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51
116화 미지의 존재들
숲이 요동쳤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비명이 울려오자 진입을 시도하던 시에라 제국 토벌대의 본대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매, 매복인가?”
토벌대를 이끌던 귀족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반대로 토벌대 병력은 전투 준비를 마쳤다.
그때 숲 너머에서 피투성이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바로 정찰대원 중 한 명이었다.
“괴, 괴물입니다!”
“마수인가?”
참모 중 하나가 질문하자 피투성이의 사내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비명 지르듯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수와는 다릅니다! 말 그대로 괴물…….”
퍼억!
정찰대원의 보고는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숲 너머에서 무언가가 휘둘러지자 그의 머리통이 그대로 박살나 버렸기 때문이다.
후두둑!
“억!”
“적이다!”
사방으로 뿌려지는 뇌수와 피를 보며 귀족이 놀란 외침을 터트릴 때 기사들은 그를 호위하듯 둘러서며 외쳤다.
그때 머리를 잃은 시신이 모로 자빠지면서 습격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뭐 저런…….”
“워, 원숭이?”
“개처럼 생겼는데?”
모두가 질린 얼굴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개와 같은 두상에 원숭이 같은 긴팔, 근육질의 몸뚱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체구 또한 적지 않아 구부저히 섰음에도 건장한 사내의 키만큼은 되어 보였다. 물론 마수라 불리는 것들 중에는 이보다 더한 것들이 많기는 했다.
일부는 말 탄 기사의 높이만한 대형 종도 있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놀라기는 했지만 두렵다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스럭부스럭.
“뭐지?”
문제는 상대가 하나일 때였다. 사방의 수풀이 흔들리며 여기저기 고개를 내미는 것들을 본 토벌대들의 얼굴 위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모두 방진을 형성하라!”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창대를 내밀며 촘촘히 붙어 섰다.
보통 마수를 상대할 때 쓰는 방법이었다.
그 순간 개처럼 생긴 것들이 일제히 팔을 휘둘렀다.
퍽! 퍼퍼퍽! 퍽!
순간 돌이나 굵은 나무토막들이 병사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머리가 깨어 나가며 나자빠졌다.
순간 방진이 흔들렸고, 그 위로 와일드 독들이 뛰듯이 날아들었다.
그 이후로는 사방에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악!”
“떠, 떨어져라!”
“궁수는 활을 쏘아라!”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와일드 독이 달려들자 오밀조밀했던 방진은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날카로운 손톱과 강력한 주먹질에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한쪽에서 푸른빛이 솟구쳐 올랐다.
“이 미물들이!”
분노의 외침과 함께 나타난 기사의 몸에는 소울아머가 둘러져 있었다. 로우급 유저였던 것이다.
순간 앞으로 쏘아져 온 로우급 유저의 일격에 병사들 사이에서 종횡무진하던 와일드 독의 몸뚱이가 통째로 갈라져 버렸다.
이어 계속 흉성을 터트리며 달려들었지만, 로우급이나 왜 소울아머라 불리는지 증명하듯 막힘없이 처단해 나갔다.
그렇게 십여 마리를 연속으로 베었을 때 분탕질을 치던 와일드 독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물론 갈 때는 빈손이 아니었다.
각기 사냥한 병사들을 양팔에 끼고 사라졌던 것이다.
“대체…… 무슨 놈의 마수가 이렇게 떼로 달려든단 말인가?”
토벌대를 이끄는 귀족이 살짝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자 와일드 독을 몰아낸 로우급 유저가 굳은 얼굴로 의견을 내비쳤다.
“자작님, 일단 병력을 물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 뭐야, 이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우급 유저가 몸을 한쪽으로 날렸다.
그러자 그가 있던 자리로 그의 몸뚱이 하나쯤은 짓이길 만한 크기의 바윗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큭!”
몸을 날린 로우급 유저가 인상을 찌푸리며 바위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방향의 나무들이 좌우로 쓰러지며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우우으으!
쿵! 쿵! 쿵!
이어 바닥을 긁는 것같인 거북하면서도 묵직한 울음과 함께 바닥으로 진동음이 전달되어 왔다.
“뭐, 뭐가 저리 커?”
병사들이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정을 가릴 수 있을 정도 높이의 수풀이지만 그 거대함을 다 가리진 못했다.
수풀 위로 드러난 모습은 마치 신화 속의 거인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장정 두 명을 세운 것보다 더 높은 크기. 말 탄 기사조차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거기에 굵은 팔뚝은 장정 몸통 굵기 정도는 되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이미 날아온 바위를 통해 그 괴력을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조금 전 와일드 독을 상대로 두려움조차 내비치지 않았던 로우급 유저마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워어어어엉!”
포효소리가 터져 나오자 병사들의 정신이 반쯤 날아갔다. 이들로서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공포의 울림이었다.
부와아악!
그 거대한 팔이 로우급 유저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름드리나무를 마치 몽둥이처럼 휘둘렀다는 것이다.
콰직!
“크으윽!”
로우급 유저가 소울포스를 끌어올려 막아내었지만, 그 힘은 어떻게 할 수 없었는지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은 그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성큼성큼 다가오며 몽둥이를 휘둘러 왔다.
오거라 불리는 육상 최강 몬스터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쾅! 콰앙!
로우급 유저가 정신없이 밀리는 동안 술법사들이 끼어들어 술법을 날렸다.
그 덕에 병사들은 놀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끼긱?”
“뭐, 뭐야?”
어디선가 울려온 울음소리에 병사가 화들짝 놀라 물러서며 긴장된 얼굴로 칼을 들이밀었다.
“끼긱!”
“이건 또 뭐야!”
정신을 차려보니 무릎 높이만한 이상한 짐승의 새끼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것에 놀랐다는 게 자존심 상한 병사가 그대로 창을 찍어 내렸다.
“끼에에엑!”
알 수 없는 짐승의 새끼가 창대에 박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절규였다.
“씨팔, 놀랐잖아!”
그럼에도 병사는 연달아 창질을 해 그 짐승의 새끼를 구멍투성이로 만들었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마!”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며 신경질적인 외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끽, 끼긱!”
“끼이익! 끼익!”
“끽끼끽끽!”
여기저기서 끽끽거리는 울음소리가 울려왔다. 마치 한여름 밤 호숫가에 개구리 떼가 미친 듯이 울어 대는 것 같았다.
그걸 들은 병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젠 별게 다 사람을 놀라게 하네.”
그 순간 나무 위에서 뭔가가 떨어져 내려 병사를 덮쳤다.
놀란 병사가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떨어져 내린 그것이 등 뒤에 매달렸다.
“아악!”
병사의 비명과 함께 목줄기에서 피가 솟구쳤다.
등 뒤에 매달린 것은 조금 전 창대로 찔러 죽인 그 짐승과 같았지만 덩치가 조금 더 컸다.
아까 그것이 무릎에 올 만한 크기라면 지금 등에 매달린 것은 허리춤에 올 정도의 크기였다.
“죽여!”
동료 병사들이 다급히 칼을 휘둘러 등에 매달린 짐승을 베어 넘겼다. 하지만 이미 목줄기를 베인 병사는 숨이 꼴딱거리더니 눈을 부릅뜬 채 숨을 멈추었다.
“모두 방심하지 마!”
긴장하라는 외침이 나왔다.
그때 한 병사가 목을 부여잡았다.
“앗 따거!”
“아따따!”
누군가는 팔을 부여잡았다.
“침?”
서둘러 따가움을 느낀 피부를 쓸어 보자 작은 침이 뽑혀져 나왔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던 병사의 얼굴이 차츰 일그러졌다.
“어, 이어 뭐 머지이?”
“이, 이비 아눔지겨…….”
“모, 모미 구더진드아.”
따갑다고 외쳤던 병사들이 비틀거리며 몸놀림이 둔해져 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이 경고의 외침을 터트렸다.
“모두 조심해! 독침이다!”
그러나 경고의 외침은 소용이 없었다.
사방에서 독침이 연달아 쏘아져 나왔고, 나무 위와 수풀 등지에서 작은 짐승들이 한 손에는 뼈를 갈아 만든 단검을 들고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한 병사의 몸에 서너 마리씩 뒤덮여 조악한 뼈칼로 내리찍었다.
그것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만을 노려 찌르고 베며 또 찔렀다.
“커어어!”
“아악!”
“너, 너무 많아!”
심지어 어떤 놈은 올가미를 들고 날아와 병사의 목에 걸고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패앵!
“커억!”
줄이 팽팽해지며 목이 조인 병사의 몸이 붕 뜨더니 수풀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케켁! 도, 도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그를 돕지 못했다.
그대로 수풀 안쪽으로 끌려간 그를 기다린 것은 머리통만한 돌덩이를 한껏 치켜 올린 그 작은 짐승의 번들거리는 눈빛이었다.
“아, 안 돼!”
퍼석!
병사의 비명을 끝으로 그의 머리통에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 찍혔다.
두 번, 세 번.
머리가 박살나도 계속 내리쳐졌다. 흔히 말하는 사후 경직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무시했던 그 작은 짐승들.
그것들이 뭉쳐 있을 때에는 오거라 불리는 몬스터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그들은 몰랐다.
고블린이라는 것들을 말이다.
“아, 아아아!”
토벌대를 이끄는 귀족은 창백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파도가 집어삼키듯 사방에서 몰려온 작은 짐승들 떼에 병사들이 파묻혀 나갔기 때문이다.
귀족의 얼굴이 창백한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투를 치르다 보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그러나 지금의 이 광경은 달랐다.
비명을 지르며 산 채로 몸뚱이가 해체되는 모습.
그렇게 뜯어낸 살점을 입에 욱여넣는 작은 짐승들의 환희에 찬 표정들. 그렇게 자신의 몸이 야금야금 먹혀가는 모습에 정신 나간 얼굴로 엉엉 울어제치다가 숨이 끊어지는 이들의 모습이 공포로 각인되어 왔다.
술법사들은 연달아 사방으로 술법을 뿌려대다 결국 마찬가지로 온몸이 뜯겨졌다.
일부는 포위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습도 보였다. 산 채로 뜯어 먹히느니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나 보다.
그때 믿기지 않는 비명이 들려왔다.
“크어억!”
“아젠 남작!”
그래도 믿었던 로우급 유저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붕 뜨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한쪽 다리는 거대한 괴물의 손에 단단히 잡혀 있었다.
그렇게 허공에 들렸던 로우급 유저의 몸뚱이가 세차게 바닥으로 내쳐졌다.
콰아앙!
바닥에 몸뚱이가 처박히는 순간, 로우급 유저의 입가에서 핏물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들렸다가 또 땅으로 내쳐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던 로우급 유저의 몸뚱이가 늘어졌다.
이어 그 거대한 괴물은 마치 껍질 있는 과일을 까먹듯 갑주를 뜯어내었다.
아그작!
로우급 유저의 몸뚱이 한쪽이 그대로 오거의 입에 뜯겨들었다. 그렇게 몇 번을 뜯어먹고 나니 장정의 몸뚱이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 오거.
오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시선을 멈추었다.
오거와 시선이 마주친 토벌대를 이끌던 귀족이 비명인지 한탄인지 모를 음성을 쏟아 내었다.
“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