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091
156화 멋진 모습
트렌든이 술법사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며 제라르는 혀를 찼다.
“저거 총알인지 콩알인지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지금 트렌든이 쓰고 있는 것은 고진천 일행이 상대하던 특수부대를 제압해서 수거해 온 것 중 하나였다.
현대화기라 불리는 그것들을 트렌든이 써 먹고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활로 따지면 화살에 해당하는 탄환의 수량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리셀이 연금술을 이용해 본다면 추후 다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었다. 거기에 본능적인 거부감도 있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생명을 빼앗는다.
전쟁이 쉬워진다는 말이었다.
물론 제라르 정도의 강자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그 효용가치조차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하긴 여기도 따지면…….”
제라르가 로우급 유저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곳도 절대강자는 이미 사라져가고 있는 곳이었다. 물론 소울아머라는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만약 저것이 퍼진다면 아마도 평균적인 수준은 올라도 절대적인 강자의 출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여기의 현실이 그랬다.
굳이 여기를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트렌든이 온 그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가락 하나로 도시를 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물건이 있으니 신체적으로 정점을 찍는 무인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저게 인류 최강 어쩌고 하니 말 다한 거지.”
트렌든이 있는 방향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제라르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다. 사방으로 쏘아져 나간 묵갑귀마대는 마치 메뚜기 떼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며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전투는 생각보다 손쉽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몬스터들을 푼 순간 애써 꾸려놓은 진영은 이미 흐트러져 버렸다.
“네놈! 제라르?”
“응? 누구시더라?”
그를 알아본 로우급 유저 하나가 살기를 내뿜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제라르는 기억 못하지만 그가 사기를 칠 때 있었던 이들 중 하나였다.
“내가 바로!”
콰작!
누구라고 외치기도 전에 제자르의 롱소드가 그의 허리춤을 양단하고 지나갔다.
“시끄러. 사내 새끼가 말이 많아. 알고 싶지도 않아.”
“이, 이런 빌어먹…….”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뒤로하고 제라르가 발걸음을 계속 내딛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간 큰 이들은 없었다.
로우급 유저 하나가 어찌하지도 못하고 상체와 하체가 나뉘어 나자빠졌다. 그런데 누가 그의 앞을 막겠는가. 나머지 로우급 유저들도 비슷했다.
용맹스럽게 묵갑귀마대 앞을 가로 막았다가, 그들이 그대로 한번 지나치니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져 버렸다.
이미 전의랄 것도 없는 이들이었지만 더는 버틸 용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에이씨. 이렇게 다 도망가면 잡는 게 더 귀찮은데.”
물론 뒤늦게 출발한 본진의 병력이 이 주변을 에워싸서 패잔병들을 하나둘씩 주워 모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한둘도 아니고 죄다 도주를 선택했으니 꽤나 많은 이들이 도주에 성공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전투 참 쉽다.”
아예 뒷짐을 진 제라르가 걸어가며 투덜거렸다.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도주하려다 걸려 나자빠진 토벌대 병사였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창백한 얼굴로 뒤로 기어가는 모습에 제라르가 나직하게 말했다.
“무기 버리고 꿇어.”
순간 병사는 그의 말대로 재빨리 무릎 꿇더니 꿇어앉았다. 무기는 애초에 없었다. 제라르가 다시 말했다.
“움직이지 마. 넌 포로야.”
“예!”
그렇게 한마디 던져 주곤 제라르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게 또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마치 파도가 치듯 주변으로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버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었다.
“하, 항복입니다!”
“항복!”
“꾸, 꿇었어요! 제발!”
“허?”
마치 제라르를 중심으로 동심원이 그려지듯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라르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진하게 베어 나왔다.
다시 외쳤다.
“무기 버리고 꿇어! 그러면 산다!”
쩌렁쩌렁한 외침에 무릎을 꿇는 병사들이 늘어갔다. 그 모습을 천천히 관전하며 제라르가 히죽 웃었다.
“이런 걸 왕녀가 봤어야 내 멋짐에 더 반할 건데. 이거 저장할 수 없나?”
나름의 아쉬움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제라르였다.
그의 말마따나 전투는 쉽게 마무리 되었다.
전장에 먼저 난입했던 몬스터들은 자신들을 이쪽으로 몰아내었던 최상위 포식자들의 등장에 다시 도주를 택했고, 지휘관들 중 소울아머 유저들은 모두 주검이 되어 나자빠졌다.
병사들은 꿇었고 독전을 하던 기사들 역시 최우선 순위로 죽어나갔다.
술법사들은 트렌든의 활약으로 서신을 날릴 생각도 못하고 대여섯 명만 살아남아 벌벌 떨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라임 왕자가 병력을 이끌고 나와 혀를 찼다.
“벌써 끝난 겁니까?”
“뭐, 내가 나서면 이 정도는 쉽거든.”
제라르의 말에 라임 왕자가 혀를 찼다. 전투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자자, 빨리 정리하고 거기 술법사들 이리로 모셔와.”
“가자구, 페이퍼 매지션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라르가 인상을 구기며 되묻자 트렌든이 타다만 술법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맞잖아. 이걸로 불 나오고 물 나오고.”
“그 쇠작대기 콩알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래서 전쟁 하겠어?”
“노노! 난 어디까지나 매지션! 이제 몸으로 때우는 건 안 할 거야.”
“쯧. 이리저리 쥐어 터지더니…….”
제라르의 말에 트렌든이 딴청을 부렸다.
여기 있는 묵갑귀마대치고 서열별로 트렌든을 안 두들겨 본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온 뒤에 자존심 회복에 나선다며 덤빈 것이 슬프게도 묵갑귀마대였던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맞고 다니더니 갑자기 자신은 매지션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던 것이다. 처음 모습과는 달리 놀라운 적응력이었다.
끌려온 술법사들에게 제라르가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서신을 날리는 거야.”
“예?”
“거 지원 온다며?”
“그, 그걸 어떻게…….”
술법사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때 트렌든이 다시 이상한 포즈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트렌든 매직!”
제라르는 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다 정보가 있으니까 서신을 날려.”
“오, 오지 말라고 하셔도…….”
술법사 하나가 떨면서 입을 열자 제라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빨리 오라고 해야지?”
“예?”
“상태가 심상치 않다. 지원이 오는 걸 눈치챈 듯하다. 최대한 빨리 오셔야겠다. 이렇게 해야지.”
“예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술법사를 보며 제라르가 롱소드를 어깨 위로 턱 하니 올려놓으며 다시 말했다.
“뭐해? 싫으면 말해. 니 뒤로 네 명 더 있네.”
순간 그의 뒤에 있던 네 명의 술법사가 빠르게 술법지를 꺼내었다.
“제, 제가 합니다!”
“서신은 제가 전문입니다!”
“제 서신은 누구보다 빠릅니다!”
살기 위한 시골 술법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십여 기의 기마가 산맥의 초입을 지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런 산골짜기의 반란이나 정리하러 가다니.”
소울아머 유저인 에덤 브라임 자작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다시금 시작된 시에라 제국의 정복전쟁에서 공을 세울 수 있다는 마음에 부풀어 있던 그는 이번 토벌전에 동원된 것에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놈들 중에는 숲적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네. 그들에게 희생당한 소울아머 유저가 한 둘이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동료 소울아머 유저의 말에 에반 자작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이렇게 소울아머 유저들이 몰려다니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기존에 없던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갑자기 소울아머 유저들이 떼로 죽어 나가면서 이제는 걸핏하면 서너 명씩 몰려다니게 된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소울아머 유저들이기에 이런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존심마저 손상된 것이다.
“빌어먹을. 소울아머 유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놈들 때문에…….”
그렇게 투덜거리는 그들을 향해 일단의 기마가 몰려왔다. 깃발을 확인한 기사들이 그에게 보고를 했다.
“토벌대가 마중 나왔습니다.”
“지휘관이 누구야?”
“없는 듯합니다.”
“뭐? 이런 미친…….”
지휘관이라 해 봐야 남작급이다. 그것도 로우급 유저. 그런데 마중 나오는 이들 사이에 지휘관급이 없다는 말에 에덤 자작이 열이 받은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놈들이 곧 몰려올 것 같습니다!”
그때 마중 나오던 기마에소 들려온 보고에 에덤 자작이 다시 인상을 구겼다.
“젠장 쉬지도 못하고.”
“그래도 빨리 처리하면 빨리 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우급 유저의 말에 에덤 자작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또 그렇군.”
기마의 속도가 빨라졌다.
말을 달리던 에덤 자작이 힐끗거리며 길을 인도하는 기마들을 바라보았다.
시골 영지 출신 기사들 같지 않게 실력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자네 누구 밑에 있나?”
대답이 없었다.
“거기 선두 자네 말이야.”
“저 말입니까?”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는 금발 사내의 모습에 에덤 자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매우 귀찮다는 듯 대꾸하는 모습에 잠시나마 좋게 보았던 마음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봤나!”
그때 그의 곁을 따르던 호위기사가 호통을 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신기하네.”
“뭐?”
“나 원래 그런 거 안 키우거든.”
순간 에덤 자작은 물론이고 호위기사들이 일제히 말을 멈추었다.
“누구냐. 네놈들.”
동료 소울아머 유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피 냄새가 짙어. 함정 같네.”
“젠장.”
바람결에 풍겨오는 피 냄새를 그들이 맡은 것이다. 워낙 희미했지만 초월적인 무력을 지닌 그들은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다.
“놈들을 처리하고 일단 이곳을 빠져나간다!”
이십여 기의 기마에 불과했지만 적 역시 이십여 기의 기마였다. 게다가 에덤 자작을 포함해 일곱이 로우급 유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빠져나가는데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거참, 대충 대답하고 끌고 오지 그게 뭡니까. 애도 아니고.”
한 사내가 투구를 벗으며 투덜거리자 에덤 자작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검은 머리카락에 구릿빛 피부. 숲적 일당의 용모와 닮아 있었다.
“너 이 새끼들!”
“새애끼? 이만한 새끼 봤냐? 어디다 새끼라 그래1 대갈통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까 보다!”
“클클 자기도 참지 못하는구만.”
금발의 사내 제라르는 발끈하는 구신을 보며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쳐라!”
에덤 자작이 더는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듯 명령을 내리자 일행들이 일제히 소울아머를 활성화시키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변장했던 제라르와 묵갑귀마대원들이 일제히 마중 나가듯 말을 달렸다.
그 모습을 보며 에덤 자작이 이를 악물었다.
도주하지 않고 맞상대를 해 온다는 것은 적들도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흐아아압!”
에덤 자작이 기합을 터트렸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 위해 소울포스를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다.
콰자자작!
두 무리가 충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