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12
177화 백기 들고 공격!
“생각해 보면 너무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쉬람 마잘 공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처음 일만의 기병을 끌고 터그람 왕국 쪽으로 넘어갔을 때만 해도 적당히 휘젓다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거기서 한 일들을 보면 그야말로 그동안 바사 론 카말 왕이 한 짓은 애교였다.
물론 결과는 좋았지만 가우리와 동맹국에 의존성이 높아진 지금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걱정거리였다.
“걱정 말라우. 내무남무인 것이디.”
“내무남무?”
을지우루의 말에 쉬람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우루가 거드름을 피며 말했다.
“내가 하면 무적 남이 하면 무모란 사자성어인 거이야.”
“…….”
우루의 말에 쉬람 공작은 미묘하게 얼굴을 굳혔고 한쪽에 있던 삼두표는 옆에 있던 부여기율에게 질문을 했다.
“킁, 저런 말도 있었냐?”
“나도 지금 알았다.”
고진천 역시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의 태연한 반응에 쉬람 공작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터그람 왕국쪽 전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쉬람 공작의 말에 연휘가람이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떤 문제입니까?”
“그게 그리팔 후작에게 후퇴 명려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지금 주둔하는 곳에서 병력 충원을 해서 막는 게 아니란 말이군요.”
휘가람이 확인하듯 묻자 쉬람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벌써 당도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소수만 움직였군.”
이야기를 듣자마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범주 중 하나였다.
“프라임을 잡으면 전쟁 끝나는 것 아닌가?”
그때 문득 진천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자 쉬람 공작이 당황했다. 그럴 확률이 높기는 했다. 그러나 본진이 곧바로 따라 붙는 상황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본진이 곧바로 따라 붙는 상황입니다.”
“미리 좌표라도 따 놓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군.”
진천의 중얼거림에 쉬람 공작은 이걸 아쉬워해야 하는 지 아니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지 혼란이 왔다.
“장기적으로는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시에라 제국이라는 덩치가 적지는 않기에 이번 전쟁이 그렇게 마무리 된다 해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덩치가 큰 쪽이 회복이 빠른 건 당연한 일이고…….”
휘가람이 설명의 끝을 흐렸다. 진천을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겪어 본 일이었다.
수와 당을 상대하면서 규모의 전쟁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 지 말이다.
“우리 흉내를 냈다지?”
“그리팔 후작 말입니까?”
“아니 프라임인가 하는 자.”
“예.”
터그람 왕국이 지금 혼란에 빠진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정찰 병력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 그래서 터그람 왕국은 그리팔 후작의 병력을 뒤로 물리는 일에 말이 많았다.
그렇다고 추가로 병력을 붙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려면 사전에 준비했어야 했다.
“시에라 제국이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 무엇일까?”
진천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쉬람 공작이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다.
“아마도 전쟁이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또 뭐가 있지?”
다시 이어진 진천의 질문에 쉬람 공작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그런 일이 벌어졌지 않습니까. 필리어리 왕국의 공작 실패나 본진 병력의 괴멸 마찬까지로 이쪽의 첫 방어전에서의 쾌거도 그렇고 그리팔 후작의 선전 역시 시에라 제국의 내부가 시끄러운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것 때문에 프라임 공작이 직접 전선에 나선 것이고 말입니다.”
“흐음.”
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있을 법한데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고민이 담긴 표정이었다. 그때 휘가람이 끼어들었다.
“프라임 공작이 말을 덥기 위해 움직였다면 그가 움직인 것을 가지고 말이 나오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휘가람의 발언에 다들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 생각하신 방법이 있습니까?”
쉬람 공작이 묻자 휘가람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식충이들 써먹을 때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적당히 그쪽도 불만이 차오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식충이라면 혹시?”
휘가람의 말에 쉬람 공작이 뭔가가 떠오른 듯 표정을 밝게 했다.
***
일루이먼 왕국의 18왕자 라임 왕자는 몸을 이리저리 틀며 중얼거렸다.
“이거 요즘 너무 잘 자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라임 왕자의 말에 호위기사들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적진이 아니다 보니 잠자리가 편해져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네.”
“그리고 훈련을 워낙 열심히 받으시니 잠이 더 잘 오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호위기사의 말에 라임 왕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말대로 시에라 제국 내에 있을 때에는 잠을 자도 왠지 불편했다.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 카말 왕국에 온 뒤로는 그런 불안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몸은 솔직히 힘들었다.
언제 되돌아갈지 모르기에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자기 전에는 몸이 녹초가 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사실 그래서 더 잠을 깊게 자는 것이기도 했다.
“뭐 훈련이라도 잘 받아야지. 밥만 축내는 것 같으니 말이야.”
라임 왕자의 말에 대답은 다른 이가 내뱉었다.
“그럼 이제 밥값 해야지?”
“오셨습니까?”
라임 왕자가 발딱 일어서 부동 자세를 취했다. 말을 꺼내며 들어온 이는 바로 계웅삼이었다.
“쯧, 이거 전쟁 내보내기 불안해서 영…….”
웅삼이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자 라임 왕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의 무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도 이제는 적당한 수준에 올랐다 생각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웅삼에게 굴려지다 보니 자신감도 좀 생겼고 말이다.
“뭔가 잡힌 겁니까?”
라임 왕자가 조심스럽게 묻자 웅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을지수호와 강구신이 따라 들어왔다.
“되돌아가야디요.”
수호의 말에 라임 왕자의 얼굴에 흥분이 스쳤다.
“드디어 다시 가는 겁니까?”
“길티요.”
“혹시 같이 가는 겁니까?”
라임 왕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이번에는 판을 좀 크게 벌일 거야.”
그의 질문에 웅삼이 대답했다. 판을 크게 벌인다는 말에 라임 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판을 크게 말입니까?”
라임 왕자의 질문에 웅삼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시에라 제국이 들썩일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
순간 라임 왕자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불안했다. 되돌아간다는 흥분 따위는 싹 가라앉아 버렸다.
***
또 다른 대륙을 찾아 떠난 선단이 시에라 제국을 떠난 지 벌써 육 개월이 넘었다.
계산대로라면 지금쯤 뭔가 보이기 시작해야 했다.
그동안 몇 개의 섬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전부 무인도였다. 그때였다.
“어? 육지 같습니다!”
견시수의 외침에 갑판장이 외쳤다.
“섬인가?”
“아닙니다! 지평선이 엄청나게 긴 것이 대륙이 맞는…….”
환한 목소리로 보고를 하던 견시수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뭔가 또 다른 것이 포착된 모양이었다
“어?”
“뭔가!”
답답한 갑판장이 외치자 곧 대답이 들려왔다.
“배 같은 게 보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
“우와아아아!”
“드디어!”
배라는 말에 갑판장은 물론이고 선단의 사람들이 모두 환한 얼굴을 하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배가 있다는 것은 인근에 항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말은 흘려들었다. 그러나 견시수의 이어진 보고에 환호는 가라앉았다.
“괴, 괴물을 쫓는 배들 같습니다!”
“괴물?”
괴물이라는 마레 순간 배 위로는 긴장감이 돌았다.
“무슨 괴물인가!”
“꼭 거북이 같이 생긴 것을 쫓는 모습입니다!”
“거북이?”
거북이라는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좋아! 첫인상이 중요하지! 술법사들을 준비해! 사정거리에 닿으면 곧바로 공격한다! 그리고 미리 백기를 올려 저쪽에게 우리가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알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어느새 나와 있던 선장이 서둘러 명령을 전달했다.
“저 바다괴물을 공격해서 저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전달한다! 빨리 움직여!”
“예!”
배 위가 어수선해졌다.
가우리의 남쪽 바다를 순찰하던 선단이 뭔가를 발견했다.
“저런 배는 처음 보는 건데?”
선단을 이끄는 선단장인 춘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앙해에 있던 공로로 남부 해안 선단을 이끄는 책임자가 된 춘삼이었다.
“저쪽에 백기가 올라왔다는데요?”
춘삼에게 병사 하나가 보고를 올렸다. 춘삼도 이미 보아 알고 있었다.
“나도 봤지.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러게 말입니다. 백기를 올렸는데 꼭 우리 선두함을 공격하려는 것처럼 배를 펼치는데요?”
“그렇지? 꼭 그렇게 보이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시선은 선두함인 거북선을 향하고 있었다. 해양 몬스터의 일종인 자이언트 크랩의 껍데기를 이어붙인 모양이 마치 거북이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거북선.
그 선두함을 향해 마치 공격이라도 가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춘삼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남쪽에 웬 참신한 미친놈들이 나타난 거지?”
“거리가 됩니다!”
“여기돕니다!”
견시수의 외침들이 시에라 제국 선단 사이에서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어 의기양양한 명령이 떨어졌다.
“자! 새 친구들에게 시에라 제국의 힘을 보여 줘라!”
“와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선단! 저 괴물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라!”
그 외침과 함께 전 선단에서 술법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저 미친놈들! 진짜 쏜다!”
선두함인 거북선의 견시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외치자 안쪽은 부산스러워졌다.
“전부 충격에 대비해라! 대 마법진 발동하라!”
원래 자이언트 크랩 껍질은 마법 저항력이 높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제국과의 전쟁 이후 마법에 대한 방어력을 더 높이기 위해 마법진들을 설치했다.
내부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활성화 시키고 노를 젓던 오크들은 일제히 노를 뱃전에 붙이며 충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귀를 흔드는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콰쾅! 콰콰콰쾅!”
화염이 거북선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명중! 명중입니다!”
시에라 제국 선단의 견시수들이 환한 목소리로 명중 소식으 알렸다. 술법을 이용한 공격이기에 이런 바다에서 빗나가는 것이 더 말이 안 되었다.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화염이 가시자 환호성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어?”
“머, 멀쩡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바다괴물을 바라보았다.
“이런 개자식들! 백기를 들고 공격을 해! 전속력으로 노를 저어! 싸그리 털어버린다!”
분노에 찬 거북선 선장이 명령을 내리자 오크들이 일제히 노를 저어나가기 시작했다. 터질 듯한 오크의 근육이 노를 힘차게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