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85
150화 하얀 악마? 그냥 악마……
진천이 이끄는 선두의 묵갑귀마대와 개마기병들이 적진을 말 그대로 돌파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을 막는 이들은 없었다.
차라리 화살비가 쏟아질 때가 나았다. 그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들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창날에 꿰이거나, 그들이 탄 말에 차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결과도 둘 중 하나였다. 죽거나 죽을 정도로 부상당하거나.
그사이 이천여 궁기마가 빙 돌더니 질주해 오는 적 기마를 향해 내달렸다.
가벼운 무장 덕인지 방향을 바꾸며 달리는 데에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투퉁! 투투퉁!
직사로 날아간 화살들이 시에라 제국의 기병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퍽! 퍼퍼퍽!
기병들이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상당수 기병들이 뒤로 튕겨져 날았다.
“아악!”
비명과 함께 말에서 떨어져 나간 기병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아군의 발굽 아래 온몸이 짓이겨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화살이 이렇게…….”
얇은 철판을 펴서 덮은 방패 위로 화살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문제는 거의 전부라 할 만큼 화살들이 방패를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패가 이러니 갑옷에 잘못 맞으면 관통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 가우리 궁기병들이 다시 화살을 날렸다. 이번에도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끼히이잉!”
“히히힝!”
“어억!”
“젠자아앙!”
물론 뒤이어 사람의 비명도 따라붙었다.
이번에 날아든 화살들은 말을 노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말에는 투구 정도만이 씌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화살들이 말의 몸통과 다리를 노려 날아들었던 것이다.
아까와 달리 말까지 우수수 나자빠지자 그에 걸려 함께 쓰러지는 기병들이 속출했다
그 와중에 뒤쪽의 기병들 중 일천여 정도가 빠르게 빠져나와 가우리의 궁기병이 향하는 방향을 차단해 나갔다.
“따라붙어! 놈들을 죽여!”
악에 받친 기병 지휘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자유 사격하라!”
가우리의 궁기병들 중 하나가 외치자 다들 일제히 소수로 흩어지며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퉁! 퉁! 투퉁!
그러자 그들을 막아서던 시에라 제국의 기병들이 하나둘씩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막으면 우릴 잡을 수 있나 생각했는가 봐?”
“그러게.”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활만 들어도 지리게 만들어 버려!”
가우리군의 궁기병이 호기롭게 외치며 연달아 각자의 활솜씨를 뽐내었다.
퍼퍽!
“끄어어억!”
“내 눈!”
사방에서 비명이 내질러지고 있었다.
적들의 화살이 가진 위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했다.
아까와 달라진 점은 일제사와 자유사. 문제는 자유 사격의 피해가 더했다.
마치 화살에 눈이라도 달린 듯 기병들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 것이다.
어떤 기병은 안면가리개의 틈 사이로 화살 서너 대를 맞아 그대로 나가떨어졌고, 어떤 이는 말에서 붕 떠버린 사이 갑주의 틈에 화살이 날아와 박혀 허공에서 비명을 내지르다 떨어진 뒤에는 미동도 하지 못했다.
“으아아아!”
기병 지휘관 중 하나가 비명과 같은 함성을 지르며 속도를 높였다.
그의 팔다리에 화살이 하나씩 박혔지만, 그 아픔보다 분노가 더 컸는지 최고의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잘못이었나 보다.
퍽! 퍼퍼퍽! 퍼퍼퍼퍽!
“아!”
용기 있는 동료의 질주를 보던 시에라 제국 기병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말은 여전히 달려 나갔지만 말 고삐를 잡고 있던 기병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야말로 공포였다.
온몸에 화살이 빼곡했다.
대열을 툭 튀어나가서 십여 초도 지나기 전에 박혀든 화살이 얼추 백여 발에 가까웠던 것이다. 마치 고슴도치와 같았다.
그렇게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화살을 전면에 매단 채 나자빠져 떨어졌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소울아머 유저라도 있으면 모를까,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우회하던 기병병력은 제대로 들러붙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져 버렸다.
소수만이 살아남아 다시 복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궁기병이 다시 빙 둘러 회전하며 다른 먹잇감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휘가람이 우측을 향해 달려오는 적 기병을 향해 개마기병들을 끌고 이탈했다.
궁기병들에게 꽤 시달렸는지 이천 남짓한 병력만이 남아 질주해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마중 나가는 개마기병의 수는 천여 기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이는 바로 휘가람이었다.
“바람도 좋고.”
투구도 쓰지 않은 채 은발을 휘날리며 말을 몰아가는 휘가람은 마치 바람이라도 쐬러 나온 이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에 기병용 삭이 들렸다.
4미르(m)가 넘는 기병삭을 가볍게 휘두른 휘가람이 가볍게 내뱉었다.
“거창.”
그리 큰 음성은 아니었지만 그가 창을 들어 올리자 개마기병들이 일제히 복창하며 자신들의 창대를 세웠다.
“거창!”
“욕심 부리지 말고 각자 둘씩만 잡고 후방으로 이동한다.”
“충!”
휘가람의 명령에 개마기병들이 일제히 복명복창을 했다.
적 기병들이 일제히 창대를 들어올렸다.
그들의 창 역시 꽤 길이가 있었지만 이들의 창에 비하면 절반 조금 넘는 길이였다.
창기병 간의 대결이 별로 없는 전투 문화가 그대로 여실히 드러났다.
“돌입!”
“우오오오오!”
마치 귀곡성과 같은 음성을 울려 퍼트리며 개마기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두 집단이 마주하는 순간 길이의 차이는 순식간에 드러났다.
콰드득! 콰득!
둔탁한 소음과 함께 시에라 제국의 기병들이 창대에 찔려 나가떨어졌다.
일부 방패를 들어 공격을 흘려낸 이들도 존재는 했다.
“일단 하나는 잡았고.”
적 기병의 몸통을 꿰어 버린 뒤 휘가람이 삭을 던지듯 놓고서는 그대로 환두대도를 들어 휘둘렀다.
“이이익!”
그가 휘두른 환두대도를 향해 마주 롱소드를 휘둘러오던 시에라 기병이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도 없었다. 그렇게 휘가람을 스치자마자 롱소드는 물론이고 그의 몬통까지 쩍 하니 갈라지며 말 위에서 나자빠졌다.
“일단 둘은 잡았는데…….”
휘가람이 입맛을 다셨다.
둘만 잡자고 했지만 그의 위치가 선두였던 것과, 누가 봐도 지휘관이라고 알 수 있는 용모 덕에 시에라 제국의 기병들이 그를 향해 각자 무기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저자를 죽여!”
“죽어라!”
피식 웃음을 지은 휘가람이 그들을 향해 다시 말을 몰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확실히 좋아.”
휘가람이 환두대도를 그대로 휘두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 기병을 향해 나아갔다.
기합도 화려함도 없었다.
고개를 슬쩍 뒤로해 적의 공격을 피해 내며 환두대도를 휘두르면 무기를 쥔 팔이 날았다.
일부는 머리가 잘려 나갔다. 옆으로 찔러오는 공격은 빈 손으로 쳐내었다.
따앙!
손으로 쳐냈음에도 적의 무기가 쇳소리와 함께 반쪽이 났다.
당황한 이의 안면으로 휘가람이 휘두른 주먹이 그대로 박혀들었다.
콰앙!
마치 투석기 탄환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병의 목이 뒤로 꺾이며 허공에서 빙글 돌다가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휘가람이 환두대도를 빙글 돌리자 피가 후두둑 뿌려졌다. 그리고 환두대도를 좌우로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그 영역에 있던 기병들이 비명과 함께 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휘가람은 이미 그 사이를 지나쳐 갔다. 누가 보면 마치 짜고 하는 대련과 같아 보일 정도였다.
뭔가 간결하게 휙휙 휘두르니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나가는 아군들.
그렇게 십여 명을 처리하며 뚫고 나온 휘가람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뒤쪽의 적병들에게 물었다.
“다 덤빈 건가?”
차분하게 질문을 던지는 휘가람의 온몸 어디에도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그저 그가 들고 있는 환두대도에 몇 방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그가 다시 빙글 돌리니 마치 새것처럼 깔끔해 보였다. 그의 주변으로 말을 박차고 달려오는 피로 온몸을 물들인 개마기병의 모습이 차라리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아, 악마다! 하얀 악마야!”
누군가가 비명과 같은 외침을 터트리고는 무기마저 던지며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휘가람이 혀를 찼다.
“별명하곤.”
그 모습을 본 개마기병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냥 악마지…….”
일제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빌어먹을!”
후방을 책임지는 슈타인 허브 자작은 이를 악물었다. 적지 않은 수의 기병을 보았을 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전열이 무너지는 순간 기사들을 이끌고 달렸다. 공성전 와중에 후방이 무너지면 지금 진행 중인 전투는 의미가 없다. 그냥 지는 거다. 물론 공성 자체도 지지부진한 상황이기는 했다.
슈타인 자작이 그대로 소울아머를 활성화하며 말을 몰았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저게 그 괴 기사단인가?’
소문에 듣던 소울아머 유저에 필적한다는 그 기사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적들의 실력이 전부 상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선두에서 길을 열고 있는 이들의 실력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를 따르라!”
슈타인 자작이 소울포스를 끌어올리며 말을 달려갔다. 적의 선두를 쳐서 예봉을 꺾기 위함이었다.
일단 진격을 멈추어야 보병들로 하여금 포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멈춰 선 기병이야말로 좋은 먹잇감이니까.
“목을 내놓아라!”
슈타인 자작의 외침에 선두에서 무덤덤하게 병사들을 베어 넘기던 사내가 그를 응시했다.
순간 그가 이 무리를 이끄는 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당혹감도 느꼈다.
갑자기 살기가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쪽에 떨어져 있던 노인도, 온몸이 근육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작은 키의 사내도, 다른 기병과 달리 까만색 일색인 수십 여의 기병들도 모두 그를 주목한 것이다.
순간 이목을 너무 끌었나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 사이로 자신이 노린 이가 먼저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그걸 본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달려들 생각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장은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이 사내가 강자라는 것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 시에라 제국 허브 자작가의 슈타인이니라! 그대는 누구인가!”
호기롭게 외친 그를 반긴 것은 가시 박힌 발바닥이었다.
퍼억!
“꾸웩!”
슈타인 자작이 옆구리를 차인 채 비명을 내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런 그를 향해 따라 내리며 발길질을 선사한 이가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고진천. 네놈들 저승사자다.”
진천이 환두대도를 고쳐 잡고 바닥을 뒹구는 슈타인 자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