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44
209화 이제 시작을 뿐
“아, 아악!”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핏물이 비산한다. 노인 하나가 동료 소울아머 유저의 가슴팍 위에 올라타 앉은 채로 연신 주먹을 교차하며 내려찍고 있었다.
노인의 주먹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비명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축 늘어진 유저의 가슴팍에 한 발을 올려놓은 노인이 칼을 거꾸로 박아 넣으며 확인사살을 하면서도 눈을 두리번거린다. 마치 다른 사냥감을 찾는 모습 같았다.
“크아아아!”
또 한 명의 유저는 온몸에 칼을 연신 얻어맞고 있었다.
세 명의 노인이 들러붙어 팔다리 몸통 할 것 없이 난도질을 내고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칼질에 유저는 롱소드를 휘두르며 대항했지만, 의미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미친 늙은이들…….”
그 모습을 보니 할 말은 이것뿐이었다.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미친 짐승들이 날뛰는 현장이었다. 무기를 휘두르고 눈앞의 상대를 꺾는 그런 고수들의 전투가 아니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무기삼아 휘둘렀고 눈앞의 상대가 아니어도 틈이 보이는 이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은 예사였다. 심지어 저 실력을 가지고 흙도 뿌리고 칼을 집어 던졌다.
칼이 없으면 단단해 보이는 돌을 들어 찍었다.
빠악!
바로 지금처럼.
고개가 한쪽으로 틀어졌다. 한가롭게 주변을 돌아볼 때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양 팔은 잡혀 있었다.
그리고 마치 집단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듯 맞고 있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어깻죽지를 가르고 들어온 칼날에 힘줄이 끊어진 탓이었다.
그림이 그려진다.
흉포한 맹수들이 떼로 몰려와 의미 없는 살육을 벌이는 그런 그림. 그 가운데 가벼운 복장의 노인이 사방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더 섬뜩했다.
뭐 하나라도 놓치는 것이 없나 쳐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결단이라도 내릴 것을…….’
생의 미련 때문에 아껴 두었던 최후의 수단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다.
하늘이 돌았다.
정확히는 머리가 허공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꺼져 가는 시선 속으로 자신의 몸통이 머리를 잃은 채 피를 뿜어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으아아악!”
한 소울아머 유저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소울스톤이 돌아가며 생명의 불꽃이 찬란하게 타올랐다. 소울아머 유저의 롱소드가 휘둘러지자 그것을 정면으로 막았던 노인의 환두대도가 깨어지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나 그 자리를 또 다른 노인이 차지하며 소울아머에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 달리 최후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 노인 역시 공격을 채 흘리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후욱! 죽여 버린다!”
소울아머 유저가 붉어진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장 노인 역시 광기에 찬 소울아머 유저와 눈을 마주했다.
둘 사이가 가까워졌다. 정확히는 폭주한 소울아머 유저가 달려 나간 것이고 장 노인이 한걸음 내딛자 그를 향해 달려들던 노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빠진 것이다.
죽여 버린다는 소울아머 유저의 외침에 장 노인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실력 있으면 해 보거라.”
“크아아악!”
괴성을 터트리며 소울아머 유저가 소울 포스를 뿌리며 일격을 가했다.
쩌어어엉!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 막아?”
공격을 한 소울아머 유저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자신의 소울포스가 넘치는 일격을 피하거나 흘린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막아 내었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장 노인의 소매가 충격파에 의해 잘게 찢어져 나가며 그 팔뚝이 드러났다.
불에 그을린 듯 붉은 빛이 감도는 구릿빛 팔뚝이었다.
그 사이로 자갈돌을 단단하게 뭉쳐 놓은 듯한 근육이 드러났다. 노인의 근육이라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 근육이 꿈틀거렸다.
터어엉!
순간 소울아머 유저는 아까보다도 더 당황해야 했다.
칼이 마주한 상태였는데 간격도 없었는데 자신의 무기에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몸이 뒤로 튕겨졌기 때문이었다.
장 노인이 달려왔다.
여태 느긋한 걸음만 보여 주던 장 노인의 움직임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부와아아악!
장 노인이 환두대도를 휘두르자 공기가 확 말려 들어가며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소울아머 유저 역시 조금 전의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소울포스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며 장 노인의 환두대도를 향해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롱소드를 휘둘렀다.
쿠와앙!
폭음이 울려 퍼졌다.
파사사사!
순간 별무리가 소울아머 유저의 온몸을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무리처럼 말이다.
“흐윽!”
소울아머 유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이 들고 있던 롱소드를 바라보았다.
웅장하게 타오르던 생명의 불길을 머금었던 롱소드는 이제 없었다. 손잡이만 남아 그 존재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틱, 티틱. 틱!
소울아머에서 비틀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어떻게…….”
소울아머 유저인 프롬벨 자작이 장 노인을 바라보았다.
생명의 기운까지 끌어 쓴 일격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롱소드가 산산히 깨어진 것이다. 조금 전에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자신을 밀쳐 낸 공격도 믿기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건 믿을 수 없었다.
소울포스를 가득 뿜어내던 롱소드가 산산이 깨어지다니.
“아…….”
소울아머 사이사이가 갈라져 있었다.
그 사이로 피가 소울포스에 의해 기화되어 안개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한 군데가 아니었다.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조금 전 뭔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전에 별똥별이 몸을 휘감았던 것이 뭔지 알았다. 그건 자신의 롱소드가 만들어 낸 파편의 무리였다.
그 파편의 무리가 그의 온몸을 지나친 것이다.
마치 화산이 온몸에서 분화하는 것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크으으아아아아!”
믿을 수 없다는 듯 프롬벨 자작은 그대로 손잡이만 남은 롱소드를 휘둘렀다.
터억!
그대로 막혔다.
아니 정확히는 휘두른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다른 한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까드득!
비틀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동시에 노인의 손이 닿은 손목과 팔이 뜨겁게 느껴졌다. 무언가 타는 것 같은 매케한 냄새까지 풍겨 왔다.
“으으…….”
분노에 휘감겨 있던 프롬벨 자작의 눈에 공포라는 감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공포가 눈동자를 뒤덮는 순간 소울아머가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프롬벨 자작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팔이 장 노인의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울아머 유저의 팔을 그대로 잡아 몸통에서 뜯어낸 것이다. 힘으로 말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을 들고 장 노인이 바닥에 잠시 박아 넣었던 환두대도를 다른 손으로 잡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전부더냐?”
다가온 장 노인이 잘려져 나가 미이라처럼 변해 버린 팔을 휘둘러 왔다.
콰작!
가슴팍에 와 닿으며 말라 버린 팔과 소울아머의 완갑이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그 충격에 프롬벨 자작이 다시 뒤로 나자빠졌다.
그의 눈에는 공포만 남아 있었다.
장 노인이 환두대도를 들어 올리며 다시 말했다.
“어쩐다.”
공포가 머리를 잠식해 버린 프롬벨 자작은 생명의 불꽃이 다해가는 데도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장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이제 시작이란다. 아이야.”
눈동자 가득히 채워 오는 장 노인의 환두대도를 바라보며 프롬벨 자작의 입에서 여태 참아 왔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 흐아아아악!”
울부짖음이었다.
본능이 외치는 공포의 울부짖음이었다.
소울아머 유저인 데안 자작이 몸을 빼냈다.
그냥 빼낸 것이 아니었다. 소울스톤을 돌렸다. 목숨을 버리면서 한 일이 몸을 빼낸 것이다. 그게 최선이었다.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싸우던 동료들이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을 보고 난 후였다.
싸울 생각은 버렸다.
다만 이 사실을 알려서 복수라도 해 달라 하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다.
뒤에서 노인들의 욕설이 들려왔다. 화살도 날아왔지만 그의 도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참담했다.
지금 이 선택과 상황이 너무도 참담했다. 그리고 어차피 죽는 상황인데 손발이 떨리도록 무서운 것이 비참했다. 그때 그의 눈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노인들은 아니었다. 이미 거리가 좀 벌어졌다.
그러나 같은 갑주를 입고 있는 것이 가우리의 인원 같았다. 그러나 노인들과 달리 젊었다. 다른 건 머리색 정도였다. 계집마냥 길게 기른 은발이었다.
“나와아아!”
비참한 마음을 숨기듯 외쳤다.
그리고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소울포스를 가득 담아 롱소드를 뿌렸다.
콰콰콰!
폭포수처럼 소울포스가 유형화되어 뿌려져 갔다.
그 순간 은발의 사내가 흘깃 쳐다보더니 한 발을 크게 내딛었다. 그리고는 소울포스의 파도를 향해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소울포스가 갈라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몸을 스쳤다. 차가운 무언가가 말이다. 마치 겨울의 찬 바닷가에 몸을 담근 것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이어 저 멀리 달려가는 자신의 하체를 볼 수 있었다.
콰앙!
바닥에 널브러진 데안 자작이 멍하니 은발 사내를 보았다. 그러나 은발 사내는 자신을 보지 않고 있었다.
“어, 어으으…….”
“올 필요도 없었는가 보군.”
담담히 내뱉는 음성. 데안 자작은 자신의 몸통을 반쪽 내 벌니 상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누구냐…….”
그제야 은발 사내는 시선을 주었다.
별 감정 없는 눈빛.
은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물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은발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데안 자작은 은발사내의 대답을 들으며 비참하다는 것보다는 그가 남자답지 않게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흐흐…….”
데안 자작은 순간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어이없어 웃음을 흘리다가 숨이 멈추어 갔다.
푸른 불길이 그를 휘감았다.
***
“대체 무슨 일이…….”
프라임 공작이 되돌아오고 나서 수습을 위해 남았던 인원들이 오지 않아 찾아온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마, 마수라도 만난 것일까요?”
누군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러면 좋겠네.”
물론 소울아머 일곱이 죽은 걸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은 이 참상을 적들이 만든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마수가 나타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뜯기고 부서진 시체들은 전쟁터에서 볼 수 없는 형태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뭐였기에…….”
조용한 가운데 참담한 음성만이 울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