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45
210화 명령이다. 잔치를 벌여라
뒤늦게 소식을 듣고 도착한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따라왔던 소울아머 유저의 희생도 전력적으로 큰 손해라 생각하던 차였는데 이번에는 일곱이나 당한 것이다.
거기에 그 당한 현장을 보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마수의 습격을 의심했었다는 보고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그러나 프라임 공작의 눈썰미는 확실히 달랐다.
“거친데……. 서두르거나 혹은 서툴러서 거친 게 아니군.”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마구 내려친 듯 보이지만 그게 아니야. 마치 화풀이라도 한 듯. 그리고 균형점을 무너트린 공격들이 태반이야. 그리고 각도를 보면 하나가 아닌 여럿이 합을 맞춘 거지.”
“그야 합공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프라임 공작의 말에 참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다가 닫았다.
소울아머 유저를 이기려면 당연히 상위의 송루아머 유저 혹은 여럿의 소울아머 유저가 합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참모는 이 당연한 사실을 프라임 공작이 몰라서 이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닫은 것이다.
사방이 조용해진 가운데 프라임 공작의 시선은 소울아머 유저의 시신을 떠나 사방에 어지럽게 찍혀 있는 족적들을 훑고 있었다.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망설임없이 정확히 왔다가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군. 아마도 누가 봤다면 그냥 지나는 척하다가 공격하고 제 갈 길 가는 이로 착각할 정도고.”
프라임 공작의 중얼거림은 혼잣말처럼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주변의 참모들이 듣기에는 충분했다.
개중에 문관이 아닌 이는 프라임 공작의 설명에 눈에 불을 켜고 현장을 다시 살피다가 충격을 먹은 듯 멈추어 섰다.
“짜고 한 것이나 족적을 다시 찍은 것이 아니고서야…….”
그제야 프라임 공작의 말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참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껏 굳어진 얼굴을 했다.
“고도의 합격술일 수도 있고 아니면…….”
프라임 공작이 말끝을 흐리자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그제야 주변의 시선과 마주한 프라임 공작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전투를 일상적으로 벌여 왔던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형식일 수도 있지.”
“아마도 전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때 한 참모가 프라임 공작의 분석에 반문을 해 왔다.
그게 상식적인 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 수 없지만 그게 확률은 높지. 만약 두 번째라면…….”
프라임 공작이 다시 말을 흐린 채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제압해 두었던 연타가 있던 자리였다. 그뿐 아니라 가우리 무장들의 시신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깨끗하게 가져갔다.
‘만약 두 번째라면 솔직히 감이 안 잡히는군. 단지 그들뿐인 건지 적을 상대함에 있어 덩어리로 취급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감이 안 잡히는군.’
이런 상대는 더 까다롭다.
전투에 나서면 보통은 눈앞의 상대에 신경을 쏟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은 적이라는 전체를 인지하고 싸운다. 상대하는 적을 꺾고 또 다른 목표를 쫓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주변에 적을 하나로 색칠하고 그 색을 지워 나가는 식으로 전투를 벌인다. 눈앞에 뭐가 알랑거리고 또 그게 틈이 있다면 그게 지금 자신의 적이라는 의미다.
눈앞에 칼을 들고 설치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 이런 이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절대다수에게 포위를 당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칼까지 모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전쟁이라는 것이 등 뒤의 칼을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집중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전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야가 좁아진다.
그런데 프라임 공작이 말한 후자의 무리라면 그 전투 시야가 무지막지하게 넓다는 의미가 된다.
“찝찝하군.”
프라임 공작이 쓴웃음을 머금고 난 뒤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원했던 결과는 이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시에라 제국의 후발대를 정리한 뒤 연휘가람과 장무 노인 등 은퇴한 묵갑귀마대원들은 전사자들의 유해를 온전히 수습해 올 수 있었다.
통쾌한 복수를 했음에도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았다.
그것으로 일일이 민감하게 군다면 그것만큼 정신적으로 지치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이들의 분위기가 이런 것은 바로 동질감 때문이었다.
만리타향보다도 더한 곳.
이제는 이곳이 고향이 되었지만, 옛 터전과 여기와의 간극은 너무도 멀고 또 멀었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이곳과 지옥의 공통점은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이곳으로 처음 넘어왔던 이들 사이는 각별했다. 좀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야 했다.
“다들 고생들 했네. 어르신께서 나서실 줄은 몰랐습니다.”
휘가람이 다들 도열해 있는 노병들을 보며 치하의 말을 했다. 그들과 달리 한쪽에 앉아 허리를 두들기고 있는 장 노인의 모습도 그의 눈에 들어와 있었다.
“나야 주문한 놈이 찾아가질 않으니 가 본 거였고, 이제는 가지고 쓰는 용도가 아니라 부장품이 되어 버렸으니 입맛이 쓰게 돼 버렸어.”
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장 노인은 약간 허허로운 표정을 짓더니 뒷짐을 지고 장내를 떠나갔다.
휘가람은 앞에 도열해 있는 이들을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술이 필요한 날이겠군.”
“오, 장군이 내는 거요?”
“공짜 술 좋지!”
“역시 장군님이 최고요!”
다시 왁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들 휘가람보다 나이가 많지만, 오래전부터 각인된 지휘관의 위치는 그들로 하여금 나름 항상 공손한 자세를 취하게 하였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쓴웃음을 머금은 휘가람이 걸음을 옮겼다.
복귀해 온 마법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시아론 리셀과 마법전단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휘가람이 물었다.
“원인은 파악했습니까?”
“일종의 추적술에 당한 것 같습니다. 술법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쟁터에서 흔하게 쓰이는 술법은 아니라더군요.”
리셀의 설명에 휘가람이 다시 물었다.
“전쟁터에 흔히 쓰이지 않는 술법이다?”
“전쟁터에서 뒤를 밟을 일이 자주 있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술법이 주로 쓰이는 곳은 바람난 남편 찾는 일이라든지 부잣집에서 보화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하더이다.”
“부잣집이라면 만에 하나 털렸을 때 범인을 쫓기 위함이겠군요.”
“그렇지요.”
리셀의 대답에 휘가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이 이쪽에 대해 모르는 만큼 이쪽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이쪽은 카말 왕국의 술법사들을 통해 보완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도 모자란 부분은 있다.
바로 술법이라는 것의 특성이다. 모래알처럼 많은 술법의 갈래들이다. 결국 모든 술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듣기로 시에라 제국은 그런 술법들을 망라하고 있어 술법의 활용에 있어서도 대륙에서 제일간다고 들었다.
그것을 어느 정도 타파하기 위해 만든 것이 터그람 왕국의 술법전단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 밝혀진 사실로는 시에라 제국이 이미 그런 전투 구조를 오래전부터 연구해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신은 일단 온전하게 해 놓았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휘가람은 리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죽은 연타는 그에게도 있어 함께 하던 전우였기 때문이었다.
***
강구신이 굳은 얼굴로 막사 문을 열었다.
묵갑귀마대원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뒹굴고 있었다.
“뭐야 그 똥 씹은 표정은.”
“거기서 자세 잡고 있지 말고 들어와라. 뭔 말 할지 무섭다.”
구신의 돌요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구신의 표정은 처음 들어올 때 그대로였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다들 저마다 흩트러져 있던 자세가 정돈되었다.
구신이 입을 열었다.
“연타 선배가 전사하셨다.”
순간 사방으로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무겁게 흘렀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놈이?”
“프라임 론 아가드.”
그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살기가 치솟았다.
“그 개자식 지금 터그람이지?”
“뭐해 씨팔 짐 싸! 그 새끼 목 따러 가자!”
순간 살기가 범벅이 된 막사는 아수라장처럼 변했다. 하지만 구신이 입을 열었다.
“터그람 쪽 파견이 되었던…….”
구신은 굳어진 표정과는 달리 담담한 음성으로 상황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터그람 왕국으로 간다니 그런 헛소리는 그만하고.”
작전 중이다. 말이 될 리가 없었다. 흥분된 마음에 뱉은 말일 뿐이다.
“영감들이 복수를 했다지만 그건 새 발의 피다. 묵갑귀마대가 어떤 이름이어야 하는지 다들 알거다. 수호.”
“예.”
을지수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런 수호를 보며 구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일 거다. 우리끼리 유난 떤다고 하겠지만 우린 이렇게 살아왔다. 우린 옆에 있는 놈들이 유일한 가족이고 또 전부다. 국가 이전에 우리다. 그렇게 살아왔다.”
어떻게 보면 반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구신은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었다. 왜냐면 처음부터 이 묵갑귀마대의 수장은 고진천이었으니까.
미운 오리 새끼처럼 혹은 주머니의 송곳처럼 튀어나온 이들을 하나둘씩 직접 모아 만든 부대가 바로 묵갑귀마대다.
이런 전통 역시 진천이 만들었다.
그들에 비해 진천은 많이 어렸지만,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진천의 존재는 그런 존재다.
“이미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다 같이 있으면 불 피워 놓고 한잔 하겠지만 각자 작전 때문에 떨어져 있으므로…….”
위라는 말은 딱 한 명을 지칭한다. 바로 진천이다. 구신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묵직한 음성을 토했다.
“지금부터 지고하신 열제의 명을 전한다.”
“충!”
순간 모두가 시립하며 오른 주먹을 심장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시선은 구신을 향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어떤 세상에도 그래야 한다. 그게 묵갑귀마대다.”
뭔가 주어가 빠졌지만 아무도 미동도 없었다.
구신이 다시 외쳐갔다.
“악몽이다! 묵갑귀마대는 적에게 악몽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게 묵갑귀마대다!”
“충!”
“새로이 묵갑귀마대 옷을 입는 핏덩이들이 똑똑히 보고 배울 수 있는 본을 보여라!”
“충!”
“명령이다! 잔치를 벌여라! 오늘 우리는 피로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술로 피를 씻어 낸다.”
구신의 입을 빌려 듣는 명령이었지만, 마치 그 한마디 한마디를 진천에게 직접 전달받는 것처럼 화답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리고 오늘 시에라 제국에 파견된 강구신을 포함한 오십 인은!”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숲적의 탈을 버리고 이후로 계속 묵갑귀마대로서 존재한다.”
“충!”
장난은 끝났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들을 한 오십인의 중년인들의 입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일제히 열렸다.
“만천의 지존이신 열제의 명을 받들어!
몸뚱이가 물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적에게 공포가 되고!
악귀가 되어서도 전장에 남아 적에게 영원한 악몽을 선사하겠노라!”
선언과 같은 외침.
묵갑귀마대의 외침이 터져 나갔다.
일루이먼 왕국 출신 병사들과 기사들이 모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오십 명이 외쳤을 뿐이다.
그런데 그 외침이 시작된 곳에서 풍겨 나온 기파가 이들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고, 심지어 일부는 자신도 모르게 지려 버릴 정도였다.
라임 십팔 왕자 역시 멍한 얼굴로 엉거주춤 선 채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