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26
191화 전쟁에 나서는 이들의 목적
시체를 밟고 달려 나가는 시에라 제국 병사들의 눈에는 독기가 차올랐다. 처음 가득했던 두려움을 덮은 것은 달려야 한다는 희망이었다.
그 뒤를 이은 감정은 독기다.
나를 죽이려 하는 대상에 대한 독기.
독기가 차오르자 이젠 그 자리를 흥분감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성벽위로 사다리가 올려지자 병사들이 사다리에 매달렸다.
한 명이라도 더 매달려야 밀어내기 어렵다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다리를 오르는 병사들 일부의 손에는 밧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 밧줄은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성벽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건 바로 갈고리가 달린 줄을 던져서 걸친 것이다. 그걸 당기며 사다리를 두 발로 오르고 있었다.
이건 익숙한 병사들이 하는 임무다.
이걸 당겨 주면 사다리를 밀어도 잘 밀리질 않는다. 밧줄로 사다리를 고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터르감 왕국 병사들은 그 밧줄을 그냥 두지 않았다.
도끼를 든 병사들이 철사를 섞어 꼰 밧줄을 도끼로 내려쳐 끊어내고 있었다.
이내 팽팽하게 당겨지던 밧줄이 끊어지면 사다리에서 줄을 당기던 병사가 욕설을 뱉으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성벽위에서 도끼질을 하는 병사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아래에서 쏘아올린 화살에 가슴을 움켜쥐고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성벽 아래와 위는 아비규환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후끈한 열기가 성벽위에서 대거 전달되어 왔다. 술법사들의 공격이었다. 성벽을 오르는 병사들은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공격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는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따라 붙기 시작한 아군들이었다. 일단 자신은 아니니 오르는데 집중하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신병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입을 떡 벌렸다.
“뭐, 뭐가 저렇게 많아?”
그 말에 몇몇 병사들이 시선을 올렸다가 다들 입을 떡 벌렸다. 올라간다 해도 뒤따르는 이들이 충분해야 그들이 산다. 그렇지 않으면 개죽음이다.
그럳네 지금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는 터그람 왕국의 술법은 입을 떡 벌리게 만들 정도였다.
“대응해! 어서 대응하라고!”
시에라 제국의 술법전단을 통솔하는 지휘관이 이를 악물고 외치고 있었다.
분명 술법사들의 수는 시에라 제국이 많았다.
그렇기에 터그람 왕국은 어설픈 공성병기로 돌무더기를 하늘로 뿌려 대며 막았다. 물론 효과는 좋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터그람 왕국 측에서 날려 보낸 파이어 버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이다.
얼추 보아도 적들이 여태 쏘아 보냈던 것의 두 배는 되었다. 시에라 제국에서 쏘아내는 술법의 수가 많다고 하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터그람 왕국은 압도적인 수의 술법을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화아악!
불길이 사방에서 오르며 터그람 왕국의 숣버사들이 쏘아 보낸 파이어 버드를 요격하기 위해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 숫자는 턱도 없을 정도로 모자랐다.
“이런 빌어먹을!”
지휘관이 이를 악물었다.
하늘이 불길로 뒤덮었다. 마치 지옥에 하늘이 있다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일부 술법사들이 요격을 포기하고 방어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벽 위에서 돌무더기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조금 아까까지 방어를 위해 뿌려 대었던 것이다.
그걸 본 술법사단 측의 지휘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병사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술법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왜 저런 공격을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때 술법사들 중 하나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
“가짜다!”
퍼억!
“커억!”
시에라 제국의 병사 하나가 터그람 왕국에서 쏘아 보낸 파이어 버드를 그대로 얻어맞았다. 그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그들의 귀로 비명이 들려왔다.
“아악! 뜨거워! 나 좀 살려 줘!”
고통에 찬 비명소리에 최후를 예감하며 눈을 감았던 병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파이어 버드가 날아와 폭발하면 그 주변의 서너 명은 죽거나 다치게 된다.
일단 터지고 난 다음이라면야 그냥 불꽃에 불과하다. 하지만 터지는 순간은 그 화력이 무시무시하다. 당연히 맞은 이의 몸뚱이 따위는 흔적도 찾기 힘들다.
그런데 비명이 나오고 폭발하는 기운도 없었다.
“뭐지?”
눈을 뜬 병사가 비명을 지른 동료를 보았다.
몸통에 불이 붙은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파이어 버드가 뒹굴고 있었다.
정확히는 새 모양의 날개를 단 것이 불이 붙은 채 점차 재로 변하고 있었다.
“가짜?”
가짜였다. 그리고 그걸 알고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내는 순간 병사의 머리통이 한쪽으로 확 꺾였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말이다.
뻐억!
“아악!”
“악!”
“막아!”
안도하는 병사들을 덮친 것은 성벽 위에서 떨어져 내린 주먹만한 돌멩이들이었다.
“쯧. 침착하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을.”
프라임 공작이 혀를 찼다. 물론 거기까지였다.
처음 터그람 왕국이 쏘아낸 파이어 버드의 숫자를 보고 그도 놀랐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숫자의 파이어 버드는 두 부류로 바뀌었다.
계속 날아서 쏘아져 오는 것과 중간에서 급격하게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는 것들로 말이다.
앞에 것들이 진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그 때문에 술법사들이 막다가 지래 겁먹고 방패술을 펼쳤다.
그 사이 터그람 왕국에서 방어용으로 쓰던 돌멩이들이 병사들을 타격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피해가 좀 있었지만 이내 지휘관들의 명령에 병사들이 방패를 머리 위로 올리고 다시 맹렬하게 달렸다. 그 모습을 본 프라임 공작이 혀를 내둘렀다.
“저거 또 당하겠군.”
아니나 다를까.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힘없이 불타며 떨어져 내리는 가짜 파이어 버드 중 일부가 폭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진짜 파이어 버드였던 것이다.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가짜로 판명한 순간 무시했던 것이 이런 결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리고 이걸 예상했다는 듯 진짜 파이어 버드 술법들이 무시하고 뭉쳐서 달리던 병사들을 홀랑 태워 버리고 있었다.
그것을 신호로 사방으로 폭발음이 울려왔다.
“이, 이런!”
참모진의 얼굴이 흙색으로 변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법이었지만 막상 당하니 어이가 없다 못해 참혹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성벽에 올랐던 병사들이 줄줄이 밀려 떨어지고 있었다. 후속 병력이 끊어지니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이건 전장 장악력이 우리보다 나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야.”
프라임 공작이 씁쓰레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중얼거렸다. 참모들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쪽은 여기 저기 흩어진 병력을 최대한 빨리 추슬러서 하나로 뭉친 것이고 터그람 왕국 쪽은 이미 한 번의 큰 전투를 승리로 이끈 병력이 중심이었다.
당연히 이전 전투보다 더 매끄러워졌으면 몰라도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사기도 높고 이끄는 이가 그리팔 파샤 후작이었다.
그들이 봐도 군단은 이렇게 이끄는 것이라는 걸 보여 주듯 물 흐르는 것처럼 병력을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다 보니 프라임 공작의 말이 더 잘 이해가 갔다.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자잘한 작전들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함보다는 시에라 제국군과 터그람 왕국군의 가장 큰 차이점을 제대로 공략한 것이라 봐야 했다.
결국 자잘한 수에 빈틈을 보인 시에라 제국군은 초전부터 제법 피해를 입고 시작한 것이다.
딱 봐도 시에라 제국군의 예봉이 무뎌진 것이 보일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의미 없는 소모전이 이어질 수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참모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직 큰 피해가 없으니 일단 병력을 물리심이 어떻사옵니까. 이제는 같은 수법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힘으로 밀린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 의견에 다른 참모들도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병력을 물리고 터그람 왕국이 이길 자신이 없어서 저열한 꼼수를 썼다고 선전을 하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하긴 그게 깔끔하긴 하겠지.”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참모들의 안색이 조금은 펴졌다.
“그럼 지금이라도…….”
말을 하려던 참모의 말을 프라임 공작이 다시 끊었다.
“그걸 그리팔 후작도 예상하고 있겠지?”
“그…….”
되묻듯 돌아온 프라임 공작의 말에 참모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니라고는 말 못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첫 전투는 그리팔 후작의 의도대로 된 것이라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프라임 공작이 피식 웃으며 참모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다들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작은 덩어리를 하나로 뭉치니 말들이 잘 안 통하긴 해. 그런데 말이야. 그 작은 덩어리 자체의 장악력은 터그람 왕국에 비해 모자라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어떤가. 안 그런가?”
“그건 그렇습니다.”
“예! 맞습니다.”
항변이라도 하듯 참모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그걸 지금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군.”
이쯤 되자 참모들은 프라임 공작이 어떤 명령을 내릴지 궁금해졌다. 그냥 꺼낸 말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팔 후작이 전략가라면, 프라임 공작은 바로 승부사였다. 프라임 공작 역시 가진바 무력에 가려진 부분이 적지 않았다.
“각 병력을 이끄는 우두머리들에게 알려. 이제부터 통제는 각자 한다.”
“예?”
“전체 상황에 맞춰 병력을 움직이라 하도록 하라. 그에 대한 대응을 보고 공을 가린다고.”
프라임 공작의 말에 참모들이 살짝 놀랐다.
이건 각자 알아서 적을 공략한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보다 더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라임 공작은 그런 위험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제대로 된 공을 세우면 내 이름을 걸고 작위상승을 시켜 주지. 알겠나?”
“자, 작위를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자식들 중 기본적인 자질만 있어도 내가 거두어 주고 말이야.”
이건 파격이었다.
작위 상스은 황제의 권한이기도 하지만 프라임 공작에게도 그 권한은 어느 정도 있다. 거기에 이번 전투의 총 사령관이다.
당연히 약속대로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보다도 더 큰 포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프라임 공작이 거두어 준다는 말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자질이라는 기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기본적인 수준만이라도 되면 받아 준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컸다.
노블기사단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프라임 공작이 거둔 인재라면 중앙 정계에 제대로 된 끈을 만들 수 있었다.
큰 기회의 장이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실제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프라임 공작이 거둔 이들 중에서 중앙정계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이들은 없었다.
그야말로 신분의 수직상승 기회다.
그런데 지금 이 원정에 나선 이들은 그런 기회에 목이 마른 이들이었다.
전쟁을 통해 기회를 잡으려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목표를 설정해 주니 이걸 전해들은 이들의 심정이 어떨지 예상이 갔다.
사방으로 술법사들의 서신이 각 부대의 지휘부로 힘차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