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48
213화 멈추지 않는다
시에라 제국 토벌대 진영은 수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의도지?”
“그냥 지나간 것 아닐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릴!”
묵갑귀마대가 말 그대로 관통하며 지나간 것을 보고 의견이 분분했다.
딱히 보급 물자를 손댄 것도 없었다.
큰 피해 중 하나라면 참모 중 하나의 막사가 그들이 이동하는 경로에 있어 일찍 잠이 들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그 외에 기사들과 병사들의 인적피해가 사백여 명에 달했다. 잠깐 본 피해치고는 적지 않은 피해였다. 특이한 것은 그들 모두가 진행방향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말 그냥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참상이 벌어진 곳을 바라보던 기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진영의 끝까지 뻥 뚫린 모습.
정말 다른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에 추가 습격에 있을까봐 사방을 뒤졌지만, 그런 징조는 없었다.
“참담하네.”
기사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번 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일 것이다. 진땀을 흘리며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지휘막사로 뛰어가는 참모들을 보며 기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을 세우기 위해 참여한 토벌전에 역사에 남을 오명을 뒤집어 쓰게 생겼으니 그들도 딱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저건 뭐지?”
한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기마무리를 관측한 루먼 영지의 영지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통행이 금지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이 시간에 영지를 향해 달려오는 무리들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기마병 같은데?”
“그러게 숫자가 꽤 묵직한 것 같아. 숫자는 한 오십? 그 정도 같은데?”
“일단 알려. 방향을 보니 토벌대가 있는 쪽이긴 한데 뭔가 있나 보지.”
병사 하나가 성곽을 내려갔다. 그 사이 기마들이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 병사의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떠졌다.
“어?”
“엇!”
병사들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달빛 아래에 비춰진 무리들의 형상이 조금씩 가까워져 온 탓이다.
“저, 적이다! 가우리다!”
“일루이먼 부흥군이다!”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외쳐대었다. 그때 한 병사가 튕기듯 뒤로 나자빠졌다.
“화, 화살이다!”
“모두 엄폐하라!”
“궁수 불러!”
순식간에 영지가 소란스러워졌다.
성벽 주변에 옹기종기 모인 마을주민들은 불안한지 문을 꼭 닫은 채 숨을 죽였다. 그 사이 묵갑귀마대가 외곽에 있는 마을들을 통과하고 영지성 지척까지 다가왔다.
궁병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성벽 위로 올라섰다.
그러는 와중에 몇몇 궁수가 화살을 맞고 나뒹굴었다. 하지만 나름 훈련을 잘 받았는지 성곽을 방패삼아 늘어서서 화살을 재었다.
“쏴!”
백여 명이 조금 못 되는 영지의 궁병들이 일제히 몸을 드러내며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그 사이 저쪽도 화살을 날렸는지 궁병 십여 명이 화살에 맞아 성벽 아래로 떨어지거나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아악!”
“치, 치료사들을 불러!”
순식간에 성벽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 갈고리다!”
그때 어둠을 가르고 줄이 매달린 갈고리가 성벽 위로 날아들었다. 이내 돌바닥과 마찰을 하며 끌려가던 갈고리가 단단하게 걸렸다.
“잘라 내!”
일부 병사들이 달려가 갈고리에 달린 줄을 잘라 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날아드는 화살에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심지어 줄에 쇠심을 섞었는지 잘 잘려지지도 않았다. 그 순간 갈고리의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어억!”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말 위에서 그대로 몸을 날린 묵갑귀마대원들이 줄을 지지대 삼아 성벽을 박차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딱 봐도 육중해 보이는 갑주를 입고서 벌인 일이었다.
단 두 번 성벽을 박차자 거의 십여 미터에 달하는 성벽 위로 묵갑귀마대원이 올라서게 되었다. 억하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미, 밀어내!”
영지의 창병들이 달려들었다. 올라선 이는 단 둘이었다. 그들을 향해 수십여 명의 창병들이 고슴도치라도 만들려는 듯 창을 세우고 달려왔다.
그때 묵갑귀마대원이 허리춤에 달린 줄 같은 걸 잡아 휘둘렀다. 그건 채찍이었다.
촤라락!
“어억!”
“엇!”
대여섯 명의 창병들이 함께 딸려가며 비명을 내뱉었다. 휘둘러진 채찍이 대여섯 개의 창을 그대로 휘감아 당긴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묵갑귀마대원이 그대로 달려들며 반대편 손에 들린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서거걱!
“아악!”
“억!”
환두대도에 맞아 피를 뿌리며 병사들이 나자빠졌고 일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을 틀어잡고 모로 쓰러졌다. 그 사이로 선홍빛 피가 울렁거리며 비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창병들의 거리가 사라지고 그들 사이로 환두대도를 든 묵갑귀마대원이 끼어들자 학살극이 벌어졌다.
장병기의 이점이 이제는 단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사이 또 다른 한명은 창병의 창을 빼앗아 들고 종횡무진 쏘다니고 있었다. 그 둘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이 또 한 명 또 한 명의 묵갑귀마대원이 연달아 성벽을 올랐다.
그 대원은 성곽 위를 펄쩍 뛰어 가며 내달렸다. 그리고는 연달아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성곽 뒤에 몸을 숨기고 서 있던 궁수들의 머리가 순서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머리를 수확하는 농부 같았다.
그 사이 내성에서 달려온 기사들과 병사들이 투입되었다.
“죽여!”
이십여 명의 기사들이 살기를 뿌리며 달려들었다. 그때 그 앞으로 한 명이 떨어져 내렸다.
쿠웅!
육중한 체구.
몸통이 좌우로 떡 벌어진 것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성벽 위를 딱 막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딜 가는 거이네?”
을지수호였다. 그가 도끼가 달린 단창을 어깨에 턱 걸치며 무덤덤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대답 대신 기사들은 롱소드를 쥐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큭, 아새끼들 묻는데 대답이 없구만.”
픽하니 웃음을 털어 낸 수호가 어깨를 퉁기자 걸쳐져 있던 창부가 튕겨져 올랐다. 동시에 한쪽 발을 대각선으로 밟으며 방향을 틀었다.
부와와악!
튕겨져 올랐던 창부가 광풍을 만들어 내며 사선으로 반원을 그렸다. 그와 함께 그 간격에 들어온 기사 둘의 몸통이 박살나듯 잘리며 나뒹굴었다.
수호는 휘두른 회전력을 이용하여 다시 반 바퀴 돌아 창부를 찔러 갔다.
도끼날과 대조적으로 날카롭게 선 창날이 또 한 명의 기사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푸욱!
“크어억!”
“우어어어어!”
수호가 함성을 내지르며 달렸다. 그러자 창날에 몸통이 꿰인 기사가 그대로 밀려 나가며 비명을 내질렀다. 창날 아래에 있는 도끼 덕에 더 꿰이지는 않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내달리는 수호의 몸으로 기사들이 휘두른 롱소드가 스쳤지만 찰갑에 의해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이미 몸을 조금씩 틀며 공격을 흘렸던 것이다.
콰앙!
“쿨럭!”
성벽 위에 있던 첨탑 벽에 기사의 몸통을 틀어박고는 그대로 창날을 뽑아내며 연이어 바닥을 쓸듯이 창부를 휘둘렀다.
콰드득!
기사들의 다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비명과 함께 다리가 부서진 기사들이 주저 앉았다. 그들을 향해 수호가 다시 나아가며 발을 뻗었다.
콰직!
수호의 발길질에 주저 앉아 있던 기사의 면갑이 움푹 우그러들었다. 안면은 어디가 눈이고 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뭉그러져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이어 수호는 창부의 끝으로 바닥을 뒹구는 기사의 가슴팍을 찍었다.
“끄아악!”
이어 수호는 그대로 몸을 날려 창부를 마치 지지대 삼아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붕뜬 수호의 두 발이 또 한명의 기사의 흉갑을 우그러트리며 뒤로 날려 버렸다.
“으아아아!”
비명과 함께 가슴이 박살난 기사가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수호는 그 비명을 뒤로하고 바닥으로 내려서며 거꾸로 잡은 창부를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리그었다.
콰자자작!
“히, 히익!”
기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수호가 수직으로 내리그은 창대에 동료 하나가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구겨지듯 양단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좌우로 벌어지는 몸통 사이로 부숴 지고 찢겨진 내장이 후두둑하고 쏟아져 내렸다.
“내건 남겨둬라.”
“알갔습네다.”
그때 뒤쪽에서 울려오는 음성에 수호가 창대에 묻은 피와 살점을 휘둘러 털어 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반명 기사들은 창백한 얼굴로 또 한명의 적을 바라보았다.
철곤 두 개를 양손에 쥔 강구신이 히죽 웃고 서 있었다.
“내 장담하지. 니들 다 죽을 거야.”
구신의 말에 기사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성벽 위에서는 비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루먼 영지의 영주 드리턴 도어 남작은 성벽 위의 참상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영지의 주요 전력인 기사들 중 성벽에 투입된 이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병사도 몇은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머리를 감싸 쥐고 오줌을 지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을 내지르며 심지어 거품까지 물었다.
공포가 이성을 완전히 잠식한 것이다.
“으흐흐, 다 죽었다. 다 죽었어…….”
팔 다리 하나씩 잘려나가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병사 하나는 실성한 듯 다 죽었다며 중얼거리며 웃고 있었다.
“대략 피해만 삼백여가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성 쪽으로는 오지 않고 여기 병력이 무너지자 그대로 이탈했습니다.”
드리턴 남작의 호위를 맡았던 기사단장의 말에 그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내성의 병력이라 해 봐야 이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였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그대로 내성으로 밀고 들어왔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일단 주변에 알려!”
드리턴 남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술법사의 서신이 하늘을 날았다.
“저들이다!”
일단의 기마대가 달려오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루먼 영지의 소식을 들은 주변의 기마부대 주둔지에서 출발한 병력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오백여 명의 기마대가 출동한지 얼마 안돼 발견을 한 것이다.
사실 운이 좋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호했다.
아예 대놓고 질주를 하고 있는데 못 찾는 것이 더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적들 사이에서 불길이 화악하고 솟구쳤다.
“불화살이다!”
하지만 그 화살은 그들의 앞에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그걸 본 기마대장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놈들은 달리는 말에서 화살을 쏜다! 방패를 들어!”
그 불화살들이 의미하는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바로 시야의 확보.
기마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웅크리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거창!”
동시에 이미터에 이르는 기마창이 들어 올려졌다. 그 사이 그들을 향해 수십여 대의 화살이 빗발쳤다. 십여 명의 기마대원들이 낙마하여 뒹굴었다.
그 사이 거리는 한껏 좁혀졌다. 화살은 더 날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그들을 덥쳤다.
쾌랙! 쾌래래랙!
은빛 호선을 그리며 수십여 개의 손도끼가 원을 그리며 그들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터텅! 텅!
“어억!”
일부 기사들이 또다시 낙마했다. 나머지는 막기는 했지만 손도끼에 실린 힘이 적지 않았는지 방패가 살짝 튕기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때 묵갑귀마대 쪽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거창!”
시에라 제국 기마대의 것보다 두 배는 길어 보이는 가우리 특유의 장창인 삭이 그들을 향해 겨누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