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78
243화 바다를 가르다
“장관이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마법사가 혀를 찼다.
수만의 병력이 일시에 십여 개의 무리로 나뉘어졌다. 기마병력의 비율이 높다 보니 확실히 기동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흩어지는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가 털을 빳빳히 세운 것 같았다. 그렇게 기마병력이 흩어지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본진병력은 그대로 진군을 해 나갔다.
물론 기동성이 떨어진다 해도 기마병력에 비해 떨어진다는 의미지 느린 것은 아니었다.
전마가 아닌 짐말 등이었지만 역시 말은 말이다.
본진의 말과 마차들이 질주를 계속 했다.
“우리도 빨리 움직이자고!”
“알았소!”
마법사들이 먼저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영지를 비우고 탈주하는 영지민들과 병사들을 찾아야 한다. 그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렇게 마법사들 역시 각각 떨어져 나갔다.
“저, 적들이다!”
뒤쪽에서 울려오는 말발굽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틀거리 아니었나?”
“놈들의 진군 속도가 상상 이상입니다!”
영지를 비우고 집결지로 향하던 데이브 남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소, 속도를 올려! 집결지까지 어떻게든 가야 한다!”
성벽을 방패 삼아 싸워도 버티기 힘든 마당에 개활지에서 만나면 정말 답이 없었다. 하지만 이동은 더디기만 했다.
뒤를 따르는 영지민들의 발걸음은 아무리 재촉해도 늦었고 병사들 역시 헐떡거리며 뛰어도 속도가 좀체 나지 않았다. 영지에 있는 네발 달린 짐승들을 모두 동원해 수레를 끌고 했지만 적들은 거의 모두가 기마병력이었다.
“비, 빌어먹을 어쩌지.”
마음 같아선 기사들만 데리고 몸만 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자시는 더 이상 영지를 운영해 나갈 자격이 사라진다. 고심하던 그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방진을 구성해라! 영지민들에게 알려라! 결사 항전한다! 모두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어라!”
데이브 남작의 외침에 영지민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영지민들은 병사들이 앞쪽에 세우기 시작했다. 영지민들은 등에 떠밀리듯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병사들이 창대를 세워 땅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걸 본 영지민들이 울상을 지었다.
이건 누가 봐도 영지민들을 방패 삼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실제 데이브 남작의 생각도 비슷했다. 적들의 기마병력의 전진을 막을 전력은 안 된다. 그렇기에 영지민들을 인간 방패로 세우고 병사들로 하여금 막는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사이 상황을 봐서 자신은 기사들을 이끌고 몸을 빼낼 생각이었다.
그냥 도주하면 문제가 되지만 항전하다가 버티지 못해 몸을 빼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변명거리도 될 수 있었다.
물론 영지를 다시 획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최소한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영지민을 방패 삼은 영주라는 오명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생각이 있었다.
적들은 일반 영지민들을 학살하는 악독한 놈들이라고 보고 올리면 된다. 그렇기에 영지민들을 앞세운 것이다. 병사들의 앞 그리고 영지 장정들 사이에는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있었다.
말은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그 역시 변명이다. 최소한 나중에 말이 나갔을 때를 대비하여 최소한 약한 이들을 안전하게 병력의 중앙에 두었다고 할 참이었다.
그렇게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갑자기 하늘 위가 뜨거워졌다.
“어헉!”
“수, 술법사! 방어술을 펼쳐!”
허공에서 커다란 불덩이 세 개가 후미에 있는 데이브 남작에게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술법사들이 방어술을 펼쳤다.
콰콰쾅!
“아악!”
“억!”
데이브 남작 주변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막기는 했지만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던 것이다. 몸에 불이 붙은 병사들이 바닥을 굴렀다. 그때 전면으로 기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지민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달려오던 기마가 방향을 꺾기 시작했다.
“이, 이런 빌어먹을 놈들!”
우회하겠다는 판단이 분명했다. 그때 영지의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그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는 이들은 없었다.
“안되겠습니다! 바로 몸을 빼내셔야…….”
그때 뒤쪽에서 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히히힝!
“무, 무슨 말 울음소리가!”
데이브 남작은 온몸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말 울음소리가 맞는데 마치 맹수가 포효하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뒤쪽의 수풀을 헤치고 한기의 기마가 튀어나왔다.
“저거!”
순간 데이브 남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 한기였지만 그 한기가 문제였다. 다섯 개의 뿔이 사방으로 찌를 듯 뻗어 있는 갑주. 그것을 상징하는 것을 그도 정보를 들어 알기 때문이었다.
“가, 가우리의 황제다!’
한기에 불과하니까 사로잡아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미 그의 손에 죽어 나간 소울아머 유저의 수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 바비안 준 남작! 막게!”
“아, 알겠습니다!”
데이브 남작의 말에 영지의 기사단장인 바비안 준 남작이 기사 여섯을 끌고 달려 나갔다. 그 사이 데이브 남작은 말머리를 돌렸다.
바비안 준 남작이 그를 막을 리 없다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탈을 막 시작하는 순간 땅거죽이 갑자기 쑥하고 올라왔다.
“어헉!”
갑자기 땅에서 뭔가가 솟구치자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멈추어 섰다. 그 말에 탄 데이브 남작 역시 비명을 내질렀다.
와작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솟구친 흙벽에 막힌 데이브 남작이 뒤로 튕겨지며 말과 함께 쓰러졌다. 그를 따르던 기사 일부도 마찬가지였다.
“커헉!”
말 아래에 깔린 데이브 남작이 버둥거리다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인간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 마법사!”
마법사라는 존재가 분명했다. 그 마법사라는 존재는 데이브 남작을 버러지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몇 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영지의 기사단장인 바비안 준 남작을 비롯해 그가 끌고 갔던 기사들이 모조리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몸에서 피를 뿌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고진천이 질주해 오고 있었다.
“하, 항복 하겠습니다!”
데이브 남작의 항복선언이었다. 그리고 그게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의 머리가 잘려 나가 하늘을 날았다.
데이브 남작은 그렇게 목숨을 잃었고, 영지의 병사들은 전의를 잃었다.
***
섬 위로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카버 왕국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었다.
“벌써 네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마법전단장에게 보고를 올리는 마법사의 표정 위로 침통함이 담겨져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 명은 바다를 건너가다 폭풍우를 만나 떨어져 나갔다.
솔직히 망망대해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둘은 탈진이었다.
두 명씩 짝지어 날던 마법사들이었다. 한 명은 하늘을 날고 다른 한 명은 그에 매달려 힘을 비축하다가 교대하는 방식으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마법사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쉰다 해도 하늘이다. 체력적으로 탈진에 이른 마법사들 중 한 개 조가 그렇게 또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제대로 구하지도 못했다.
바다로 떨어지며 정신들을 잃었는지 떠오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폭풍우를 통과하며 다들 진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살다가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되다니.”
도착한 섬을 보며 마법전단장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도착한 그들은 이곳의 좌표를 설정하며 대응 마법진을 그렸다. 그들은 징검다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라로 향하는 징검다리.
“다들 고생했다. 휴식을 취하도록 하라.”
일부 마법진을 만드는 마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미 퍼져 있었다. 확실히 이편이 배로 건너는 것보다는 빨랐다. 그러나 희생도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초장거리 이동마법진은 가우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아무리 그간 이동마법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마법전단장도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지도를 펼쳤다.
시에라 제국에서 넘어왔다던 이들의 해도를 그들의 양식대로 고쳐 쓴 것이었다. 그나마 이것이 있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 절반 온 건가.”
마법전단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마법진들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전단과 교대를 하게 된다. 그들이 다시 다음 지점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지나오며 설치한 이동마법진은 네 곳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더뎠다.
대응진을 그려서 본국에서 마법사들이 옮겨 온다. 그리고는 좌표를 따고 다음 이동을 위한 이동마법진을 설치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짧을 수는 없었다.
대응진과 달리 중심이 되는 이동마법진은 대공사다.
그냥 뚝딱 그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본국에 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다가온 마법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을 본 마법전단장의 얼굴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리고 설마하고 예상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이동마법진의 설치가 더뎌져서 다음 지점까지는 우리 전단이 맡으라는 명입니다.”
“젠장. 12전단이 모조리 바다에 수장된 걸 몰라 그나마 우린 폭풍의 끝자락이라 살아남았다고!”
마법전단장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본국과 보고를 한 마법사는 죄가 없다. 그 역시 이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있는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미치겠군.”
마법전단장이 얼굴을 감싸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컸기에 못 들은 이들은 없었다. 다들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있었다.
“젠장.”
욕설만 늘어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명령이다. 시간과의 싸움이었기에 그들의 선택지는 몇 없었다.
“이틀간 휴식한다.”
“본국에서는 하루 휴식 후 출발하라고…….”
“출발했다고 하고 하루 더 쉬어! 다 죽고 싶어!”
마법전단장의 외침에 통신을 담당한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하루를 쉬는 것과 이틀을 쉬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다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도록.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법 전단장의 말에 마법사들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거짓 보고를 하는 것이지만 그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 몇 명이 더 바다에 빠질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
샤우 환 카버 왕은 궁정마법사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을 통한 징검다리 계획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궁정마법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마법전단 하나가 통째 날아갔고 그 외의 마법전단에서 마법사들의 희생이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공은 마법사들의 것이다. 역사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알겠는가.”
그 기색을 알아챈 카버 왕의 말에 궁정마법사는 그저 허리를 숙이며 대답할 뿐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귀족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그런데 모든 것이 확인이 되면 어찌 하실 것이옵니까 연방제국이나 해상제국 쪽은 아직도 시끄럽습니다.”
전쟁 이후의 여파 때문에 쪼개졌던 연방제국이었다. 물론 아직 이름은 걸어 두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두세 개의 계파로 나뉘어 있었다.
해상제국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다수의 배를 잃은 영주들이 서로를 먹잇감 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소문을 낸다.”
“예?”
“가우리의 주력이 이미 빠져 나간 상태라는 소문. 나라가 텅 비어 있다는 소문.”
귀족들의 눈이 커졌다.
그때 카버 왕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일을 저지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