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22
187화 잡힐 듯 잡히지 않게
마을로 돌아간 영지민들은 각자의 가족들을 데리고 은신했다. 일이 터진 이상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구신은 영지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가 죽인 병사들과 기사에게서 탈취한 무기들로 무장을 한 채였다.
“반응이 오긴 할 건데.”
구신이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아까의 상황을 보면 분명 노리고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복귀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반응이 올 것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병사들이 각자 짝을 지어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 파악도 해 놨군.”
짝을 지어 보냈단 것은 구신과 종종 모이는 이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중 일부는 숲 쪽으로 향했다. 아마도 돌아오지 않는 인원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구신은 일단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함께 있던 영지민들은 지금쯤 이미 가족들과 몸을 피했을 것이다. 사실 구신에게 얻어먹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저들은 지금 본보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본보기의 형태를 노인을 통해 대충이라도 들은 지금 구신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려면 이곳의 인심이 중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영지민들이 희생을 하게 되면 인심을 얻는 일에 있어 복잡하게 변할 수도 있다. 물론 영주에 대한 분노가 쌓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원인을 탓하는 이들도 생길 수있다.
그리고 그걸 떠나 정이 붙은 이들이 있다.
“이 꼴 안 보려 칼을 들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구신이 서늘한 웃음을 머금으며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대체 왜 복귀가 늦는 거지? 놈들이 도주라도 했나?”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병사들을 이끌고 가는 기사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방에서의 지원은 안전한 감은 있지만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물론 영주는 든든한 지원을 함으로써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는 있다. 전쟁이란 것이 칼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시에라 제국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후방에서 군수지원을 하는 이들에게도 공을 나누어 준다. 그러나 그 휘하의 기사들은 달랐다.
영주가 내려주는 상이 전부다.
기사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던 기사의 걸음이 느려지더니 멈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의아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뭐야?”
“나리 왜 그러십니까요?”
기사가 뒤를 돌아보자 바로 뒤를 따르던 십인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사가 뒤쪽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발소리가 줄었다. 인원 확인해봐. 설마 이 정도 걸었다고 벌써 지친 건가?”
“어이쿠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사가 의아함을 느낀 것은 뒤쪽에서 울려오던 발소리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뒤에 인원들을 좀…….”
십인장이 뒤를 돌아보며 인원을 확인하려던 찰나 기사가 재빨리 롱소드를 뽑으며 외쳤다.
“모두 무기를 뽑아!”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각자의 무기를 고쳐 잡았다. 다만 적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사방을 경계하는 형태로 섰다.
“이, 인원이 이게 다야?”
뒤쪽에 있던 병사가 놀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들려왔다.
“젠장.”
기사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방금 전 그가 경고를 보낸 이유는 다름 아닌 바람 방향이 바뀌며 풍겨 온 비릿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리 진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피 냄새였던 것이다.
그런데 뒤쪽에서 마침 인원이 줄었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기사는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찾으러 온 인원들에게도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챘다.
“어떤 놈들이지…….”
기사는 긴장한 얼룰로 천천히 병사들을 헤치고 뒤쪽으로 갔다. 중앙쯤 갔을 때 기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경계상태로 이동한다.”
“예.”
병사들이 기사에게 대답을 하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높아진 긴장감에 다들 침을 꿀떡꿀떡 삼켰다.
기사 역시 긴장을 풀지 못했다.
대충 봐도 끌고 온 인원 중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서른을 끌고 왔는데 지금 움직이는 인원은 스물 남짓이었다. 열 명에 가까운 인원이 소리 없이 죽은 것이다.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이들이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이는 단순한 기습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거기에 기습을 한 이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나씩 나무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병사들이 발견되었다. 일부는 목이 돌아가고 일부는 목줄기가 베어졌다. 일정 간격으로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뭔가가 날아들었다.
퍼퍽! 퍽!
“끄륵!”
“꺼억!”
병사 둘이 거의 동시에 목줄기와 가슴을 움켜잡으며 나자빠졌다.
“뭐, 뭐야!”
쉬식!
하지만 대답 대신 그들을 반긴 것은 화살이었다.
“적은 소수다!”
기사가 외치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내달렸다. 또다시 두 명이 쓰러졌지만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로 보아 활을 가진 이는 소수였다.
그때 선두로 나아갔던 기사가 황급히 몸을 뒤틀었다.
카랑!
“크윽!”
갑주 한쪽에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그의 뒤쪽에 있던 병사들은 갑주가 상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푸우욱!
“끄아아아!”
복부에 창이 박힌 병사가 찢어지는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날아갔다.
“네놈!”
자칫 잘못했으면 창에 가슴이 뚫릴 뻔했다.
창이 스쳐간 갑주가 벌어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예상이었다.
기사는 창을 집어던진 이를 발견하고는 이를 갈았다.
“저놈이 신입니다!”
“사냥꾼입니다!”
몇몇 병사가 창을 집어던진 구신을 알아보았는지 저마다 떠들어 대었다. 그걸 본 구신이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쫓아!”
“개자식! 죽여 버려!”
기사의 명령에 병사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살기 어린 병사들의 추적을 보며 구신은 천천히 영지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적당히 그들이 쫓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며 말이다. 그 뒤를 쫓는 기사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냥 사냥꾼이 아니라 마수 사냥꾼이었나?”
먼저 병사들을 해한 활솜씨야 사냥꾼이니까 뛰어나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던진 창의 위력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기사조차 놀라게 만들 정도의 투창 실력은 커다란 마수를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것도 은밀할 때나 통하는 일이다.
이미 노출된 이상 그냥 사냥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잡아!”
동료를 죽인 이를 쫓아 달리는 병사들의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했다.
영지로 접어든 구신이 열심히 발을 놀렸다.
그때 병사 몇이 투덜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불순분자라 정한 이들을 잡으러 나왔던 이들 중 일부였다.
“뭐야?”
“어, 저거 신이라는 놈 아니야?”
“맞아! 저놈 잡는 건데!”
병사들은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허탕을 쳤는데 구신이 딱하고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멈춰라!”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내밀며 가로막는 순간 달리던 구신이 그대로 활을 들어 화살을 날렸다.
“커억!”
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화살에 어깻죽지를 뚫린 병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어이쿠!”
반항할 줄은 몰랐던 병사들은 일제히 은폐물을 찾아 몸을 날렸다. 방패라도 가지고 왔으면 좋은데 아무도 들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옆구리에 화살을 박고 뒹굴던 병사의 곁을 지나던 구신이 가지고 있던 롱소드로 그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피가 뿌려졌다.
“저, 저 새끼!”
당황한 마음에 몸을 피했던 병사들이 동료의 죽음에 욕설을 뱉으며 구신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목에 걸고 있던 피리를 불었다.
삐이이이이!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골목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 많은 발걸음들이 울려왔다. 숲에서부터 추격해온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놈을 잡아야 한다!”
그들을 본 병사들도 그 추격에 합류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놈을 잡아! 멀리 못 갔을 거다!”
병사들이 골목에서 짝을 지어 흉흉한 기세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끄악!”
“이런 빌어먹을 또!”
비명이 터진 쪽으로 달려 가 보니 병사 하나가 허벅지에 화살을 박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병사 하나가 그 상처를 돌보고 있다가 이쪽으로 달려온 이들을 보고 외쳤다.
“저쪽으로 갔다!”
“누가 쫓고 있어?”
“베빈 십인장님이 티모와 반스를 데리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십인장님!”
“비, 빌어먹을 함정이야!”
또다시 비명이었다. 달려가 보니 십인장은 머리가 깨져 죽어 있었고 주변으로 큼직한 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일부는 발에서 피를 흘리며 껑충이고 있었다.
“조심해! 놈이 도주하면서 함정을 깔았다!”
“빌어먹을 사냥꾼 새끼!”
점점 그를 추적하는 병사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영지의 총관이 인상을 찌푸린 채 나와 물었다.
“무슨 소란인가?”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나와 있는 모습에 던진 질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그 신이라는 놈과 일당들을 포획하는데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영지의 밀집지역에 놈이 도망 다니며 함정을 파는 바람에…….”
“그 한 놈을 못 잡아서 이 난리인가?”
총관의 언성이 높아지자 기사들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때 한쪽에서 영지의 기사단장이 걸어 나오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순한 사냥꾼이 아닌 드하오. 마수사냥꾼일지도 모르오.”
“마수 사냥꾼? 그런 놈이 왜 이런 곳에…… 아! 그 새로 생긴 마물 때문에 정착한 건가?”
기사단장의 말에 총관이 납득한 듯 중얼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마수 사냥꾼이 대단하다지만 소란이 너무 큰 것 아니오?”
“문제는 놈이 숨어 다니며 화살과 함정을 써먹는 거요. 물론 잡는 건 시간문제지만, 생각보다 놈의 실력이 좋은 것 같소이다.”
“허, 그런…….”
기사단장의 후한 평가에 총관이 혀를 찼다. 그러다 다시 기사단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좀 인원을 동원하더라도 빨리 처리해야 잡음이 적을 것이오.”
“으음.”
기사단장의 말에 총관은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
“알겠소. 난 어서 들어가서 영주님께 보고를 올리겠소.”
“……그러시오.”
총관의 말에 기사단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 보고해도 될 것을 미리 하려는 총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사냥꾼 하나와 영지민 몇을 잡지 못해 이 사단을 만든 것은 기사단장의 수하들 때문이었으니 할 말은 없었다.
기사단장이 병사들과 기사들을 이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총관이 혀를 찼다.
“그깟 사냥꾼 하나를 못 잡아서……. 저러니 우리 영주님이 어떻게 전장을 지원하겠어. 여하간 지원군 꾸리는 건 다시 건의를 해 봐야겠군.”
이번에 추가 징집에 대해 명령문이 내려왔는데 그에 직접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하려고 마음을 먹은 영주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며 생각을 정리한 총관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