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198
263화 뜻밖의 존재들
콰아앙!
몸이 움찔거릴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지며 성벽의 한 축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어두운 시선으로 전장을 살피던 터그람 왕국의 카이거 루 마이어스조차 놀라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무슨 일이냐! 어찌 된 일인지 알아와라!”
“증원병력을 무너진 성벽이 있는 방면으로 충원시켜라!”
“전하! 일단 성내로 들어가시지요!”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놀랐던 카이거 왕이 시선을 굉음이 울려 퍼지던 곳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보았던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렬한 푸른빛이 타오르듯 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도 십여 개의 불빛이 감돌고 있었다.
“프라임…….”
저 정도의 기운을 가진 이라면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주변은 노블기사단 1전대 중 일부일 것이다.
“상상만 했던 것인데…….”
헤머튼 왕이 노블기사단의 기습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오십여 명의 소울아머 유저들에게 왕성을 습격당했다던 그때의 사실.
물론 이후 로우급 유저가 나타나면서, 습격자 전원이 노블기사단이라는 건 과장된 내용이라던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의견은 이내 정설처럼 기억되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사실 변하지 않았다.
저기 보이는 열 명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어찌 오십여 명의 소울아머 유저를 막을 수 있었겠나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생각은 가우리라는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소울아머 유저가 아님에도 그들을 막았던 이들.
그리고 터그람 왕국이 짓밟힐 때 시에라 제국의 후방을 유린하여 보급품을 잔뜩 털었다던 그들.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그들.
그리팔 후작을 구해가기 위해 나타났다던 수천 이상의 병력의 존재를 듣고 귀족들은 가우리나 카말 왕국도 터그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려도 없었다.
그들의 존재가 이 순간 부러웠다.
“만약, 말 그대로 만약이지만 자신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따면. 어쩌면 우리도 카말 왕국처럼 함께 시에라 제국으로 전진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튀어나온 카이거 왕의 혼잣말.
그러나 소란 속에 아무도 듣지 못한 듯 그의 팔을 잡아끄는 손들이 느껴졌다.
“전하! 일단 피하소서! 저들이 이쪽으로 진격해 오고 있사옵니다!”
오늘은 작정이라도 한 듯 성벽을 무너트리더니 그대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푸른 불빛이 점점 프라임 공작의 뒤로 몰려들었다.
십여 개에 불과했던 불빛이 스물 서른이 되었다.
그보다 못한 불빛이 그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로우급 유저일 것이다.
그 푸른빛이 눈이 아프게 박혀들어 왔다.
“안되겠다! 전하를 모셔라! 그리고 병사들로 하여급 결사 항전을 명하라!”
귀족들이 카이거 왕을 잡아끌고 내려갔다.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던 카이거 왕이 끌려 내려가며 힘없는 목소리로 다시 중얼거렸다.
“과욕이 망쳤구나.”
호들갑소리를 들으며 끌려 내려가던 카이거 왕이 미련이 남은 듯 자신이 내려온 계단 입구를 바라보았다.
밝은 빛이 입구에서 어두운 계단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을 보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뱉어 내었다.
“그리팔이 그립구나.”
늦은 후회였다.
성벽이 무너졌지만 터그람 왕국의 병사들은 미친 듯이 저항했다. 터그람 왕국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긍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왕이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던 것이다.
‘왕이 도망쳤다.’
백성들을 내버리고 내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에는 흉흉한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제대로 막고 다시 올라가기 위한 고유지책이라는 말을 믿었던 것이다.
거기에 다른 소문도 섞여 있었다.
이미 카말 왕국과 필리어리 왕국이 후방을 끊기 위해 시에라 제국으로 발을 디뎠다. 다 전략적인 선택이고 막다보면 결국 그들도 발길을 돌릴 수밖 에없다던 말.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왕이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전장에 나돌기 시작하자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심지어 일선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기사들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쪽 소우아머 유저님들은 어디에 계시는 거야!”
“아까부터 안 보여!”
“지휘하시던 패드립 백작님도 보이지 않아!”
혼란은 가중되었고 여기저기 심상치 않은 모습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적들이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퍼트린 거라고 악다구니를 질렀지만 병사들은 바보가 아니다.
아니 당황하고 있는 일선 지휘관들만 봐도 그렇다.
불안은 균열이 되었다. 아니 이미 방어선에 균열 정도가 아니라 큰 구멍이 뚫린 상황이었기에 균열이라 할 수 없었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누비는 프라임 공작과 소울아머 유저들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결국 터그람 왕국 최후의 방어선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소문은 진실이었다.
왕은 그 자리에 없었다.
***
심상치 않은 기류를 눈치챈 가우리 군은 병력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에라 제국은 그보다 한 발 빨리 움직였다.
“마법사들이 연락이 안 돼?”
일만의 병력을 이끄는 부여기율이 미간을 찌푸렸다.
상식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정찰 결과를 보내오던 마법사들이 연락이 끊어진 것이다.
“킁, 이거 뭔가 찌르르한데.”
“그러게. 빨리 복귀를 서둘러야겠어. 그리고 본진에도 알려야겠는 걸?”
삼두표와 몽류화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전체적인 지휘는 기율이 맡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지위로 봤을 때 기율의 아래는 아니었기에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기율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마법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하지만 통신 마법을 시도하던 마법사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무슨 일이야?”
“서, 설마!”
“무슨 일인데?”
기율이 재차 묻자 마법사가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통신 방해입니다! 이 일대에 통신을 방해하는 마법이 펼쳐졌습니다!”
순간 기율도 두표도 류화도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마법? 마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적들이 술법으로 무슨 수를 쓴 건 아니고?”
기율이 다그치자 마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외쳤다.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이건 마법입니다.”
“마법이라니…….”
지금까지 마법은 가우리와 동맹군의 전유물이었다.
그 덕에 적들에 비해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단 술법사가 전서를 날렸스빈다! 빨리 이탈을 해야 할 듯합니다. 마법방해는 지역에 펼쳐지는 것이라 어느 정도만 이탈해도…….”
마법사의 보고가 이어질 때 한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찰마법사가 복귀했습니다!”
정찰마법사가 복귀했음에도 지휘부로 오지 않고 전령이 달려와 그 사실을 알렸다.
심각한 상황이 분명했다.
누구 할 것 없이 삼인방은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젠장!”
치유마법을 쏟아붙던 마법사가 욕설을 내 뱉었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또 살아난다 해도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의 위중한 상황이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죽었다는 말과 같았다. 그때 삼인방이 나타났다.
“어이 상태가 어때!”
류화가 달려오며 물었다. 그러자 치료를 하던 마법사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일단 지금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체가 붕괴되어 가던 중인지라…….”
가율과 두표가 마법사의 상태를 살폈다.
여전히 숨은 헐떡이고 있었지만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적의 마법을 막기 위해 걸치는 로브는 거의 넝마가 되어 있었다. 불길에 탄 흔적부터 날카롭게 잘린 흔적까지 보이고 있었다.
익숙한 흔적이었다.
“마법?”
“예. 마법에 당한 흔적입니다.”
치유하던 마법사가 여전히 악다문 입술을 열어 대답했다.
“노, 놈들이…….”
그때 숨을 헐떡이던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정신이 드는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인사불성이었던 마법사가 그들을 보고서야 입술을 연 것이다.
그동안 퍼부은 치료마법 덕이기도 했다.
“마법전……단.”
“마법전다? 적들이 마법전단을 운용한다는 건가?”
“쿨럭!”
순간 피를 한움큼 쏟아내었다.
그러자 이어서 도착한 다른 마법사들이 치유 마법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일부는 피를 토해낸 동료에게 마나석을 쥐여 주며 주문을 외웠다.
마나가 잘 돌도록 하는 그런 종류의 마법인 듯했다.
그 덕인지 피를 토했던 정찰 마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 마법전단 입……니다. 적에게 마법 전단이 있, 있었습니다.”
힘겹게 대답을 마친 마법사.
그 대답에 모두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들에 의해 정찰을 보냈던 이들이 발각되어 하나만 돌아왔다. 그리고 이 일대에 펼쳐진 통신 마법 방해.
“전투준비!”
기율이 일어서며 커다랗게 외쳤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개마무사들이 일제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가 임박했음을 그들도 느낀 것이다.
“적들이 빠르게 이동중입니다!”
“이거 대단하군.”
마법사가 허공에서 외치는 목소리에 시에라 제국의 마판테 포우 백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적의 주장이 누구인지는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때 중년의 마법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적은 겨우 일만이오. 그 정도는 우리가 처리 할 수 있소.”
“혹여 가우리의 핵심 인사들이 운용하는 병력 중 하나라면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핵심 인사를 처단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소?”
마법사의 우려스러운 말에 마판테 백작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자신도 이름난 무장 중 하나였다.
거기에 지금 이끌고 있는 병력은 전원 기병은 아니었지만 이만 오천에 달했다. 그 중에 소울아머 유저가 그를 포함해 둘이고 로우급 유저가 열이 더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에게 신병기가 주어져 있었다.
바로 적의 예봉을 막아줄 백여 기의 인간병기.
“여기서 기다리면 놈들이 올 것이오. 빠르게 오고 있다니 미리 준비해서 놈들을 칠 것이오. 그대들은 저들의 마법만 막아 주시오.”
마판테 백작은 정중하게 말을 했지만 이 전투는 자신들의 것이라는 의미로 선을 그었다.
“알겠습니다.”
마법전단장인 헤이시 판 자작은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목적은 가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 시에라 제국의 실전을 담아가는 것이었다.
손을 잡을 상대에 대한 정보수집은 필수인 것이다.
거기에 이렇게 순순히 대답한 것은 그들이 숨기고 있는 수레 때문이었다. 경계가 삼엄하기도 했지만 가끔 그 안에서 울려오는 울음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투는 지켜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땅 밑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들이 옵니다!”
“빨리 움직여라!”
마판테 백작의 말에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사들 역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적의 마법사를 막아 이들을 도우는 것과 동시에 이 전투를 영상으로 담기 위함이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마법사들의 시선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