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43
208화 장 노인의 산책
순식간에 장내는 난전으로 변해 버렸다. 인원수만 따지면 새로 나타난 노인들을 둘러싸고도 남았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노인들이 단체로 난입하자마자 시에라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나자빠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양떼에 난입한 늑대무리처럼 말이다.
소울아머 유저들이라도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그들 역시 여의치 않았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공략을 하는데 도무지 몸을 빼낼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술법사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날아온 화살에 전부 죽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소울아머 유저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지원을 요청해야 할 판이었다.
몇몇 기사들의 눈짓을 받은 병사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들의 공통점은 등판이나 뒤통수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는 것이다.
“어딜 튀어?”
그제야 이 혼란 상황에서 저격을 하고 있는 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역시나 노인 하나가 나무둥치에 매달려 활을 들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호, 혼자서?”
달려 나간 병사들은 다섯이었다. 그런데 그 다섯을 말 그대로 눈 깜짝할 만한 시간에 저격을 해 버렸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늙은이부터…….”
기사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고 꺼내는 순간 날아온 화살에 머리통이 그대로 꾀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병사들의 얼굴 위로 창백한 기운이 감돌았다.
소울아머 유저들이 적들을 정리하는 것보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정리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히이익!”
놀란 병사 몇이 무기를 던지고 이탈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먼저 죽어 간 전령들과 다르지 않았다. 일부는 화살이 날아올 것을 대비해 방패를 들이대었지만, 그 방패마저 뚫고 들어가 죽음을 선사한 것이다.
상황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장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환두대도를 뽑아 들었다. 그걸 허공에 한두 번 휘휘 저은 그는 다시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갔다.
본능적으로 그 노인이 이들의 수장에 가까움을 눈치챈 몇몇 기사들이 장 노인에게 달려갔다.
“어서 제압해!”
누군가의 외침을 들은 은퇴한 묵갑귀마대원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웃음의 의미를 알려 주듯 장 노인이 한걸음 크게 내딛으며 발을 차올렸다.
뻐어억!
순간 달려 나갔던 기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비명은 없었다. 다만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쩌억!
그나마 두 번째는 나았다.
장 노인이 뒷짐 지고 있던 손을 풀어 환두대도의 검면으로 면상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역시 한쪽으로 흐느적거리며 몇 걸음 걷다가 주저 앉았다.
이어 면상을 후려쳤던 환두대도를 들이 찍었다.
이번에도 검면이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달랐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괴로운 신음을 흘린 기사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앞으로 엎어졌다.
두 번도 아니라 한 번의 공격으로 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기회를 봐서 달려들려 했던 병사들은 주춤거리며 거리를 두었다.
그러는 사이 장 노인이 소울아머 유저와 함께 전투를 벌이던 노인들 사이에 끼어들며 환두대도를 쑤욱 밀어 넣었다.
“헙!”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소울아머 유저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장 노인은 물러서는 만큼 나아가며 환두대도의 끝으로 가슴팍을 툭하고 밀어 쳤다.
“이, 이런 빌어먹을!”
순간 균형을 잃은 소울아머 유저가 엉덩방아를 쪘다.
뭔가 강력한 공격이라도 당했다면 이해했을 것인데 말 그대로 툭 밀어 친 것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었으니 말이다. 그런 소울아머 유저의 얼굴로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쩌어억!
“크윽!”
순간 소울아머 유저의 머리통이 확 꺾였다. 그렇게 소울아머 유저를 밀어 넘기고 면상을 한 번 후려친 장 노인이 그 자리를 벗어났을 때 틈을 놓치지 않은 노인들이 달려들어 난도질을 치기 시작했다.
푸른 불꽃이 마지막 생을 태우듯 번뜩였으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사이사이로 피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손속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팔다리 할 것 없이 환두대도를 도끼마냥 후려 찍었다. 그걸 막기 위해 들어 올렸던 팔이 토막나고 물러서려고 밀어 대던 발목이 잘려 나갔다.
그렇게 한 명의 소울아머를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 장 노인이 소울아머 유저의 뒤로 다가가 발바닥을 들어 올려 등판을 밀어 찼다.
“으헉!”
소울아머 유저의 놀란 음성이 튀어나왔다. 이내 등판으로 피를 머금은 환두대도가 비죽이 머리를 내밀었다. 그걸 본 장 노인이 입을 열었다.
“단단히 잡아.”
“예!”
장 노인의 말은 환두대도를 소울아머 유저의 몸통에 박아 넣은 이에게 건네진 것이었다. 대답과 함께 다리 발바닥을 들어 힘차게 밀어 찼다.
콰드드득!
“크아아아!”
소울아머 유저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갑주가 벌어지며 환두대도가 등판으로 비집고 나왔다.
그 환두대도를 잡고 있던 노인이 그대로 양손으로 잡아 끌어내리자 갑주가 마치 가죽북 갈라지듯 쭉 갈라지며 가슴아래가 양단이 되었다. 갈라진 몸통으로 내장이 쏟아졌다.
장 노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소울아머 유저들 사이로 긴박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별것 아닌 행동에 동료들이 죽어 나간 걸 목격한 이는 물론이고 그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던 이들도 뭔가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것이다.
서로 눈을 마주친 소울아머 유저들이 한 대 모이기 시작했다.
숫자의 유리함은 이미 사라졌다. 끌고 온 기사와 병사들은 이미 반도 안 남았다. 거기에 자신들이 몸을 빼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자네가 다녀오게!”
급기야 이를 악물은 소울아머 유저 하나가 동료에게 외쳤다.
지원군이 절실하다는 걸 느낀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노인들의 실력은 팔다리가 잘린 채 죽은 연타와 비교해서 크게 아래라고 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벼운 복장의 노인의 실력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가벼운 동작에 담김 무리가 적지 않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젠장!”
동료들을 뒤로한 채 몸을 빼낸 소울아머 유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도주라니! 내가 도주라니!’
지원 병력을 부리기 위함이긴 했지만 엄연히 도주하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서른 정도 되는 노인들을 상대로 말이다. 당연히 창피할 만했다.
그러나 도주도 여의치 않았다.
“흡!”
째앵!
등 뒤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기세에 몸을 뒤틀며 롱소드를 휘둘렀다. 롱소드를 쥔 손이 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이내 완전히 몸을 돌려 다시 롱소드를 휘둘렀다.
쩌정! 쩡!
연신 뒤로 물러섰다. 도주를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화살에 담긴 힘이…….”
방패까지 꿰뚫는 것을 보긴 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하고 보니 그 힘이 손을 울릴 정도였다. 거기에 한 명이 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등을 돌려 도주하기 힘이 들었다.
“어쩔 수 없나.”
이를 악물은 소울아머 유저가 소울포스를 잔뜩 끌어올렸다. 한계치까지 힘을 쏟아 부은 것이다. 소울아머의 방어력을 믿고 도주하기 위함이었다.
부와악!
소울포스가 거칠게 피어오르며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이어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등판 위로 충격이 느껴졌다. 화살이 날아와 때린 것이다.
그러나 힘을 쏟은 만큼 뚫리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두어 걸음 더 내딛었을 때였다.
파앙!
“큭!”
내딛는 발이 앞으로 쭉 밀리며 가랑이가 벌어졌다.
물론 뜀박질이 서툴러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화살이 날아와 바닥을 딛기 전에 종아리를 때린 것이다. 그렇게 살짝 균형이 틀어진 순간 뒷발의 오금에도 충격이 느껴졌다.
“이런 빌어먹을!”
바닥에 무릎이 닿았다. 이어 무릎 꿇은 발쪽의 어깨 죽지에도 충격이 느껴졌다. 몸이 반쯤 돌았다. 순간 머리 쪽으로 섬뜩한 기운이 다가왔다.
“에이, 씨!”
동시에 반사적으로 롱소드를 휘둘렀다.
쩌엉!
균형이 무너진 채 휘두른 롱소드의 옆면을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몸통이 밀려 나갔다.
쿠웅!
등판으로 땅에 닿는 울림이 느껴졌다.
곧바로 몸을 튕겨 올렸다. 그러나 역시나 날아온 화살은 그가 제대로 몸을 들어 올리는 것을 방해했다.
그렇게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 경고성이 울려왔다.
“조심해!”
동료의 외침에 고개를 들어보니 성난 기세로 달려오는 노인 하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휙휙 하고 내달려 오는 것이 노인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성난 들소 같았다.
콰직!
그 속도 그대로 노인이 무릎으로 소울아머 유저의 안면을 향해 찍어 왔다. 뭔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짧은 사이에 소울아머 유저가 양팔을 들어 안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노인의 무릎을 막은 것이다. 충격은 없었지만 결국 다시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런 소울아머 유저의 위로 노인이 깔고 앉았다.
그리고는 환두대도의 손잡이 끝으로 소울아머 유저의 안면을 연타했다.
쾅쾅쾅쾅!
“크으윽!”
롱소드를 쥔 팔은 노인이 다른 한 손으로 제압해 바닥으로 누르고 있어서 남은 한 팔로 막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 충격이 엄청났다. 그때 롱소드를 쥔 손을 눌렀던 노인의 손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팔을 거둬들였다. 아니 거둬들이려 했다.
터턱!
“무, 무슨!”
소울아머 유저의 눈동자에 당황한 감정이 떠올랐다.
노인이 롱소드를 쥔 팔을 양손으로 잡아 비틀었던 것이다.
“으라차!”
기합성과 함께 노인이 뒤로 눕는가 싶더니 팔이 펴지는 것과 동시에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콰직!
“끄아아아아!”
팔이 완전히 뒤틀리며 관절이 부서져 나가는 충격에 소울아머 유저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소울아머 유저의 안면을 팔을 잡고 드러누운 노인이 발꿈치로 강타했다.
퍼억! 퍽퍽!
한 방, 한 방 맞을 때마다 소울아머 유저의 머리통이 땅을 파고 들었다.
‘왜, 아무도…….’
왜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언제 일어섰는지 노인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다시 소울아머 유저의 몸통을 깔고 앉아 다시 안면을 후려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뭐 이리 단단해!”
욕설을 뱉은 노인이 그대로 투구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소울포스가 거칠게 피어올랐다. 외부 충격에 발휘되는 방어기재였다.
“이, 이게 벗겨질 리가…….”
콰직!
소울아머 유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왔다.
“미, 미친!”
눈을 부릅뜨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양팔의 근육은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풀어 올랐고 그 팔 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풀려나왔다. 그것은 소울포스의 푸른 빛을 밀어내고 있었다.
콰드드득!
눈앞의 푸른빛이 일시에 사라졌다. 투구의 연결고리가 뜯겨져 나간 것이다. 칼로 내리쳐도 끊어지지 않는 소울아머 유저의 투구가 벗겨진 것이다.
그것도 악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