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49
114화 수호가 가져온 것은……
바사 왕과 헤머튼 왕이 무어라 할 말을 잃은 채 한쪽에서 가끔씩 헛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그 가운데 진천은 구신의 애병인 철곤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그 앞에는 구신과 수호가 머리를 바닥에 박고 엉덩이를 세운 채 두 손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이 역시 진천이 배워온 신문물 중 하나였다.
“연구 자료는 태우고 가져온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할 말은?”
진천의 입에서 묵직한 음성이 낮게 깔려 나왔다. 물론 변명은 없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전부 어느 이름 모를 술법사의 밤을 위로해 주던 애장품이었다.
그 중에 쓰다가 만 작품도 있는 것으로 보아, 술법사가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라는 점이었다. 그나마 일지가 있어 어떤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이 언급이 되어 있어 실험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실험이 어떠한 경로로 어떠한 것을 이용하여 이루어졌는지 그 내용에 대해 서술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짐작하건데 그 당시 태웠다던 문건이 그것과 관련된 것이라 판단되었다. 심지어 남은 건 성가시다는 이유로 직접 태웠다고 하니 할 말은 다한 셈이다.
물론 오해할 만했다. 서류를 처분하는 가운데 보따리에 애지중지 챙겨 들고 나온다면 어떤 누구라도 그걸 중요한 자료라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침묵 속에 진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이 없으니 내가 말하지.”
철곤을 쥔 손을 들어 올리며 진천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저 무식이 죄다.”
철곤이 바람을 가르며 내리쳐졌다.
빠아악!
“크아악!”
“커억!”
빠악! 빡! 빡! 빡!
차진 타작음과 비명이 어우러졌다. 말 그대로 오지게 맞았다. 물론 그 소리를 들으며 웅삼 역시 몸을 움찔거렸다.
남이 맞는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도 맞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엉덩이가 처음 형태보다 두 배가량 커졌을 때 타작은 끝이 났다. 그렇다고 그들이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었다. 어기적거리며 서서 보고를 이어 나갔다. 자료는 불에 탔지만 그와 관련된 보고는 어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함께 보고를 받던 리셀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그뿐 아니라 카말 왕국과 필리어리 왕국의 왕실에서 나온 술법사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술법의 가능성이야 무한했다. 그러나 이렇게 병기로써 활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시에라 제국이 가장 앞서 있었다.
처음 소울아머가 시에라 제국에서 나왔을 때에도 일부 술법사들은 이것을 만들기 위해 꽤 많은 수의 인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 것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허어. 어쩌자고…….”
“이건 인간이 할 짓이 못 됩니다.”
“어찌할꼬.”
술법사들이 다들 한마디씩 탄식을 내뱉었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에라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자니 그 비인도적인 것도 껄끄럽고, 또 한다 해도 뒤늦게 시작해서 대응할 만한 결과를 내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어서 그들의 앞에 로우급이라 불리는 소울아머가 놓였다. 그것을 살피는 것은 술법사들이었다. 하나는 멀쩡한 것이고, 나머지 세 개는 부서진 것들이었다.
당연히 멀쩡한 것은 빌리 자작의 협조를 통해 구한 것이고, 나머지는 원 주인을 하늘로 인도하고 챙겨 온 것들이었다.
“역시.”
그것을 살피던 술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헤머튼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이것도 연관이 있는 것인가?”
“예. 역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한 것이 분명합니다. 말이 포스지 생명력을 담보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더구나 이건 범용성이 높아 실제 소울아머보다 위험할지 모릅니다.”
“허어.”
범용성이 높다는 말에 바사 왕이 탄식을 터트렸다.
안 그래도 전력상에서 많은 부분이 밀리는데, 이런 것까지 나왔다는 것 전쟁을 앞둔 그들에게 있어 엎친 데 덮친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상대할 방법을 강구할 시간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이것이지만 또 다른 소울아머는 어떤 것일지…….”
술법사의 걱정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확보는 하지 못했지만, 개발된 것은 두 종류라 했다.
지금 확보한 한 가지는 로우급이라 불리는 범용성 높은 소울아머이니, 다른 하나는 기존 것보다 더 상위의 성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두런두런 말이 오가는 사이 진천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 보였다. 병력수가 한정되어 있는 가우리의 입장에서는 강한 힘으로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이 기본 전술이었다.
장기전은 국가의 체력에도 부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한 것은 병력의 질이 뛰어나다는 것인데, 문제는 지금 시에라 제국이 가지고 있는 패가 꽤 크다는 점이었다.
병력의 질적, 수적으로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진천이 고개를 돌리자 엉거주춤 서 있는 두 사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진천과 눈이 마주치자 수호와 구신이 몸을 움찔거렸다. 마치 다시 머리를 바닥에 심어야 하나 하고 갈등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리셀, 치료를 해 줘야겠군.”
“예.”
진천의 허락에 리셀이 두 사람의 엉덩이를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치료해 주고 한바탕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수호.”
“예, 폐하.”
“사라가 찾더군.”
“아!”
“내가 특수 임무를 보냈다고 했지.”
“…….”
진천이 수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수호가 우렁찬 음성을 내뱉었다.
“기럼 이만 임무수행보고를 마치겠습네다!”
“음.”
수호의 대응에 진천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휴가는 삼일이다.”
“알갔습네다!”
“이후 다시 특수 임무를 부여해주지.”
“기거이 무슨?”
진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에 수호는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
마법진을 통해 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필리언 제라르의 얼굴 위로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곁에 서 있던 묵갑귀마대원들 역시 뚱한 표정이었다.
이곳에 물자를 왜 보내 주겠는가. 여기서 뭔가를 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때 마법진이 다시 빛을 발하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응?”
제라르의 눈앞에 나타난 이는 바로 을지수호와 강구신이었다. 두 명의 표정에서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건 바로 똥 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젠장!”
“왜!”
“빌어먹을!”
둘이 나타나자 묵갑귀마대원들이 일제히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제라르 역시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대체 뭐냐? 어떻게 하라는 건데?”
제라르가 다짜고짜 묻자 수호가 그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근 산을 탈탈 털라 하십네다.”
“젠장!”
“한번 하신 일, 두 번도 충분하실 거라 하셨습네다.”
“나 혼자 뭘 어떻게 하라고! 니들이 나 따라다닐 거냐!”
제라르가 악에 받친 음성을 터트리자 수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지원 병력 곧 보내 주신다고 합네다.”
“제엔자아앙!”
“기러고 폐하께서 하시는 말씀이 국혼에 격을 맞춰야 하니 왕작 정도는 있어야 하디 않갔느냐시며…….”
“응?”
“다 알아서 준비하시겠다고 합네다.”
“…….”
제라르가 얼굴을 구겼다. 마치 알고도 당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때 구신이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냥 하는 것보다 챙겨주는 거 받으며 하는 게 낫지. 우리는 무슨 꼴이야. 젠장.”
그가 투덜거리자 제라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마따나 어차피 전쟁하러 온 몸이니 이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좀 자세히 말해 보자. 일단 뭔가를 꾸역꾸역 보내는 걸 보니 뭐든 대책이 있으니 하는 거겠지?”
“보고 드리갔습네다.”
다시 만난 그들은 그렇게 성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 즈음 모습을 드러낸 라임 론 일루이먼 18왕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왠지 기회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한동안 조용했던 레간자 산맥이 시끌시끌하기 시작했다.
사냥꾼들과 병사들로 구성된 이들이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리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존재들도 있었다. 바로 오크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우중만이 있었다.
온몸을 나름 중무장한 중만은 창백한 얼굴로 오크들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챙기라우.”
“아, 알겠습니다.”
을지우루의 말에 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들이 흉성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참아! 기다려! 기다리라고!”
막상 전투에 투입이 되니 오크들이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우루가 중만을 보며 말했다.
“뭐하는 거이네?”
“예?”
“아가리 털어야 하디 않네? 여기 놀러온 거이간?”
“아, 알겠습니다!”
정신 차린 중만이 외쳤다.
“모두 치, 침착하라!”
중만의 음성이 널리 퍼져 나가자 오크들의 흥분이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들이 혀를 차며 말했다.
“확실히 고문에 나온 대로 오크 대족장이 나타난 것과 같은 모습이야.”
“이로써 오크가 옛날 인간과 유사인종을 위협했다는 설이 뒷받침되는구먼.”
“족장이라는 존재 이외에 지도자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군!”
그렇게 마법사들이 그 뒤에서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사이 중만이 끼어들자 오크들의 행동이 일사불란함을 갖추기 시작했다.
물론 그 본능 특유의 흉포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앞쪽에서 또 다른 흉포함을 담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땅개들이 옵니다!”
처음에는 늑대인간인 줄 알았지만, 전혀 별개의 종족으로 밝혀진 와일드 독의 이름은 땅개였다.
두 발로 설 수도 있지만 마치 원숭이가 걷듯이 두 팔을 보행시에 보조하듯이 활용하는 모습에 땅개라는 이름이 붙져였던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싸우게 되면 두 팔을 휘둘러 싸우기도 한다. 거칠기 짝이 없고 솔직히 쓸 만한 구석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우루가 외쳤다.
“죄 잡으라우! 알간? 먹지 말고 잡으라우.”
“땅개들을 잡아들여라! 먹지 말고 잡아라!”
“뀌이이익!”
“꾸익!”
중만의 외침을 들은 오크들이 땅개들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오크들을 향해 땅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