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46
111화 구신과 웅삼
구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 소울아머 유전지 뭔지 하는 것보다 강하다!’
처음의 장난스러웠던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그런 마음은 처음 무기를 맞닥트렸을 때부터 사라졌지만.
그래도 전력을 다하면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이곳은 우습게도 소울아머라는 무구가 강함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입지 않고도 강력함을 보이고 있는 것에 놀란 것이다.
“너 이 새끼, 칼 집어넣어라!”
순간 구신은 열이 받았다. 마음 같이 않은 것도 그렇지만, 왠지 익숙하면서도 열 받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어투가 그의 심기를 거슬렀던 것이다.
“니 눈깔은 동태냐? 이게 칼로 보여? 눈깔이 미쳤구나! 미친 눈깔에 몽둥이찜질을 해 주마!”
구신의 손이 미친 듯이 휘둘러졌다.
그러다 문득 발치에 어떤 기사가 쓰던 것 같은 무가 보였다. 메이스였다.
구신이 그걸 발끝으로 차올리며 다른 한 손에 쥐었다.
그러자 앞에서 싸우던 기분 나쁜 인간이 외쳤다.
“허? 양손에? 너 막나가자는 거지!”
“이런 어린노무세퀘가. 너? 아주 온몸의 뼈를 다 으스러트려 주마!”
그 말을 하는 동시에 양손에 들린 곤봉과 메이스가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콰쾅! 쾅! 쾅!
“이런 씨팍!”
웅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양쪽으로 미친 듯이 몰려오는 공격에 조금이나마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혹스러웠다.
같은 편도 알아보지 못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찰나 구신의 동공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완전히 다른 외모.
“젠장!”
“왜? 이제 버겁냐? 조금만 기다려라! 문어가 형님 할 정도로 온몸의 뼈를 노곤하게 갈아 주마!”
그 말에 웅삼이 열을 더 받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 침투하기 전에 마법으로 외모를 변형시켰다. 그걸 풀 수 있는 건 트렌든뿐이었다. 그런데 트렌든은 지금 높은 곳에서 카사 백작을 보호하고 있었다.
‘일단 이 새끼를 제압해야 하는데.’
솔직히 죽자 사자 싸우는 게 편하다. 묵갑귀마대 중 최강으로 불리는 놈이 바로 눈앞의 이놈이었다.
물론 지휘는 개판이고 전략에는 병신이었지만, 전투 그 하나만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었다. 명령에 충실한 살인기계가 바로 구신이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이끄는 검수들과 맞붙는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작전 빼고 그냥 맞붙었을 때 말이다.
물론 본국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전쟁하는 한량이라 부른다. 묵갑귀마대 내에서도 유별난 인간들이 속한 무리다. 그 덕에 열제의 친위대로 딱이었다.
그냥 명령을 내리면 두말할 것 없이 달려드는 인간들.
의문도 없다.
적이 수십만이라 해도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달려 나가는 인간들이고, 그런 인간들 중에 최강 최악의 존재가 바로 구신이었다.
물론 평소의 대련 때에는 웅삼이 항상 우위였다. 그러나 그건 대련일 때였고, 실전은 솔직히 어떨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맞았다.
‘이거 쪽팔리겠는데?’
웅삼이 찔끔하며 시선을 슬쩍 돌리니 제라르가 미간을 묘하게 찌푸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웅삼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저놈도?’
처음 진천과 만났을 때 묵갑귀마대에게 조리돌림을 당했던 제라르였다. 그를 조리돌림한 이들 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구신이었고 말이다. 아마 그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웅삼의 눈빛이 변했다.
“제대로 상대해 주마!”
그 말과 동시에 웅삼의 몸이 살짝 낮아졌다. 그러고는 어느새 손에 들어온 흙이 앞으로 뿌려졌다.
“아악!”
“악!”
동시에 웅삼과 구신이 눈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뭐하는 거야? 저 바보들.”
제라르가 혀를 찼다.
한 놈은 손으로 흙을 뿌리고, 다른 한 놈은 발끝으로 흙을 차올렸다.
결과는 동귀어진.
“이거 어쩌지?”
제라르가 망설이는 가운데 성안으로 치고 들어온 묵갑귀마대원들이 이번에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야 이씨! 아니라고! 야! 야!”
제라르가 바빠졌다.
“뭡니까?”
웅삼과 제라르가 미친 듯이 싸우는 모습을 보던 징집병 중 하나가 카사 백작에게 물었다. 분명 적이니까 싸우는 건 맞는데, 왠지 상황이 묘했기 때문이다.
웅삼의 행동을 보면 밖의 인원을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마치 남의 손을 빌려 자살하려는 사람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게 변장 때문에 서로 못 알아보는 것 같군.”
“그럼 숲적과 한패였던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숲적도 아니긴 한데.”
카사 백작의 말에 징집병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때 상처투성이의 징집병인 아리온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시에라 제국과 적은 맞나 봅니다.”
“그렇지?”
“그럼 됐죠, 뭐.”
아리온이 맘 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징집병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카사 백작은 시에라 제국이 이들을 화살받이로 쓰려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억지로 끌려 나온 전쟁포로들의 활용도는 그게 전부였다. 카사 백작은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트렌든이 숨어 있는 방향이었다.
“젠장!”
트렌든이 바빠졌다.
문을 열어 줬더니 아군끼리 싸우고 있었다. 부랴부랴 저격총을 리셀에게 받은 공간주머니에 담은 그는 롱소드를 손에 들고 바삐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너 왜 여기서 내려와!”
병사 중 하나가 트렌든을 보며 놀란 눈을 했다.
“지금 바빠!”
트렌든이 어물쩍 그냥 지나치려 하는 모습에 병사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왜 거기서 내려오느냐 묻잖아! 나 오마크 백인대 십인장이야! 너 소속이 어디야!”
꽤 지위가 있는지 일반 병사와는 다른 복장과 어투였다.
한숨을 내쉰 트렌든이 그를 보며 말했다.
“두 유 노우 메지션?”
“뭐?”
“오움 살라 움타아…….”
트렌든이 한쪽 손을 슬어 올리며 주문을 외우자 십인장이 살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냐면 트렌든의 손에서 불덩어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렌든이 주문을 외우며 팔을 휘둘렀다.
“파이어!”
화르륵!
뜨겁게 타오른 불덩이가 십인장의 안면을 가격했다.
콰앙!
폭발음이 터져 나가며 십인장의 안면이 뭉개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보며 트렌든이 찝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펀치.”
찜찜한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바닥에 쓰러진 저 십인장이 자신의 주먹에 작살난 건지, 마법에 작살난 건지 알쏭달쏭했던 것이다.
슬슬 불이 꺼져 가는 자신의 주먹을 보며 트렌든이 중얼거렸다.
“불덩이가 날아가야 하는데 말이지.”
그는 아직 반쯤 마법사였다. 그가 다시 바쁘게 움직여 나가기 시작했다.
따당땅땅! 쾅쾅쾅!
두 사람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연신 무기를 휘둘렀다. 도무지 앞이 안 보이는 인간들의 격돌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너 이 개새끼! 어디서 흙을 뿌려!”
“젠장, 이 조잡한 새끼! 그러는 네놈은! 언젠가 네놈 발모가지를 잘라 버릴 거다!”
“닥쳐! 네 손모가지가 먼져 잘려 나갈 거다!”
그때였다. 둘이 서로를 욕하는 순간, 기사들 몇이 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곳에 있다가 성문을 지키기 위해 내려온 이들이었다.
“하압!”
“핫!”
기합성과 함께 무기들이 구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눈을 게슴츠레 뜬 웅삼이 마치 팽이처럼 회전하며 달려드는 기사의 몸통을 스치듯 지났다.
구신은 오른손의 철곤으로 공격해 오는 칼날을 부수며 왼손의 메이스로 기사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커억!”
“쿨럭!”
순간 달려들던 기사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신이야 적이니 그렇다 쳐도, 아군인 줄 알았던 웅삼이 기사의 허리를 동강내 버렸던 것이다.
“뭐하는 짓이야. 아군한테!”
그때 주변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던 병사 중 하나가 피를 토하며 외쳤다.
“저, 저 자식 반란입니다! 우리 성문 수비 병력을 저놈이 전부…….”
그 말에 구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웅삼에게 입을 열었다.
“이거 제대로 미친놈이구먼? 하는 짓이 꼭 구라쟁이 같은 게…….”
구신의 어이없다는 중얼거림에 웅삼이 응수했다.
“닥쳐! 강구신!”
“어헉!”
순간 구신의 눈이 부릅떠졌다.
“나 계웅삼이야!”
웅삼의 외침에 놀랐던 구신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니가 웅삼이면 난 고진천이다!”
“그대로 꼰질러 주지!”
웅삼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외쳤던 구신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그를 보며 물었다.
“너 내 이름 어떻게 아냐? 구라쟁이는 어떻게 알고?”
“길치 오십 마리 잡으러 왔다!”
순간 구신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때 한쪽에서 그들의 대화를 막는 굉음이 울려왔다.
타앙!
귓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시에라 제국 기사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굉음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타타탕! 타탕! 탕!
묘한 리듬을 타며 울려 퍼지는 소리가 그칠 때 즈음에는 그들의 주변에 서 있는 기사는 없었다.
“헤이!”
“트렌든? 리셀 영감님네 늙은 손주?”
구신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트렌든을 알아보곤 중얼거렸다.
달려온 트렌든이 웅삼에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캔슬!”
순간 빛이 일렁이더니 웅삼의 외모가 바뀌었다. 이질적인 모습이 아닌 구신이 아는 웅삼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멍하니 서 있는 구신을 보고 웅삼이 부글거리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날 보고 하고 싶은 말 없냐?”
웅삼의 질문에 구신이 대답했다.
“이젠 외모로도 구라 치냐?”
웅삼의 장도가 다시 구신을 향해 휘둘러졌다.
쩌억!
제라르의 발차기에 얼굴이 돌아간 묵갑귀마대 대원의 표정이 악귀처럼 변했다.
“큭! 이런 개자식! 죽여!”
“잠깐. 멈추라고!”
“팔다리부터 끊어.”
“멈춰. 이 전쟁광들아!”
제라르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트렌든이 웅삼의 몸에 걸린 마법을 해제하는 게 보였다.
“야! 저기 봐! 저기! 이 인간들아, 저길 보라고! 웅삼이 있잖아!”
“이런 사기꾼 같은 새끼, 웅삼이란 이름은 어디서 알아선…….”
“이놈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 뒤 돌아보지 마!”
묵갑귀마대는 귀를 막고 더욱 세차게 제라르를 밀어붙였다. 트렌든이 마법을 풀어주기 직전까지 말이다.
“히익! 어, 어쩌지?”
부상으로 인해 성내에 피신해 있던 일론 남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성문이 그대로 열려 있었고, 그 안으로 난입한 적들을 아무도 상대해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성벽 역시 소수에 불과한 인원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사기 높은 함성이 진동해 왔다.
이 함성이 아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믿었던 토벌대의 빌리 자작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토벌대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성벽에 있을 때 토벌대의 귀족들 몇이 화살에 맞아 전사했는데 그 탓인 듯했다.
“이, 일단 피해야 하는데…….”
일론 남작이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성문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성주를 찾아라!”
“일루이먼의 배신자를 찾아라!”
그 외침에 놀라 일론 남작의 행동이 바빠졌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복장은 오래가지 않아 숲적들의 시선을 끌었다.
“저기다!”
“잡아!”
“으아아아!”
일론 남작이 비명인지 모를 외침을 터트리며 달렸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오래지 않아 멈추었다. 이미 성내는 적들에 의해 장악되었던 것이다. 그가 절망에 가득 찬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