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47
112화 기스만 영지 함락사건
본진과 함께 성문으로 진입한 라임 왕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저 정도였나?”
구신과 웅삼의 전투를 보면서 정신이 확 든 듯했다. 그들이 강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찬물이 등에 확 끼얹어진 느낌이었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이쪽이 불리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강한 묵갑귀마대들 여럿이 한 사내를 상대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모습도 들어왔다. 이 또한 처음 접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굉음과 함께 한 사내가 나타나며 상황이 또다시 바뀌었다.
구신과 싸우던 사내, 그리고 묵갑귀마대원들과 싸우던 사내의 외모가 바뀌며 싸움이 멈춘 것이다.
“같은 편 같습니다.”
호위기사의 말에 라임 왕자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의 곁에 있던 수호가 재빨리 달려가며 외쳤다.
“웅삼 아저씨!”
꽤 반가운 표정이다.
왠지 소외된 느낌을 받은 라임 왕자였지만, 아직은 전투 중이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술법사들을 확보하고 적들을 밀어붙이게나.”
라임 왕자의 명령에 소두령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이미 적들은 수뇌부가 무너지면서 따로 놀기 시작했다. 승리는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아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위험한 상황은 저들이 다 뚫어내었다. 이런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는 병사들의 함성에는 자신감이 충천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제라르가 자조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라가 옮았나…….”
“크크큭!”
“푸흘!”
“웃지 마, 이 인간들아!”
제라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묵갑귀마대원들이 시선을 슬슬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젠장, 알콩달콩해야 할 시간에 이게 무슨 짓인지.”
투덜거린 제라르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성내 곳곳에서는 산발적으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이미 승기는 기울어 버린 상황이었다. 지휘부는 괴멸되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대항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웅삼 역시 꼴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구신과의 격돌에서 입고 있던 옷이 걸레가 되었던 것이다.
“슬슬 정리해야 하지 않아?”
제라르의 질문에 웅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사 백작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보호하던 징집병들이 웅삼과 제라르를 경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 공격할 거 아니지? 원래 이 얼굴이다.”
이미 당한 게 있어서인지 웅삼이 건들거리며 농담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징집병들 사이에 있던 아리온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공격해 봐야 답도 없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당연하지. 그래도 덤비면 깔끔하게 죽여 주마. 미운 정도 정이니까.”
“그냥 그 정 알콩달콩 키워 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미 우리야 다 찍혀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리온의 말에 웅삼이 피식 웃으며 헐벗은 몸으로 오들거리고 있는 빌리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 옆으로는 성주인 일론 남작이 부상을 입은 채 끌려왔다.
“이제 슬슬 전투 마무리해야지.”
웅삼의 중얼거림에 뒤따라온 구신이 한마디 했다.
“자를까?”
“뭘 잘라, 이 인간아!”
웅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구신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뭐, 깔끔하게 대가리만 잘라서 장대에 달아 올리고 전투 끝났다 하면 되지 않나? 보통 그렇게 하잖아.”
“끙.”
보통은 그렇게 하지만 이렇게 생포한 다음에는 그런 식으로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묵갑귀마대는 항복 의사도 듣기 전에 머리통 떼어 내서 들어 올리는 게 익숙하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생각하는 거 하고는.”
“클클, 머리만 떼는 게 가볍고 편하잖아. 아님 이걸 통째로 매달게?”
구신이 히죽거리며 대꾸하자 주변의 묵갑귀마대원들이 정색하며 자리를 피했다.
“끄으으응!”
구신이 힘을 쓰자 튼튼하 장대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 장대의 끝에 매달린 빌리 자작은 비명을 질렀다.
“으악! 으아아악! 화살! 화살 쏘지 마! 명령이다!”
“어헉! 사, 살려 줘!”
그 옆으로 일론 남작도 마찬가지로 알몸인 채 매달려 올라갔다. 그걸 든 이는 바로 수호였다.
뒤늦게 도착한 탓에 구신의 곁에 그밖에 없었던 것이다.
“젠장, 직위로 찍어 누르다니!”
구신이 억울한 듯 외쳤지만 귀담아 듣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자리를 피한 대원들이 다시 한 번 그의 예지력에 혀를 내둘렀다.
“저 자식 신기는 점점 강해지는 거 같아.”
“원래 모진 놈 옆에 있으면 같이 딸려가는 법이지.”
모진 놈 옆에 있던 수호를 보며 다들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웅삼이 구신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두 지휘관을 매달자 전투는 빠르게 소강상태로 변해 갔다.
지금 상황에서 더는 저항할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게다가 징집병들 대다수가 귀족들의 영달을 위해 끌려온 이들이 많은 탓에 쉽사리 분위기에 휩쓸린 것도 이유가 되었다.
“이거 참. 뭐 좀 털러 왔다가 일이 커졌네.”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웅삼이 돌아보며 물었다.
“뭘 털어?”
“지도도 좀 필요하고, 술법사도 좀 필요해서 그랬지. 본국에 알릴 필요도 있으니…….”
그 말에 웅삼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지도를 구한다고 황자도 잡고 비밀 기지도 털고 그런 거냐?”
“황자는 우리가 죽인 게 아닌데…….”
대원 중 하나가 말을 흐리며 수호를 슬쩍 바라보았다.
“비밀기지도 우린 명령에 따랐을 뿐이고…….”
또다시 수호를 바라보았다.
“막내 데리고 잘하는 짓이다.”
웅삼이 인상을 쓰자 다들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이었다.
“에이, 그래도 우리 중에는 쟤가 제일 낫더만. 뭐 지 애비 딱 빼닮은 것 빼면 말이지.”
“끙.”
그들의 변명에 웅삼이 신음성을 흘렸지만 수호를 보며 왠지 모를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사고뭉치들이 막내에 불과한 그를 내세우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방금 전에 구신에게 밀린 거 맞지?”
“그것 봐. 실전은 다르다니까?”
두런대는 대화 속에 웅삼의 눈썹이 역 팔자로 올라갔다.
“나도 실전처럼 해 볼까?”
“실전처럼 한 거 같은데.”
물론 아니다. 웅삼은 구신이 아군인 걸 알고 있었고, 구신은 몰랐었다. 분명 차이는 있었다.
하지만 웅삼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왠지 변명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왠지 입맛이 썼다. 당분간 구신을 붙잡고 대련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구신이 든 장대가 잠시 휘청했다.
“어이쿠!”
“와 그러십네까?”
수호가 구신을 보며 묻자 그가 불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몰라.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기거이 무슨 말입네까?”
“몰라. 그나저나 저 인간 몰라보고 몽둥이질했다고 해코지하지는 않겠지?”
구신이 웅삼을 슬쩍 보며 그렇게 말하자 수호가 그의 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왠지 불길한 시선을 던지며 말이다.
그런 수호를 보며 배신감을 느낀 구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구신 왈, 너 또한 나와 함께하리라!”
“하지 마시라요!”
“함께하리라아아아!”
“제발! 닥치시라요!”
“여어어엉원히!”
“아악!”
수호는 불길함을 느낀 채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외쳤다. 그 모습을 본 웅삼이 수호를 향해 구신을 볼 때처럼 이를 갈았다.
그런 둘의 대화를 보던 대원 중 하나가 경건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저 또한 이루어지리라.”
“그렇지?”
둘에 대한 명복을 비는 대원들이었다.
***
고진천이 바사 론 카말 왕과 헤머튼 리어 2세 왕을 대동하고 지도를 펼쳐 전략을 수립하던 중 마법사가 급히 달려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진천의 질문에 마법사가 왠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계 장군이 대원들을 찾았답니다.”
“그래? 용케도 빨리 찾았군. 어떻게 찾았나.”
“산적 토벌하다가…….”
“…….”
진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 보고에 바사 왕과 헤머튼 왕이 이건 또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결과는?”
“전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고, 또…….”
“또?”
또, 라는 말에서 불길함을 느낀 진천이 되묻자 마법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시에라 제국의 영지 하나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
출정식을 앞둔 시에라 황실에 난데없는 비보가 날아왔다.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
“기스만 영지가 산적 떼에게 함락 당했습니다! 아니 숲적 떼라고 해야 할지.”
프라임 공작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쏜튼 폴리어 백작 역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를 해온 기사에게 되물었다.
“그쪽으로 토벌대가 향하지 않았는가? 토벌대가 늦은 것인가?”
“토벌대는 제때 합류했던 모양입니다만…….”
“대체 전력이 어떻기에 토벌대가 같이 당했다는 것인가? 게다가 숲적이 확실한 것인가? 그들은 항상 소수로 움직이지 않았나!”
쏜튼 백작의 질문에 기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를 이어 나갔다.
“마지막 보고에 의하면 확실히 숲적이라 했습니다. 거기에 그 무리가 천여 명에 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토벌대 전력 중에는 로우급 유저가 네 명 포함되었었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두절되어…….”
쏜튼 백작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제 며칠 후면 진군을 시작하여야 한다.
지금 각지에 실전을 겪으며 훈련하는 병력은 후발대 병력이었다.
그때 프라임 공작이 중얼거렸다.
“선공을 한 것인가?”
숲적과 가우리의 연관성을 확신에 가깝게 생각하는 프라임 공작이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는 합니다.”
그때 또 다른 기사가 달려 들어왔다.
“뭔가?”
쏜튼 백작이 질문하자 그가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스만 영지에서 날아온 보고입니다!”
“뭐가?”
프라임 공작이 묻자 기사가 약간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반군 세력이옵니다.”
“반군? 반군이라니?”
“일루이먼 왕국의 반군 세력이 기스만 영지를 점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일루이먼 왕국? 일루이먼 왕국이 그럴 만한 민심을 가지고 있었나?”
일루이먼 왕국은 대표적으로 자멸한 왕국 중 하나였다. 백성들의 지지도도 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그 덕에 제국에 많은 착취를 당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루이먼 왕국의 십팔 왕자가 살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으음.”
왕가의 인물이 살아 있다면 이야기가 약간 다르기는 했다.
프라임 공작이 쏜튼 백작을 바라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말이 안 됩니다. 솔직히 왕자라 하지만 입지가 변방 귀족만도 못한 이였습니다. 그런 이가 살아 있다는 것도 놀랍긴 하지만 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탁했을 가능성은?”
주어가 빠졌지만 어디를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직접 챙겨야 알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좋지 못한 소식임에는 확실한 듯합니다.”
“주변을 잘 도닥이도록 하게.”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