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55
220화 한번 한 것 또 못하겠습니까?
마법사가 다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잠시 후 사방이 잠잠해졌다. 입구 쪽에서 울려오던 소리가 사라지고 차분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리고 입구에서 한 중년인이 몸을 드러내었다.
프라임 공작이었다.
“역시 남아 있었군 그래.”
프라임 공작이 그리팔 후작이 몸을 피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예상하듯 말을 꺼냈다.
“그걸 아니 직접 오신 게 아닙니까?”
그리팔 후작이 덤덤한 음색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꽤 애먹었네.”
프라임 공작이 웃으며 말하자 그리팔 후작이 씁쓰레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뿐이라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승자의 여유와 패자의 아쉬움이 교차했다.
프라임 공작이 그런 그리팔 후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던져 보는 말이네만. 시에라 제국으로 올 생각은 없는가? 내 자네의 자리는 보존해 주지.”
“이런 너무 날로 먹으려 하시는구려.”
“속보이나?”
그리팔 후작의 핀잔에 프라임 공작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시에라 제국으로 넘어가면 터그람 왕국은 버틸 힘을 잃게 된다.
싸우다 죽는 것과는 다르다.
그가 넘어가는 순간 병사들은 급격히 흔들릴 것이고 다른 귀족들 역시 흔들릴 것이다. 투항이 이어질 것이며 시간을 끈 것 이상으로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그래도 자네를 죽일 수는 없어.”
프라임 공작이 애석하다는 듯 말하자 그리팔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죽어야지요.”
“그게 자네의 그림이겠지만 어쩌겠나? 그 그림을 따를 생각이 없는 것을.”
프라임 공작의 말에 그리팔 후작의 호위 기사들이 숨을 죽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남은 소울아머 유저 역시 소울포스를 슬슬 끌어올렸다.
그리팔 후작이 여기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과 포로로 잡혀 버리는 것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또다른 피로감을 준다. 그리팔 후작은 포로로 잡혀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에라 제국은 사방에 흘릴 것이다. 터그람 왕국 귀족들에게는 전투에 져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것이다. 거기에 또 다른 의혹을 내부적으로 만들 것이다.
포로로 잡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투항했다는 오명과 무슨 내부적인 거래가 있었지 않나 하는 의심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리팔 후작을 아는 이들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겠지만, 불안은 그보다 더 빠르게 커질 것이다.
당연히 전투에 망설임이 있을 것이 뻔했다.
프라임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버림 받은 게 아닌가? 뭐 카이거 왕이야 그대를 건져보려 했겠지만, 그 주변에서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고 말이야. 꽤 영특한 왕이었는데 한번 실패가 꽤 컸어.”
“그것 역시 제 탓입니다.”
“가우리라는 변수가 쉬운 길을 어렵게 가게 만들었지.”
프라임 공작의 말에 그리팔 후작이 웃음 지었다.
정말 큰 변수였다.
각 국가 구도뿐 아니라 시에라 제국이 개망신을 당하게끔 만들었다. 터그람 왕국이 통일에 성공한다 해도 시에라 제국은 필리어리 왕국의 왕가를 전복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터그람 왕국 홀로 남는다.
그들을 증오하는 카말 지역의 병사들을 데리고 시에라 제국에 홀로 대항해야 하는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게 아마 시에라 제국이 그렸던 그림일 것이다.
큰 피를 흘리지 않고 손쉽게 남부 정벌을 마무리 하는 그림말이다.
그걸 가우리가 끼어들면서 완젆이 어그러트린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직접 전장에 나오시기도 하고 말입니다.”
“뭐 가끔 이런 나들이도 좋기는 하지. 언젠가 대륙 통일의 마침점은 내가 찍고 싶었으니까.”
그리팔 후작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 이제 마무리하지.”
그때 뭔가가 하늘로 날아올라왔다.
파앙!
작은 불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응?”
“준비가 되었군요. 이거 참. 직접 나서실 줄 몰라서 시간이 많이 촉박했었습니다.”
그리팔 후작의 말에 순간 프라임 공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쏘아 올린 신호는 술법사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성으로 접어들고 나서는 술법사의 머리카락 하나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설마?”
“이 정도면 제법 웅장한 무덤이 아니겠습니까?”
“허?”
“한 번 한 일 두 번은 왜 못하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높게 솟은 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이제 보니 그리팔 후작과 그의 호위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프라임 공작이 쓰게 웃었다.
“솔직히 두 번은 생각 못했네.”
내성이 무너져 내렸다.
***
수정구 속에서 그리팔 후작이 서 있던 내성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대무덕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스스로 미끼를 삼았어. 시에라 제국 입장에서는 또다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겠군.”
무덕의 말에 연휘가람이 거들었다.
“그렇지요. 프라임 공작이 직접 나섰으니 지휘관들이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참모들도 그럴 것이고……. 저번에 보니 소울아머 유저들은 어찌어찌 산다지만 고위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일단 소울아머 유저가 아니니…….”
무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에라 제국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만하지.”
“뭐 그것뿐이겠습니까?”
편히 말한 휘가람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시에라 제국군이 또아리를 트고 있는 진영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가우리와 카말 연합군을 보았는지 꽤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분통 터질 일만 남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거기에 저번에 묵갑귀마대가 날뛸 때 아무것도 못했다고 벼르는 양반도 있으니 말이네.”
저 멀리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고진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하듯 강쇠도 그의 옆에서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었다.
“저건 강아지도 아니고. 쯧.”
“원래 저런 종자는 전장에서 멀어지면 앓는 겁니다. 싸워야 의미가 있는 존재니까.”
“그건 그럴지도.”
진천을 태우지는 않아도 전장을 누비는 강쇠의 모습에 가장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펼쳐라!”
저멀리 진천의 목소리가 쩌렁하게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무덕과 휘가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좌우로 갈라져 달렸다. 그리고 그들을 묵갑귀마대와 개마무사들이 따르며 말을 달렸다.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치는 것 마냥 말이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카말 왕국 병사들은 혀를 찼다.
“대체 말이 몇 마리야?”
“듣기로는 기마만 삼만이 조금 못 된다던데?”
“보병은 만 정도랬지?”
“무슨 병력 구성이 저렇지?”
다들 혀를 찼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 구성이 파괴력 하나만큼은 엄청날 것이라는 것 말이다.
보병 중심의 운용만을 겪어 보았던 그들이 이런 중장기마 중심의 운용을 보았을 리가 없었다.
가우리와 카말 왕국의 기마들이 대지를 울리며 달려 나갔다. 그 울림이 마치 거대한 장송곡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기마들의 위로 뒤에서 날아오른 마법사들이 각기 무리를 지으며 흩어졌다.
***
“저놈들이 갑자기 미쳤나!”
필리어리 왕국 쪽에 진영을 꾸리고 있던 시에라 제국군은 당황한 얼굴로 까맣게 몰려오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수가 엄청납니다! 첫 전투 때와 같은 느낌입니다!”
병사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저거 저번에 그놈들 아니야?”
그때 한 기사가 질린 얼굴로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선두에 말을 달리는 이들. 찰갑으로 무장하고 한손에는 창이 아닌 장도를 들고 달려오는 이들이었다.
그 앞에는 꽁지머리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저번과는 달랐다.
“저렇게 많이?”
저번에는 오십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그 수가 족히 수천은 되어 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갑주를 두른 이들이 넓게 포진하며 말을 올아오고 있었다.
들고 있는 깃발의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빌어먹을!”
“창수 정렬하라! 정렬하라!”
장창병들이 한 대로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에서도 대응이라도 하려는 듯 기마들이 모이고 있었다.
“오십에게 당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던데…….”
“젠장.”
목적 없이 살육만을 남기고 사라진 이들에 대한 공포는 시에라 제국 병사들 사이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검은 물결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의 눈동자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씨불.”
누군가 힘없는 욕설을 뱉어 내었다.
***
“와아…….”
라임 왕자와 일루이먼 부흥군은 혀를 내둘렀다.
제라르를 비롯해 묵갑귀마대 오십 인이야 항상 봐 오던 이들이니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노인정에서나 볼 법한 노인들이었다.
“이놈들이 빠져가지고.”
“쯧쯧. 저 노랑머리 봐라.”
“이 양반들아! 내가 위라고!”
“꼬우면 붙어 보던가!”
“덤벼!”
결국 필리언 제라르가 노인들을 상대로 폭발했다.
그러자 노인들이 떼거지로 나섰다. 그걸 본 제라르의 얼굴이 흙색이 되었다.
“미친! 왜 다 덤비는데!”
“우린 하나다!”
“암!”
“하나지 그럼!”
노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제라르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악다구니를 썼다.
“하나씩 정정당당하게!”
“흘흘 그럼 나랑 해보련가?”
“어르신 빼고 말입니다!”
제라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곳에는 장무 노인이 말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웃고 있었다.
“아우! 왜 이 양반들이 여기에 있는 거냐고!”
“여기가 제일 가깝잖냐!”
“뭐가 말이오!”
“시에라 제국 황제 놈!”
당연하다는 듯 외치는 노인들을 보며 라임 왕자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우리 괜찮을까?”
라임 왕자가 자신의 호위기사들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대답 대신 땅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 괜찮을 거라는 표현이 분명했다.
“아아, 머리 아프다.”
얼마 전의 가슴 뛰던 생각도 싹 사라지게 만드는 구성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정확한 것은 이들이 오면서 전력이 몇 배나 상승한 것이라는 것 정도다.
“무슨 전쟁하러 가는 사람들이 저래?”
일루이먼 부흥군 병사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분명 전투하러 가는 건데 말이지.”
누군가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은 지금 토벌대를 치러 가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령관이 왔다는 소식에 나름의 환영을 하기 위해 말이다.
“그런데 저 쇳덩이는 뭐지?”
“갑옷이긴 한 것 같은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시선이 다들 한쪽으로 향했다. 팔다리 어깨 할 것 없이 전신이 갑주 비슷한 것으로 무장된 거구가 있었다.
심지어 얼굴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그 쇳덩이 사내가 고개를 틀더니 두런거리던 병사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언 맨. 오케이?”
“뭔 맨?”
“쇳덩이 남자라는데?”
“shit! 이놈의 통역기!”
사내가 투덜거리자 병사들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욕이네.”
“욕했네.”
“성질머리 하곤.”
병사들의 투덜거림을 들었지만 쇳덩이 사내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중얼거렸다.
“매직 아이언 맨이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매직 아머 맨? 아니야. 히어로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왠지 이상한 말만 내뱉고 있었다.
“트렌든 매직 아이언 맨! 이것도 길고…….”
그는 리셀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트렌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