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50
115화 짐승
오크들이 보는 가운데 중만의 구슬픈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똑바로 엎드리라우.”
“흑흑흑!”
중만은 땡땡하게 부어오른 엉덩이를 감싸며 다시금 엎드려뻗쳤다. 그러자 다시금 몽둥이가 차진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철떡!
“꾸에에엑!”
중만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오크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사실 죄는 죄다.
사로잡으려고 했던 것들 중 삼분의 일이 오크들의 배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흉포함보다 앞선 것이 바로 그들의 식욕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오크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중만의 통제를 따라 잘 싸웠다. 문제는 간혹 힘 조절에 실패해서 죽어 나간 와일드 독이 원인이었다.
오크 하나가 와일드 독의 사지 중 하나를 뜯어내어 무기 삼아 휘두르다가 한 입 먹은 것이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뭔가 입에 우물거리며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첫 성과치고는 나쁘지 않았지만, 중간부터 통제가 무너졌다는 것이 지금 이 체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엉덩이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중만에게 우루가 입을 열었다.
“책임질 일을 하갔다고 했으면 져야디? 길티?”
“그, 그렇습니다.”
“아니면 때려치라우. 언제부터 성인군자 났다고 그러는 거이간? 포기하면 쉬운 거이야.”
우루의 말에 중만이 고개를 돌렸다.
늘어서 있는 오크들이 죄지은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화보다는 묘한 감정이 먼저 다가왔다.
바닥에 내려오고 나서야 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보지 못할 때에는 아무리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당연시했던 것이 이제는 달랐던 것이다. 한번 보이니 자꾸만 보이는 것이다.
중만이 다시 엎드려뻗쳤다.
“포기 안 합니다.”
“기래?”
우루가 피식 웃었다.
지금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진천이 계산한 것이었다. 오크라는 종족을 개조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중만이라는 인간을 개조하는 것이다. 물론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그때 진천이 말했다.
스스로를 바꿀 기회를 요구했으니 주는 것뿐이라고.
안 되면 죽이면 그만이다. 해 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는 것 또한 직무유기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 선봉에 우루와 묵갑귀마대 등이 있었다.
우루의 몽둥이가 다시금 중만의 엉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비명을 지르고 다시 바닥을 굴렀지만 조금 전과 달리 이제는 스스로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오크들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신기한데?”
오크들의 반응을 보며 마법사들이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원래 그들의 우두머리가 이 정도로 당한다면 아마 반란 비슷한 일이 벌어져야 했다. 그게 오크의 본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오크들에게 존재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죄책감이 보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 오크들은 야생에서 잡아온 것들이 아닌 가우리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들도 언어가 있기에 구전을 통해 나름의 역사나 기억을 전승해 왔지만 결과가 달리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다.
“오크들이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도 더 철저한 계급사회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럴까요?”
한 노 마법사의 말에 다른 마법사드리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그렇지. 물론 야생에서는 힘이 계급을 결정짓는 원인이라 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지.”
“하긴. 이곳에서는 배급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교섭을 맡은 게 저 중만이라는 이니까요.”
“그렇지. 밥을 주는 건 우리고 또 그 밥과 생활의 편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저 중만이라는 자니까.”
노 마법사의 말에 젊은 마법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존의 오크로드가 사회를 이끄는 방향성을 설정하는 존재라면, 저 중만이라는 자는 일종의 대가족을 이끈느 가장 같은 지위가 된 거겠습니다.”
“그럴 듯한 비유일세. 결론은 우리가 갑인 게지.”
“큭큭큭!”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한쪽에는 살아남은 땅개들이 줄줄이 묶여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외에 여러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도 각기 묶여 있었다.
대형 몬스터부터 중형, 소형까지 각양각색의 종류가 잡혀와 있었다.
“자, 슬슬 또 움직이자고!”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다시 사냥이 시작되었다.
***
토벌대를 운용하는 시에라 제국 후방 지원 사령부의 분위기가 꽤 부산스러웠다.
“없다고? 분명 그 존재를 파악했잖은가?”
“그러나 이미 산채를 옮겼는지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이것 참.”
그들이 바쁜 이유는 계속적으로 올라오는 보고들 때문이었다. 상당수 보고는 허탕을 치고 있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때 참모 중 하나가 불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이쪽도 그거 아닐까요?”
“어혀! 이 사람아, 그게 말처럼 쉬운가.”
조심스럽게 뭔가를 언급하는 참모에게 책임자로 보이는 이들 중 하나가 면박을 주었다.
그때였다.
“어헉!”
술법사가 가져온 서신을 확인한 이가 하얗게 질렸다.
“또 뭔가?”
“토, 토벌대가 투항했다고 합니다!”
“뭐?”
“또?”
당혹감이 내부를 휘감았다.
그동안 피해 보고가 조금 있는 선에서 끝났던 것들이 최근 들어 지금처럼 당혹스러운 결과가 종종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예 적들을 찾지 못하는 경우와 역으로 토벌대가 당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이례적으로 산적들이나 마적들이 뭉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토벌대가 당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실전 경험 삼아 보낸 토벌대가 무의미하게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쩌나.”
“분명 그들이 연관된 것 아니겠습니까?”
“으음, 숲적들 말인가? 허나 그들은 일루이먼 독립을 기치로 내세운 이들 아닌가. 방금 보고가 들어온 곳은 일루이먼 왕국이 있던 지역이 아니라네.”
“일종의 연쇄 효과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참모의 말에 귀족들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
“살다 살다 산적털이는 또 처음이네.”
“그러게.”
숲적 행세를 하는 묵갑귀마대원들이 투덜거리며 말을 섞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열 명씩 다섯 부대로 나뉘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동안 받아들인 병력을 백여 명씩 이끌고 움직였다.
그렇게 나뉜 그들은 인근 산적들을 모조리 병합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나마 토벌대를 상대해서 대승을 거둔 덕에 인근 산적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투항했다.
심지어 다른 국가가 있던 지역에도 진출하여 병력을 뭉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일루이먼 왕국 이외의 지역도 마찬가지로 방치해 둔 도적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된 지역은 이미 이전 전쟁 전에 토벌이 되었지만, 그 외의 지역은 자신들의 순서임을 알고 꽤나 협조적으로 나왔던 것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정말 골수 산적들은 그냥 방치했다.
일부는 시에라 제국에게 먹잇감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두니 또 그들끼리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이 성공을 거두자 몇몇 지역에서 자구책으로 서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 토벌대를 습격하여 물자들을 털었다. 이전에는 보이는 것만 털었다 치면, 이제는 작정하고 털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해도 시에라 제국이 신경을 크게 쓰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로 남부 정벌 때문이다.
정예들이 이미 출정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내부의 산적들이나 토벌하자고 병력을 빼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과 맞물려 그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활발해졌던 것이다.
그때 한 마법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 부근이면 될 듯합니다.”
“그래? 하긴 주변에 적당한 곳도 많으니 딱 좋겠네. 토벌대인지 뭔지도 인근에 있고 말이야.”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러시게.”
마법사가 바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묵갑귀마대는 병력을 물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밝은 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
시에라 제국 토벌대가 허탈한 표정으로 비어 있는 목책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거 참, 또 비었습니다.”
“미치겠네.”
그때 병사 하나가 달려와 외쳤다.
“아직 화로에 온기가 있는 것이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토벌대를 이끌던 귀족이 반색을 했다.
“그래? 그럼 주변으로 정찰대를 보내…….”
“엇! 저건 뭐지?”
누군가가 비명과 같은 외침을 터트렸다. 그러자 다들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 빛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병력을 다시 모아라! 저쪽으로 간다!”
본능적으로 빛이 있던 곳에 뭔가가 있으리라 판단한 귀족이 토벌대를 이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토벌대에 앞서 정찰병들이 빠르게 빛이 치솟았던 곳을 향해 나아갔다.
정찰대원들이 긴장된 표정을 한 채 숲으로 들어섰다.
근처에서 다수가 이동한 흔적을 발견했기에 그들의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침묵한 채로 걸음을 옮기던 정찰대원 중 하나가 굳은 얼굴로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너무 조용하다.’
풀벌레나 숲 특유의 소음이 없었다.
다른 정찰대원들도 이런 낌새를 느꼈는지 다들 은신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적이 어디에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폈다.
그때 정찰대원 중 하나가 인상을 썼다.
코를 킁킁거리는 것이 마치 안 좋은 냄새를 맡은 표정이었다.
그런 정찰대원의 맞은편에 있던 동료가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응?”
이어 창백한 얼굴의 동료가 손가락질을 했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질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은 바로 그의 머리 위쪽이었다.
뚝. 뚝.
고개를 들어 올리자 끈적한 무언가가 그의 이마로 떨어져 내렸다.
“무, 무슨…….”
그가 본 것은 커다란 동굴이었다. 아니, 동굴처럼 보이는 무언가의 쩍 벌린 아가리였다.
덥석!
순식간에 정찰대원의 상체가 덮여졌다. 이어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콰드득!
“마, 마수?”
“저, 저런 마수가 있었나?”
“아아악!”
순간 다른 방향에서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에 정찰대원들이 창백한 얼굴로 다들 은신을 풀고 튀어 나왔다.
그런 그들의 뒤로 개 형상을 한 커다란 체구의 짐승들이 두 발로 뛰듯 달려 나와 도주하는 이들의 등짝을 후려쳤다.
우직!
“크아악!”
비명과 함께 척추가 부러져 나간 정찰대원이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비명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 달려온 짐승이 그대로 목 줄기를 물어뜯었던 것이다.
피거품을 문 정찰대원의 눈가에서 온기가 사라질 즈음 그 짐승은 다시 또 다른 희생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은 모르는 그 짐승들의 또다른 이름은 바로 몬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