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52
117화 시작은 어디부터?
멀리서 토벌대가 당하는 광경을 살피던 이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묵갑귀마대원들은 마치 ‘뭐 저리 싱겁지?’ 라는 표정이었고, 그것을 처음 본 이들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뭔가를 자꾸 적고 있었다.
“뭐야, 저렇게 싱거우면 그냥 본국 뒷산에서 쟤들 잡아다가 뿌리기만 해도 전쟁에 이기겠구만.”
묵갑귀마대 대원 하나가 툭 하니 싱겁다는 어투로 말을 꺼내자 옆에 있던 동료 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것도 그건데 저 로우급인지 뭔지 입고 있는 놈은 실전감각이 떨어지나? 왜 덩치 큰 초록이 저것도 못 잡은 거지? 물론 주변이 어수선한 건 알겠지만, 이해할 수가 없네?”
그들의 대화를 듣던 마법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실력으로 따진다면 잡아야 정상입니다만, 몰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처음 나온 땅개들은 잘만 잡더만.”
“그거야 와일드 독이 아무리 사나워도 그 덩치가 유달리 크지는 않잖습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
마법사의 말에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대원들에게 마법사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거 같은 경우는 일단 덩치부터가 적응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우리 쪽이야 보기 드문 몬스터라해도 그 기본 대응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퍼져 있지만 말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저게 대응법이 따로 있는 거였어?”
“그, 그야 당연…….”
당연하다는 말을 하려던 마법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대응법이다.
“목을 잘라도 죽고 심장을 갈라도 죽더만.”
“난 보통 다리부터 잘라서 높이를 맞추는 편이지.”
“귀찮게 뭘 그러냐? 칼 닿는 대로 그냥 썰다 보면 죽는 거지.”
역시나 오가는 대화를 보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인간들이었다.
“우린 안 그랬는데. 그치?”
“아 진짜 처음에 두 발 돼지가 먹는 건 줄 알고 잔뜩 사로잡았다가 못 먹는 거라 해서 어찌나 열 받았는지.”
“야, 부월수 애들 몰래 구워 먹다가 배탈 나서 며칠 뒹굴었잖아.”
대화 내용이 갈수록 태산이었다. 한숨을 쉰 마법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보통 먹으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래? 어쩐지 나도 며칠 설사를 하긴 했지.”
“어? 너 먹었었냐?”
“궁금해서 좀 구워 먹었었지.”
“맛은 어떻디?”
“고기 맛? 아니다. 그래도 약간 멧돼지 맛 비슷하게는 나더라. 그것도 돼지라서 그런가?”
“…….”
마법사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더는 대꾸할 만한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신경을 끈 마법사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기록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곳 토착 병사들은 그들을 질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마치 악마라도 보는 것 마냥 말이다.
***
시에라 제국 황실의 분위기는 약간 뒤숭숭했다.
출정이 코앞인데 제국 내부에서 자꾸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표정은 다른 때와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지만, 쏜튼 폴리어 백작의 표정은 누가 봐도 ‘나 근심 있소.’ 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근심이 깊어진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얼굴 좀 펴게.”
보다 못한 프라임 공작이 한마디 던지자 쏜튼 백작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 일처리가 모자라 이런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나 봅니다.”
“갑자기 마수가 날뛰는 게 어찌 자네 탓인가. 칼 든 놈들이 제때 제때 수를 줄이지 않아 생긴 일이거늘.”
“그것도 그것이지만 일루이먼 지역의 일도 그렇고…… 허허 늙어서 그런지 이젠 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각하께 폐만 끼치는 것이…….”
쏜튼 백작이 한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로 자조 섞인 음성을 내뱉자 프라임 공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늙은이 앞에서 나이 탓을 하는 겐가?”
“말씀하신 그 노인은 아직도 소울아머 유저 열이 달려와도 다 때려잡는 괴물이잖습니까.”
쏜튼 백작이 너스레를 떨자 눈살을 찌푸리던 프라임 공작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입은 아직 살았구만!”
“입만 산 것 같아 걱정입니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듯 쏜튼 백작의 목소리에는 조금 전과 달리 약간의 평온이 찾아와 있었다.
“어차피 내가 제가를 한 일이네. 제국을 다스리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기지. 그걸 하나하나 마음을 졸이면 제 명에 죽지 못하는 걸세.”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은 아예 입에 달고 다니는구먼.”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백작이 쓰게 웃었다. 그때 프라임 공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디부터가 좋겠는가?”
프라임 공작의 질문에 쏜튼 백작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질문은 남부 삼국 중 어디부터 전력을 다해 무너트릴 것이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입을 다문 쏜튼 백작을 본 프라임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야?”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쏜튼 백작이 처음 타겟으로 생각했던 곳은 바로 카말 왕국이었다.
터그람 왕국과 전쟁을 일으키기 전 카말 공국 시절 때부터도 그곳을 최우선적으로 노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기는 했다.
이전 전쟁에서 카말 공국에 물려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원정이 실패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일 덩치가 작은데다가 국력 자체도 가장 약한 곳이 바로 카말 공국이었으니 말이다. 그전에는 터그람 왕국이 버린 지역이었고 말이다.
문제는 그곳 때문에 번번이 실패를 했다는 점이다.
처음 실패 때문에 카말 공국에 이를 간 귀족들이 다시 힘을 집중했다. 그런데 또 실패를 한 것이다. 그쯤 되니 현실적으로 카말보다는 다른 지역을 치는 쪽으로 선회를 한 것이다.
그러나 쏜튼 백작은 지금 왕국이 된 카말 왕국을 먼저 쳐야 한다고 했었다. 왜냐면 다른 왕국과 달리 카말 왕국은 의외성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두 왕국이 힘을 낼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원인이었던 것이다.
마치 전쟁에 앞서 승기를 잡아내는 선봉장과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다른 왕국이 각자의 땅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형태로 전쟁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면 카말 왕국은 좀 달랐다.
땅을 빼앗기면 차라리 다른 땅을 빼앗는다는 저돌성을 가지고 전쟁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침공 중에 역으로 침공을 당해 제국 따이 유린당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다른 왕국을 무너트린 점령지를 재점령하기도 했다.
보통은 빼앗긴 자신의 지역을 되찾으려 노력할 것인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땅에 대한 미련이 적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말 왕국 특성상 땅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점령이 될 만하다 싶으면 백성부터 빼돌리는 것이 바로 카말 왕국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전쟁을 하다 보니 카말 왕국의 땅을 빼앗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카말 왕국을 먼저 쳐야 한다는 주장을 한 이유는 의외성을 무너트리면 다른 두 왕국은 오히려 쉽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사기면에서도 크게 떨어질 것이 뻔하고 말이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실패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카말 왕국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당했으면서도 그 표면적인 병력만을 생각하고 어정쩡한 병력으로 점령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원정은 제국의 무력을 제대로 집중한 전쟁이다.
그리고 아예 카말 왕국 점령을 우선 목표로 둔다면 이전과 다른 전투 양상을 벌일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쏜튼 백작의 주장에 다른 이들이 카말 왕국을 상대로 병력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했다는 점이 걸림돌이기는 했었다.
쏜튼 백작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우스웠다.
카말 왕국 정벌에 실패해서 다른 곳을 먼저 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지 않고, 병력을 늘여 점령을 시도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한단 것이 말이다.
그랬던 쏜튼 백작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의미로 자신의 주장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이전이라면 카말 왕국의 정복을 먼저 주장하겠지만, 지금은 바꾸는 것이 나을 듯하옵니다.”
“그런가? 너무 겁먹은 건 아닌가?”
프라임 공작이 히죽 웃으며 묻자 쏜튼 백작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겁이 좀 납니다.”
“허?”
“이전 카말 왕국이 가진 의외성만으로도 실패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가우리라는 존재는 그 이상의 의외성을 가져왔습니다. 필리어리 왕국에서의 실패뿐 아니라 누적된 소울아머 유저들의 희생만 보아도 말입니다.”
노블 기사단의 말이 나오자 프라임 공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군.”
“또 한 가지, 카말 왕국 점령을 우선시 했던 이유 중 하나는 터그람 왕국 때문이었습니다.”
“뭐,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군.”
“예, 삼국 동맹이지만 카말 공국이 무너진다면 다른 두 왕국은 어느 정도까지는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하지만 전세가 급격히 돌아가면 그들이 시간을 최대한 끌어주기를 바라며 자신들의 왕국을 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카말 왕국과 다른 두 왕국의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버리는 패로 여길 수 있다는 점.
“그런데 지금 터그람 왕국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보면 되옵니다.”
“클, 불쌍하게 된 건 사실이지.”
터그람 왕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프라임 공작도 잘 알고 있었다. 필리어리 왕국과는 여전히 동맹이지만 카말 왕국과는 동맹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필리어리 왕국 입장에서는 카말 왕국을 통해 가우리 제국의 도움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우선순위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
터그람 왕국에서 카말 왕국으로 말이다. 거기에 그들의 힘까지 보았으니 더욱 카말 왕국과 친하게 지낼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설명을 쏜튼 백작이 그대로 이어나갔다.
“카말 왕국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든든한 우군이 생겨난 상황이고, 또 필리어리 왕국과도 어느 정도 관계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끈끈해혔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터그람이다?”
“예. 차라리 중간을 끊어 양쪽을 고립시키는 것이 나을 듯하옵니다.”
“그렇단 말이지.”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쁠 것 없지. 원래 맛있는 것은 제일 나중에 먹는 법이니 말이야.”
“그저 모자란 제 조언일 뿐입니다.”
“자네가 모자라면 묻는 난 뭐가 되는가? 제발 내 입장 좀 생각하면서 겸양하게나.”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쏜튼 백작이 빙긋 웃었다.
“그럼 시작은 터그람 왕국부터 하지.”
며칠 후 시에라 제국의 선전포고와 함께 병력이 남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