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72
137화 뜻밖의 실마리
화려한 시에라 제국 황도의 위용에 압도된 노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감탄사를 연신 터트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게.”
기사들의 인도에 초로의 노인들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그들은 황도에서도 가장 웅장한 저택에 도착했다.
말이 저택이지 하나의 작은 요새와 같아 보였다. 그곳은 바로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 저택이었다.
“이들인가?”
그때 그들을 맞이한 이는 다름 아닌 쏜튼 폴리어 백작이었다. 쏜튼 백작이 확인차 던진 질문에 그들을 인솔해 온 기사가 목례를 올리며 대답했다.
“예.”
기사의 대답을 들은 쏘튼 백작이 노인들을 살폈다. 중년의 사내도 있었지만 듣기로는 모두 함께 표류해 온 이들이라 했다.
“들어가지.”
쏜튼 백작이 먼저 자리를 뜨자 시종들이 그들을 인솔해 나갔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소연회장이었다.
말이 소연회장이지 그 넓이가 일반 귀족의 어지간한 연회장보다도 컸다. 그곳에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지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어서들 오지.”
프라임 공작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가 직접 그들을 마지할 줄은 몰랐는지 초로의 노인들은 그 자리에서 넙죽 엎어져 일어날 줄을 몰랐다.
“일어들 나도록.”
프라임 공작이 이후로 재차 이야기를 하고서야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는 좋았다.
의도한 것인지 프라임 공작은 그 직위에 어울리지 않게 소탈했다. 다만 쏜튼 백작 덕에 분위기가 너무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식사가 끝이 나고 한결 풀어진 분위기에서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내 이미 보고를 받아서 알고는 있지만 그대들이 왔다는 대륙에 많은 관심이 있네.”
“아, 예.”
“가우리라는 나라는 없다고 했지?”
“예. 그러하옵니다.”
재차 확인하듯 던진 이름에 노인들은 마치 모르는 것이 큰 죄라도 되는 양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프라임 공작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다시 그들을 다독였다.
이미 분위기를 편히 해 줬던 덕인지 그의 다독임에 초로의 노인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다시 평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표류해 온 지 얼마라고?”
“이십 년이옵니다.”
“이십 년이라……. 꽤 오래되었군.”
아마 이들이 표류해 왔을 때에는 젊디젊은 나이였을 것이다.
“그대들이 살았던 나라의 이름이 뭐라 했는가.”
“슬레지안 제국이옵니다. 보통은 해상제국이라 불렀습지요.”
“제국이라…….”
제국이란 말을 곱씹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리고 다른 나라는 어떤 나라들이 있던가? 그냥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해 보게나.”
“헤네시안 신성제국과 아메리 연방제국 등 삼대 제국이 서로 패권을 겨루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다들 겁쟁이인지라 대놓고 전쟁을 하지는 않았던 시기였지요.”
“그래?”
마치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듣는 듯 프라임 공작이 웃으며 그들이 편히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갔다. 아무래도 이전의 조사에서는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었기에 하지 못한 말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억 안 나던 것도 튀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갑옷이라……. 소울아머와 비슷한 것인가 보지?”
“그건 잘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마법이 걸린 갑옷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 평생을 모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럼 마법갑옷을 입은 기사단도 있겠구나? 엄청난 강자들로 구성된 그런 기사단 말이야.”
프라임 공작이 넌지시 던진 질문에 노인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건 또 그렇지 않사옵니다. 보통 마법갑옷은 실력이 모자란 이들이 그걸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온데 워낙 값이 비싸 많이 쓰이지는 않았사옵니다. 그리고 있기는 해도 따로 마법기사라 불리지는 않사옵니다.”
“소울아머와 다른가?”
“많이 다릅죠.”
오래 산 만큼 소울아머에 대한 지식도 있는지 노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런가? 군사적인 식견이 꽤 해박하구만?”
“군선을 타던 병사였사옵니다.”
“아아, 그랬구나.”
“참 그쪽 대륙에서는 유명한 강자들이 있었사옵니다. 시일이 많이 지나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말이옵니다.”
“그래? 그게 무언가?”
강자들이라는 말에 프라임 공작이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자 노인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륙의 십 인이라 불리는 이들 말이옵니다!”
“대륙의 십 인? 그 기준이 따로 있는가?”
프라임 공작의 질문에 노인이 당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습죠! 검에 불꽃이 타는 듯한 오러를 피워 내는 이들만이 자격이 있습니다요.”
오러라는 것의 설명이 이어지자 프라임 공작은 내색은 안했지만 소울아머의 소울포스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소울아머를 입지 않고 소울포스를 끌어내는 강자라…….’
물론 본인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쪽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소울아머의 등장 이후 소울포스로 검을 형상화시키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설명이 약간은 장황하여 떠도는 소문을 내뱉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분명했다.
“대륙의 십 인에게는 그에 맞는 위명이 있습죠! 일단 해상제국의 쇼오 공작의 경우에는…….”
제법 재미있는 별명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계웅삼의 이름은 없었다.
‘결국 아닌가 보군.’
이들이 온 대륙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었다.
“소국이지만 그 뭐더라 그…… 남 로셀린 왕국 출신인 동부의 무신 바이칼이 있고…….”
바이칼이라는 이름에 쏜튼 백작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는 사이 노인의 입은 나머지 이들의 이름을 읊어 나갔다.
“광검의 케니클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 누구더라 아! 마지막으로 자유기사 제라르라는 이도 있었습지요.”
순간 바이칼이라는 이름에 실마리를 잡아 고민을 하던 쏜튼 백작의 눈이 커졌다. 프라임 공작 역시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제라르.
익숙한 이름이었다. 익숙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필리어리 왕가를 전복시키는 작전에서 결정적으로 방해를 한 인물의 이름.
“제라르라. 혹시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외모라던지…….”
프라임 공작이 되묻자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고향을 떠나왔던 오랜 시간이 그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방해를 했다.
“그게 천재였다고는 기억이 나옵니다. 젊은 나이에 십 인의 경지에 오른 이였으니 말이옵니다. 다만 소문이 많지 않아, 소인이 아는 것이라고는 금발의 용모에 말 그대로 번개가 치는 듯한 뇌전의 오러를 사용한다는 정도밖에 말이옵니다. 아! 그래서 뇌전의 제라르라고도 하지요.”
프라임 공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미소를 입가에 그려내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거 다른 대륙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는 게 많구나. 이곳에 며칠 머물며 내게 재미난 이야기를 더 들려주면 좋겠군. 내 보답은 넉넉히 해 주지.”
프라임 공작의 말에 노인들이 황송하다는 듯 몸을 굽히며 연신 예를 올렸다.
그들이 밝은 모습으로 소연회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프라임 공작과 쏜튼 백작은 남아 있었다.
“동일인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금발이 그 혼자일 리는 없지만 분명 그에 대한 소문 중 뇌전을 몸에서 뽑아냈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으니 말이옵니다.”
“그래. 그렇지. 흔한 조합은 아니지?”
“예!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겹치는 이름이 있었사옵니다!”
“겹치는 이름?”
쏜튼 백작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야바위 기사!”
“야바위?”
“예, 별명이 조금 다르긴 한데 방금 저 노인이 말한 동부의 무신이라 불린 자와 이름이 같습니다.”
“동부의 무신이면 바이칼?”
“예, 야바위 기사 헬리오스 바이칼이라 합니다. 질 듯 질 듯 하면서도 전투 직전 기사대전에서 로우급이지만 아군의 소울아머 유저를 베어 넘긴 이의 이름이었습니다. 운이 워낙 따랐던 자라는 말이 있어 잠시 잊었던 이름이옵니다.”
“그럼 야바위란 말이 그쪽 말로 동부의 무신 뭐 그런 표현일 지도 모르겠군!”
“그러하옵니다.”
“야바위 기사 바이칼이라…… 이거 뭔가 잡혀 가는 것 같지 않은가?”
프라임 공작이 활짝 웃자 쏜튼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각하의 판단 덕이옵니다. 그저 일선에선 윽박지르기만 했을 터이니 머리가 더 굳어졌었을 것이옵니다.”
“사람을 붙여, 수시로 질문하라 하게. 불편함 없이 모든 것을 붙여 주게. 음식이면 음식! 여자면 여자! 알아서 이야기들을 줄줄 읊을 정도로!”
“노인들인데 여자를 말이옵니까?”
“늙어도 남잘쎄!”
“아, 알겠사옵니다!”
실마리를 얻은 쏜튼 백작은 큰 목소리로 답하고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뒤 프라임 공작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대륙의 십 인이라…… 정말 보고 싶군.”
프라임 공작의 눈동자 위로 호승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프라임 공작 저택이 소란스러울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군.”
갑자기 등장한 이상한 마물에 관련된 보고가 떠올랐다.
그중 일부의 사체를 보내온다고 했는데 그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조금 전의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프라임 공작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답례를 한 프라임 공작이 수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것들인가?”
“예.”
수레를 열자 축 늘어진 마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게 정답이었다.
“그리 소란이 있을 법한 것은 아닌데.”
딱 보니 성인 남성의 허리춤 크기의 마물들이었다. 물론 개중 큰 것들도 있었다.
“이건 좀 위험해 보이는 군.”
“문제는 마물들이 일정 영역을 지키며 소수가 활동하는 것에 비해 이것들은 여러 마리 이상이 집단으로 공격을 해 온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것들을 운송해 온 기사의 보고에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소하기도 하고 여럿이면 문제가 있겠군.”
“예. 이 외에도 대형마물 역시 출현했사온데 아직 그것들은 잡아내 오지 못했습니다. 마침 때가 때인지라…….”
전쟁으로 인해 많은 병력이 차출되었다. 특히 고급병종의 경우는 일 순위다. 그러다 보니 마물 퇴치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물들을 살피는 중 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코, 코볼트?”
“응?”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소연회장에서 식사를 함께했던 표류자 출신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시종의 안내로 공작가의 저택을 구경하는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자네, 이것들을 알고 있는가?”
프라임 공작의 질문에 노인들이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다 뿐입니까! 소싯적에는 놈들도 꽤 많이 잡았습지요.”
“허, 이쪽에는 이것들이 없는 줄 알았는데…….”
노인들이 대답을 하곤 확실하다는 듯 서로 말을 꺼내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 프라임 공작의 미소가 짙어졌다. 마치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