩌디요?”
“왜 물어봐. 니가 두목이잖아.”
라임 왕자는 두목에게 막말하는 그들을 더 보며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한 바도 있었다.
“끙.”
고민하는 수호에게 눈치를 살피던 라임 왕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지도는 예전 우리 왕국 때 작성된 지도라 지금 제국령이 된 이후의 병력 배치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수호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그때 라임 왕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만 그동안 저항군을 이끌며 대체적인 제국군의 동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래?”
“협조할 수 있는 만큼 협조하겠습니다.”
라임 왕자의 말에 엎어져 있던 포브스 자작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전하! 이런 무도한 자들에게 그런…….”
짜악!
털푸덕.
포브스 자작이 뒤통수에 김을 모락모락 피워 내며 다시 엎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라임 왕자가 긴장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협조하는 대신 탈출하신 이후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그 정도는 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라임 왕자의 발언에 수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았다.
다들 그의 눈을 피했다.
“됴아. 받아 주갔어. 단 함께 있는 동안은 명령에 따르라우. 불복하면 내래 친히 목을 따 주갔어.”
“며, 명심하겠습니다.”
라임 왕자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수호의 약속 이후 라임 왕자와 일행들은 구속에서 풀려났다.
물론 처음부터 묶어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함께 있을 공간 정도는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호위 중 일부는 밖으로 나가 엉망이 된 산채를 정돈했다.
“왕자님 어찌하시려는 겁니까.”
포브스 자작이 라임 왕자에게 걱정 어린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다.
“좀 괜찮소?”
“뒤통수를 말씀하신 거라면 얼얼하긴 하지만 참을 만합니다. 마음을 물어보신 거면…….”
“너덜너덜해 보이오.”
“크흑!”
포브스 자작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위로의 눈길로 바라봐 준 라임 왕자가 입을 열었다.
“행동이 비상식적이지만 분명 그들은 모종의 임무를 가진 병력 같소. 오락가락하지만 말이오.”
“행동거지는…….”
“물론 행동 때문에 우리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전투를 치르는 방식이나 순식간에 지휘부를 치고 들어오는 형태를 보면 일반 도적이라 볼 수 없소. 무력은 또 어떻소.”
라임 왕자의 말에 포브스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나마 저런 무도한 자들은 정규 병력일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라임 왕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카말 왕국 쪽이라면 풍문에 돌던 그 가우리라는 곳의 병력일 수 있소.”
순간 침묵이 흘렀다.
다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그때 생각을 정리하던 포브스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습니다. 용모가 비슷합니다.”
“그렇소.”
“게다가 길을 모른다는 것이…….”
“무언가 작전을 펼치다 그들의 말대로 길잡이나 지도를 망실했을 수도 있고.”
라임 왕자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지 고개들을 끄덕였다.
“그럼 어찌하시려 그럽니까?”
“일단 협조하면서 기회를 노려야겠소.”
“기회라면?”
포브스 자작의 말에 라임 왕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쟁은 또 다른 기회요. 혼란을 틈타 제대로 해 볼 생각이오.”
라임 왕자의 말에 포브스 자작은 물론이고 다른 호위 기사들 역시 생기가 돌았다.
그동안 저항군이랍시고 산채 하나 꾸리던 그들이었다.
심지어 라임 왕자 역시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가우리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게 들려왔다.
물론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풍문으로만 흘려보냈었지만, 지금 이들을 보니 왠지 풍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함께해 봅시다. 판단은 이후에 하는 것이 좋소. 이들 역시 약속한 바는 지키는 이들 같으니 말이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다른 수는 없지 않소?”
“예!”
“왕자로 나서 산적으로 죽기는 싫소. 안 되더라도 왕국의 왕자로 남고 싶소.”
그들은 라임 왕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작게나마 희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