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86
151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후방이 어지러워지자 당장 불안해진 건 지휘부가 있는 곳이었다. 물론 지휘부의 특성상 후방에 위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후방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공성을 위한 병력을 내보낸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후방이 뚫리면 가장 먼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큰일입니다 성벽이 뚫리지 않고 있어요.”
“백작께서 직접 가시는 것을 막았어야 했나…….”
참모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후방이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또다시 달려 들어온 전령의 보고에 참모들이 뒤쪽으로 돌아 나갔다.
근방 지형에서 그나마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덕에 후방의 상황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추가 병력을 보태야 할 듯합니다.”
참모 중 하나가 불안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후방이 무너지면 그들도 위험하지만 공성전은 무조건 실패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여기 있는 전원이 문제가 된다. 후방이 무너지고 본진이 당할 때 적들이 역으로 치고 나오면 정말 답이 없게 된다.
물론 소울아머 유저들이 있으니 그런 상황이 쉽게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도 지금 상황을 쉽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렇게 되면 공성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다른 참모가 다른 의견을 내었다.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금 공성전의 교두보를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병력이 성벽을 점령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생생한 병력을 투입시켜야 한다.
성벽을 기어오르고 화살 비를 뚫기 위해 싸웠던 병력이 난입해도 밀리게 되면 모든 게 다 허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병력을 볼 때 사령부를 호위하는 숫자를 제외하면 나누기가 모호했다.
“슈타인 자작이 있으니 한 오천 정도 지원해 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성벽이 뚫리면 그때는 지휘부의 병력을 더해서 보내도 되고 말입니다.”
참모 중 하나가 다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치자, 다른 이들도 곰곰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몰라 남겨 둔 소울아머 유저가 지금은 든든했다.
“일단 상황을 살피도록 하고, 추가 병력 지원을 준비하는 쪽으로 하지.”
참모장의 결정에 다른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려이 말을 달려 난장판으로 들어왔다.
적들의 기세가 너무 강해 방어 책임자인 슈타인 자작이 직접 나섰다는 말에 전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찾았다.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두가 하얗게 질려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언제라도 명령이 떨어지면 도주할 준비까지 마치고 말이다.
전령 역시 표정이 하앴다.
퍼퍼퍼퍼퍽! 퍼퍽!
누군가가 무심한 표정으로 열심히 타작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예기가 서 있는 날 부분으로 상대를 베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면으로 말이다. 물론 쇳덩이니 아플 거다.
문제는 그걸 맞고 있는 이가 소울아머 유저였다. 칼날로 후려쳐도 웃으며 튕겨 낼 수 있는 능력자.
그런데 그건 지금 통하지 않는 상식이 되어 버렸다.
“아흐어어억! 어어억! 주, 주겨주…….”
“난 기회를 주는 거다.”
쉴 새 없이 패면서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건가 싶었다.
“어서 떼어가라. 내 목.”
퍽퍽퍽퍽!
“시, 실언을 해…….”
전령이 뒤로 물러서며 주변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부 병사들이었다.
분명 슈타인 자작이라면 호위기사들이 있을 것인데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시선을 돌려보니 알 수 있었다. 나자빠져 있었다. 전부 죽었다. 화살에 맞은 채 말이다.
“으, 으아아아!”
누군가가 비명인지 모를 외침을 터트리며 지휘관을 구하고자 용감하게 달려 나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뒤로 붕 뜨더니 바닥에 덜어져 축 늘어졌다.
이번에도 화살이었다. 온몸이 그뉵인 작달막한 사내가 말 위에서 활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야 전부 구경하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나서면 죽는다. 그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 이런 본진에 알려야…….”
재빨리 되돌아가려던 전령의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바닥을 데구루루 구른 그의 가슴팍에 화살이 절반 이상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쿨럭.”
피가 역류했다. 심장이 정확히 뚫려 버렸다. 더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령은 왜 오지 않는가!”
슈타인 자작과 소통이 되어야 지원을 하든 말든 할 텐데, 전령을 보내는 족족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뒤늦게 갔던 전령 하나가 달려와 외쳤다.
“후, 후방이 위험합니다!”
“슈타인 자작은?”
“그, 개 맞듯…….”
“뭐?”
“개 맞듯 맞고 있습니다! 흑흑, 저도 보지는 못했습니다. 갔던 전령이 모두 저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보고만 들은 건데, 최후의 수단은 쓰지도 못하고 그저 개 맞듯 맞고만 계시다며…… 아마 지금쯤은 전사하셨을지 모릅니다!”
참모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슈타인 자작이 당했다면 적어도 소울아머 유저가 있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일단 후방의 병력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고 사령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다시 짭시다!”
빠른 명령에 사령부에서 후퇴 신호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후방에서 버티던 병사들이 중구난방으로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참모진의 얼굴은 더욱 참혹해졌다.
후퇴하는 모습만 봐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저건 지휘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난전 속에서 지휘관들이 다수 전사한 모습이 분명했다.
“자네는 빨리 사령관께 가서 후퇴 건의를 드리게! 빨리!”
참모장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제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은 더 이상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흐윽! 흑!”
이디어 백작의 입에서 나오는 숨소리가 마치 흐느낌처럼 울려퍼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의 온몸은 만신차이가 되어 있었다. 숨이 거칠어진 것이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철저한 지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뒤를 이어 올라온 소울아머 유저들도 좁은 공간에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시간끌기를 당하고 있었다.
소울아머 유저를 상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기는 했다. 그런데 상대방의 피해는 별로 없었다.
위험할 때면 날아드는 화살이 공격의 맥을 끊어 버리고 있었고, 가우리의 기사들은 예상보다는 약하지만 시간을 끄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들 두셋이면 로우급 유저도 찜 쪄 먹을 실력이었다. 그런 이들이 몰려와 철저하게 시간만 끌고 있었다.
계속 싸우면 승기를 잡을 수 있겠지만, 중간 중간 날아드는 화살 때문에 그것도 어려웠다.
이제는 화살이 날아오면 상대하는 적들이 교대를 하는 시간인가보다 할 정도였다.
그때 이디어 백작의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리가 울려왔다. 후방의 병력을 소환하는 신호였다.
그제야 이디어 백작이 슬쩍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허어…….”
허탈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본진 후방을 방어하는 병력이 지리멸렬해서 사령부 쪽에 중구난방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 뒤를 짙은 색 물결이 뒤덮고 있었다.
이디어 백작의 얼굴이 참혹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결정을 내릴 시간도 없어진다.
“후퇴하라!”
이디어 백작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분투하던 소울아머 유저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봐야 눈에 보이는 이들은 둘 정도였다.
로우급 유저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놓칠까 보냐!”
그때 이디어 백작을 상대하던 요새사령관 비스토 자작이 놓칠 수 없다는 듯 밀어붙여 왔다.
그러나 이디어 백작의 행동은 간단했다. 그대로 성벽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거의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남아 있던 소울아머 유저들도 몸을 날렸다.
보통이라면 다치거나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는 높이였지만 그들은 달랐다.
“놈들을 가둬라!”
성벽 아래로 사라지던 이디어 백작이 눈을 부릅뜨고 위를 바라보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가능성은 하나였다.
쇠그물이다. 운신이 어려운 소울아머 유저를 향해 쇠그물을 연달아 던지는 것.
하나는 어려워도 여러 개를 던지다 보면 잠깐이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심하던 것과 달리 쇠그물은 없었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디어 백작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바닥에 닿아도 벌써 닿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상하다 싶을 때 그의 시야로 순간 흙벽이 보였다.
“엇!”
놀라 위를 보았다. 동그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으로 계속 흙벽이었다. 이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미친!”
이디어 백작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성벽 위에선 십수 명의 마법사들이 미친 듯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디그!”
“디그!”
“디그!”
마치 궁수들이 순차적으로 화살을 쏘듯 마법사들이 연달아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땅을 꺼지게 만드는 마법인 디그는 기초적인 마법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걸 지금처럼 중첩하니 결과가 달라졌다. 마치 지옥구덩이처럼 바닥이 계속 아래로 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시전하는 마법사들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초적이라 해도 이렇게 연달아 시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 마법이 닿지 않습니다!”
“거리를 벗어났습니다!”
마법사들이 연달아 주문을 멈추고 보고를 했다.
그때 구멍 아래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내 이딴 것에 당할 것 같으냐!”
순간 이디어 백작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마법사들은 마법을 바꿨다.
“무거워져라! 그래비티!”
중력마법이 작열하자 허공으로 치솟던 이디어 백작의 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욕설도 다시 멀어졌다.
이미 예상하고 그가 올라올 즈음에 중력마법을 시전했던 것이다.
“사, 사령관님을 구하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사방에서 병사들이 사다리를 내리려 했다. 또는 갈고리 줄을 던지려 했다. 그걸 그냥 둘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스톤 월!”
이번에는 구덩이 주변으로 돌벽이 솟구쳐 올랐다.
성벽 절반 크기의 돌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달려들던 병사들이 벌러덩 나자빠지기에는 충분했다.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한쪽에 쌓여 있던 흙더미들을 마법으로 띄웠다. 그러고는 구덩이가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
물론 그걸 순차적으로 뿌리지는 않았다. 허공 위로 쌓고 쌓았다.
집채만 한 흙더미가 구멍 위로 모여들자 일제히 부유마법을 취소했다.
순간 그 커다란 구멍이 메워졌다. 그 위로 마법사들이 마찬가지로 부유마법을 이용해 물을 퍼부어 대었다.
흙더미 위로 물이 퍼부어지자 마치 늪처럼 변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는 시에라 제국 병사들은 질리고 말았다.
사람 하나를 거창하게 생매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일군의 총사령관을 말이다. 마치 보란 듯이.
“아, 악마들이다!”
병사 하나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병사들이 성벽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죽음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더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만 것이었다. 아니, 사령관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뛰어내렸던 소울아머 유저들 역시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
계속 성벽 위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올라섰다. 이제야 좀 싸우나 싶었다.
그랬는데 후퇴 명령과 함께 이디어 백작과 성벽 위에 있던 소울아머 유저들이 뛰어내려 버린 것이다.
겨우 올라왔다는 아쉬운 마음 때문인지 그는 바로 후퇴를 하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그 잠깐 사이에 소울아머 유저가 생매장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주변을 살폈다.
“…….”
많은 눈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았지만 덤벼도 좋고 뛰어내려도 좋다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젠장.”
그는 성벽 위에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울상을 지었다. 왜 여기에 서 있나 싶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