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63
228화 조우
카버 왕국의 샤우 환 카머 국왕의 눈이 빛났다.
“탈출한 이들의 움직임은?”
“초원지대로 넘어갔습니다.”
“으음.”
북부지대를 평정하고 이전 헤네시아 제국 때의 절반 정도의 영역을 확보한 카버 왕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대신들은 더욱 강력한 남진정책을 부르짖었지만, 카버 왕은 잠시 숨 고르기를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남부 왕국들과 화해의 손을 내밀어 일종의 연합을 제의하기도 했다.
물론 연합은 성사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기에는 카버 왕국이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남부 왕국 중 일부는 친 로셀린 정책을 피고 있었다. 로셀린은 이제 거의 제국이라 부를 만한 국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시 영토를 되찾은 이후 제국 전쟁에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로셀린 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가우리와는 혈맹관계였다.
말린 왕국의 경우 연방제국의 건재함 때문에 아직도 긴장상태를 늦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로셀린 왕국은 헤네시아 제국이 무너지면서 북부로 진격해 올라갔었다.
그 와중에 꽤 많은 알짜배기 영지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각 지역 군벌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진격을 멈추고 일부 국가와 교류를 하며 지원을 해 주기 시작했다.
처음 기세가 미미했던 남부 국가 중 일부는 그 덕에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고, 이후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카버 왕으로서는 무리한 병탄 전쟁을 펼칠 수 없었다. 로셀린에는 여전히 헬리오스 바이칼이라는 무력의 정점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기존 신성제국령의 국가들은 그에 걸맞는 무력을 가진 이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새로운 젊은 피들이 속속들이 등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마나석이 풀리면서 군비경쟁이 다시 시작되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카버 왕의 선택이 맞아떨어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남부지역 쪽에서 첩보가 날아온 것이다.
바로 가우리 해상과 로셀린 해상에서 벌어진 소요사태였다. 미확인 선박이 두 곳에서 충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거기에 로셀린 왕국 전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찾아 뒤지고 있다는 내용을 듣고서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소식 역시 남부 지역 왕국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소식이었다. 일부 로셀린 왕국과 협조중인 국가들이 경계를 강화하면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남부 지역에서는 다수의 첩자들이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제국이었고 문화권이 같다 보니 첩자들의 활동이 유리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카버 왕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소?”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데…….”
첩보의 내용으로는 괴 선단은 배 한두 척이 아니었다.
그 형태도 남달랐고, 해적이라 보기에도 의문이 많았다. 오히려 정규군이라 봐야 할 정도였다.
그런 병력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가 중요했다.
거기에 가우리 로셀린과 마찰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적의 적이라는 증거였다. 그리고 적의 적이라면 이쪽 입장에서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말이다.
“일단 초원 쪽으로 상단을 꾸민 용병들을 보내 놓았으니 조만간 결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그리고 로셀린과 가우리 하이안 쪽의 동향은 어떻소 여전하오?”
“그야말로 물 샐 틈이 없습니다. 저번에도 우리 측 첩자들의 근거지들이 다수 포착되어 괴멸되었습니다. 반대로 우리 내부에서 적들의 첩보조직을 다소 포착했고 말입니다.”
“흐으음.”
갑자기 분주해진 첩자들의 왕성한 할동에 모든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마나석이 다수 풀려나오면서 이쪽의 분쟁을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 함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제국이 탈탈 털리며 돈이 되는 마나석들을 말 그대로 탈탈 털려씩에 이쪽은 그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풀려나오는 마나석을 경쟁적으로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물자를 그렇게 풀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반대로 이쪽에 풀어놓은 물량 이상으로 보유할 것이라는 예측도 해 보았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적에게 아무리 비싸더라도 전략물자를 넘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경계가 심해진다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의 전조일 수도 있고 반대로 저쪽에서 뭔가 우리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있을 수도 있소.”
“그렇습니다. 일단 이쪽도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습니다. 일부 전략가들은 가우리와 로셀린 쪽에서 새로운 곳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을 해 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곳?”
“예. 신대륙의 발견 말입니다.”
“으음.”
“분명 문헌에도 새로운 땅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지.”
신대륙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이쪽도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고 있었다.
이종족인 드워프들이 고향에서 떠나왔다는 언급도 있었고 반대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언급도 있었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언급은 바로 타이탄 일족에 대한 전설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화두가 된 것이 가우리의 기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간쟈 산맥에 둥지를 튼 가우리가 그렇게 오래된 국가라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구수도 전쟁 이후 밝혀진 바로는 경악할 만큼 적었다.
거기에 모든 구조물들이 백년도 안 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양식 면에서 생소한 것들이 많았지만, 그것과는 달리 지은 지 오래되었는가 아닌가는 조금만 잘 살펴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우리라는 제국이 다른 대륙에서 도래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었다.
처음에야 마족이니 뭐니 했지만 조금이라도 옛 역사를 접해 본 황가의 일족들은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가우리가 자신들이 온 곳을 다시 공략하는 것일까?”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괴물들이 쫓겨 왔다면 그곳은 또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있겠는가.”
카버 왕의 중얼거림에 좌중은 침묵했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지난 전쟁에서 보여준 가우리의 힘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소 당시에 가우리가 지금 정도의 힘만 있었어도 신성제국이 있던 전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짐작을 하는 것 자체가 생각만 해도 암담할 정도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핵심 구성원들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그 규모가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그렇기 때문이라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 대한 확보가 중요합니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그 초원으로 갔다던 인원들에 대한 확보가 먼저였다.
***
“후욱!”
“후우, 후우.”
“빌어먹을 무슨 괴물이 이렇게 많지.”
시에라 제국의 원정단인 디바인 퍼스 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원으로 넘어온 뒤로는 위험이 더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이 종족과 맞닥트리고 나서는 또다시 혼줄이 나 버렸다. 돼지머리를 한 근육질의 종족이었는데 일반 기사들이 말 그대로 힘으로 휘둘려 버렸다.
“그래도 이걸로 그들이 이쪽의 마수들을 우리 제국 쪽에 풀었다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북부 쪽으로 우리가 안전하게 갈 수 있느냐다.”
인원은 더 줄어 기사 셋에 병사 하나 그리고 술법사 하나였다. 소울아머 유저인 디바인 퍼스 백작을 빼면 정말 초라한 인원이었다.
다행이라고 할 것은 술법사가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고국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져 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바로 항해일지였다.
그나마 그게 있어 다행이었다.
“전방에 상단으로 보이는 무리가 보입니다.”
“상단이 맞나?”
초췌한 일행들이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로셀린 왕국의 깃발이 보인다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로셀린 왕국이라는 말에 디바인 백작의 얼굴 위로 다급함이 서렸다.
아직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당연히 상단이라지만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런 초원을 지나는 상단의 호위병력의 규모가 작을 수는 없었다. 이상한 마물들이 돌아다니는 이곳을 지나려면 충분한 무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저쪽 언덕으로 몸을 피하심이…….”
그때 언덕 쪽에서 한 무리의 말들이 몰려나왔다.
“이런!”
“저, 적들에게 먼저 노출이 된 듯합니다!”
몇 안 남은 호위기사가 비명과 같은 외침을 토했다.
“이익!”
이를 악 물은 디바인 백작이 말을 돌렸다. 하지만 다시 멈추어서야만 했다. 눈앞이 일렁이더니 허공에 떠 있는 인물들이 다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마법사…….”
하나 남은 술법사가 나서려 했으나 디바인 백작이 그를 막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디바인 백작이 가슴의 소울스톤을 잡았다. 이제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때 전방에서 로브를 입은 마법사 하나가 백기를 들고 다가왔다.
적의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적의가 없는 이들이 초원에서 소수에 불과한 이들을 포위하며 올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들의 행색은 소규모 상단 혹은 소규모 상단이 낭패를 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기를 들고 온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다를 건너 온 손님들이 맞으신지요.”
순간 디바인 백작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분명 로셀린 왕국 소속의 상단이라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온 손님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우린 초원을 지나던 중에 습격을 받아…….”
일단 기사가 나서서 준비된 변명을 뱉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로셀린 왕국 쪽에서 탈출하신 분들 아닙니까?”
다시 이어진 질문에 기사는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할까요.”
디바인 백작 뒤의 기사가 조용히 질문을 했다. 물론 시에라 제국의 말이었다. 지켜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다시 마법사로부터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맞군요. 통역마법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생소한 언어인 것으로 보아 바다를 건너신 것이 분명하고 말입니다. 그 악마 같은 가우리 놈들에게 당하신 분들이 맞습니까?”
악마같은 가우리라는 말에 입을 다물고 있던 디바인 백작이 입을 열었다.
“헤네시아?”
“이젠 옛 이름입니다.”
“그건 알고 있소. 가우리 놈들에게 당한 제국의 이름.”
디바인 백작의 말에 마법사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전 북부 헤네시아의 패자인 카버 왕국 소속 마법사입니다. 여러분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 말에 디바인 백작은 물론이고 기사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 그들에게 마법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초원지대는 우리 영역이 아니기에 이렇게 위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대들을 환영합니다.”
마법사의 환영인사에 디바인 백작은 자세를 바로 하며 입을 열었다.
“대 시에라 제국 신대륙 원정단 단장인 디바인 퍼스 백작이오. 몰골은 이렇지만 폐하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소이다.”
마법사의 얼굴 역시 더없이 밝아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디바인 백작과 마법사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