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41
206화 이제 쉬거라
결과는 너무 허무하게 나 버렸다.
소울아머 하나를 활성화시켜쓸 뿐인데 팽팽했던 긴장감의 끈이 끊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결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프라임 공작 입장에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소울아머를 활성화시키지 않고 상대하려던 그의 생각이 빗나가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기는 것은 시간 문제였기에 씁쓸했던 마음을 털어 내었다.
엎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연타에게 다가간 프라임 공작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엎어져 있으니 얼굴을 보지 못하겠군. 그래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
프라임 공작의 말은 비아냥이 섞인 내용이었지만 실제 어투는 그냥 편하게 던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치료사가 환자에게 용태를 묻는 것과 비슷했다.
엎어져서 꿈틀대던 연타가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프라임 공작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싸우는 동안 별로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꽤나 화가 나기는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약간의 분풀이를 한 것이고 말이다.
엎어져 부르르 떨던 여타가 고개를 살짝 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묻지 마라. 쪽팔리다.”
“뭐?”
“젠장 팔이라도 하나 잘라 갔어야 했는데. 아우…….”
“허…….”
분해서 부르르 떤 줄로 알았다.
수하들의 죽음으로도 그리고 자신의 무력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적 앞에 분함을 느끼는 중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말투 어디에도 그런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아쉬움. 창피함. 그런 감정이 담겨 있었다.
“머리를 쪼개 볼 걸 그랬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궁금했던 프라임 공작의 말투에 연타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네놈이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내 대가릴 쪼갰으면 허여멀건 한 묵 같은 거밖에 안 나온다.”
“한 마디도 안 지는구나.”
“실력 딸리는 것도 쪽팔린데 대거리라도 안 져야지. 푸흐흐흐.”
연타의 너스레에 프라임 공작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구구, 이빨이 나갔네.”
갑자기 연타가 다시 고개를 돌려 끙끙거리다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거북이가 몸을 뒤집으려 버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끙차!”
몸을 뒤집으려던 것이 맞았는지 연타가 몸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퉤에이!”
몸을 뒤집는 것과 동시에 연타가 뭔가를 뱉어내었다. 거의 동시에 프라임 공작이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터억!
날카로운 충격이 손바닥 안으로 느껴졌다.
“쳇. 안 통하는구먼.”
“흐음.”
프라임 공작이 눈앞으로 가져갔던 손바닥을 펴 보니 부러진 이빨이 잡혀 있었다.
이 순간에도 틈을 노렸던 것이다.
물론 상대가 프라임 공작이었기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만약 실력이 모자란 이였거나 방심을 하고 있었다면 눈알 하나쯤은 뚫고도 남을 힘이 실려 있었다.
“쯧.”
혀를 찬 프라임 공작이 술법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숨은 붙여 놔라. 세뇌를 하든 해부를 하든 해 볼 게 많은 듯하니 말이다.”
프라임 공작의 말에 연타가 피식 웃었다.
“내 숨을 무슨 수로 붙여 줄라는지 궁금하구나.”
연타의 중얼거림에 프라임 공작은 더는 대꾸를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수습들 하고 오도록 해라. 뭔가 남은 거라도 있으면 거두어 오고. 그리고 방금 봤겠지만, 몸뚱이만 남았어도 뭔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니 조심해서 다루거라.”
그 말을 남기고 프라임 공작은 말을 몰아 자리를 벗어났다.
프라임 공작이 사라지고 현장에 뒤늦게 도착했던 소울아머 유저들과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네놈들은 거기서 뭣 하느냐!”
한 기사의 호통에 한쪽에 망부석처럼 서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하얗게 질린 것이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 것이 분명했다.
“저, 저…….”
그때 한 병사가 떨리는 손길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병사들을 막고 서 있는 묵갑귀마대원이 있었다.
“내 참.”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기사는 이것 때문인가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가서는 멈추어 섰다.
“제, 젠장!”
앞으로 다가갔던 기사가 자신도 모르게 도로 한걸음 물러섰다.
분명 서서 죽은 것에 불과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시체였다. 그러나 다가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 주변에 다가가는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 해!”
“죄, 죄송합니다.”
그때 뒤쪽에서 다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자신이 뒤로 물러서면서 무기도 반쯤 뽑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무슨 시체가…….”
죽은 이에게서 여전히 감돌고 있는 살기에 놀랐던 기사가 다시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찬찬히 살폈다.
부릅뜬 두 눈.
실핏줄이 다 터져 마치 안구가 원래 시뻘건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앙다문 입술을 당장이라도 포효를 내지를 듯 생동감이 있었다.
양 눈썹의 끝은 하늘로 치솟아 있어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살벌하긴 하네.”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기사가 서서 죽은 묵갑귀마대원이 지팡이마냥 짚고 있는 환두대도를 빼내려 했다.
“이, 이거 왜 이렇게…….”
풀리지가 않았다.
마치 아교로 단단히 붙여 넣기라도 한 듯 손가락 하나 펴지지 않고 있었다.
“뭐 해!”
“치, 치우겠습니다.”
뒤쪽에서 재차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기사는 서둘러 칼을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팔목을 잘라내야 칼을 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뒤에서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 시에라 제국에서는 밥도 안 먹이느냐? 고작 손가락 하나 피지 못해 칼까지 뽑아 들고서는…….”
연타였다.
연타의 이죽거림에 칼을 뽑아들었던 기사가 얼굴이 벌게진 채 욕을 내뱉었다.
“닥쳐 이 미친 늙은이야!”
“꼬맹아. 이제 할 만큼 했느니라.”
“뭐 이 늙은이가…….”
연타의 중얼거림에 다시 발끈했던 기사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시선이 기사가 아닌 서서 죽어 있는 묵갑귀마대원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좀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
차분하고 따듯하게까지 느껴지는 음성.
“어?”
기사가 다시 놀랐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살기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풀썩!
여태 서 있던 묵갑귀마대원의 시체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아, 놀래라…….”
서 있던 묵갑귀마대원의 시체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양손으로 쥐고 있던 환두대도는 그대로 땅에 박혀 있었지만 묵갑귀마대원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마치 연타의 말에 시체가 듣고 움직인 것처럼.
그때 다시 연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못나 네놈들을 제대로 못 이끌었다. 저 세상에서 날 탓해라.”
“늙은이가 미쳤나.”
연타의 주변에서 그의 팔다리를 수습하던 시에라 제국의 기사들이 혀를 차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묵갑귀마대원의 시체를 천천히 바닥으로 누이던 기사는 또다시 눈이 휘둥그렇게 떴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인 묵갑귀마대원은 눈을 감고 웃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이가 고작 몇 마디에 미소를 지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에이, 씨.”
울상을 지은 기사가 시체를 수습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그 행동이 공손했고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수습하고 있을 때였다.
“주변으로 수색을 나간 인원들이 왜 안 오지?”
이미 빠져나갔겠지만 혹시나 싶어 주변 정찰을 보낸 인원들이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낄 때 즈음 한쪽 수풀이 있는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다들 일제히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이곳에서만 소울아머 유저가 둘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프라임 공작에게 패하긴 했지만 사지가 잘린 노인의 무위는 그들로 하여금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클클클클클!”
그때 한쪽 수레에 실리고 있던 연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닥쳐!”
“이거 참 어쩌누. 저승사자들이 떼거지로 몰려왔구먼.”
그 순간 수풀을 헤치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히, 히익! 괴, 괴물들이다아아!”
온몸이 피투성이지만 걸치고 있는 것을 보니 기사인 것이 분명했다.
“데임?”
동료 중 하나가 그를 알아보았다.
“악마 같은 노인드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열린 입으로 화살촉이 튀어나왔다.
“커억!”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채 데임이라 불린 기사가 앞으로 날듯이 튕겨 나자빠졌다. 동시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어 다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적은 약 삼십.”
“공작 각하께 알릴까요?”
혹시나 싶어 기사 하나가 다가와 조심히 물었다.
“우리만으로 모자랄까 봐?”
소울아머 유저 하나가 기분이 상한 듯 입을 열었다. 이곳에 와 있는 소울아머 유저만 일곱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질문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못했다. 그러나 전쟁 전후로 소울아머 유저들의 전사가 잦아지다 보니 이런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소울아머 유저의 위상이 낮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때 소울아머 유저들의 몸에서 소울포스가 뿜어져 나왔다.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것과는 달리 대비는 철저히 하는 모습이었다.
수풀이 걷히고 상대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노인들?”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상대를 보던 기사들 중 하나가 약간 긴장 풀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경시하지 마라.”
기사들과 달리 소울아머 유저들은 잔뜩 경계하는 모습으로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아까 프라임 공작과 싸우던 이도 중늙은이였다. 물론 그런 이들이 이렇게 떼로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긴장은 해야 했다.
“늙은이들이 단체로 죽을 날을 받으러 왔구나.”
소울아머 유저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노인들은 마치 그들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꼬라지 봐라. 쯧, 그러니 진즉에 때려 치고 우리들처럼 놀자니까. 늙어서 이게 뭐냐.”
그중 노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연타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 내 꼴이 좀 사납소.”
“그래 보인다.”
“프라임인지 뭔지 하는 놈 어딨냐?”
“이런 놈들에게 당했을 리는 없고.”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 목소리에 소울아머 유저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입들이 가볍구나.”
소울아머 유저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때 노인 하나가 슬쩍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네 따위 놈들 앞에 두고 무게 잡으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차가운 불길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 이 노인들의 눈동자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