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81
246화 공성의 시작
수레를 이끌고 가는 그리팔 후작의 패잔병 병력 앞으로 이십여 기의 기마가 달려왔다. 달려온 기마는 척후처럼 운용하는 병력이었다.
다행히 이전에 들렸던 패전지 주변을 오가는 말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리팔 후작의 상세가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에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전초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나아진 모양새를 갖출 수는 있었다.
병력도 이제 얼추 삼백여에 가까웠다. 나름 확보한 병장기로 무장까지 하고 있어 초반에 비하면 이제는 최소 단위 병력 구성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되돌아온 기병들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여기도 그랬군. 프락셀 테다 후작마저…….”
“거기에 이쪽은 패잔병도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들 격렬히 저항했었는지…….”
“왕성이 지척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
이쪽은 프락셀 테다 후작이 맡았던 대규모 방어선이었다. 그리팔 후작이 빠르게 뚫릴 것을 대비하여 전력을 제법 모아 두었던 것이다. 아마도 계획은 이곳을 거점으로 방어전을 펼치며 왕성을 통해 빠른 보급과 병력 수급을 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프라임 공작의 바뀐 전투 방식에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럼 결국 왕성에서 최후의 농성을 준비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그때 기병의 뒤쪽에서 노인과 아이를 태운 말이 다가왔다.
“이들은?”
그리팔 후작이 묻자 전초를 이끌고 다녀왔던 기사가 그들에게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팔 후작이시네. 보고 들은 대로 말씀드리겠나.”
그러자 노인은 황망한 얼굴로 넙쭉 엎드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리팔 후작의 말이 빨랐다.
“어이쿠, 그, 그리팔 후작님을…….”
“그러지 말게나. 내 듣고 싶은 게 많네.”
“아, 예예.”
그리팔 후작의 제지에 엎드리려던 자세에서 어정쩡하게 멈춘 초로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왕도 근처에서 약초를 캐는 노인이옵니다.”
“혹 그들이 벌써 왕도로 들이닥쳤더냐?”
놀란 그리팔 후작이 묻자 막혔던 둑이 뚫리듯 노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왕께서 우리를 버렸습니다요오오!”
그 말을 뱉고는 어깨를 연신 들썩였다.
그리팔 후작은 물론이고 뒤쪽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모두 경악한 채 눈물을 쏟아내는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
가든 퍼시발 후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변에서 분탕질 치던 병력은 어느새 다시 성 앞으로 도착해 있었다. 거기에 공성병기도 얼추 다 만들어지는 것 같았는데 아직 뭔가가 모자란지 공격을 해오지 않고 있었다.
“지원병력을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이 병력을 묶어 두려는 것인가.”
가든 후작이 중얼거리자 헨리 퍼시발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병력을 묶어 두려는 것 치고는 적의 전력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낮에도 시위라도 하듯 그 묵갑귀마대라는 이들이 성 주변을 돌며 한차례 화살을 쏘아 붙이다가 갔다. 그 덕에 수십여 명의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물론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매일같이 수십 명씩 다치다 보니 사기도 말이 아니었고 보슬비에 옷이 젖어들 듯이 병사들의 피해도 꽤 누적되고 있었다.
사기는 더할 나위 없었고 말이다.
이쪽은 매일 수십에서 백씩 다치거나 죽는데 적들은 이쪽이 쏘아 낸 화살을 비웃듯 이리저리 빠져 나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 저들이 공성을 시도할 때 치고 나가려던 계획을 세워 둔 참이었다. 아무리 사기가 떨어졌다 해도 이쪽은 수서아는 입장이고 저쪽은 공성하는 쪽이다.
이쪽이 유리한 건 당연했다.
그래서 병사들 중 입을 잘 쓰는 이들을 풀어 저들이 섣불리 공격 오지 못하는 이유를 풀어내었다. 아무리 신병이고 사기가 떨어졌다 해도 공성보다는 수성이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차라리 한번 싸우자는 기운도 돌았다.
그런데 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계속 화살만 날리는 일이었으니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가든 후작이 답답한 마음으로 적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한동안 새마냥 하늘을 맴돌던 적의 마법사들이 이제는 가끔 가다 한둘 정도만 날아오르다가 말았다.
“조만간 들이닥치기 위해 체력이라도 비축하는 건가.”
나름 예상해 보았다. 차라리 그러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자 들었다.
“어서 끌어올려!”
일루이먼 부흥군 병사들이 커다란 구덩이에서 얼굴이 허예진 채 기어 올라오는 마법사들을 끌어올렸다. 끌어올려진 마법사는 그대로 벌렁 드러누운 채 숨을 헐떡였다.
“허억! 미친…… 내가 후욱! 광부도…… 아니고…….”
그런 마법사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병사들이 물을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벌렁 나자빠진 마법사는 손을 들지도 못한 채 병사에게 입을 열었다.
“뿌, 뿌려 줘.”
“예?”
“그냥 얼굴에 뿌려 줘…….”
“예!”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이 일제히 마법사에게 물을 뿌렸다. 그러자 마치 달군 쇠에 물을 뿌린 것처럼 마법사의 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후우우.”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 마법사였다.
그가 나온 굴 안쪽에는 마법사들이 연신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디그!”
“디그!”
“디그!”
그리고 그 옆에선 술법사들이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길 주변을 다지는 술법을 부렸다. 무른 땅을 단단하게 만드는 술법이었다. 술법사들의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술법사들의 숫자는 많았지만 무른 땅을 굳게 만드는 술법을 깨우친 이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닌 탓에 그들 역시 중노동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쪽에 교대를 기다리던 마법사가 한탄을 했다.
“땅굴이라니……. 땅굴이라니…….”
그들이 있던 곳에서라면 있기 힘든 작전이었다.
성을 지을 때 이미 땅속으로의 침입을 막는 알림바법같은 것을 설치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 술법사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땅속을 감시하는 술법 같은 경우는 없다는 걸 알았다.
그 결과 이들은 땅을 파고 있었다.
“내 말이. 해자는 판 적이 있어도 이건…….”
“끙.”
마법사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딱히 반발하기도 어려웠다. 이보다 좋은 작전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안을 제일 먼저 통과할 이들은 이들이 뭔가 항의를 하기 어려운 인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교, 교대 좀!”
“젠장.”
자신의 차례가 된 마법사가 엉금엉금 기어오는 동료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마법사들이 환호 대신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입맛 벙긋 거렸지만 대충 그들이 무얼 그리 즐거워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남은 이들은 목적지 주변을 넓게 파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병력이 대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굴 안으로 무장을 갖춘 묵갑귀마대가 다가왔다. 그 선두에는 필리언 제라르가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그동안 잘들 쉬었지?”
뒤쪽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오늘 마무리해 보자고.”
그러자 마법사가 수정구를 통해 통신을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어둠이 깔린 밤 함성과 함께 일루이먼 부흥군이 대열을 갖추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만들었던 공성병기가 나름 조잡하기만 하지는 않았던지 돌을 날려 오고 있었다.
“꽤 멀리 날아오는데?”
그걸 본 가든 후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헨리 백작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돌이 가볍습니다. 사거리를 늘리는 대신 파괴력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시늉만 하겠다는 건가?”
“우리가 반격하기를 기다린 듯 합니다. 아무래도 성이니 날릴 수 있는 돌 같은 게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겠군.”
가든 후작이 헨리 백작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끋거였다.
그 결과 아직 이쪽은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적들이 쏘아 낸 공성병기가 성벽을 두들기고는 있지만 절반가량은 그 앞에 날아와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들은?”
“저쪽에 도열해 있습니다.”
“으음.”
가든 후작이 신경 쓰는 것은 그 묵갑귀마대였다. 그들은 대열의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이쪽이 틈을 보이면 한번에 들이닥치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그것들 배치는?”
“성벽 첨탑 쪽에 안전하게 대기 시켰습니다.”
혹여 눈먼 돌에 맞아 쓰러지거나 하면 아깝다. 저들은 묵갑귀마대를 상대할 자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을 묶으면 가든 후작과 소울아머 유저 그리고 로우 급 유저들이 합공을 가하며 숫자를 줄여 나갈 것이다.
“그래. 답답했는데 오늘 마무리 하자꾸나.”
가든 후작이 살기를 띤 눈으로 적들을 바라보았다.
“어흐흐!”
푸디딕!
밖에서는 함성과 소란이 일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배가 아파 공동으로 사용하는 변소에 주저 앉아 있던 병사의 마음은 조급했다.
그동안 딱딱한 빵 위주로 먹은 탓인지 잘 안 나오던 것이 신호가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 밀고 나오는 순간 적들이 쳐들어오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밖에서는 끊고 나오라는 소리마저 울렸다.
그때였다.
우우웅!
순간 바닥에서 은은한 빛이 어린 것이다.
“응?”
그와 동시에 쾌변을 보던 병사의 신형이 바닥으로 훅 꺼져 버렸다.
“우어어억!”
와지끈!
“뭐, 뭐야?”
“돌이라도 날아온 거야?”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변소 건물의 절반이 바닥으로 꺼지듯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몇몇은 밖에서 날아온 것인 줄 알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빌어먹을 누가 여기로 뚫은 거야!”
누군가가 성질을 내며 꺼진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를 본 시에라 제국 병사들이 전투중임에도 코를 잡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왜냐면 묵은 변을 뒤집어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그런 그와 달리 시에라 제국 병사들은 욕설을 뱉으며 물러섰다.
“오지 마! 똥물에 빠져 죽을 놈 같으니라고!”
성깔이 있는 이였는지 대뜸 거친 말부터 내뱉었다. 그러나 똥이 묻은 사내는 그대로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헉!”
머리통이 뒹구는 걸 보곤 모두 눈이 커졌다.
“미친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러자 똥 묻은 이가 말했다.
“미치긴 이게 정상이지.”
똥 묻은 제라르가 분노의 전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