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67
232화 잔치를 벌이며
사방에서 모래를 뿌리고 일부 술법사들이 물을 동반하는 술법을 이용하여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적이 공격해 온다!”
여태 구경만 하던 부흥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화살이 날아온다!”
이미 성벽 위는 아수라장이었다.
대열은 흐트러진 지 오래였다. 전투 중에 화공이야 있을 수 있다지만 이런 식으로 불비가 내리는 것은 없었던 일이기에 대열을 갖추고 뭐고가 있을 수 없었다.
“막아!”
불을 끄던 일부 술법사들이 다시 방어술을 펼쳤다. 그 와중에 병사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야 할지 불을 꺼야 할지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 지휘탑에서 노성이 터져나왔다.
“우왕좌왕하지 마! 불을 꺼라!”
성이 쩌렁 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외친 가든 후작이 이를 갈았다. 분명 화살이 날아오고는 있었다. 그러나 각도를 보니 그저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물론 화살이라는 것이 그 목적이 있듯이 맞으면 위험할지 모르지만 힘이 떨어질 때 즈음 떨어지는 화살은 갑주로도 충분히 튕겨 낼 수 있었다.
그걸 병사들이 당황해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아주 가지고 노는 군.”
그 증거로 적들은 화살을 연거푸 쏘아 내고는 있지만 아직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다.
“대응할까요?”
“아니. 빌어먹을 무슨 놈의 화살인지 모르겠지만 사거리가 우리보다 멀다.”
헨리 백작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가든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성벽 위의 유리한 지형에 있음에도 여기서 화살을 쏜다고 해도 닿을까 말까 할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적의 화살이 닿는다는 것이 더욱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풍계술법인가?”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 풍계 술법사들의 술법을 이용하여 화살을 더 멀리 날려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 멀리는 날아가지만 떨어질 때 즈음에는 위력이 한참이나 떨어진다.
보통 혼란을 주기 위해 쓰는 방법으로 종종 이전 전쟁에서도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물론 적들의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게 하는 목적도 있었고 말이다.
가든 후작의 예상대로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지만 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가든 후작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개 같은!”
사방에서 병사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우와악!”
“불이 옮겨 붙는다!”
화살에 매달려 있는 것은 말먹이로 쓰일 만한 지푸라기들이었다.
물론 멀리서 쏘아진 화살이었기에 많은 양의 지푸라기를 매달 수는 없었다. 그러나 화살의 수가 적지 않다보니 그것만으로도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에는 충분했다.
그것도 제대로 매달려 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말먹이로 쓰이는 건초를 화살에 엮거나 묶어 쏘아보낸 것들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제라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꺼져가는 불씨는 살려야 제맛이지.”
“흐흐흐.”
“좋군.”
제라르의 말에 구신을 비롯한 활을 쏘아낸 병사들이 다들 히죽 웃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의 활이 사거리가 멀다지만 지푸라기까지 매달고 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살상력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술법사 중 하나가 멀리는 보낼 수 있다면 말한 풍계 술법과 마법사들의 풍계마법을 이용하여 더 멀리 날릴 수 있었다.
어차피 쏜다 해도 적들의 술법사들이 건재한 이상 막힐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불쏘시개를 날려보내느 것이 목적이라면 별 문제는 없었다.
방어술에 막혀도 어차피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바닥에 꺼지지 않은 불이 있다면 다시 옮겨 붙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작은 불이 더 생길 정도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어 간다는 점에서 나쁠 것도 없었다.
“뭐 이쯤에서 몇 놈쯤 잡아 주면 더 혼란스럽겠지?”
공중의 마법사들의 관측한 결과 예상대로 적들은 불을 끄는 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이쪽이 쏘아 보내는 화살이 불쏘시개 이상의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트드드득!
제라르의 옆에서 수호를 비롯한 묵갑귀마대 대원들이 일제히 화살을 재고 있었다. 노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복합궁이라면 충분히 닿을 거리다. 거기에 이들이라면 화살에도 충분한 일가견이 있었고 말이다.
“자, 준비되었으면 쏘세요!”
제라르가 활기찬 음성을 내뱉으며 손을 앞으로 휘저었다. 그와 함께 비틀린 소리를 만들어 내며 재어져 있던 화살들이 일제히 시위에서 튕겨져 나갔다.
투두두두둥!
“이 병신들아! 화살 신경 쓰지 마!”
“불부터 꺼라!”
“전열을 다시 갖춘다! 빨리 움직…….
투퍽!
방금 전까지 병사들에게 욕설을 하며 명령을 내리던 기사 하나가 성벽 위에서 사라졌다.
“어?”
“히익!”
퍼퍽! 퍽!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던 병사들도 또 머리 위쪽에 방어술을 적극적으로 펼치던 술법사 혹은 술사들도 피를 뿌리며 나가 떨어졌다.
“화, 화살이…….”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힘없이 떨어지다가 갑주에 튕겨나가던 화살이 아니었다. 가벼운 복장의 술법사다 술사의 경우는 그렇다 쳐도 온몸을 갑주로 무장한 기사들마저 화살에 맞아 고꾸라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히 수십은 되는 인원들이 화살에 맞아 고꾸라졌다.
물론 성벽 위에 있는 병력에 비하면 적은 수였지만 문제는 꾸준히 맞아 쓰러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십이 억 하는 사이 백이 넘어가고 이백에 달해 갔다.
그러자 공포는 더욱 빠르게 확산이 되었다.
따아앙!
가든 후작이 휘두른 롱소드가 화살 하나를 쳐냈다.
그러자 귀청을 시끄럽게 울리는 쇳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걸 뒤늦게 본 이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후작님!”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허…….”
가든 후작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의 롱소드를 내려다보았다.
손아귀에 아직도 화살을 쳐낸 울림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 먼 거리를 날아왔음에도 말이다.
“이건 진짜군.”
가든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그저 술법을 이용해 사거리만 늘린 것이 아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성벽 위에서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막아!”
이내 일부 불을 끄던 술법사들도 동작을 멈추고 날아드는 화살을 막기 위해 분주해졌다.
어둑해진 무렵.
성벽 위에는 어느 정도 불이 잡혔는지 불빛보다는 자욱한 연기가 더 많이 피어올라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을 마주한 부흥군의 진영 사이에도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고기가 진리야.”
제라르가 여기저기 피워진 모닥불 위에 익어 가는 고기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일루이먼 부흥군의 수장인 라임 론 일루이먼 18왕자가 입을 막고 있었다.
“웁!”
“참으십시오.”
“그대들은 고기가 들어가오?”
라임 왕자의 질문에 포브스 나이븐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시에라 제국의 성쪽에서는 사람 탄 냄새가 풍겨 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버젓이 고기를 굽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와 달리 제라르와 가우리 소속 인원들은 고기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만은 아니었다.
일루이먼 부흥군 출신의 병사들 역시 고기가 익어 가는 모습을 보며 활짝 웃으며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만 그런가 봅니다.”
“으음.”
라임 왕자가 그제야 병사들을 보았다.
다들 이 와중에도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함빡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전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캐먹고 다니던 이들이었다.
고기는 사치였다.
혹여 사냥을 했다고 해도 멀겋게 국물을 내어 나누어 먹는 게 전부였던 그들이었다.
물론 가우리로 잠시 넘어가 있으면서 배는 곯지 않게 되었지만 언제나 고기는 기다려지는 음식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가 배가 부르긴 한가 보오.”
그 모습을 보며 라임 왕자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왠지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같이 손 안 대고 대승이나 마찬가지인 결과를 만들었지만 먹는 거 하나가지고 호들갑을 떤 거 같아서 더욱 창피했다.
“뭐, 우리도 먹어 봅시다. 어차피 놈들의 선물 아니오?”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은데…… 이러고 있는 게 더 꼴사나운 것 같소이다.”
그렇게 말하고 애써 웃으며 걸어가는 라임 왕자를 보며 포브스 자작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왠지 대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오묘한 표정의 라임 왕자를 보며 구신이 히죽 웃었다.
“이제 고민이 끝났나?”
“예?”
“아직도 사람 탄 내랑 고기 익는 냄새랑 구분이 안 가나 봐?”
“웁!”
구신의 말에 라임 왕자가 입을 움켜잡았다. 그걸 본 구신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시에라 제국 놈들이 남긴 고기다.”
지금 익어 가고 있는 고기들은 시에라 제국 토벌대가 남긴 말들이었다. 부상을 입어 쓰기 어려운 것들을 도축한 것이다.
“이렇게 맛나게 먹어 주고 또 그걸 바탕으로 힘까지 내주면 얼마나 분통 터지겠냐?”
“예?”
“같은 편이 이럴 정돈데 저쪽은 얼마나 열 받겠냐고?”
구신의 말에 라임 왕자의 표정이 변했다.
“그럼?”
“뭐 겸사겸사.”
구신과 라임 왕자가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고기를 뜯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라임 왕자의 눈에 불신이 담겼다.
“그냥 즐기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겸사겸사라고 했잖아. 아마 지금쯤 미칠 걸? 내 말이니 믿어도 좋아.”
구신의 말에 라임 왕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 말대로 다른 이의 말이 아닌 구신이 한 말이다. 그가 내뱉는 말은 묘한 힘이 있었다.
“미치겠군.”
가든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멀리서 풍겨오는 고기 냄새와 이 주변에서 풍겨 오는 탄내가 어우러지면서 더욱 열이 뻗치게 만들었다.
“저걸 저대로 두어야 합니까?”
“문 열고 나가면?”
“크윽!”
“놈들이 으악 하고 도망이라도 칠까?”
가든 후작이 이를 갈면서도 냉정하게 판단했다. 모닥불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궁수로 보이는 이들이 제일 먼저 보였다. 그 궁수들 주변에는 고슴도치 같은 것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여기서 뛰쳐나가는 순간 불화살이 먼저 날아들 것이다.
그리고 그 불빛을 바탕으로 달려 나가는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을 그들이 쏘아 낸 화살이 반길 것이고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해선 안 될 미친 짓이었다.
“제대로 미친놈과 마주하게 되었어.”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하, 하늘에서 뭔가가!”
“달을 보십시오!”
또다시 보였다. 낮에 보았던 그 까만 점들이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술법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낮의 악몽이 기억나는지 병사들이 창백한 얼굴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불을 조심하라!”
악다구니와 같은 외침이 터져나왔다.
하늘로 술법사들이 펼친 방어술이 우산처럼 다시 펼쳐졌다.
“내가 참 병신이 된 기분이야.”
이를 악물은 가든 후작이 핏발이 선 눈으로 적진을 바라보았다.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