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90
155화 소소한 전투
토벌대 병력들이 모인 곳은 산맥 초입에서 조금 들어간 개활지였다.
주변 영지의 병력을 끌어모으니 그래도 만 오천에 가까웠다.
보급을 나르는 이들까지 합치면 거의 삼만에 달했지만, 그들은 병력으로 포함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일반 병력보다는 소울아머 유저가 문제 아닙니까.”
“으음.”
일반 병력은 어떻게 모았지만 아직 소울아머 유저가 문제였다.
그나마 로우급 유저 세 명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산술상으로 로우급 세 명이면 유저 한 명을 맡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같은 소울아머 유저들에게도 실력의 고하가 있듯이 소울아머 유저에게도 실력 고하가 있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소문의 숲적이 함께한다는 첩보는 더욱 이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숲적에게 살해당한 소울아머 유저가 존재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이 돌아간 인근 영지의 영주들은 이렇게 무리를 했다.
그때 한 기사가 밝은 얼굴로 토벌대 지휘막사로 달려 들어와 외쳤다.
“황도에서 지원이 온답니다!”
“황도에서! 어떤 지원이란 말인가!”
“소울아머 유저 두 분과 로우급 유저 다섯 분이 지원 온다 합니다!”
기사의 보고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이거 다행입니다.”
“다만 주군들께서는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확실한 토벌이 우선 아니겠소.”
다들 기쁨을 애써 감추며 말을 주고받았다.
황도의 지원 규모로 보아 이곳의 지휘권도 넘겨줘야 할 것이다.
여기 사령부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이가 남작의 지위다. 그나마도 원래는 준남작이었다가 로우급 유저로 선택되며 남작위를 받은 이들 말이다.
그러나 지원의 규모를 보면 최소 자작급 인사가 올 것이 분명했다. 유저라면 자작의 위치에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토벌을 해도 그 공이 온전히 이들에게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다행은 다행이다. 패배해서 당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인근 영주들도 아쉽지만, 그래도 공이 없지는 않으니 알아서 아쉬움을 감출 것이다.
아니, 차라리 다행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실패의 불안을 안고 있는 것보다 다소 모자라지만 성공의 확신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니 말이다.
“오! 새로운 정보가 있다고!”
트렌든이 밝은 얼굴로 들어섰다.
“뭔데?”
“이 전능한 마법사께서 적들의 정보를 가지고 왔지.”
트렌드느이 자화자찬에 필리언 제라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능은 무슨 투명화 마법도 못 쓰면서…….”
고위 마법사라면 모습을 감추는 마법을 이용해 다녀올 법도 한데, 트렌든에게 그걸 바라는 것은 불가능이다.
이제 2서클이다. 그나마도 리셀에게 엄청난 지원을 받고 말이다.
마법사가 되면 일단 바보라도 될 수 있다는 2서클.
“노노! 투명화 안 먹힐 수 있다는 보고 몰라?”
“뭐, 그건 그러네.”
카말 왕국에서 침투했던 마법사들이 술법에 의해 발각된 일을 말하는 것이다.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서 트렌든이 선택한 방법은 감청이었다.
인근까지 침투한 이후 나무 위에 올라 감청을 한 것이다. 물론 감청 장비가 있을 리 없지만 리셀에게 부탁해 유사한 형태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믿고 정찰을 자청해 다녀왔던 것이다.
“소울아머 유저 둘이랑 반쪽이들 다섯.”
“뭐 와봐야 별거 있나?”
솔직히 그 숫자라면 별로 어렵지도 않다.
제라르가 나설 것도 없이 묵갑귀마대의 노 괴수들과 라임 론 일루이먼 18왕자의 기사단장만 있어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그래도 미리 알고 대응하는 건 전쟁에 있어 이미 우위를 가지고 있는 거라네.”
“알아!”
트렌든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제라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자, 내 정보를 마음껏 활용해 보라고! 컴온 맨!”
“오라고? 때려 달라고?”
“통역 아이템이 이런 소소한 문제가 있군.”
제라르가 눈을 치켜뜨자 트렌든이 재빨리 한걸음 물러서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구신이 입을 열었다.
“기다릴 필요 있나?”
“응?”
“미리 조지고 기다렸다 조지면 되잖아? 합치는 것보다 그게 낫겠어.”
“흐으음.”
구신의 말에 제라르가 까칠해진 턱 끝을 긁었다. 사실 라임 왕자에게 큰소리 떵떵 쳤지만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석적으로 공성전을 행해도 할 만했지만, 성이라는 것이 단번에 쌓고 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피해가 누적되면 조금 고달파지기 때문이었다.
“짐승들 밀어 넣고 알맹이만 빼먹으면 알아서 무너지지 않겠나?”
“그건 그런데…… 은근히 반말을 하네.”
“큼.”
구신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실력을 떠나 이곳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이는 바로 제라르였다.
하지만 구신의 의견은 나쁘지 않았다.
“주변에 웨어울프들 있지?”
“그거 걸어 다니는 개새끼?”
“말 좀 우아하게 하라고.”
“걷는 개.”
“끙.”
제라르는 미리 주변에 풀어놓은 몬스터들을 이용할 생각을 했다.
신성제국과의 전재에서도 써먹어 보았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활용해 보자고. 그거랑 큰놈 몇 마리 집어넣고 다음에 병력으로 밀어 버리지.”
제라르의 말에 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전에 있어 필수 인원은 바로 묵갑귀마대였다. 그들이 두발 소라 불리는 미노타우르스를 이끌고 다니며 몬스터를 몰아갈 것이다.
“그리고 트렌든.”
“말만 하라고.”
“술법사 싹 잡아. 서신 날리면 기다렸다 잡는 거 못하니까.”
“옛써!”
트렌든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이마에 붙였다 뗐다. 그걸 본 제라르가 인상을 팍 썼다.
저 인사법이 좋아 보였는지 성에 주둔하는 병사들이 저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쯧. 그럼 날 잡아 움직이자고.”
요새가 분주해졌다.
***
토벌대의 정찰병들이 수색을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마수가 이렇게 많아.”
“그러게 말이야. 그나마 일정 영역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걸로 알려졌으니 다행 아닌가?”
“그건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저번에 몰살당한 애들 이야기 못 들었어?”
갑자기 산맥에 들끓기 시작한 마수 때문에 이 지역 지리에 밝은 사냥꾼들이나 정찰병들도 움직임에 제약이 생겨 버렸다.
거기에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아 더욱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 덕에 안전한 길을 찾아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비오나?”
그때 한 사내가 어깨에 물이 떨어지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올렸다.
새까만 가운데에 노란 불빛이 보였다.
“어헉!”
“크어어어!”
놀라 뒷걸음질 치는 순간 노란 불빛의 주인이 그를 덮쳤다. 산속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짐승의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밤공기를 타고 흘러들어 왔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토벌대 본진을 경계 서는 초병들의 귀에 들릴 정도는 되었다.
“뭐야? 방금?”
“설마 정찰대가 당했나?”
“아닐 거야. 요즘은 알아서 마수들을 피해 다닌다고 했어.”
“젠장. 토벌하기도 힘든 마당에…….”
산맥 안쪽에서 울려오는 괴 소리에 초병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수풀 쪽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조금 전 마수의 것으로 생각되는 소리 때문인지 초병의 목소리는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나, 나 좀…….”
그때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인근으로 정찰을 나갔던 정찰 대원이었다.
횃불을 비추어 보니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이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아군 맞아! 얼굴이 익어!”
초병이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맹수에 당한 것 같은 상처가 분명했다.
“마수야? 마수가 맞아?”
초병이 달려가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그러자 정신이 혼미한 정찰대원이 울먹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줘.”
“걱정…….”
걱정 말라는 말을 하려던 초병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우직!
어디선가 날아온 강력한 일격에 목이 그대로 꺾여 버렸기 때문이다.
이어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오오오!”
“으, 으악! 마수다아! 마수…….”
초병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고성을 터트리며 도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채 다섯을 넘지 못했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그들의 목숨을 너무도 쉽게 가져갔기 때문이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죽어 나가는 병사들의 악다구니에 귀가 시릴 정도였다.
“대체 몇 마린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것들이 족히 수백은 넘사옵니다!”
“여기 병력이 몇인데! 수백의 마수들에 이리 혼란스러운 것이냐!”
지휘부의 귀족들이 벼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기사님들도 버거워하는 마수입니다요! 게다가 놈들이 몰려다니는 바람에…….”
“크윽!”
몰려다닌다는 말에 귀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인이 나타났습니다!”
“허, 이런…….”
굳이 병사의 말이 아니어도 멀리서 확연히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마수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통나무를 집어 들었는지 커다란 몽둥이를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이 비명과 함께 허공을 날아다녔다.
“젠장! 일단 저 덩치 큰 놈들부터 처리하지! 로우급 유저 두 분을 모셔! 어서!”
그렇게 말하며 귀족 중 하나가 로우급 소울아머를 챙겨 입은 채 달려 나갔다.
“생각보다 어설픈데?”
“다수가 징집병인 듯합니다.”
인근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살피던 제라르의 중얼거림에 라임 왕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인근 영지들의 수준이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라 병력의 질은 좋지 못한 편이었다.
어이없기도 했고 또 얼마나 조급했으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아마 그나마 있는 알짜들은 최대한 아꼈을 겁니다.”
“그래 보인다. 무기를 든 놈보다 안 든 놈들이 더 많으니…….”
그나마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은 정병이 많았다. 그게 제라르가 본 시에라 제국 병사들이었다.
“그게 이 지역이 점령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병사들의 수준이 낮습니다.”
“그런가.”
라임 왕자의 씁쓸한 답변에 제라르가 짧게 답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점령지의 병력 수준이 높은 게 이상했다.
“슬슬 움직여야지.”
“예!”
제라르가 고갯짓을 하자 라임 왕자가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수풀이 흔들리며 백여 명의 병력이 움직였다. 묵갑귀마대와 라임 왕자가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었다.
그들이 혼란 속으로 달려 나갔다.
“술법사!”
어설프게 모여 있는 술법사들에게 한 기사가 달려왔다.
“예!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빨리 서신을 날려!”
“예?”
“적이다! 적이 공격을 해왔어!”
그 말에 술법사들이 놀란 눈을 했다. 이들은 마수를 막기 위해 모였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적이란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규, 규모는 어떻습니까?”
“일단 알려! 이미 버튼 남작께서 전사하셨다!”
“어헉!”
버튼 나작은 로우급 유저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전사했다는 말은 적의 규모를 떠나 위급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자네가 서신을 날리게.”
“아, 알겠습니다!”
놀란 술법사가 서신 전용 술법지에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술법을 부리려는 순간이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술법사가 서신을 날리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놀란 술법사들이 달려가 그를 일으켰다.
“이, 이게…….”
미간에 빨간 점 하나가 찍혀 있었고, 그 점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풀 속에 까만 작대기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걸 든 트렌든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일단 하나.”
이어 다른 먹잇감을 찾아 저격총의 총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