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69
234화 이런 전쟁은 할 맛 난다.
필리어리 왕국의 베프 리온 백작은 얼이 빠져 있었다.
처음 카말 왕국으로 사신으로 갔을 때만 해도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바위 기사라더니…….”
시에라 제국을 상대로 선두에서 말 그대로 활개를 치고 있는 헬리오스 바이칼 공작을 보며 경외감이 서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상대하는 적은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 셋이었다.
그런데 그 셋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다섯 명이 힘을 합쳐서 쓰러트리지 못한 이를 셋이서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 증거로 바이칼 공작의 발치에는 몸뚱이가 반쯤 잘리고 머리가 사라진 시체 둘이 뒹굴고 있었다.
물론 로우급이라 폄하되는 이들이었지만 저렇게 나뒹굴 실력자들은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캬악!”
“이 미친놈들!”
“도, 도망쳐! 악마들이다!”
꽁지머리를 날리며 나아가는 계웅삼의 모습.
“농부라도 되는 것 같군.”
베프 백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살짝 휜 장도로 이리저리 휘두르며 다니면 그 앞에 누가 있던 베어 넘기고 있었다.
뭔가 저항을 하고 있는데 그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농부라고 비유를 한 것이다.
가만히 서 있는 농작물을 수확하는 농부. 낫질을 하면 하는 대로 그냥 서 있는 농작물을 수확하는 그런 농부.
그게 적들에게는 악마고 사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하나가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는 마치 대장을 따르듯 비슷한 행색으로 달랑 칼 한 자루를 든 중년인들이 오십여 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울아머 유저 하나가 포효하며 달려들었지만 웅삼에게는 채 닿지도 못했다. 그를 향해 중년인들이 스치고 지나가자 온몸이 난도질 당한 채 나자빠졌다.
마치 급류에 휘말려 넝마가 된 이처럼 말이다.
“무슨 전쟁이 이렇게…….”
“시에라 제국이 맞습니까?”
베프 백작이 옆을 돌아보았다.
최후의 일전이라도 하곘다는 듯 비장하게 달려 나갔던 필리어리 왕국의 무장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베프 백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어느 정도 겪어 보았던 자신도 믿기 어려운데 저들이라고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이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십여 개의 점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동맹국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들로 수배에 달하는 술법사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고 치고 빠진다.
비교하자면 꼭 음식에 엉켜 붙으려 하는 날파리들 같았다. 그러나 그 위력은 결코 날파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시에라 제국의 술법전단들의 다수를 묶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리어리 왕국의 술법전단이 자유로워졌다.
그 화력이 더해지니 일반 병사들간의 전투는 이쪽이 충분히 해볼 만했다. 거기에 걱정하던 소울아머 유저들을 가우리 동맹군이 도맡으니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이건 우리 전쟁이오.”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워서.”
“나갑시다.”
베프 백작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시에라 제국. 언제나 두렵고 걱정되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상대였다. 승리를 점치기보다는 시간을 끌며 적들의 공세가 멈추기를 바라며 버티기만 했던 상대였다.
지난 제국과의 전쟁에서 그들을 몰아내었던 전적이 있었지만 그건 이쪽의 실력 덕은 아니었다.
북부의 충돌 때문에, 혹은 전 황제의 건강 때문에 회군했던 이유가 컸다.
하지만 전쟁 전에는 참 암담했다.
황제는 젊고 건강한 자로 바뀌었고, 삼국동맹은 온전치 못했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시에라 제국을 상대로 압도하고 있었다.
“내가! 필리어리의 베프니라!”
베프 백작이 포효를 터트리며 나아가 아군 병사를 향해 칼을 내리치려던 기사의 목을 날렸다. 이어 그가 질주하는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크하하! 이거야 이거!”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엔 니들이 똥줄 한 번 타 보거라!”
모자란 실력을 돈지랄로 버틴다는 오명을 받아 왔던 필리어리 왕국이었다. 물론 아니다. 아무리 재화가 넘쳐난들 시에라 제국에 대항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걸 충실한 무장으로 보충했을 뿐.
소울아머 전력만이라도 어느 정도 대등해지면 해볼 만하다던 탁상공론.
그런데 그게 이제 맞추어졌다. 아니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동맹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이건 기회였다.
베프 백작이 외쳤다.
“우리도 니들 땅 좀 밟아 보자!”
베프 백작이 소울포스를 뿌리며 달려오는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를 바라보며 나아갔다.
***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이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바르르 떨었다.
불꽃은 더 이상 없지만 여전히 새오리 만들어진 고기 탄내가 콧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역겹게 만들었다.
“이런 씨부랄!”
가든 퍼시발 후작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 나왔다.
그도 그럴 만 한 것이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은 바로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이었으니 말이다.
이 사단이 난 것은 바로 물기였다.
“번개라니! 번개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물론 진짜 날벼락은 아니었다. 술사들이 만들어 낸 것과 같은 그런 인간이 만들어 낸 벼락이었다. 다만 그 위력이 꽤나 컸다는 것이고, 그리고 물기를 채 닦지 않은 이들이 노출이 되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그 노출된 이들 중 기사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반 병사들은 가죽갑옷에 가죽신이 기본이었다. 일부 병장기에서 감전이 되어 버들거리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사들의 갑주가 문제가 되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쇠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찜찜한 마음에 물기 위로 모래를 덮은 것 덕에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까지 편한 건 아니었다.
“병사들 약 삼백에 기사들이 약 오십 정도가 쓰러졌습니다.”
헨리 퍼시발 백작의 보고에 가든 후작이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보고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적진을 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펼쳐진 광경이 그곳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아드드드드!”
“어거거걱!”
일부 병사들이 몸을 기괴하게 꼬며 춤을 추듯 하고 있었다.
“푸하하하!”
제라르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그가 은화를 한 명에게 던졌다
“상이다!”
“우오오오!”
뇌전에 감전된 흉내를 가장 잘 낸 병사들에게 은화가 쏟아졌다. 족히 백여 명이 되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상을 받은 이들이 환호를 터트렸다.
동시에 웃음꽃이 폈다.
그걸 보며 라임 론 일루이먼 십팔 왕자는 실소를 터트렸다.
“푸흐흐.”
“웃기긴 합니다.”
포브스 나이븐 자작이 마찬가지로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붙여 왔다.
“정말이지. 가든 후작은 열 받아 미칠 지경이겠군.”
“시뻘건 것이 마치 화산이라도 터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소울아머 유저의 초인적인 시력 덕에 라임 왕자의 질문에 나이븐 자작이 확인을 해 줄 수 있었다.
밤사이 몇 번이고 물세례를 끼얹더니 아침식사 시간 때에는 가우리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번개를 만들어 쏘았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그 결과고 말이다.
물론 생각보다 큰 성과는 아니었지만 전날의 고기잔치까지 생각한다면 제대로 속을 긁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나올까?”
“가든 후작이라면 반반이겠지만 헨리 백작이라는 이를 머리로 끌고 왔다 하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가든 후작도 알려진 바와 달리 참을 성 있는 지휘관이고 말이지.”
제국의 공후작쯤 되면 주변국에서는 알 사람은 다 안다.
그 중 가든 후작이나 헨리 백작에 대해서는 꽤 알려진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과 쏜튼 백작의 조합 덕에 종종 비교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수완도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왕국쯤 되었으면 고개나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다.
“차라리 다행입니다. 수뇌부만 바뀐 거니까요.”
“그건 그렇지.”
포브스 자작의 말에 라임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대의 수장으로 온 것이기에 그가 이끌고 있는 병력의 질은 이전과 같았다. 연이은 패배로 인해 사기가 바닥까지 내려온 병사들이었다.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시에라 제국이 이들 부흥군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바가 이 정도라는 것이다.
“프라임 공작이 터그람에 있는 게 다행인 거지?”
“다행인 거지요. 물론 쏜튼 백작이 이전에 물먹은 것도 다행이고 말입니다.”
포브스 자작의 말에 라임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임 공작이 없어도 쏜튼 백작이라면 꽤나 입김이 강한 이중 하나였다. 그러나 전쟁 전부터 초기까지 실패한 일이 적지 않게 작용하여 지금은 발언이 이전만 못하다는 첩보를 들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황제의 자존심 같은 것도 있고 말입니다.”
이어진 포브스 자작의 설명에 라임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왕가의 일원이니 이해 할 수 있었다. 외척까지는 아니었지만 주변의 힘을 빌어 왕위 혹은 황위에 오른 이의 자격지심은 역사가 증명했다.
물론 프라임 공작의 힘이 강력하기에 그걸 크게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황제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그 덕에 이들이 조금이나마 수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뭘 한다고 하지?”
“글쎄요.”
포브스 자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저들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이쪽도 나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마도 다른 쪽 상황이 알려지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아…… 카사 백작이었던가.”
새벽에 혼란을 틈타 부흥군에서 카사 노바 백작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가 이탈을 했다.
인근의 다른 성을 요격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굳이 발목을 잡힐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을 등 뒤에 두고 움직이기도 힘들고 말이다.
그래서 작전이 바뀐 것이다.
여기서 저들을 지켜보며 주변을 무너트리는 것으로.
“이거 꼭 점령전 하는 입장 같네.”
라임 왕자가 허탈하게 말을 뱉자 포브스 자작이 웃으며 대꾸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에 우리 땅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군. 우리 땅은 없었지.”
이미 망한 나라.
그렇기에 이미 그들의 땅은 없다고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시 넓혀 가야지. 물론 온전히 우리 땅이라 할 수는 없지만.”
라임 왕자는 얼굴을 굳혔다.
말이 부흥군이지 제대로 된 부흥군은 아니다. 그나마 저들이 인정을 해 줘서 이름 붙이고는 있지만 말이다.
“더 열심히.”
라임 왕자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벼 봐야지.”
“…….”
“우화하하하! 제라르님 정말 최곱니다!”
웃으며 달려가는 라임 왕자의 뒷모습을 보며 포브스 자작이 이마를 짚었다. 실전과 훈련을 병행하며 죽도록 구른 만큼 실력과 안목이 늘었지만 그보다 더 많이 늘은 것은 바로 아부하는 능력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구신님! 뭐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물론 포브스 자작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방긋 웃으며 꼼쳐 놓은 술을 들고 달려 나갔다. 군주가 가는데 신하가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