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01
266화 그들이 강한 이유
“이, 이 정도일 줄은…….”
판 자작의 입에서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 솔직히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시에라 제국의 정보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대륙을 평정한 제국이었고, 또 그들의 소울아머는 확실히 탐나는 물건이기도 했으니 그만한 저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마법사이기에 기사들의 전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을 하기는 어렵지만 보아온 눈의 높이가 있었다.
지금 소울아머를 입은 시에라 제국의 지휘관의 움직임은 충분히 감탄할 만 했다. 소울아머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느낄 정도로 말이다.
이전에 대륙의 십 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수준은 아니지만, 저런 것을 입은 이들이 몇 있다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가우리의 삼인이 상대라면 일대일에서 압도적이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상대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압도하기 어렵다는 의미이지 일방적으로 밀릴 것이라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건 시에라 제국의 지휘관의 실력을 탓할 것은 아니었다.
“더 강해졌습니다. 모르지만 저 정도라면 이전 대륙의 십인이라 불리는 이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전단장인 판 자작의 생각도 일치했다.
“가우리는 가우리라는 말인가. 어찌 저런 강자들이 한 나라에 몰려 있는 거지?”
판 자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세 명이 한 자리에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보면 각기 다른 상대와 싸우고 있지만 서로 동료들의 후방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맞아. 서로의 뒤를 지키는 것처럼 말이야. 물론 저들쯤 되면 뒤에서의 위험을 감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행동을 보면…….”
“굳이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서로서로.”
“그래. 지독하게 효율적인 전투야. 문제는 저들 뿐이 아니라는 거지.”
그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니의 무리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도 몇 명씩 상호 보완하는 전투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잘 짜여진 조직이라는 의미였다.
“묵갑귀마대는 아닌 듯 하군.”
“가우리의 기사전력인 듯 합니다. 개마기병이라던.”
“그래. 미묘하게 복장이 다르기도 하고 저세히 보니 피부색도 달라.”
“그런데도 강하군요.”
문제는 예전 신성제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묵갑귀마대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를 통해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우리 기사 전력에 비해 평균적으로 상위로 보이는군.”
“집단 전투의 상호 보완하는 소규모 전술운용까지 보면 그 전력차는 더 클 듯 합니다.”
소름이 돋았다.
일만의 기병 중 절반 가까이가 이런 개마기병들이었다.
나머지는 기동력을 살린 궁기병과 경갑기병에 가깝기는 했지만 이들을 예로 들어 경갑이지 충분히 중장기병이라 불릴 만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제국 전쟁 때 저들이 동원한 병력이 삼만이 안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당시에는 연합군이었다.
순수 가우리의 전력은 언급한 대로였다. 문제는 그 숫자가 헤네시안 신성제국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카버 왕국은 그때의 전쟁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다들 리셀이라는 존재와 고진천의 무모한 질주에 운이 작용했다는 말을 했다. 물론 그 밑의 장수들이 있으니 그런 무모함도 통했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후 분석결과는 또 달랐다.
유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끄는 군 자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던 것이다.
패배를 하면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장수는 본대 복귀를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런데 가우리는 달랐다.
장소가 어디에 있던 어떤 피해를 입었던 그 자리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작전을 수행해 나간다. 어쩌면 이건 한 나라의 전술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특수한 병력 집단에서나 가능한 행태였다.
그런데 이런 형태를 국가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은 고진천이 이끄는 병력의 태생을 모르기는 했다. 나라에 버림받은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병력들인 것을 말이다.
무엇이든 알아서 해야 했던 그들이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이들을 들개라 부르기도 했고, 마적이나 진배없다고도 했다. 철저히 중앙으로 진출을 막았다. 열제의 힘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태생의 병력이 또 다시 척박한 대지에 자리를 잡았다. 결국 그들이 만들어내는 병력은 그와 유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언젠가 가우리가 안정이 되고 권력이 복잡해진다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특징이 가장 강렬하게 빛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시에라 제국이 운이 나쁜 것이다.
그 결과물을 직접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가우리는 운이 좋았다. 그들의 대륙에서는 이렇게 키워낸 병력에 대해 견제하는 세력이 많았다.
그러나 이쪽은 아니었다.
처음 그들이 자리를 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시를 받았다. 그 덕에 피해도 적었고 적이 모르는 만큼 적재적소에 병력을 투입하여 경험을 늘려 갈 수 있었다.
지금 이 병력은 이미 완성된 병력인 것이었다.
묵갑귀마대라는 특별한 이들과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대륙을 가로 지르며 수만씩 떼 지어 다니며 적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던 그 예전의 개마기병들만큼은 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지금은 힘이 빛나는 시대이고 당연히 그에 대한 지원이 충만할 때니 말이다. 심지어 그나마 문관에 가깝다고 하는 이가 대무덕이니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판 자작의 시선이 백여 기의 인간병기를 향했다.
그 움직임이나 흉성을 보니 질릴 정도였다. 왜 그토록 숨겨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개마기병이라 불리는 이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기사보다 강해 보이지만…….”
그러나 판 자작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개마기병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은 맞지만 개마기병들은 유기적이었다. 마치 차륜전술을 펼치듯 치고 빠지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 뒤의 기병들이 다시 들이닥치며 마찬가지로 상처를 만들고 지나쳤다.
마지막으로 또 한 차례 지나가니 토막난 시체만이 남았다. 일반적인 기사들이라면 이미 첫 번째나 두 번째에 몰살을 당했겠지만 세 번째까지 버틴 것이다.
딱 그 정도였다.
숫자도 백에 불과했다.
“한 천 정도 끌고 왔다면 모를까.”
판 자작이 시에라 제국의 실책을 알아챘다.
대충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쪽의 전쟁은 소울아머 유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물론 대단한 병기였다. 그러나 이들은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소울아머 유저의 숫자로 결판나는 전투에 말이다.
그들을 압도하는 이런 괴물들이 있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이 전투, 더 볼 것도 없군.”
판 자작의 입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만오천이라는 병력수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시에라 제국의 지휘관인 마판테 백작이 생명을 담보로 마지막 불꽃을 피어올렸다.
이기든 지든 지휘관이 공석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반대로 가우리 쪽은 지휘관이 없어도 어떻게든 밀어붙일 것 같았다. 느낌이 그랬다.
“차라리 삼마견 중 하나둘이라도 처리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좋지.”
푸르게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오르는 소울포스가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만들고 있었다.
분명 저 기세는 초인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었다.
“저건 확실히 무섭군.”
“일회용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혼자 상대하려는 것 같습니다!”
“음!”
분명 십대 강자라 불렸던 초인에 육박하는 기세였다.
그런데 그를 상대로 나머지 둘이 함께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어디까지 강해진 거지?”
판 자작이 불안감을 가지고 기율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이래야 할 만하지.”
기율이 활짝 웃었다.
완전히 개방된 소울포스를 보며 기율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고까웠는지 마판테 백작이 강렬한 일격을 가해왔다.
콰앙!
“우호!”
기율이 쌍부를 교차로 막아내며 뒤로 튕기듯 날아갔다.
워낙에 강했는지 상체 어림에서 막은 기율의 몸뚱이가 비스듬히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기율은 그 힘에 저항하기보다는 그대로 이용하여 뒤로 재주를 넘듯 몸을 한 바퀴 돌렸다.
터턱!
그리고 자연스러운 착지. 그리고 동시에 달려오는 마판테 백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흡!”
이번에도 강렬한 일격을 가해오는 마판테 백작이었지만 기율 역시 팔뚝의 핏줄이 툭툭 불거질 정도의 전력을 가하며 마주쳐 갔다.
콰창!
둘이 무기를 맞대는 순간 그들을 중심으로 일렁임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마치 사물들이 동심원을 그리는 물속에 잠긴 듯 흐느적거렸다.
그 충격파에 주변에서 싸우던 이들이 비틀거릴 정도였고 일부는 피를 토하기도 했다.
물론 피를 토하는 쪽은 대부분 시에라 병사들이었다.
그 사이 가우리 쪽의 병력들은 이미 뒤로 몸을 피했다. 마치 익숙한 듯 말이다.
그 강렬한 충격에 기율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건 마판테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마판테 백작의 두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부릅 뜨고 있었다.
“뭘 놀라고 그래. 이 정도도 못 막으면 대련을 빙자해서 밤새도록 쥐어 터져야 하는데.”
기율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자 마판테 백작은 이성을 놓았는지 분노의 외침을 터트렸다.
“크어어엉!”
마치 맹수의 울음소리와 같은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걸 들은 진짜 맹수가 거슬렸는지 똑같이 따라했다.
“캬아아아!”
바로 두표가 타고 있던 샤벨타이거 냥이였다.
냥이의 포효에 두표가 말했다.
“킁, 짖지 마라 이놈아.”
그렇게 말하고는 마판테 백작을 슬쩍 바라보았다. 마치 귀찮은 짓을 했다는 듯.
“풉! 맞는 말이구만. 기율 뭐하냐! 자꾸 짖게 만들지 말고 처리해라! 안 그럼 내가 한다!”
“킁, 양보해.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류화가 한마디 하자 두표도 한 마디 거들었다.
더 열이 받을 법도 한데 마판테 백작은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온 소울아머 유저인 빌러드 자작이 곤죽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으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자란 인간.”
빌러드 자작을 향한 분노였다. 당당한 소울아머 유저라면 생명의 불꽃을 태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빌러드 자작은 주저하다가 저 꼴이 되었다.
차라리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거 내가 돌려볼까?”
마판테 백작의 분노와는 달리 못내 아쉬운 두표는 곤죽이 되어 인사불성이 된 빌러드 자작의 소울 스톤을 입맛을 다시며 철봉 끝으로 툭툭 쳐보고 있었다.
그리고 류화는 홀로 남은 로우급 유저를 보고 묻고 있었다.
“그건 못 돌리나?”
“이, 이건 그런 기능 자체가 없어서…….”
그걸 또 로우급 유저는 친절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마판테 백작은 그나마 잡았던 이성의 끈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