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37
202화 바람처럼
습격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묵갑귀마대 대원들은 적들을 응시했다. 적들의 구성은 의외로 단촐했다.
기사 이십여 명에 병사 이백여 명.
그 외에 술사들이 보였지만 술사들은 꽤 피해를 입었는지 서너 명만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마도 마법사들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듯했다.
문제는 정면에 있는 소울아머 유저들이었다.
소울아머 유저 총 세 명.
그중에서도 가운데에서 단창을 날렸던 노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보고서로만 접하다 직접 보니 갑주의 형태가 특이하군. 그래도 꽤 실용적으로 보여. 움직이기에도 좋아 보이고 방어에도 용이한 것 같군.”
“…….”
노인의 말에 묵갑귀마대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원의 숫자는 열 명. 열다섯 명의 대원 중 일부는 마법진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었다.
“이런 어른이 질문하면 대답을 해야지.”
“그러면 나이부터 까던지.”
그때 묵굽귀마대원들의 뒤쪽에서 까칠한 음성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마찬가지로 중년은 넘어 노인이라고 해도 될 법한 나이의 사내였다.
“그대가 이들의 수장인가?”
“딱 보면 알지 않아? 난 딱 봐도 영감이 그쪽 애들 몰고 온 것처럼 보이는구먼.”
“푸하하!”
프라임 공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영감이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젠가 싶었다. 아니 감히 그에게 영감 운운하는 이들은 없었다.
“웃긴.”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비아냥에 가까웠다.
“곧 내 나이 칠십이니 하대를 해도 되지 않겠나?”
프라임 공작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붙였다. 인종이 달라 조금 모호하지만 그보다는 어리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상대방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노무 새퀴. 일단 칠십 넘으면 엉기거라.”
순간 프라임 공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영감에 이어 어린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대 이름은?”
“이 어르신의 존함은 목연타 님이시니라.”
목연타라 스스로를 밝힌 이를 프라임 공작이 말없이 살폈다. 꾸부정한 자세였지만 언제든 무기를 뽑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력자였다.
“대단하구먼.”
“대단하지. 이 나이 먹도록 전장을 싸돌아다니면서도 숨 붙어 있는 거 보면.”
프라임 공작의 말끝마냥 비아냥에 가까운 어투였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기질이 그러한 듯 했다.
“쯧. 그놈의 주둥이부터 어떻게 해야겠구나.”
“어린놈이 어른에게 말하는 본새가 아주 더럽구나. 싸가지가 없어.”
“생각해 보니 나이 물어가며 칼부림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까. 그리고 지위는 내가 더 높지 않을까 싶은데?”
“지위로 칼질하나?”
나이 물어가며 칼부림하는 것이 웃긴 일이라 말하자마자 반박을 받으니 딱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도 그렇군.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안 했군.”
“…….”
이번만큼은 조용했다. 프라임 공작의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프라임 론 아가드라 하지.”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프라임 공작이 상대를 살폈다.
동요는 없었다. 최소한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허허.”
너털웃음을 흘렸다.
목연타는 프라임 공작의 정체를 듣고 있다가 묵묵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안 그래도 궁금했지.”
목연타가 환두대도를 뽑아들자 다른 묵갑귀마대원들도 각자 무기를 뽑아들었다.
뒤쪽에 있던 묵갑귀마대 대원이 마법전단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막는 사이 몸을 빼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받은 마법사들은 미안한 마음을 감추느라 애썼다.
상대방의 이름을 들은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들이 소울아머 유저들을 상대로 승기를 여러 번 잡았다 하지만 상대는 이쪽 대륙의 최강자다.
다른 소울아머 유저의 실력으로 자신의 대륙과 비교를 해 보았지만 최강자라 불리는 이라면 적어도 이전 대륙의 십 인에 비해 아래가 절대 아니라는 것쯤은 예측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연타를 보며 작은 희망을 가져봤다.
지금 그들을 호위하는 묵갑귀마대원들은 신규대원에 가까웠다. 물론 기존 기사들의 실력에 비하면 월등한 실력자들만 모은 이들이기는 했다.
아니 묵갑귀마대라는 이름을 쓰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 많은 산들을 넘나들은 전사들만이 묵갑귀마대라 불릴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은 옛날 처음 가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고진천과 함께 왔던 묵갑귀마대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괴물 중 하나가 연타였다. 그에게 희망을 걸어 보았다. 비록 상대가 최강이라 불리는 이라지만 그래도 진짜배기 묵갑귀마대라면 선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때 연타가 중얼거렸다.
“내 대륙 최강 어쩌고 하는 어린놈을 때려 패는 걸 다른 놈들이 봐야 하는데.”
아쉽다는 말투였지만 마법사들은 달리 알아들었다.
‘남겨라. 이 싸움.”
연타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 어린놈 실력 좀 보자꾸나.”
연타가 다가오자 반응한 것은 프라임 공작이 아니라 그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왔던 노블기사단의 소울아머 유저였다.
“늙은이가 객기를 부리는 구나!”
순간 그의 온몸에서 짙은 푸른색의 소울포스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다른 소울아머 유저와는 차원이 다른 짙은 푸름이 뿜어지고 있었다.
프라임 공작에게 다가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표현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드만…….”
알 수 없는 비유를 하며 걸음을 빨리하던 연타가 뛰기 시작했다.
그를 맞이해 소울아머 유저도 기세를 올리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날카롭게 소울포스를 담은 롱소드를 휘둘러 갔다. 날카롭고 잘 정제된 일격이었다.
객기 운운한 것과는 달리 상대를 경시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역시 노블기사단에서 수위권에 드는 이였다. 상대방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안목은 있었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프라임 공작이 말을 섞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라는 의미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방심은 없었다.
콰콰콰!
소울포스를 담은 롱소드가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귀청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목연타는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다.
“쳇!”
갑자기 빨라진 속도로 인하여 롱소드 간격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당황할 노블기사단이 아니었다. 그대로 발을 한쪽으로 빼며 롱소드를 잡아당겼다.
간격 안으로 들어온 연타의 몸통을 베어 내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연타는 그보다 빨리 손을 뻗어 왔다.
“이…….”
손목이었다. 연타의 손이 소울아머 유저의 손목을 훑었다. 순간 롱소드를 틀어 그 손목을 베어 내려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견제는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손목을 훑는 것과 동시에 연타의 몸이 빙그르르 반 바퀴 돌았다.
마치 눈앞에서 뭔가가 말려들어 온다 싶더니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허?”
마치 바람에 떠밀려 날아가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큰 충격이라도 느껴졌으면 당했다 싶었을 것인데 그대로 몸이 붕 떠 버린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연타의 뒤쪽에서 달려오던 묵갑귀마대원들이었다.
그의 귓가로 연타의 음성이 멀어지며 들려왔다.
“애들은 애들끼리 놀거라!”
“하핫!”
프라임 공작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깔끔했다.
상대의 힘을 그대로 방향만 틀어 던져 버린 것이다. 이런 수법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다.
아니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온몸을 이용해 활용하는 것은 그도 처음 보는 형태였던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즐거움이 그의 입가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꽤 매섭게 다가왔다. 두 번째로 달려든 소울아머 유저 역시 마치 허공에 칼질하듯 휘청이며 뒤로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마치 바람을 상대로 칼질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 바람 같군. 어디 그 실력 좀 볼까?”
프라임 공작이 그대로 다가가며 자신의 롱소드를 휘둘렀다. 앞서 소울아머 유저와 같이 요란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람을 타듯 흘러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바람처럼 다가온 연타의 환두대도와 부딪히는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람과 바람이 만나 회오리바람이 만들어졌다.
무기와 무기가 만나 천둥이 울려 퍼졌다.
콰르릉!
두 사람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동심원을 그리며 휘몰아쳐 나갔다. 그 기세에 밀려 프라임 공작 뒤쪽에 있던 기사들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병사들은 울려 퍼진 굉음이 몸을 움찔하며 떨었다.
프라임 공작이 연타를 바라보았다. 마치 솜털처럼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이거, 이거 재미있구나.”
프라임 공작이 활짝 웃었다.
연타는 바닥으로 내려서며 입맛을 다셨다.
충격을 해소한다 했지만 손아귀로 울려 오는 충격이 적지는 않았다.
“이거 참. 그래도 한 칼 한다 이거구먼.”
손목을 한 바퀴 돌려 충격을 해소했다.
만족한 듯 웃고 있는 프라임 공작의 모습이 연타의 눈에 들어왔다.
“쯧. 헤프기는.”
저 웃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유롭다는 표현 같았기 때문이었다. 연타의 몸이 다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흐느적이는 듯하다가 그의 몸이 마치 여러 개라도 되듯 뿌옇게 분열되어 나갔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칼바람이 몰아쳐 나갔다.
프라임 공작을 향해서 말이다.
카라라랑!
연신 불똥이 튀었다.
연타가 프라임 공작을 주변에 두고 빙그르르 돌며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이리저리 도는 듯 몸은 움직였지만 그의 공격은 환두대도 마냥 곧고 간결했다.
두 무리가 격돌하면서 가우리의 마법사들이 몸을 빼내었다. 그 뒤를 몇 남은 술법사와 기사들이 쫓으려 했지만 남은 묵갑귀마대원들이 저지했다.
그 덕에 안전히 몸을 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다시 몸을 은신하며 멀찍이 떨어져서 전투장면을 담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저, 저게 뭐야?”
전투 장면을 담던 마법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은 두 명인데 팔다리는 수십 개는 되는 것 같았다. 보통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침을 꿀꺽 삼킨 그는 차분히 영상을 담았다.
연타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미친!”
마법사들을 추격하다 발목을 잡힌 기사들은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많은 숫자에 발목을 잡힌 것도 아니었다.
단 두 명이었다.
소울아머 유저 두 명에 각기 세 명씩 들러붙어 있었고 뒤에 남은 이들이 둘이었다. 그런데 그 둘이 기사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스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밀어붙이듯 공격해 왔다.
“크악!”
아니나 다를까 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료 기사 하나가 옆구리를 움켜쥐며 뒤로 빠졌다. 병사들 중 일부가 용맹하게 달려들었지만, 거치적거리는 시체로 변했을 뿐이다.
“뭐 이런 놈들이 있지?”
왠지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울아머 유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놀랐다.
단 세 명이서 소울아머 유저를 상대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버티는 정도였지만 저것만으로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