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78
142화 본의 아니게…
“고, 공성병기가…….”
이디어 백작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공성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다수의 공성병기가 불타고 있었다. 물론 여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투 중에 탈 수도 있고 부서질 수 있는 게 공성병기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너무 많이 상했다는 것이다.
여분이 있다 해도 상식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수준만 남기는 것일 뿐이다. 더군다나 공성벼기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성병들이 많이 상했다는 점이었다.
“젠장!”
오늘 공성전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다음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서자 이디어 백작이 칼을 뽑았다.
“밀어붙여라! 반드시 오늘 승부를 본다!”
“예!”
이디어 백작의 말에 참모들도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 역시 오늘 공성전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디어 백작의 명령을 전달하며 뛰어다니던 참모 하나가 일그러진 얼굴로 전선을 바라보았다.
“해자가 없어 그나마 나을 것이라 생각했더니…….”
해자가 없어도 충분히 성벽 주변은 지옥이 연출되고 있었다.
마치 개미지옥 같았다.
성벽을 향해 달려가는 병사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지옥에 빨려 들어가는 개미떼처럼 느껴진 것이다.
“젠장, 초장부터 거지같더니만…….”
생각보다도 더 피해가 커질 것 같다는 예감에 참모가 이를 악물었다.
숫자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꾸역꾸역 몰려오는 시에라 제국의 보병들은 하나둘씩 성벽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죽어나간 적병들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벽에는 죽은 아군의 시신을 디딤돌 삼아 밟고 올라서는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로 가득했다. 수성하는 측에서 볼 때에 질릴 만도 했지만 생각보다 병사들은 차분했다.
“기둥 하나 더 세웠을 뿐인데 이거 참…….”
수성을 하는 카말 왕국 병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옹벽의 구조는 확실히 수성하는 입장에서 더욱 수월했다. 이전처럼 성벽 아래를 향해 화살을 쏘는 게 아니라 반대편 벽 위를 오르는 적병을 쏘면 되었다.
일단 그렇게 하니 상체가 적들에게 덜 노출되면서도 수월하게 표적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성벽에 적병들이 도달했음에도 아직 제대로 성벽 위를 밟는 이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덕분이었다.
그 덕에 이렇게 밀고 들어오는 적을 보면서도 카말 왕국 병사들이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은 초조한지 악을 써 대고는 있었지만 다들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 성벽 위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공성전에서의 사기란 건 별거 없었다.
성벽을 넘는 이가 있으면 그걸 보고 나도 저렇게 살아 올라갈 수 있구나 하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바로 사기를 올리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은 반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올라선 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성벽 위로 무기를 휘두르며 빠르게 올라선 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눈앞으로 시커먼 줄 같은 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앵!
“억!”
단말마와 함께 병사가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허공을 딛을 수 있는 재주가 없던 그 병사는 그대로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몇몇 성공을 앞둔 이들이 마찬가지로 뭐에 맞아 뒤로 날아가는 모습에 성벽 아래는 더욱 심각해졌다.
“대체 뭐지?”
그때였다.
태앵! 탱! 탱!
뭔가 탄력을 받은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뭔가가 쏘아지기 시작했다.
퍼퍽! 퍽! 퍽!
“대체 뭐야!”
뭔가가 휙 지나가나 싶더니 뒤에 있던 병사의 머리통이 잘 익은 호박 터지듯 터져 나가는 모습에 지휘관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에게도 알려 주듯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떠엉!
“어억!”
방패에 커다란 충격이 옴과 동시에 몸뚱이가 뒤로 확 밀려 나갔다.
“뭐, 뭐야?”
팔을 울리는 충격에 놀라 방패를 바라보았다. 철판을 덧댄 방패의 한복판이 우그러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박혀 있는 것은 바로 돌멩이였다.
“돌? 돌을?”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려 보자 마치 뭔가가 출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효과 좋은데?”
대나무를 성벽 위에 고정하고 그 사이에 줄을 달았다. 그러고는 그 사이에 돌멩이를 재고 땅겼다가 놓는다.
그게 전부였다.
이 역시 새로 고안한 병기였다.
손을 휘둘러 돌을 던지는 것보다도 파괴력이 세고 또 서벽 위를 올라오는 적병에게는 돌을 재지 않고 당겨 튕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활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석궁은 파괴력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화살을 재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건 당기면 된다. 물론 정확도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쏘아내는 것이 그냥 돌멩이였다.
흔하디흔한 돌멩이.
그걸 그냥 무작위로 당겨서 놓으면 그만이었다.
거기에 이렇게 성벽 아래에 인구밀도가 높으면 대충 쏴도 맞출 수 있다.
태댕! 탱! 탱!
성벽 위에선 때아닌 현악기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마치 공성전을 노래하는 음율처럼 말이다.
“젠장!”
결국 보고만 있다가 속이 터졌는지 로우급 유저 하나가 나섰다. 성벽 위에 걸쳐진 사다리를 평지마냥 밟아 나가며 달려 올라갔다.
“이놈들!”
주변 지휘관들도 그렇게라도 공성의 물꼬를 트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시선을 주시했다.
로우급 유저가 마치 하늘을 날듯이 뛰어올랐다.
“나! 대 시에라 제국의 발라스 자작가의 장남…….”
“어?”
성벽 위로 뛰어오른 로우급 유저와 밧줄을 뒤로 당긴 카말 왕국의 병사의 눈이 마주쳤다.
“허억!”
그는 바로 하일론 옆에서 처음 오줌을 싸 갈긴 담 큰 병사였다. 그 병사가 화들짝 놀라며 당겼던 줄을 놓쳤다.
태앵!
“우악!”
활처럼 휘어졌던 대나무가 탄력을 터트리며 앞으로 쏘아져 갔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닌지 성벽 위를 날 듯이 뛰어 올라간 로우급 유저의 발목을 밧줄이 때렸다.
뻐어억!
“와악!”
로우급 유저가 그대로 공중에서 빙글 돌았다. 그 짧은 순간 그의 시선이 아직도 멍한 카말 왕국의 병사와 마주쳤다. 그가 떨어져 내리며 외쳤다.
“내 반드시 네놈의 모가지를…….”
결국 그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사다리에 튕기고는 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들은 차마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다행히 바닥에 떨어져 내린 로우급 유저가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약간 아니 많이 창피했는지 다시 성벽을 향해 오르는 그의 행동은 처음보다도 빨랐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꽤 도움이 되었다.
“옵니다!”
로우급 유저를 날려 버리는 쾌거를 자신도 모르게 해 낸 카말 왕국의 병사가 살짝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딱 봐도 그는 찍혔다.
그것도 소울아머 유저로 보이는 이에게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든든한 원군이 와 있었다. 바로 묵갑귀마대와 동맹군의 기사들이었다. 물론 묵갑귀마대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다.
기존의 인원들이 아닌 제국전쟁을 통해 거듭난 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강자들임에는 분명했다.
“내 이 치욕을 갚겠노라!”
다시 성벽을 치솟아 오르며 로우급 유저는 무기를 맹렬히 휘둘렀다. 뭔가를 베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조금 전처럼 어이없게 줄에 튕겨져 날아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조금 더 가까웠다.
다행히 이번에는 줄을 튕기기 전에 잘라 버리며 성벽 위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거의 동시에 칼들이 날아들었다.
“우웃!”
착지와 동시에 날아온 공격에 로우급 유저는 급히 소울포스를 끌어올렸다.
콰창! 창!
“으윽! 윽!”
순간 로우급 유저의눈이 커졌다. 자신의 무기로 울려 오는 충격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로우급 소울아머 덕에 날아드는 공격을 연신 쳐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후욱!”
말린 왕국에서 파견 온 중년의 기사가 롱소드에 기운을 불어넣자 일순 소드 오러가 피어올랐다.
“뭐, 뭐야?”
소울아머를 입지도 않은 이가 소울포스를 뽑아내자 로우급 유저가 당황하여 그것을 막아 갔다.
콰치치칭!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나머지 공격은 소울아머의 방어력을 믿었다.
하지만 믿어서는 안 되었다.
콰직! 콱!
“어억!”
온몸으로 박혀드는 롱소드를 보며 그는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소울아머 유저들이 한 곳에…….”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성벽 너머로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다시 올라올 수는 없었다. 떨어지면서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그거 누구라 했나?”
떨어져 내린 로우급 유저를 보며 묻자 병사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까 말하다 떨어지더니 이번엔 말도 못하고 죽었습니다요.”
“쯧, 누구 죽었다고 한번 떠들어줘야 하는데…….”
죽은 이의 이름을 알리는 것은 적장의 목을 베며 사기를 올리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이름도 알기 전에 죽여 버렸으니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은 것뿐이다.
그때였다. 아까 하일론 옆에서 오줌을 싸갈긴 병사가 고개를 내밀다가 마법사에게 히죽 웃으며 부탁을 했다.
“거 목소리 커지는 것 좀…….”
“좋네.”
뭔개 재미있을 것 같다 생각한 마법사가 음성증폭 마법을 시전하자 그 병사가 크게 외쳤다.
“방금 두 번 올라왔다 다시 안 올라오는 놈 이름이 뭐냐! 하도 순식간이어서 이름도 못 물어봤다!”
그 말에 욕설들이 아래에서 울려왔다. 그러자 그 병사가 크게 비웃으며 다시 말했다.
“푸하하하! 다른 건 몰라도 하난 알겠다! 조루 아니냐 조루! 소울 조루!”
“푸히히히!”
“낄낄낄!”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이쪽이 더욱 사기를 올리는 것에는 탁월했다. 그 모습을 본 하일론이 웃으며 말했다.
“푸흐흐! 저 병사 아주 싹수가 있어!”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적 병사로 위장한 소울아머 유저가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로우급 유저가 급살을 당한 것에 이를 갈던 참모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대답하였다. 그가 보니 아까 이쪽을 향해 크게 외쳤던 이중 하나였던 것이다.
“저놈! 저놈의 목을 가져와라! 저 소울아머 유저의 목을 가져와!”
사방에서 분노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 소울아머 유저의 목을 가져와라!”
“저놈을 죽여라!”
밖에다 조롱의 말을 외쳤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왠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러자 주변의 병사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너 말하는 거 맞아.’ 라는 듯. 그리고는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왠지 모난 놈 주변에 있다가 뭐라도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지 몰랐다.
“내가 뭘 했다고!”
그저 병사는 억울했다.
그냥 한마디 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그가 있는 곳으로 소울아머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었다.
전투는 본의 아니게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