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79
244화 참담하고 참담하다
카버 왕의 말에 놀랐던 귀족들의 눈동자가 차츰 차분해졌다. 각자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우리가 타 대륙을 발견하고 그쪽에서 싸우고 있다 해도 부담이 컸다.
대규모 병력이 넘어갔다는 말은 이미 그곳까지 이동마법진이 뚫려 있다는 말이 되었다.
다른 국가들이 할 수 없는 기술력이었다.
따지자면 가우리가 위태롭다면 언제든 병력을 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말이 쉽긴 하지만 정말 본국이 위태롭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지금 시에라 제국의 인원들 이야기만 듣고선 타 대륙의 제국이란 곳이 얼마나 강력한지 확신할 수도 없다. 물론 술법이라던지 소울아머라는 것을 보면 확실히 군침이 도는 물건들이기는 했다.
그것만으로 기사들을 무장시키면 당장 가우리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없잖아 있었다.
소울아머 유저와 공방을 펼쳐본 검호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재능을 깎아 먹는 물건.’
쉽게 강해진 만큼 검술도 단조로워 진다는 것이다.
경지에 대한 갈증 역시 멈추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느 정도 재능과 실력만 있으면 어느 순간에 자신의 능력의 수배를 상회하는 실력을 펼칠 수 있다는 건 매력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만족하고 그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었다.
그건 바로 익숙해지면 된다는 것.
익숙해진 이들끼리 계속 공방을 나누며 실력함양을 꾀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검술의 발전은 계속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답도 나왔다.
물론 이것 역시 정담은 아니다.
아직은 저쪽 대륙의 일부만 본 것이고 그 일부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니까.
그러나 매력 있는 물건임에는 확실했다.
“평민들을 가르쳐 본다? 나쁘지 않아.”
평민이나 지위가 낮은 이들을 이용하여 전력을 올리는 방법은 충분히 고려할 만했다. 거기에 검술의 한계를 느끼는 이들을 통해 이걸 권장하고 고급인력은 계속 검술의 경지를 올리는 데에 집중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힐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거기에 이거소가 달리 수준이 낮은 이들을 위한 로우급이라는 것도 있다 하니 그것까지 생각하면 무장 수준이 꽤 높아질 수 있었다.
마법갑옷 같이 비효율적인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이 다음 지점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때 카버 왕을 향해 낭보가 전해졌다.
“마법사들은?”
“그게…….”
보고를 올리던 기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도중에 기상이 악화되어 절반 가량이…….”
“애석하군.”
희생은 추가로 발생이 되었지만 그보다는 빠르게 새로운 대륙에 발을 디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정마법사만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희생자들은 극진히 예우하여 그 자손들이 살아감에 있어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오.”
카버 왕의 말에 궁정마법사는 착잡한 마음을 지우며 대답했다. 이게 최선이었다.
배로 일주일을 갈 거리를 하루 안에 나아갈 수 있는 게 마법사다. 그걸 지금 무식한 방법으로 더 단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달 거리를 이삼일 만에 주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들의 희생과 그 속도를 이동마법진 설치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동마법진이 딱딱 시간에 맞춰 연결이 된다면 마법사들이 다음 섬에서 대응진을 그리는 순간 바로 연결해서 이동할 수 있건만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거리가 워낙 멀고 또 일정치가 않아 이동마법진의 설치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목표로는 좀…….”
그때 궁정마법사가 말을 꺼내자 카버 왕이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한 휴식을 먼저 취하라 하시오. 며칠 쉬고 난 뒤에 다시 출발을 해야겠지.”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교대는 어려웠다. 다만 지금 최종적으로 이동마법진이 뚫린 곳에서 다수의 인원이 출발했다. 물론 그들 역시 희생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선두의 인원에 어느 정도 보충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길을 뜷는 이들보다는 나았다. 아무리 해도가 있다 해도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부분을 따지면 이후 출발하는 인원들은 정해진 좌표로만 직선거리를 통해 날아가면 되니 말이다.
“그리고.”
카버 왕이 다시 입을 열자 귀족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상인들을 동원해서 소문을 흘리시게.”
“알겠습니다.”
“명 받드옵니다.”
대답하는 귀족들을 보며 카버 왕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분명히 움직이게 되어 있으니까.”
***
“그 소문 들었어?”
“황금의 땅?”
“어? 너도?”
슬레지안 해상제국령의 한 술집에서 선원들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주고받았다.
최근부터 돌고 있는 황금의 땅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거 뜬소문 아니띾? 레간자 산맥이 워낙 넓잖아. 그게 와전된 이야기라던데.”
“아무리 넓어도 그렇지. 레간자 산맥이 지금이야 오지지만 옛날에는 오지가 아니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시중에 돌고 있는 마나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게 레간자 산맥에서 나온 거라는 이야기가 많이 흘렀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바로 가우리가 새로운 대륙을 만나 교역하고 있다는 소문.
“지금 가우리 쪽이 텅텅 비었다는데.”
“그러면 뭐해. 중앙해는 건너기도 쉽지 않은데.”
해적왕이라 불렸던 제라르의 세력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범접할 수 없는 거대세력이 되어 버렸다.
해상제국의 해양세력에 비견될 정도이니 말이다.
문제는 슬레지안 해상제국의 해상 전력은 뭉치기가 쉽지 않고 그들은 뭉쳐 있다는 점이 확실한 차이점이었다. 거기에 그들은 세이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며 바다의 가호를 받고 있는 셈이니 넘보기 어려웠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사략해적이 아니라 제국이 전력을 모아 제대로 나서야 했다. 하지만 제국 내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기에 불가능 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슬레지안 제국의 해상전력과 그들의 힘은 지금은 비견될 정도라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역전이 될 가능성이 컸다.
“연방제국이랑 손잡으면 딱 좋은데.”
“빌어먹을 그 놈들이랑 손잡아서 좋은 꼴 못 보지. 그 짓을 또 해?”
이미 손잡았다 낭패를 당한 기억이 생생했다.
“그건 그렇지.”
“거기에 그 놈들 요즘도 지리멸렬하고 있잖아.”
“하여간 모래알 같은 놈들.”
선원들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쩌면 슬레지안 해상제국의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시점이 그들과 손을 잡은 뒤부터였으니 욕할 만 했다. 물론 모래알이라는 비유는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소문은 대륙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주 병신 짓들을 하고 있군.”
황성 쪽의 상호아을 알려온 서신을 읽고 있던 프라임 공작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손에는 구겨진 서신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빠르게 움직여야 할 듯하옵니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참모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주 빌어먹을 상황이군.”
프라임 공작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서신에는 황성에서는 프라임 공작이 황도로 복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또 일간에는 이번 침략조차 프라임 공작의 오판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가 터그람 왕국으로 직접 움직였기에 이런 수모를 겪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또는 그가 자리를 뜨려면 이런 일까지 염두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물론 황성에서 나온 말은 아니고 황도의 술집등지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었다.
결국 터그람 왕국 정벌을 마무리 하더라도 그 공은 지금의 일과 연동되어 상쇄될 가능성이 컸다.
대충 어떤 무리들이 머리를 쓰는 지 알 것 같았다.
“생각보다 얕보였군. 어떻게 된 게 집안의 쥐새끼들에게 더 얕보이나.”
허탈하게 웃는 프라임 공작의 말에 도열해 있는 노블기사단이 이를 갈았다.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지. 시간을 더 당겨야겠군.”
프라임 공작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주변에 도열해 있는 노블기사단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전투는 우리가 선두에 선다.”
프라임 공작의 선언에 다들 놀란 눈을 했다. 참모들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프라임 공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략이고 뭐고 지금은 힘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 줄 때이다. 시간 끌면 손해다. 모르는 건가? 아니면 힘으로 어렵다 생각하는 것인가?”
프라임 공작의 말에 참모들의 입이 다물려졌다.
“빠르게 부수고 진격한다. 가우리라는 놈들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쟁을 하며 그들을 보고 느낀 부분도 있었다. 날이 잘 선 무기를 어떻게 휘둘러야 가장 잘 쓸 수 있는지 말이다.
물론 이게 쉬운 건 아니다.
“배짱 좋은 인간들.”
프라임 공작의 입꼬리가 올랐다.
웅크리고 있던 터그람 왕국 원정군단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폈다. 그리고 일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
“저어어언하!”
카이거 루 마이어스 왕은 굳어진 얼굴로 달려들어 오는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어디인가.”
“크흑! 그게 프락셀 테다 후작의 방어진이…….”
귀족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카이거 왕의 눈이 감겨졌다.
참담한 표정이었다. 그리팔 후작을 미끼로 던지고 전선을 물려 대비했다.
생각보다 그리팔 후작이 시간을 많이 벌어 주어 필리어리 왕국으로부터 병력지원은 아니어도 충분한 물자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잠깐이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시에라 제국의 남하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잘 쌓은 성벽도 수성병기도 노블기사단을 앞세워 돌격하는 시에라 제국을 막을 수 없었다.
인간 자체가 공성병기다.
그런 이들이 한 전투에 수십씩 선두에서 밀고오니 그것을 막을 재간이 있겠는가.
며칠 사이에 전선들이 붕괴하다시피 했다. 거기에 이전처럼 지역을 장악하며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왕성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제국이 여태 보여주던 전쟁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필리어리 왕국은?”
카이거 왕이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귀족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어렵다 하옵니다.”
“어렵다…….”
카말 왕국과 운명공동체처럼 필리어리 왕국이었다. 그나마 지금의 지원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역사적인 역공에 나서고 있었다.
당연히 터그람 왕국을 도울 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 상황이 너무 위태로워 서신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전하. 남쪽으로 피하셔야 하옵니다.”
그때 한쪽에서 귀족들이 주저앉으며 외쳤다.
“남쪽으로 향하셔야 하옵니다!”
왕성을 버리자.
그게 지금 귀족들이 한 목소리로 내뱉고 있는 말이었다.
그들을 보며 카이거 왕은 고개를 떨구었다.
한순간의 판단으로 인해 이런 참담한 상황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후회되고 후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