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49
214화 밤은 길다
일부 화살공격을 받고 손도끼에 의해 낙마했다고는 해도 피해는 수십에 불과했다. 물론 오백여 명의 숫자에서 수십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묵갑귀마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몰아쳐 갔다. 오백에 가까운 시에라 제국의 기마병을 향해 오십 명의 묵갑귀마대가 그대로 돌입했다.
콰차차차창!
두 무리가 교차하는 그 직전 시에라 제국의 기마병들이 먼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창대의 길이가 더 긴 가우리가 첫 교전에서 유리한 면모를 보였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초반 화살과 손도끼를 퍼부은 것은 시에라 제국 기마병 대열의 선두 쪽이었다.
방어를 위해 자세가 흐트러지고 대열이 흔들린 상태였기에 더욱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창기병간의 대결은 첫 대결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십여 명의 묵갑귀마대원들이 일제히 삭을 놓고 방패와 환두대도를 들었다. 그 외에 각자 특이한 무기를 쓰는 이들은 마찬가지로 각자의 애병들을 꼬나 쥐고 파고들었다.
“죽여!”
동료들이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았는지 눈에 핏발이 선 시에라 제국 기사들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기병창들이 쉴 사이 없이 묵갑귀마대원들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아가리만 살아서리!”
수호가 눈을 부릅뜨고 도끼가 달린 창대를 휘둘렀다.
그를 노리던 기병창이 후두둑 부러져 나가며 기병과 기사들이 휘청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수호가 다시 부창을 휘두르자 그를 스치던 기병들의 갑주가 와그작 박살이 나며 튕겨져 나갔다.
구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자루의 철곤을 마치 바람개비 마냥 빙빙 돌리며 그대로 질주해 나갔다. 기병창은 물론이고 그 영역에 들어서는 모든 것들이 박살이 났다.
그러나 그 사이로 시에라 제국의 검기병들이 파고들었다.
“흡!”
구신이 찔러 들어오는 롱소드를 몸을 틀며 피하는 동시에 다른 손에 들린 철곤을 휘둘렀다. 그걸 경기병이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그 힘마저 흘리지는 못했다.
콰앙!
“어억!”
그 검기병이 휘청이는 사이 다른 적을 향해 다시 철곤을 휘두르던 구신대신 구신의 애마가 비틀거리는 기사의 말의 목을 그대로 물었다.
콰직!
끼히히힝!
“이런 미친!”
순간 검기병을 태운 말이 비명을 내질렀고 균형을 겨우 잡아가던 이가 화들짝 놀란 눈을 했다.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 말의 이발이 마치 육식을 하는 맹수와 같이 날카로웠기 때문이었다.
으드득!
구신의 말이 입을 다물어 비틀자 시뻘건 핏물이 솟구치며 말모가지의 살덩이가 우두둑 하고 뜯겨 나왔다. 당연히 말은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펄쩍 뛰었다.
퓨켈의 혼종인 퓨마이지만, 여전히 육식을 즐겼으며 또 그 흉포함이 기존 말들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길들이는 방법 역시 말을 타는 이가 힘으로 제압을 해야 할 정도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는 만큼 일반 말들이 대항할 수 있는 종이 아니었다.
그걸 처음 본 시에라 제국의 기마병들이 기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단병접전에 들고 나서야 그들도 문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전마들이 퓨마들이 흉포함에 질려 제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키힝!
퓨마들이 마치 하나의 개체마냥 날뛰고 있었다.
그 사이 일부 묵갑귀마대는 몸을 날려 상대방 기마병을 걷어차 떨어트리고 싸우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구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과 말 사이를 마치 평지마냥 날 뛰었다.
“어떻게 저런 몸놀림이!”
시에라 제국 기마병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했다.
딱 봐도 완전 무장이었다.
온몸을 갑주로 싸매고도 저렇게 말과 말 사이를 뛰어넘고 심지어 말 아래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기이한 재주를 벌이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무장을 하지 않았다 해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재주를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말 위에 타고 재주를 부리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광대들이 그랬고 태어나서 죽기까지 말과 함께 한다는 초원의 부족들도 그 재주가 뛰어났다.
그러나 이들처럼 혼전 속에서 저렇게 무거운 갑주를 걸치고 할 수 있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인간 같지 않고 말은 말 같지 않았다.
그렇게 묵갑귀마대와 그들이 탄 말이 휘젓자 시에라 제국 기병들이 우수수 낙마를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정예 중에 정예였다. 말 아래에 떨어지면서 최대한 충격을 흘려낸 그들은 묵갑귀마대가 탄 퓨마를 노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퓨마의 발길질은 말뿐이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을 향했다. 몸통을 채이고 퓨마의 이빨에 무기를 든 팔이 물리다 못해 잘려 나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옆구리로 다가선 기병이나 기마대원들의 처지라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콰직!
“끄아아아아!”
얼굴에 시뻘건 구멍이 숭숭 난 기병 하나가 무기를 떨구고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묵갑귀마대가 신고 있는 못신에 면상이 채인 것이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던 이들은 동료에 의해 혹은 묵갑귀마대에 의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바닥에서 온몸이 부서져 나갔다.
“이익!”
기마대장이 이를 악물고 푸른빛을 뿌리는 자신의 무기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로우급이지만 소울아머 유저인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 명도 제대로 잡아 두지 못할 정도였다.
그를 스치듯 지나치는 묵갑귀마대원들의 한방 한방을 겨우겨우 막으며 목숨을 보존하기 바빴다.
“후욱!”
그렇게 대여섯 번을 막아내다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묵갑귀마대의 대열이 완전히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얼어붙었다.
“아…….”
자신의 뒤에는 시에라 제국의 기병들이 없었다.
바닥에는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또 발굽에 짖이겨져 온몸이 부서진 자신의 부하들이었던 시신들만이 가득했다.
선두에 있던 그만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멀어저 가는 묵갑귀마대의 무리 주변으로 비명과 피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 나가는 뒤로는 어김없이 부하들의 시신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주변으로는 이리저리 미친 것마냥 날뛰는 전마들과 일부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오줌을 지리는 전마들이 일부 있을 뿐이었다.
“이런 개자식들!”
눈에 불이 치솟았다.
기병대장이 온몸의 소울포스를 끌어올리며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활짝 열린 적들의 등판에라도 반드시 칼을 꽂아 넣겠다는 의지였다.
그때 뒤쪽에 있던 묵갑귀마대원이 상체를 뒤로 틀었다.
활이 들려 있었다.
보고를 들은 바 있다. 후퇴하는 동안에도 몸을 틀어 화살을 날렸다는 내용 말이다.
방패는 이미 박살이 났다. 그러나 화살 한 대를 못 막을 그가 아니었다.
투웅!
카앙!
활시위가 놓아지는 순간 기병대장이 휘두른 롱소드에 의해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화살은 한방이 아니었다.
투둥! 퉁! 퉁!
그 주변의 서넛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화살을 날렸던 것이다.
카캉! 캉!
다시 화살 두 대를 튕겨 내었다. 그러나 그 다음 화살을 막지는 못했다.
퍼억!
“어, 어떻게?
로우급이라 해도 소울아머다. 그런데 소울포스를 뚫어 내고 갑주에 틀어박힌 것이다. 순간 소울포스가 불안정한 듯 일렁였다. 그 사이로 또다시 화살 두 대가 날아와 박혔다.
물론 두 대는 또다시 쳐낼 수 있었다.
“끄아아아!”
혼신의 힘을 다해 소울포스를 끌어올리며 말을 몰았다. 날아오는 화살을 최대한 쳐내며 묵갑귀마대를 쫓았다. 그러나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멀어져 갔다.
자신의 수하들을 상대하며 돌파를 하는 묵갑귀마대의 질주보다 기병대장의 추격이 점점 더 느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
몸이 비틀거렸다.
정확히는 그가 탄 말이 비틀거렸다.
이제야 시선을 내려 본 기병대장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말의 온몸에도 여기저기 화살이 날아와 박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몸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일곱 발의 화살이 상체와 허벅지 등에 박혀 있었다.
꽤 많이 쳐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맞았나 싶을 정도였다.
“하아…….”
숨도 답답했다.
그럴 만한 것이 명치께에도 화살 한 대가 꽤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울컥하니 피가 입으로 역류했다.
“빌어먹을…….
뛰던 말이 이젠 걷는다. 휘청인다. 말을 재촉하고 싶지만 점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푸른 소울포스도 이제는 은은한 빛만 감돌 뿐이었다.
그때 그의 두 눈 사이로 점하나가 보였다.
“큿!”
롱소드를 휘둘렀다.
카창!
롱소드가 깨어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날렸다.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눈 사이에 길게 난 작은 기둥도 보였다. 화살이었다. 자신의 무기를 깨고 날아온 화살 한 대.
못 막은 것이다.
미처 내 뱉지 못하고 머금었던 말을 다시 이었다.
“……괴물들.”
그렇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본 채 기병대장은 흐느적거리는 말 위에서 팔다리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허망하고 원통하다는 눈동자만이 식어 갈 뿐이었다.
그렇게 묵갑귀마대를 막아섰던 시에라 제국의 기병 오백여 기는 부상자 포함 백여 명도 안 되는 생존자만을 남기고 멈추어 섰다.
물론 기병대장과 부대장은 모두 전사했다.
***
“저 미친놈들은 대체 뭐야!”
카말 왕국에 있는 시에라 제국 진영의 무력정찰대원들은 질린 얼굴로 고함을 쳤다.
무력 정찰이라 할 정도이기에 그 숫자는 천여 명에 달했다. 그런데 그 천여 명의 무력정찰대가 반 토막이 나서 도주를 하고 있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악귀들입니다!”
“이런 젠장!”
뒤를 쫓는 이들의 숫자는 고작 백여 명이었다.
그런데 그들에 의해 정찰대가 반쪽이 난 것이다. 물론 선공은 저쪽이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그 짧은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말이다.
“빌어먹을 그 귀신 같은 활.”
특히 압도적인 것은 화살 한 대가 거의 단창만 했다. 그게 날아올 때엔느 두세 명씩 몸통이 꿰여 나동그라졌다.
“이, 이제 더는 쫓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다른 병력과 합류할 수 있다! 병력을 추스른 뒤…….”
“저, 저기?”
그때 한 병사가 앞을 가리켰다.
딱 봐도 패잔병 무리 같은 이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그때 마주 달려오던 병사 하나가 눈이 풀린 채 비명과 함께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지, 집채만 한 호랑이가! 송곳니가 크게 난 마수가!”
“아흐흐흑!”
비명과 눈물을 뿌리며 달려오는 이들은 아무리 봐도 합류하려고 했던 그 병력이 맞는 듯 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상태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갑자기 왜 이런 미친 짓을…….”
소울아머 유저 하나가 몸통이 잘린 채 질문을 던졌다.
그 주변으로 족히 수백은 되는 병력이 완전히 도륙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필리어리 왕국에 있는 주둔지로 보급물자를 옮기던 호위 병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꽁지머리 사내와 칼 한 자루를 든 이들 수십이 들이닥쳤다.
웃긴 건 도주하는 보급품은 건들지도 않고 호위병력을 들이친 것이다.
소울아머 유저의 질문에 꽁지머리를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냥. 명령이야.”
“무슨 명령이…….”
“친구 가는 길에 섭하지 않게 따라 보내라는 명령.”
“너 혹시 그…….”
“어. 카말 왕국 사위가 나야. 좀 유명하지.”
심드렁하게 대꾸한 계웅삼이 장도에 묻은 피를 뿌리고는 외쳤다.
“아직 밤은 길다!”
그러자 사방에 흩어져 있던 검수들이 다시 어슬렁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