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95
260화 시간을 벌다
새로운 후작의 탄생은 제국에서도 간만에 있는 일이었다. 기존의 경우 정복전쟁에서 공을 세워 승작을 한 것과는 달리 관료 출신으로 승작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쏜튼 백작의 후작위 승작에 대한 행사는 매우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전황이 매우 바쁘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군.”
이제는 후작이 된 쏜튼은 그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도 없었다. 적당히 거리를 만들어 가며 눈덩이 굴리듯 병력을 모으던 시에라 제국 입장에서는 환장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지만, 최근양상이 점령전이 아닌 속도전 형태로 바꾸어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한 것은 바로 병력을 쪼갰기 때문이었다.
“이건 대담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이런 전쟁에 능수능란하지 않고서야 이런 판단을 할 리가 없지. 게다가 미리 이런 상황이 계산된 것이 아니라면 정말이지…….”
쏜튼 후작이 말끝을 흐리며 이를 악물었다.
한마디로 군 장악력이 남다르다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프라임 공작 역시 군 장악력이 뛰어난 이였다. 그러나 지금 황도에서의 일처럼 견제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정도 견제도 따지면 그리 큰 견제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이고 실제 이번 일로 제대로 정리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적들은 달랐다.
자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진군하는 형태만으로도 소름끼칠 정도의 변화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자 프라임 공작의 결단이 반갑기까지 했다.
“아직도 지지부진하고 공을 세울 목적으로 미적거렸다면 끔찍한 경우를 봤을 수도 있겠군.”
최악의 경우는 적들에 의해 황도 코앞까지 밀리고, 귀족들이 프라임 공작을 빨리 소환하자고 난리를 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프라임 공작이 터그람 왕국을 마무리 한답시고 밀고 들어가서 이런 틈을 내준 것이라 성토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프라임 공작이 그쪽 전선으로 간 이유는 황도의 귀족들이 불만을 품어서 그 꼴 보기 싫어서 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리팔 후작에게 한번 발목을 잡힌 것을 이유로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틈을 준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사실 틈이라 할 것도 아니었다. 누가 이렇게 대담하게 밀고 올라올 줄 알았겠는가.
그나마 내부 정리가 된 덕분에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라는 점은 황도 주변에서 이미 저번에 일차적으로 병력을 징병해서 모이는 중이었고, 또 이번에 각 귀족들이 끝내 꿍쳐두었던 전력을 알아서 바쳤다는 점이다.
막고 다시 치고 내려갈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이쪽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기껏 억눌러 두었던 북쪽이 슬금슬금 내려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삼국 정벌이 길어지면 항상 기어 내려오던 북쪽 세력이었다.
그들 중에도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은 알았기 때문이었다.
척박한 땅이기에 시에라 제국이 넘보지도 않았지만, 만약 남부 정벌이 마무리 된다면 그들에게도 이쪽의 칼이 겨누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들이 전면전을 피해 왔던 이유는 그쪽은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시에라 제국이 남침을 위해 그들을 달래면 그들은 대충 쉬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조금 길어지거나 병력이 꽤 남하하면 슬슬 밀고 내려오는 식으로 훼방을 두었었다.
그렇기에 항상 대륙 정벌은 시한부 정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쪽의 세력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전쟁이 그리 길어지지는 않았다.
초반 피해가 있었지만, 터그람 왕국의 경우 제법 빨리 밀고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카말 왕국과 필리어리 왕국 쪽이 밀고 올라오면서 북쪽이 슬금슬금 엉덩이를 들썩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전처럼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프라임 공작이 이번에는 남부 정벌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이번에 병력을 물리면 앞으로는 저들의 방비가 더 탄탄해질 수 있게 된다.
가우리와의 교류 또한 무섭다.
대전에서 말은 안했지만 그들의 힘은 가우리뿐만은 아니었다.
로셀린이라는 왕국 역시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나라가 망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자신의 왕국을 되찾고 더 나아가 멸망한 헤네시안 제국의 영토까지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칭제만 안했지 제국이라는 이름을 달 만한 규모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북쪽에 카버 왕국을 비롯한 구 헤네시안 제국의 잔존 세력이 있기에 많은 병력을 뺄 수는 없다지만 충분히 두려운 이들임에는 분명했다.
거기에 하이안 왕국이라는 곳 역시 세력을 확장시키는 중이라 했다.
삼대 제국이 나눠 먹다시피 하던 국가였지만 든든한 뒷배가 생기자 제대로 삼각무역의 중추가 되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곳은 말린 왕국이었지만, 그곳 역시 하이안 왕국의 모자란 국방력을 보충해지고 그곳에서 나는 재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늘려가고 있었다.
이런 세 왕국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심에 가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병력을 한 번 물리면 상황이 또 어떻게 될 줄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정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쏜튼 후작이었기에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감투도 썼으니 최대한 시간을 벌어 봐야지.”
황실에서는 아직도 그들에 대해 발칙하다는 정도의 판단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직접 겪어본 그로써는 이들의 진격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그때 쏜튼 후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일단 한 조각이라도 노려볼까?”
***
가든 퍼시발 후작은 황도에서 날아온 서신에 살짝 놀란 눈을 했다. 질타를 예상했지만 그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병력을 더 내어준다고? 지금 상황에서?”
토벌 실패로 인해 자신이 가진 힘을 총 동원해 독자적인 전투까지 예상했던 그였다. 그런데 황도에서는 그에게 다시 임무를 맡긴 것이다.
“대 병력을 맡을 만한 이가 별로 없습니다.”
헨리 퍼시발 백작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렇다 해도 답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
그들이 병력을 과감히 물릴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그를 제외한다면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지휘관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에 누군가가 또 한 번 크게 데이면 그 사이에 병력을 재정비해서 다시 나아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도에서 알아서 병력을 모아 준다고 했다.
물론 단순 징집병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아마도 그가 출발할 때 각 귀족들에게 지원을 받았던 정예병들일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카말 왕국과 필리어리 왕국 쪽에서 밀고 올라오는 병력을 막으려 했던 것이 뻔했다.
가든 후작 역시 그 병력을 염두해서 토벌을 성공시키고 그 병력을 이끌고 제대로 된 공을 세울 판단으로 나섰던 것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상대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기에 지금 이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내부의 적인 만큼 먼저 그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중지가 모아졌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곰곰이 생각하던 헨리 백작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황도라…….”
“프라임 공작이 가만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동안 신임 황제의 힘을 등에 업고 측근들이 너무 그를 넘봤습니다.”
“그 덕에 내가 이런 개망신을 당한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자네 탓이 아니야. 덥썩 잡을 일이 아니었던 거지. 충분히 준비를 해야 했거늘 황도의 병신들이 하는 말만 듣고 소수만 이끌고 내려온 내가 모자란 거야.”
가든 후작의 말에 헨리 백작은 말을 아꼈다.
자신에게도 있는 책임을 가든 후작이 스스로의 책임이라 해주었기에 미안함을 가질 뿐이었다.
“일단 오만 정도를 합류시킨다더군.”
“오만 말입니까?”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헨리 백작이 놀란 눈으로 가든 후작을 바라봤다.
“대신 소울아머 전력은 별로야. 다섯을 보내준다더군. 로우급은 열다섯.”
“다섯이 별로는 아니잖습니까.”
로우급을 빼도 다섯이면 적은 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든 후작은 그 숫자를 별로라고 말했다.
이미 겪오 보았기 때문이었다.
“알면서 왜 그런가? 이미 전쟁의 양상이 이상해졌어. 우리가 상대할 적들은 고만 고만한 왕국들이 아니야. 그 묵갑귀마대인지 뭔지 하는 놈들, 거기에 노인저을 끌고 온 줄 알았던 그들 역시 심상치 않아.”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이전 전퉤서 설렁 설렁 끼어들기는 했지만 그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헨리 백작도 느꼈다.
처음에는 웬 노인들을 저리 잔뜩 끌고 왔나 했었다.
혹시 그들이 머리를 쓰는 참모진은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노인 중 일부가 쏘는 화살에 기사고 뭐고 남아나질 않았다.
심지어 전투가 벌어질 때면 묵갑귀마대의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 갑주를 입고 있는 것만 해도 이제는 쉽게 볼 일들이 아니었다.
노인이 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그들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자라는 의미였다.
“아마도 한 칼 들고 휩쓸면 로우급 포함한 소울아머 이십은 한 방에 사라질 걸?”
그들이 퇴각한 결정적인 이유다.
“그렇기는 합니다.”
“대신 그것들을 오백 기 정도 보내 준다고 하니 할 만하겠지.”
“오백 기나 말입니까?”
“꽤 준비된 모양이야.”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쓸 만한 전력이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다. 그들을 소울아머 유저와 함께 뭉쳐서 활용을 한다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한번 쓰면 소모되는 전력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습니다. 그들을 뺀다면 나머지 병력은 사실 그냥 사기 높은 정예병사 이상으로 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다만 그 머리 노란 놈이 걸리긴 해.”
“들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강하긴 합니다. 소울아머 유저 서넛을 상대한다니…….”
“나 혼자서 되려나.”
가든 후작의 말에 헨리 백작이 슬며시 웃었다.
“농담이십니까?”
“농담까지야. 솔직히 신경 쓰이긴 해.”
가든 후작의 말에 헨리 백작이 약간 굳어진 얼굴을 했다. 프라임 공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역시 손에 꼽는 강자 중 하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 노란머리 사내의 무용담이 전부 진짜라면 솔직히 버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하잖습니까. 소울아머 유저 다섯과 함께 치시면 됩니다. 어차피 적들의 우두머리 아닙니까?”
헨리 백작의 말에 가든 후작이 피식 웃었다.
“이거 아까는 농담 운운하더니 이젠 대놓고 내가 딸린다고 하는 겐가?”
“아닙니다. 그냥 우두머리 빨리 잡고 나머지를 치는 게 효율적이니 그리 말씀드린 겁니다.”
능청스럽게 말을 뱉는 헨리 백작을 보며 가든 후작은 크게 웃었다.
“으하하! 그래 그렇게라도 말해주니 모양새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