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69
134화 씁쓸한 결말
스트레인지 후작에게서 미친 듯한 공격이 퍼부어졌다.
이전의 모습이 화려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면, 지금의 공격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폭풍 같다고 볼 수 있었다.
화려함 속에 파괴의 힘이 극대화되다 보니 느낌마저 달라진 것이다.
그 속에서 웅삼은 마치 바다 위 폭풍우에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위태위태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시에라 제국의 본진은 술렁이고 있었다. 스트레인지 후작이 마지막으로 내린 결정 때문이었다.
전선을 물린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책임 속에는 그 자신의 목숨이 담보되었던 것이다.
그의 결정에 참모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후방의 병력부터 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방의 병력을 당장에 빼기는 어려웠다.
빼기 시작하자마자 전열이 무너지며 학살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병력이 뒤로 물러나고 이어 궁수들과 남아 있는 여유 병력으로 따라붙은 술법사들이 정렬했다.
순차적으로 병력을 빼면서 만에 있을 추격해 오는 적에게 견제를 위한 공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많은 병력일지라도 파도에 휩쓸리듯 쓸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식의 전개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처음의 진군과는 달리 일사불란한 모습이 모자라 보였다.
그것도 당연했다. 전투 시간은 짧았지만, 워낙 그 짧은 시간에 고급 병종이 너무 많이 쏟아부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에라 제국군이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전선을 물렸던 적이 있겠는가.
물론 소규모 전투에서는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상대가 약체라 하더라도 용장은 있게 마련이었고, 지휘관의 모자람이라든지 전술에서 밀려 후퇴하거나 포위 섬멸을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힘 대 힘으로 정석적인 대규모 전투에서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보통 시에라 제국이 패한 전투다 해도 이 정도 규모면 이쪽에서 발을 뺄 때 상대방에서도 적당히 전과를 올리고 물러서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보통 제국군이 후퇴를 포기하고 맞붙으면 양쪽의 피해가 더욱 커지고, 시에라 제국군의피해가 더 크다 해도 추가로 지원 오는 병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총사령관이 마지막 선택을 했고, 또 처음부터 소울아머 전력이 너무 소모되었다.
최후의 의지를 가지고 붙더라도 상대방이 오히려 밀어붙일 공산이 컸다.
가질 수 있는 패가 소모된 상황에서 끝까지 싸운다면, 오히려 적에게 큰 피해를 주어 공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커다란 전과를 안겨 주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후의 책임 소재는 참모들에게 있다.
지금은 그 책임을 스트레인지 후작이 떠안았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고 말이다.
이미 변명거리도 있다. 적들의 진영에 가우리라는 변수가 개입한 흔적이 있다고 하면 된다.
밝혀진 것은 계웅삼이라는 장수 하나뿐이지만, 술법사들이 당한 방법도 보면 그 이국의 새로운 술법일지 모른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병력을 정돈시켜! 시간이 없다!”
물론 최악은 없다 생각했다.
지금 스트레인지 후작이 맞서는 상대는 가우리라는 나라의 고위층이다.
그의 목을 벤다면 저쪽도 무리한 추격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초전에서 동맹의 고위층 장수가 목숨을 잃는다면 필리어리 왕국의 입장도 난처해지기 때문이었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밀렸다 해도 하이급 소울아머가 가지는 위력은 기사들이 소울아머 유저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빌어먹을, 초전부터 이럴 줄이야.”
병사들을 지휘하는 참모들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다.
책임을 스트레인지 후작이 진다지만, 그를 보좌하는 것이 임무인 그들에게 전혀 그 여파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나마 후폭풍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걸 알기에 이들의 발걸음은 그 어떤 때보다도 바빴다.
스트레인지 후작은 온몸의 피가 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피부는 보지 않아도 이미 마른 고목처럼 바짝바짝 말라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지만 생명을 쏟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넘치는 힘에 비례하여 생명이 타들어 가는 느낌.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스트레인지 후작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지고 있었다.
단지 생명을 소모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
그가 지금 웅삼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었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지금의 모습은 아까 그가 웅삼에게 당하던 것과 같았다.
누가 봐도 완전히 역전에 성공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싸우는 당사자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막고 피하고 흘린다.
이리저리 치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표현 그대로 막고 피하며 흘리고 있었다.
이리 휘처, 저리 휘청하는 모습 역시 힘을 흘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습일 뿐이었다.
“시간을 끌지 말라!”
스트레인지 후작이 노성을 터트렸다.
“다시 반말이네?”
순간 스트레인지 후작은 말라가던 피가 뒷목으로 솟구쳐 오르는 걸 느꼈다.
역시나 맞았다. 상대방은 막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막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아까부터 그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스트레인지 후작은 완전히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시간을 끄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능력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하미었다.
하이급이라는 새로운 소울아머의 진정한 능력 말이다.
순간 비참함이 밀려왔다. 목숨마저 걸었건만 적은 그것조차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비참함이 표출되는지 스트레인지 후작의 눈에서 피눈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우리에는 무인의 예우가 없는 것인가!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인가!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
그의 바람이 통했음인가 여태 그의 공격을 흘려 내기만 하던 웅삼이 처음으로 공격을 맞받아 쳤다.
콰앙!
“크으!”
손이 저릿했다. 여전히 강력한 일격.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싸우다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웅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웅삼의 눈빛은 더없이 서늘했다.
“착각하지 말라. 상대방에 대한 예우는 비슷한 사람에게나 해 주는 법이다.”
“그게 무슨!”
순간 웅삼이 몰아쳐 왔다.
더욱 빠르고 거셌다. 연신 불똥이 튀었다. 스트레인지 후작은 생명의 불꽃을 더욱 피워 올리며 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콰쾅! 쾅! 쾅!
숨 돌릴 틈도 없이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놀랍게도 웅삼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차분하게 말이다.
“검 하나에 생명을 걸지 못한 자 예우를 바라지 말라.”
서늘한 음성이었다.
스트레인지 후작은 그 말이 뜻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소울아머라는 병기에 기댄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병기를 고르고 다루는 것 역시 실력임을 무시하는 것인가!”
“병기를 고르고 다루는 것과 병기에 기대고 휘둘리는 것은 다르지.”
콰앙!
“크윽!”
웅삼이 아래에서 그의 쌍검을 올려치자 쌍검을 움켜쥔 그의 손이 들려 올라갔다.
하지만 그 상황보다도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힌 것은 웅삼의 한마디였다.
휘둘리다.
이어서 웅삼이 다시 위에서 아래로 장도를 내리쳤다. 이번에도 쌍검을 겹쳐 막았다.
콰앙!
“큭!”
순간 스트레인지 후작의 무릎이 흔들렸다.
그런 그를 두고 웅삼이 마치 막아 보라는 듯 다시 장도를 들어올려 도끼로 장작을 패듯 다시 내리찍으며 말했다.
카아앙!
“내가 싸웠던 놈 중에…….”
쾅!
불똥이 연신 튀었다. 웅삼이 말을 이었다.
“케니클이란 친구가 있었지.”
“크윽!”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럼에도 계속 내리쳐지는 공격에 점점 두 팔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앙! 쾅!
이제는 검술이고 뭐고 없었다. 그저 힘으로 내리찍을 뿐 그 단순한 공격을 스트레인지 후작은 그저 막아 내는 것 외의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걔가 지금 네 말을 들었다면 아마 똑같은 말을 했을 거다.”
“뭐?”
다시 들어 올려진 장도, 그리고 그걸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웅삼의 모습이 스트레인지 후작의 눈에 들어왔다.
냉정함, 그리고 무언가 무겁게 느껴지는 준엄함. 마치 어릴 적 검술 스승과 같은 표정.
허공을 가르며 그 장도가 떨어져 내렸다. 이어 바람이 후욱 하고 불어왔다.
이번에는 충격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상대는 한 걸음 물러서며 장도를 천천히 좌우로 휘둘렀다. 마치 묻은 피를 떨쳐 내듯. 묻은 피도 없었는데 말이다.
웅삼이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두 자루의 롱소드를 교차한 채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스트레인지 후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힘만 센 멍청이들이라고.”
“힘만 센 멍청이?”
“솔직히 소울아머가 대단하긴 하지. 실제로 입어도 봤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조금 더 빠르고 강하게 벨 수 있다고 강해진다는 착각은 하지 마라.”
스트레인지 후작이 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마치 인정하기 싫은 것을 입 밖으로 꺼내듯.
“그런가. 그런…… 거였나.”
“그래, 그런 거다. 진짜 강한 것은 그걸로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툭 하고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두 자루의 롱소드의 검신이 중간부터 잘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툭!
이어 그의 투구가 양옆으로 쪼개지며 조개가 입을 벌리듯 좌우로 나가떨어졌다.
스트레인지 후작의 회갈색 머릿결이 바람에 너울거렸다.
“그러니 내게 예우를 바라지 마. 모자라도 악착같이 덤비던 놈들에게 너무 미안해지니까. 다만 하나는 인정하마.”
“뭘…….”
말이 채 이어지지 않았다. 미간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물이 그의 입으로 울컥하며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의 인정을 듣고 싶었다.
“최소한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것은 똑같았으니까, 너도 악착같았다고 해주지.”
“그뿐…….”
야박한 평가에 아쉬웠지만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푸른 불빛이 그의 몸을 집어삼키며 세상이 양쪽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화르르륵!
생명으로 인해 타올랐던 영혼의 불꽃이 그 마지막 담보였던 새명을 가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르르륵!
푸른 귀화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 불꽃을 보며 웅삼이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했다.
“쯧, 그래도 억울해하진 마라. 먼 훗날 세상에서는 우리가 가진 가치가 잊히고 없어질 수 있거든. 니들이 너무 빨랐던 거고, 우리를 만난 게 불운이었던 거니까.”
그들이 살던 세상의 먼 훗날을 보고 왔던 웅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독백이 어딘가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장도를 허리춤에 납도한 그가 타오르고 있는 스트레인지 후작을 보며 중얼거렸다.
“쯧, 왠지 침울해지네.”
웅삼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시에라 제국군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되돌려지던 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런데 저거 어떡하지?”
그러고 보니 회수해 오라던 하이급 소울아머를 쪼개 버린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떠나간 배였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