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5
강철의 열제 115화
진천의 손에 들린 종이가 삽시간에 타 없어지며 펄슨 남작의 뒤틀렸던 몸이 잠잠해졌다. 다시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옆에 누워있던 휘가람의 몸에서 뼈가 다시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툭 투투툭!
“크으윽!”
기괴하게 뒤틀렸던 뼈가 되돌아오는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의 뼈마디가 뒤틀리는 듯한 거부감을 주었다. 그래서 인지 리셀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리셀, 회복 마법을.”
“아, 예!”
진천이 ‘뭘 멍하게 있느냐.’는 듯이 바라보며 말하자, 그때서야 정신을 찾은 듯 리셀은 휘가람에게 다가가 회복 마법을 시전 했다. 연속으로 서너 번을 시전 하고 나서야 휘가람의 숨이 고르게 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윽.”
“괘, 괜찮으십니까?”
“후우, 그래도 빨리 끝났군요.”
창백해진 얼굴을 한 상태에서 숨을 몰아쉰 휘가람이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휘가람은 다시 숨이 끊어진 펄슨 남작의 눈을 감겨주며 진천에게 물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쉽지 않았을 터인데요.”
“정신마법의 후유증으로 머리를 잡고 난리를 치더군.”
“…….”
“그러더니 안 아프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어서 쉽게 되었지.”
진천의 말은 곧 안 아프게 해달라는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는 말이었다.
성불을 위한 술법이기에 망자의 소원을 들어줘야 만이 시술자가 깨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의외로 쉽게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물어 보고 싶은데…….”
진천의 중얼거림을 들은 휘가람의 몸이 잠시 경직 되었다. 그런 휘가람의 눈길을 의식 했는지 진천이 헛기침을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거 가르쳐 드릴까요?”
“…….”
반짝이는 눈망울로 진천을 바라보는 휘가람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진천은 고개를 주변으로 돌렸다. 그 순간 누군가와 눈이 부딪히자 진천의 입이 열렸다.
“음, 지금 생각해보니 당장은 필요 없겠군. 어디 부루 네가 배워 놓는 건 어떠냐?”
진천이 을지 부루를 향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부루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휘저었다.
“고조 저는 아새끼 대갈빡 쪼개는 거나해서 이런 건 못합네다!”
“쩝.”
진천의 아쉬운 목소리가 아직도 어두운 밤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리셀이 혹시 모를 화살을 피해 그 자리를 조용히 이탈하고 있었다.
제31장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
전격전으로 이루어진 전투였던 덕분에 포로가 늘어버렸다. 칠백여 명의 포로가 생긴 탓에 진군을 잠시 멈춘 고진천의 부대는 지휘막사에서 지도를 펼치고 몇 가지 점검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저거 밥값이 엄청 날 터인데.”
“그렇습니다.”
“버리긴 뭐하고, 남 주긴 아깝고.”
“고조 머리만 빼고 죄 묻어놨다가 다시 오면서 주어가면 어떻겠습네까?”
“…….”
의견을 나누던 진천과 휘가람 등은 순간 말을 꺼낸 부루를 노려보았다. 심지어 우루까지 혀를 차는 모습에 부루는 심한 정신적 타격을 받고 구석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고조 무식한 아새끼래, 사람이 씨앗이네? 이거이 어케 댄 게 노상 파묻는다 하네!”
“그만, 우루 회의에 집중 하도록.”
“예.”
부루로서는 다른 사람의 타박은 이해해도 우루에게 받는다는 것만큼은 자존심 상해했었다.
부루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우루의 타박을 말린 진천이 다시 지도를 바라보자 우루가 심각한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고조 칠백이나 되는 포로를 끌고 가게 되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병력의 소모가 있는 것은 사실입네다.”
“그렇지.”
“죄다 죽이디요. 어차피 다 사내새끼들이니, 살려봐야 필요 있습네까?”
“…….”
진천과 휘가람이 우루의 단순명료함에 조용히 쳐다보았다. 우루의 뒤쪽에서 부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오라우.”
우루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조용히 부루의 옆으로 빠져나왔다.
하일론의 정찰조가 처음 발견했을 때 이미 이들의 운명은 결정지어진 것이었다. 숫자로도 구천여 병력이 포위한 천여 명의 병력은 승산이 없었다.
다만 굳이 기습을 택한 것은 소식을 알리기 전에 신속한 처리가 중요했다. 원래 진천의 방식이었어도 싹 쓸며 지나갔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휘가람도 동조를 했다.
만약 이들이 비하넨 요새의 병력을 알게 된다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이고 또한 구천여 병력이 지나온 흔적을 못 알아볼 장님부대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잡고 보니 또 늘어버린 칠백의 포로가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밖에서 레비언 고윈 남작이 들어섰다.
“늦었군.”
“예.”
진천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하자 들어서던 고윈 남작이 슬쩍 한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부루와 우루가 죄를 지은 것처럼 한쪽 구석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며칠 동안이지만 어느 정도 분위기를 빨리 파악한 고윈 남작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고윈.”
“예.”
“아까 들었겠지만 병력의 이동방향을 알아내었다. 정확한 것은 그 부근에 도착해야 알 것이다.”
아까 전 전투에 직접 참여를 했던 고윈 남작이었기에 진천의 말에 잘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함께 움직이던 고윈 남작으로서는 자신의 군단이 손실을 입기 전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는지, 진천이 고윈 남작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당장 출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방법은 찾아내었나?”
진천이 말한 방법은 군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냐는 말일 것이다. 고윈 남작은 그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사실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음.”
고윈 남작의 말에 진천이 팔짱을 끼면서 한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까칠해진 턱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고윈 남작을 한번 바라보다가 진지 밖을 슬쩍 쳐다보았다.
“좋은 생각이라도 나신 겁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휘가람이 살짝 미소를 띠고 말을 붙였다. 그러자 휘가람을 바라본 진천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상당히 기분 좋은 듯한 웃음이 막사를 울렸다.
작전회의를 마치고 지휘 막사를 나선 고진천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새로운 수련법인가 보군.”
“예?”
멈춘 상태로 병사들의 훈련을 조용히 바라보던 진천이 한마디 내뱉고 지나갔다. 어리둥절하여 진천이 잠깐 보았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몽류화의 눈에 이채로운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한 병사의 기합이 일반적인 기합소리와는 전혀 다른 것을 중얼거리는 모습이었다.
“차앗! 백 개가 열 개면 천 개!”
류화는 열심히 도끼를 휘두르며 이상한 셈을 하고 있는 사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차합! 백 개에 열 개를 합하면 백 열개!”
류화가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자 도끼를 휘두르던 사내가 잠시 동작을 멈추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동작이 잘못 되었습니까?”
“……아니다 하일론. 열심히 해라. 그래서 출세해라.”
“넵!”
류화의 응원에 하일론의 도끼질은 점점 매서워져 갔다.
고진천의 걸음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포로들을 묶어놓은 곳이었다. 얼기설기 묶어놓은 포로들을 지키던 병사가 진천이 다가오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충!”
병사의 군례에 고개를 슬쩍 까딱거린 진천이 포로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진천이 다가올 때 그 뒤를 줄줄이 따르던 장수들을 본 포로들은 행여나 자신의 목숨에 불똥이 튈까 무서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궁금증이란 본능은 가끔씩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헉!”
포로 중 한 병사가 고개를 들었다가,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놀랐다.
‘내가 미쳤지!’
바로 진천의 눈과 정확히 마주친 것이었다.
파랗게 질린 채로 자신을 노려보는 진천의 눈빛을 피하지도 못하고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병사는 속으로 지난 생애를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다.
“후훗.”
나직한 웃음이 진천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공황에 빠진 병사는 그 웃음을 몸으로 받으며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좋군.”
콰콰쾅!
병사의 머릿속에 진천의 한마디가 천둥벼락이 되어 내리쳤다.
‘좋다니! 대체 무엇이! 왜!’
병사의 뇌리 속을 어지럽히는 질문들로 인해 조금 전의 세상 다 산 듯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상황의 반전이 느껴졌다.
진천의 주변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장수들의 모습이 느릿하게 병사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고조 날래 뱃기라우!”
“허헉!”
병사의 눈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남색(男色) 드워프!’
병사는 자신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리는 이상하게 덩치 큰 드워프를 보며 떠오르는 상상에 온 몸에 솟는 닭살을 느꼈다.
그 병사가 마지막으로 정신의 끈을 잃어버리기 전에 본 것은 발가벗겨지는 동료들과 자신의 모습이었다.
* * *
척척척척척!
덜컹 덜컹 덜컹!
이만의 대병력과 함께 보급 수레 등이 꼬리를 물었다. 전투병력 이외에도 약 팔천여 명에 달하는 노예들이 보급물자를 끌어가고 있었다. 실제 인원이 삼만 여에 달하는 이 웅장한 행군 속에 비춰지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반대로 피곤함이 찌들어있었다.
“속도를 높여라! 늦어지면 저녁식사가 힘이 들어진다!”
먼 길을 왔음에도 그 빛을 잃지 않은 플레이트 메일을 온 몸에 두른 기사가 행렬의 중간 중간에서 병사들과 노예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행렬마다 외치는 기사의 말이 어느 정도 먹혔는지 전체 행군이 다소 빨라졌다.
“제기랄, 국경을 넘어서서 전쟁터에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 돼지들은 무조건 걸으라고 하니……, 젠장! 빌어먹을 놈들.”
“젠장,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 습격이라도 받으면 칼질이나 하고 죽겠어?”
“입으로 힘 빼지 말고 어서 빨리 가자. 어서 가야 그나마 쉴 수 있으니.”
말을 몰아 똑같은 말을 뒤쪽에다가 외치는 기사를 돌아보며 병사들은 욕설과 한숨을 내뱉었다.
덜컹 덜컹.
“그래도, 우리 부대는 하이안 왕국 최고의 부대라면서요!”
수레를 몰고 가는 어린 노예가 병사들의 주절거림을 들었는지, 든든하다는 표정으로 병사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어린 노예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걸음을 옮기며 이를 악물었다.
“최고는 최고지.”
“그래 꼬마야, 걱정마라.”
“헤헷!”
꼬마 노예는 전쟁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병사들의 호언장담에 마음이 놓였는지 입가에 미소를 함박 걸으며 수레를 열심히 몰아갔다.
그런 어린 노예소년의 모습을 뒤로 하며 다시 행군의 앞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씨팔, 우리가 최고의 부대면 뭐하나, 지휘하는 새끼가 병신인데.”
“조심해. 귀족 놈들 듣는다.”
“미친 돼지들 들으라고 그래. 각 부대의 조장급 이상을 모두 지들 맘대로 갈아 치운 놈들이 지휘를 해 봐야 뻔 하지.”
병사들의 불만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음성이 지친 발걸음과 덜그럭거리는 수레의 소음을 뚫고 울렸는지, 한쪽에서 편한 복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병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 시끄럽다!”
“이크크.”
“죄송합니다요.”
그 한마디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는지 금방 욕설을 퍼부으며 험악한 표정을 짓던 병사들의 표정을 밝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 그들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제기랄, 돼지가 기르는 개 주제에…….”
“조심해. 전 조장이 저 새끼한테 대들다가 다리가 잘려서 버려졌잖아.”
“…….”
병사들의 표정은 아까보다도 더욱 암울해졌다. 그와 동시에 힘이 없던 발걸음은 더더욱 힘을 잃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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