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66
131화 혼신을 담아…….
웅삼이 오자 아빌런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반가움보다는 자신의 모자람에 대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웅삼도 그걸 알았는지 몇 마디 던졌다.
“마무리는 해야지?”
“예?”
“쟨 니꺼. 얜 내꺼.”
웅삼이 턱짓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선 로만손 남작과 인상을 굳히고 있는 파슨 자작을 번갈아 가리켰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아빌런이 군기가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히 해야지. 안 그럼 무기 주인이 저세상에서 뛰쳐나온다.”
“예!”
“아니지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기는 한데…….”
혼자 키득거리든 웅삼이 장도를 뿌렸다. 그러자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째앵!
“감히 나를 앞에 두고 한가하게 말장난인가?”
파슨 자작이 공격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런 파슨 자작에게 웅삼이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감히란 말을 감히 나에게 쓰다니. 내가 누군지 감이 안 잡히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통역기로는 말장난도 이상하게 되나 보네.”
웅삼이 피식 웃더니 장도를 고쳐 잡으며 그를 향해 바로섰다. 그러자 장난스럽게 보였던 그의 기도가 바뀌었다. 그러자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파슨 자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력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의 공격을 튕겨 냈을 때부터 경계하기 시작했다. 비록 소울아머를 입고 있지는 않지만 저 용모는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검은 머릿결에 구릿빛 피부.
바로 가우리인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물론 알려진 바에 의하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저런 외형의 가우리인들은 모두가 강자들이라는 점이다.
“가우리에서 온 자인가?”
“이름은 들어봤나? 계웅삼 님이시다.”
“계웅삼?”
파슨 자작이 머리를 굴렸다. 분명 들은 듯한 이름이었다. 그때 웅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카말 왕국의 부마가 되실 몸이지.”
“으음.”
파슨 자작은 그제야 그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카말 왕국을 구해 낸 강자. 거기에 첩보에 불과하지만 제국의 내전을 엉망으로 만든 정체불명의 병력을 이끌었다는 자다.
문제는 그가 소울아머 유저 두셋을 상대한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믿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는 소울아머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에라 제국의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라면 몰라도 이런 자가 그런 실력이 있다는 건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쏜튼 백작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 그런 괴물들이 있다는 정보였다. 물론 그 증언에 이 계웅삼이라는 자는 없기도 했다.
“그 실력은 들어본 바 있지.”
“오! 역시 꽤 유명해졌나 봐?”
“소문을 확인해 보겠다.”
파슨 자작은 무기를 고쳐 쥐며 로만손 남작에게 눈짓을 했다. 빨리 처리하고 도우라는 의미였다. 소문의 절반만 맞다 해도 위험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눈짓을 본 로만손 남작이 허리를 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니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먼저 아빌런이 그에게 달려든 것이다.
콰앙!
“우욱!”
허리와 내장이 상한 탓인지 아까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로만손 남작이 대부를 겨우 막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걸 탓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진득한 살기.
그 진원지는 바로 웅삼이었다.
“우리 애들이 많이 상했네. 쯧, 도끼만 들면 너무 용감해지는 게 탓이지.”
차분한 듯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말문을 열 때마다 살기가 줄기줄기 묻어 나왔다.
“건방진 놈.”
파슨 자작이 긴장을 숨기고 대꾸했다.
웅삼은 그런 파슨 자작에게 피식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장도를 들어 올렸다.
“뭐 전쟁이니까 이해하지. 대신 우리 애들 피값을 좀 두둑이 받아가야겠어.”
“잠깐? 그럼 저 병력이 가우리의?”
순간 파슨 자작이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웅삼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알려지면 안 되는 건데. 아니지, 일단 내가 나타났으니 어느 정도는 알려져도 되는 건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이어가던 웅삼이 다시 편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뭐, 죽이면 되지. 그러면 떠들 놈도 없고.”
“그게 쉬우면 해 보던지.”
파슨 자작이 소울포스를 끌어올리며 대꾸했다.
그의 주변으로 푸른빛이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런 그에게 웅삼이 말했다.
“어려울 거 같아?”
동시에 빛살이 쏘아져 나갔다.
쩌엉!
파슨 자작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황의 빛이 드러났다. 강한 상대일 것이라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공격을 받아 친 손아귀가 저릿할 정도였다.
하지만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빛줄기가 쏘아져 들어왔다. 누군가 본다면 아름답다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파슨 자작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쩡! 쩌엉!
연신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그 충격이 손아귀에 그대로 전달되어져 왔다. 이럴 때는 방패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울아머 유저들은 방패를 들지 않는다. 기사 때야 방패를 함께 들고 수련을 하지만 소울아머 유저가 된 이후로는 거의 방패를 버린다.
소울아머라는 강력한 방패를 이미 얻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공격에 치중을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공격은커녕 방어만 해도 급급할 정도였다.
파슨 자작의 등줄기로 진땀이 흘러내렸다.
‘뭐가 이렇게 빨라!’
빠르고 강하며 집요했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마치 독사마냥 쑤시고 들어왔다.
카칵! 칵!
소울아머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웅삼의 공격이 스칠 때마다 소울아머를 감싼 소울포스가 마치 안개가 바람에 날리듯 흩어지며 갑주가 갈라졌다. 심지어 일부 상처에는 피가 배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힘들다.’
파슨 자작은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는 소울아머를 입지 않아도 충분히 괴물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
지금이라도 로만손 남작이 도우면 그나마 공격이라도 해 볼 것 같은데 아직까지 오지 않자 여력이 없는 상황이지만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병신.”
순간 파슨 자작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
촤르륵!
“끄윽!”
“으아아압!”
쇠사슬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 아빌런의 팔뚝에서 힘줄이 툭툭 불거졌다. 그 사슬은 로만손 남작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아빌런이 그의 목에 감은 사슬을 뒤에서 등판에 발을 디디고 잡아당겨 조이고 있는 중이다.
로만손 남작은 양손으로 목 줄기를 파고드는 쇠사슬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런 식의 전투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전장을 나가며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상상은 해 보았지만, 이렇게 목 졸려 죽는다는 건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최후였다.
“흐윽! 흑!”
로만손 남작의 눈이 벌게져 있었고, 숨을 몰아쉬는 그의 입가에는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아아아!”
일순 소울포스를 끌어올려 양손에 힘을 가했다. 그러자 기적처럼 목을 조이던 쇠사슬이 풀려 나갔다. 하지만 기적은 아니었다.
“흐억!”
아빌런이 쇠사슬을 풀어 주며 숨을 몰아쉬려던 로만손 남작의 등을 강하게 밀어 찼다. 그러자 로만손 남작이 꼴사납게 앞으로 허둥대며 밀려갔다.
***
“캬아악!”
비틀거리는 로만손 남작을 향해 아빌런이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대부도 함께 돌아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아빌런 주변으로 바람이 소용돌이 쳤다.
이를 악물은 아빌런의 입가에서는 빠드득하고 거북한 마찰음이 비어져 나왔다.
거칠고 더없이 사나운 기세가 몰아쳤다.
크게 한 발을 내딛었다. 이전보다도 더욱 강한 내딛음이었다. 아니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력한 발걸음이었다. 근육이 비명을 내지르고 뼈마디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동작이 큰 만큼, 힘을 모은 만큼 빈틈투성이의 일격이었다. 누가 공격해도 막지 못할 그런 일격이었다. 오로지 일격에 모든 걸 쏟았다.
아빌런의 눈에 비틀거리는 몸을 뒤돌리며 롱소드로 막아 오는 로만손 남작의 행동이 들어왔다.
동작이 너무 컸나 싶었다.
이대로라면 또 막힐 수 있었다.
이전에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 생각했던 공격이 막혔던 것이 일말의 불안감이 되었다. 그러나 멈춤은 없다. 멈출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힘을 주었다.
로만손 남작과의 전투에서 난 온몸의 자잘한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 일격에 담긴 힘을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아빌런의 눈은 그 어떤 때보다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귓가에 들려왔다.
‘되끼는 말이디…….’
아빌런이 따라하듯 쥐어짜 외쳤다.
“한 방이야!”
혼신의 일격이라 부를 만한 공격이 로만손 남작의 롱소드의 검신을 두들겼다.
***
로만손 남작은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싸움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생각했다. 침착하게 동급이라 생각하고 싸우며 조금씩 무리하지 않게 상처도 누적시켰다.
그런데 그 상처를 무시하며 개싸움을 걸어왔다. 몸이 갈라지면서 쇠사슬을 목에 걸고 당기고…….
그리고 로만손 남작 자신의 빈틈을 향해 그 어떤 공격보다 거세게 대부를 휘둘러 왔다. 갑주를 가를 수는 없겠지만, 아까의 허리를 당한 일격에서 그 충격마저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세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소울포스를 끌어 올렸다. 이것만 막으면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이 되었다.
그런데 눈앞에 핏물이 사방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피는 아니었다.
바로 대부를 든 사내의 몸에서 사방으로 뿜어지는 피였다. 힘을 쥐어 짠 것이다.
로만손 남작이 이를 악물었다.
‘빨라진 건 아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속도.
그럼에도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몸을 앞으로 기울이듯 피하기만 하면 휘두른 방향으로 몸이 딸려 날아갈 정도로 무식하게 힘들 담은 것이 보였다.
그래 봐야 절대 자신의 롱소드와 갑주를 무너트릴 수 없으리라.
“한 방이야!”
미친놈처럼 외쳐 오는 순간, 상대방이 휘두른 대부가 로만손 남작의 롱소드의 검신을 두들겼다.
그 순간,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로만손 남작은 두 손에서 아무런 충격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마치 대부의 그 커다란 날이 유령처럼 롱소드의 검신을 통과한 것이다.
‘분명 막았는데?’
절대 못 막을 공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허전함은 무엇인가.
콰직!
갑주에 대부의 날이 묵직하게 박혀 들었다. 소음이 들려왔다. 밀려올 충격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 또한 느낌이 달랐다. 무언가 깨어지는 소음이 들리며 몸이 살짝 대부가 두드린 방향으로 밀린 정도다.
‘이 정도의 일격뿐인가? 아니면 허수일까? 이런 기세를 담은 것이 허수?’
생각이 복잡했지만 이미 상대방은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예상한 것처럼 자신이 휘두른 대부를 제어하지 못하고 딸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절호의 기회.
그때 반대편에서 로만손 남작을 바라보는 파슨 자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도.
“저런 병신!”
로마손 남작은 참담했다. 저런 욕을 받아야 하는 이 순간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질겼던 상대를 베면 된다는 생각에 롱소드를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싶었다.
가벼웠다.
손이.
“검이?”
롱소드의 검신의 상단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깔끔하게 잘려 나간 것이다. 미처 느끼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게 그럼…….”
자르고 지나친 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의 충격을 입었던 허리춤을 자신도 모르게 내려다보았다.
로만손 남작의 눈이 커졌다.
몸이 기울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치 얼음위에 미끄러지듯 그의 상체가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하체는 아직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탈한 음성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