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18
183화 두 사람의 여유 그 차이
와아아아아!
함성이 울려 퍼지는 터그람 왕국 진영을 팔짱끼며 바라보던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굳이 자긍심까지 가져갈 생각은 없다네. 작가 양반.”
먼 거리였지만 그리팔 후작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나저나 터그람 왕국에서 추가 지원은 없는 모양이야.”
프라임 공작이 질문을 던지자 뒤쪽에 시립해 있던 참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오히려 병력을 더 뒤로 빼고 있습니다.”
“뭐 나쁠 것 없지. 그리팔을 여기서 잡는 게 최선이기도 하고. 후퇴하는 걸 따르며 와해시키는 그림도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리팔 후작이 아마 그것까지 여묻에 두었겠지요.”
“그렇지. 들판의 쥐는 도망을 가지 물지는 않거든. 그런데 저렇게 몰려 있으니 꽤 성가시겠어.”
프라임 공작이 입맛을 다셨다.
성안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을 보니 꽤나 사기가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지난 전투에서의 경험이 꽤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뻔했다.
태반이 징집병이던 그리팔 후작의 병력에 경험이란 것이 생겨 버렸으니 이제는 정예병으로 판단하고 상대해야 한다. 경험이라는 것이 그렇게 차이가 크다.
“준비도 잘되어 있어 보이는군.”
“그런 듯합니다. 그러나 소울아머 유저의 숫자에서 압도적이기에 함락은 시간문제입니다.”
“뭐 그렇지 이쪽은 몰려 다녀도 될 만한 숫자니까.”
프라임 공작이 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추가 병력도 도착을 했기에 병력 수도 압도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소모된 병력의 충원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터그람 왕국 니에 흩어져 있던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숫자가 나왔다.
물론 공성전이기에 이 병력이 완전 압도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러나 소울아머 유저를 포함하면 과분한 전력이 맞았다.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터그람 왕국군은 지금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를 막을 만한 방법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터그람 왕국에서 소울아머 유저가 충원되지도 않았다.
거기에 이전 전투에서 써먹은 작전은 이미 노출이 되기도 했고 그 작전을 다시 써먹는다 해도 문제는 없다.
소울아머 유저의 질과 숫자를 보면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상대는 그리팔 후작이었다.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선택할 만한 전략적 요소는 없었다.
“이번에는 그리팔 후작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하지. 그냥 정석대로 대응을 할 건지 아니면 또 뭔가 재미있는 일을 벌여 줄지 말이야.”
“변수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리팔 후작이라도 말입니다.”
“카말 왕국에서 낭패를 당하긴 했지만 얼마 전 전투에서 보여 주었듯 확실히 까다로운 이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는가? 뭐 아니면 아닌 대로 나쁠 것 없고 말이야.”
프라임 공작은 천천히 몸을 돌리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나갔다.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은 사람이었던 두 걸레들이었다.
“저, 전하!”
카말 왕국의 기사들이 그 중 하나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전하라 불리는 이는 하나뿐이었다.
바사 론 카말 왕.
기사들의 뒤를 마법사들이 뒤따랐다.
걸레의 형상을 한 사람의 숨을 이어가려면 그들의 회복 마법이 필수였다. 그 와중에 소외된 일인이 있었다. 바사 왕에 비하면 상태는 나아보였다.
“듀, 듁갔구만…….”
을지우루였다. 그런 둘을 사이로 천천히 지나치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가는 이가 있었다.
고진천이었다.
그 모습을 본 카말 왕국의 기사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저런 게 강자만이 가지는 여유인 것인가…….”
그 기사의 중얼거림을 들은 바사 왕이 정신을 차리며 투덜대었다.
“깡패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겠지…….”
결국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강도 높은 대련을 빙자한 폭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불평만 할 것은 아니기는 했다.
확실히 나아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소울아머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도 소울포스의 수발이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아직은 맨몸으로 소울아머 유저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울아머를 입었을 때 그 차이는 확연하게 났다.
다른 소울아머 유저 두 명을 상대로도 충분히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치료를 받고 일어서는 바사 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우리 인들이 왜 소울아머가 스스로를 벽으로 가두는 물건이라 평하는지 알 것 같았던 것이다. 직접 체험해 보니 더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이야 반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지만, 소울아머가 주는 이점에 눈이 멀면 그 어느 누가 이런 훈련을 하겠는가.
“확실히 쉬운 길에는 함정이 있는 법이군.”
바사 왕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 마법사 하나가 달려왔다. 얼굴을 보니 통신을 담당한 이였다. 아무리 빠르지만 시간이 좀 걸리는 서신에 비해 마법 통신은 실시간 정보의 습득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카말 왕국에서도 전선의 정보는 마법사들을 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아, 열제께서는 안 계십니까?”
“끄응. 보면 모르간? 뭔 일이야?”
우루도 치료를 받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러자 마법사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터그람에서 조만간 전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기래? 그리팔은?”
“후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서 말하라우.”
잠시 말끝을 흐렸던 마법사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지원도 없는 모양입니다.”
“미쳤구나. 카이거가 미쳤을 리는 없으니 귀족들이겠군.”
바사 왕이 혀를 내둘렀다.
그때 언제 되돌아왔는지 진천이 마법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 붙을 것 같다는가.”
“일단 양쪽 다 전투준비는 만전인 듯합니다.”
“흐음. 가 보고 싶기는 한데…….”
큰 전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렵습니다. 거기까지 가는 거라면 울절이 직접 이동 마법진을 부려야 하는데 시에라 제국 쪽의 마법진 가동 때문에 움직이기 힘드옵니다.”
“알아. 그래서 그냥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거다.”
“…….”
진천의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으며 마법사들은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마음 참 알기 쉽습네다. 말로 툭툭 튀어나오는 거이.”
그때 우루가 불퉁한 표정으로 대꾸를 하자 진천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모자라군. 다시 힘을 내 볼까?”
“자, 잠깐 기거이 무슨 말입네까?”
“그냥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거다. 참 알기 쉽지 않나? 내 마음이.”
진천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고, 바사 왕을 태운 들것은 이 여파를 피해 훈련장을 빠르게 벗어나고 있었다.
우루만 남았다.
몸을 일으켰던 우루가 털썩하니 드러누워 버렸다.
“듁갔네…….”
***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참전 소식은 시에라 제국 널리 퍼졌다.
제국의 연이은 패배를 감추기 위함도 있었고, 또 그가 참여함으로써 전쟁이 조기에 종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전쟁을 수행하다 보면 패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초반부터 거의 연달아 패배를 거듭했다. 패배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새로운 황제가 처음으로 벌이는 정복전쟁이라는 점에 있었다.
황제가 직접 칼 들고 전쟁을 수행한 것도 아니지만, 그에 대한 인선을 한 책임이 있다. 그러다 보니 패배의 책임 부분에서 새로운 황제의 탓을 하는 이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 미신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꽤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만은 완전히 감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특히 초반의 연이은 패배는 군수물자 동원에 있어 많은 차질을 주게 만들었다.
전쟁 내내 쓸 물자의 수를 계산하고, 그 소모 속도에 맞추어 생산 계획을 세우고 비축했건만 뜻밖의 변수가 연달아 튀어나왔다.
필리어리 왕국을 시작으로 카말 왕국 그리고 연전연승을 거두던 터그람 왕국에서까지 충격적인 패배를 했다. 패배를 하면 단순히 병력의 소모로만 끝나지 않는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모아 놓은 물자까지 강탈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터그람 왕국 내에서 가우리에 의해 강탈당한 물자들의 수가 상당하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제국 전역에서 전쟁 관련 물자를 생산하는 영지들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 일루이먼 왕국의 라임 왕자와 을지수호, 강구신 일행들이 휩쓸고 간 지역은 더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물자를 털렸으니 그 보충을 위해 쥐어짤 대상은 영지민들뿐이다.
그들에게 프라임 공작의 출정 따위는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신. 이거 번번이 고맙네.”
“에이 이걸 가지고 뭘. 다만 점점 사냥하기도 쉽지가 않네. 당최 시간이 나야지.”
신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는 강구신이 투덜거리며 주변을 보았다.
남루한 복장을 한 십수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아. 남루한 복장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얼굴이었다. 다들 피곤에 쩔어 있었고 볼은 홀쭉해 있었다.
“빌어먹을 전쟁이 끝나도 살 수 있을까 모르겠네.”
“후우.”
그들이 물자 생산에 동원되다 보니, 그들의 사람을 위한 생산 활동은 점점 멀어져 버리고 있었다. 물론 처음엔 강제 동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둘씩 영지민이 빌린 돈을 갚아 내지 못하자, 그 대가로 추가 노동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또 다른 악순환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식량이 무기가 되었다.
추가로 노동을 하는 영지민들에게 선심 쓰듯 식량 배급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리 돈을 갚지 못해 추가로 동원을 요구하였을 때 불만이 적었던 이유가 바로 식량배급 때문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관리들이 알아서 식량을 더 주다 보니 점점 이쪽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본업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식량이 무기가 된 것이다. 넉넉했던 식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인심 쓰듯 나누어 주던 식량은 식량 가격이 상승한다는 이유로 줄여 나갔다.
항의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인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영주를 칭송했지만 이제는 그게 함정이었다는 걸 다들 안 것이다.
배급은 줄고 식구들의 배를 주리게 하지 않으려면 잠을 줄여 가며 일해야 했다. 그러나 배급은 야금야금 줄었다. 정말 숨만 쉬고 살 수 있을 정도.
그런 와중에 징집이야기가 점점 불거져 나왔다.
얼마 전부터 인부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가 현실화된 것이었다. 이미 배급량을 조금이라도 늘려 보려고 온 식구가 일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신이란 이름의 사냥꾼은 사람들에게 꽤나 반가운 이였다.
물론 신도 영지에 살아가는 이이기 때문에 물자 생산에 동원은 되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딸린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빚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적으로 넉넉했다.
처음엔 그 남는 시간에 사냥한 것으로 주변 영지민들과 술안주를 마련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사냥해 온 식량 자체가 이들에게 구원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몇 명이 더 다가와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 이거 참.”
구신이 그걸 보며 입맛을 다셨다.
상황이 급변하는 것 때문이었다.
이러다가는 매일 사냥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몰리다 보니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져 버렸다.
그때였다.
“멈춰라!”
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구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걱정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