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91
256화 랩스타 리셀
여덟 명의 호위들이 그리팔 후작의 곁에 섰다.
그리고 그 뒤로 마법사들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다. 그런 가운데 리셀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버티고 있는 게 용하구려.”
그 말에 놀란 것은 피투성이가 되며까지 그리팔 후작을 지키러 왔던 코디 남작이었다.
“그, 그렇게 안 좋으십니까?”
코디 남작의 질문에 리셀이 씁쓸하게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무릎 위로 훌쩍 짧아진 그리팔 후작의 다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썩어 가는 살을 잘라 낸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 그건. 저희 치료사가 할 수 있는 게 이게 전부라…….”
코디 남작이 울상을 지었다. 치료약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그걸 만들 약초도 얼마 없던 차였다. 당연히 이렇게 큰 치료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르라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리셀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심경의 변화가 있었으니 자신들을 찾은 것이라 생각이 든 것이다.
리셀의 손에서 빛이 일렁였다.
“오움 살라 움타아…….”
이내 그것은 치유의 빛으로 화해 그의 다리로 스며들었다.
이어 손을 들어 올리니 그리팔 후작의 머리 위부터 아래쪽까지 빛무리가 휘감으며 돌아내렸다. 그러자 그리팔의 안색이 훨씬 보기 좋았다.
“일단 치유는 했으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구려. 차차 몸을 회복시켜 나갑시다.”
“미쳤구나.”
그때 한쪽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의 난입에 잠시 물러섰던 빌리 백작이 으르렁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주변으로 로우급 유저들도 모여들었다. 또 하나가 이탈했는지 그의 뒤에는 로우급 유저가 셋뿐이었다. 소울포스를 너무 낭비한 탓이었다.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건가? 차차 뭘 회복시켜? 안 그래도 본국에서 마법사인지 뭔지를 많이 궁금해 하는데 이참에 잡아다가 사지를 갈라보면 좋겠군. 특히 늙은이 네놈부터.”
그 말에 리셀 뒤쪽에 있던 마법사가 픽하니 웃으며 중얼거렸다.
“미친 건 본인이네.”
순간 빌리 백작이 살기를 뿌리며 쏘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리셀 뒤의 마법사들이 연신 마법을 써내었다.
처음으로 돌벽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내 그것을 뚫고 나오는 빌리 백작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수십 발의 마법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소울포스의 푸른빛이 진해지면서 모두 상쇄되었다. 그쯤 되자 호위무사들이 나서려 했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은 근접전에서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선 이가 있었다.
퍼어엉!
리셀이 손을 뻗자 폭음과 함께 코앞까지 달려왔던 빌리 백작은 물론이고 좌우로 펼쳐져 오던 로우급 유저들이 모두 뒤로 나자빠졌다.
공기폭발 마법이었다.
물론 빌리 백작은 볼썽사납게 나자빠지지는 않았고 그저 뒤로 쭉 밀려 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빌리 백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기어린 얼굴로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울포스를 더 끌어올렸다.
다시 한 번 리셀의 손이 뻗어지고 공기폭발 마법이 작렬했지만 이번에는 빌리 백작이 무기를 휘둘러 상쇄해 냈다.
“흘.”
“이게 재주의 전부더냐? 마법사라는 것 생각보다 더 아무것도 아니구나. 아니면 네놈이 모자라던지.”
순간 마법사들의 얼굴이 벌게졌다. 리셀이 모욕을 받았다 생각한 것이다. 마법사들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리셀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전장이나 살피게. 희생이 더 생겨서는 아니 되니 말이야.”
“예!”
그 말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며 마법을 쏘아 내기 시작했다.
수십 발의 빛줄기가 빌리 백작의 주변을 스치면서 뒤편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터그람 왕국 병사들을 밀어붙이던 시에라 제국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희롱해?”
빌리 백작의 살기가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다시 멈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오!
마치 대기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마치 소용돌이치며 리셀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경각심을 느낀 빌리 백작이 소울 포스를 잔뜩 끌어올리며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리셀의 입이 열렸다.
“디그.”
“이런 잔재주를!”
순간 그가 내딛는 땅이 움풀 패였다. 하지만 빌리 백작은 땅을 밟는 대신 뒷발을 밀어 구덩이를 넘어섰다.
“디그.”
“칫!”
하지만 다시 이어진 리셀의 영창에 그가 내딛어야 할 땅이 다시 꺼졌다. 순간 구덩이에서 빌리 백작이 다시 뛰어오르며 외쳤다.
“가진 재주가 땅 파는 재주뿐이더냐!”
쩌렁쩌렁한 외침에 무덕의 호위기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음성에서 느껴지는 힘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쪽의 그리팔 후작과 터그람 왕국의 병사들 역시 몸을 떨었다.
그 상황에서 리셀이 입을 열었다.
“디그.”
다시 빌리 백작의 내려서는 공간이 푹 꺼졌다.
그러나 이미 거리는 칼만 휘두르면 리셀에게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바닥으로 내려서면서 다시 솟구치려는 빌리 백작의 시선에 리셀의 입이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너?”
“디그.”
도움닫기도 하기 전에 다시 땅이 푹 꺼졌다.
허리춤 깊이의 구덩이가 더 깊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울아머 유저의 도약력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리셀이 한 걸음씩 나아가며 계속 영창을 해 나갔다.
“디그, 디그.”
“너!”
뭔가를 박차야 하는데 계속 땅이 꺼지니 빌리 백작은 분통이 터졌다. 빌리 백작이 몸을 웅크렸다.
바닥에 닿는 순간 벽면을 차고 앞으로 튀어나가려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구덩이 입구 쪽에 리셀의 상체가 슥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야이 개…….”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연달아 리듬까지 타며 외치는 단순한 주문. 하지만 그 결과는 끝없는 무저갱과 같았다.
“……새끼이이이!”
빌리 백작의 욕설이 뒤늦게 구덩이 안쪽에서 울려 올라왔다.
그리고 리셀이 답했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이내 다시 욕설이 들려왔다.
“정정당당히 붙자아아!”
그의 외침은 곧 울림이 되었다.
붙자아~ 붙자아~ 붙자아! 자아~ 자아~ 자아~
그리고 리셀의 외침도 울림이 되어 아래로 퍼져 나갔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디그~디그~그으~그으~
메아리가 구덩이 속에서 울려 나왔다. 더 이상 리셀의 영창은 없었다.
리셀이 구덩이 안쪽을 내려다보다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망할 놈의 자식.”
리셀이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모두가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우급 유저들은 물론이고 아군들까지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리셀을 보고 있었다.
한 마법사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굉장한 마나드레인이 오로지 디그 마법에만 쓰인 건 처음 보네…….”
“난 그것보다 리셀님이 저렇게 빨리 말을 반복하는 게 더 놀라워. 혀가 꼬일 법도 한데.”
“묘하게 운율도 있고.”
마법사들이 질린 얼굴로 리셀을 바라보는데 구덩이에서 뭔가가 울려 왔다.
아아아아~
그 소리를 들은 마법사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명이겠지?”
“그렇겠지?”
리셀이 로우급 유저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들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을 보며 리셀이 입을 일였다.
“디…….”
순간 로우급 유저들이 뒤쪽으로 몸을 튕겼다. 마치 뭔가를 피하듯. 그때 리셀의 뱉은 말이 완성되었다.
“긋?”
“응?”
“디…….”
“어헉!”
로우급 유저들이 다시 뒤로 풀쩍 뛰었다.
“……게 무서워하는구먼.”
순간 뒤로 다시 물러섰던 로우급 유저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리셀이 옆에 떨어져 있던 원형 쇠방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스트렝스.”
근력 증가 마법을 자신에게 시전한 것이다. 이어서 구덩이를 향해 그대로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구덩이 위로 솟구쳐 오르던 빌리 백작의 머리통이 방패와 작렬했다.
대애애애앵!
비명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또다시 구덩이에서 괴이한 울림이 퍼져왔다.
씨이바아아알!
욕설을 들은 리셀이 구덩이 안을 내려다보며 화답했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그때 전방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뭣들 하느냐! 저 미친 늙은이를 빨리 베지 않고!”
뒤늦게 노성을 터트린 이는 본진에 있다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뛰어온 또 다른 소울아머 유저인 패브릭 자작이었다. 그의 뒤로 기사단과 수십의 술법사들이 따라온 것이다.
그에 물러섰던 로우급 유저가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놈이 땅을 미친 듯이 파니다!”
“뭐?”
“그, 마법인가 하는 거루다가…….”
순간 자신의 설명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로우급 유저의 변명이 이어졌다. 그 말에 리셀의 앞에 뻥 뚫려 있는 구덩이를 본 패브릭 자작이 이를 빠득 갈더니 외쳤다.
“모두 함께 쳐라!”
그와 동시에 술법사들이 술법지를 일제히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 그 직후 술법사들의 머리들이 함께 따라 허공에 뿌려졌다. 붉은 피분수와 함께.
“뭐, 뭐야!”
놀란 패브릭 자작이 뒤를 돌아보니 술법사들의 머리통을 하늘로 솟구치게 만든 이가 서 있었다.
“치긴 뭘 치느냐?”
온몸이 붉은 피로 뒤덮인 이였다.
“뭐, 뭐야! 어디서 나타난 놈이냐!”
뒤에서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러자 뒤에서 나타난 이, 무덕이 입을 열었다.
“저기서 왔느니라.”
무덕이 뒤를 가리키자 패브릭 자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니 자신들이 이끌고 온 병력의 중앙이 뻥 뚫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피로 물든 길이 나 있는 것은 덤이었다.
“너, 넌 누구냐!”
패브릭 자작의 외침에 무덕이 환두대도에 묻은 피를 떨어내며 대답했다.
“저 늙은이를 마중 나온 늙은이란다.”
“뭐애! 죽여!”
대답을 듣자마자 패브릭 자작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무덕의 얼굴이 씰룩였다.
“고연 놈 그게 대답이더냐?”
한쪽 눈가를 찌푸린 대무덕이 환두대도를 횡으로 그었다.
달려들던 기사들의 몸뚱이가 허리를 중심으로 양분이 되어 우수수 자빠졌다.
“예의 없는 놈들.”
무덕이 다시 익숙하듯 환두대도를 빙글 돌려 피를 뿌리며 걸음을 옮겨 나아갔다. 사방으로 머리통 팔다리 할 것 없이 허공을 춤췄다.
붉은 피가 뿌려졌다.
비명이 가득 울려 퍼졌다.
“뭐해! 달려!”
단 한 기에 진영이 뚫려버린 시에라 제국의 본진에서 다급한 참모의 외침이 들려왔다. 안쪽에서 달려온 전령이 빌리 백작이 구덩이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의 구덩이라는 말에 수습보다는 진격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이 재진입을 하다가 멈추어 섰다. 하나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후, 후퇴해!”
지휘관의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선두에 있던 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똑같이 뒷걸음질을 쳤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깃발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처음 보는 복색의 병사들이 방벽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도 모자라 협곡 양쪽 위로 셀 수 없는 병사들이 활을 들어 그들을 겨눈 것이다.
“하, 함정이다아아아!”
달려 나갔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병사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참모들 역시 그들에게 나아가라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족히 수만은 되는 병사들이 나타났기에 그들 역시 창백하게 질린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뒤로 불덩이들이 날아들어 작렬했다.
“도망쳐!”
누군가의 절규가 길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