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09
274화 그들이 향하는 곳은
진천의 말에 사람들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전쟁 이후 이런 말도 돌았다.
‘가우리는 떼강도다.’
약탈이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약탈의 대상은 물건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 영역에 사는 백성들까지 포함이다.
재미있는 것은 백성들을 끌고 갈 때 그들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았다. 최대한 챙겨서 함께 보내고 못 가져가는 부분은 알아서 챙겨줬다.
물론 지역을 지키다가 죽은 병사들의 가족의 불만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최대한 반발을 억누르려 했다.
“딱 좋지 않나? 다 털어먹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시에라 제국이 점령지를 관할할 때 그 지역의 병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식으로 반란을 억제했다.
결국 영지를 지키는 병사들은 그 지역의 백성들과 큰 연관이 없는 편이었다. 그게 점령지를 다스리는 법이었다.
물론 병사들이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백성들과 살림을 차리기는 했다. 그러나 보통 병사들의 경우 계속 물갈이를 시킨다. 마치 이동해서 주둔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점령지로 올 때 임명된 영주가 병사들을 이끌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일종의 점령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거리감이 있기 마련이었다. 처음에야 큰 위해가 없지만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면 결국 그 전쟁 자금을 담당하는 것은 이전 점령지였다.
그런데 지금 가우리와 동맹들이 머무르는 곳은 제국의 점령지였다.
물론 시간이 꽤 지난 곳들도 있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병합된 기간이 짧은 곳이었다. 진천이 노리는 곳은 그곳들이었다.
“마법사 총 동원하고 수레든 뭐든 전부 끌어온다. 이미 냄새 맡은 놈들이 있는 이상 싹 털어서 옮긴다.”
일국을 이끄는 이의 명령 치고는 너무 저렴했다.
오히려 도적의 괴수나 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진천을 보며 이실라 공주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눌렀다.
왜냐면 어느 정도는 카말 왕국의 왕인 바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바사 왕의 경우는 터는 쪽보다는 도주하는 쪽이 더 많았다.
‘못 막는다고? 빨리 짐 싸서 다 튀어!’
보통 이런 식이다.
대륙에서 짐 싸는 것은 카말 왕국 사람들이 최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터그람 왕국의 기습 때는 그게 잘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몇 가지 지침을 명한 진천이 굳은 얼굴로 말을 마쳤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 주지.”
“푸훕!”
결국 이실라 공주의 입에서 웃음이 삐져나왔고, 그녀는 한참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막사를 나온 이실라 공주에게 말을 건 것은 휘가람이었다.
“좀 이상하지요?”
“차라리 현실적이라 다행입니다.”
“마지막에 영혼까지 탈탈 턴다는 말. 거짓이 아닙니다.”
“예?”
휘가람의 말에 이실라 공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안 그래도 일루이먼 부흥군 덕에 시에라 제국이 조금 들썩인다는 것쯤은 아시지요?”
“예.”
“시에라 제국의 점령전쟁은 꽤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그 덕에 병사들을 각지로 돌리는 식으로 해왔고 말입니다.”
“예.”
이실라 공주가 마치 잘 듣는 학생마냥 대답을 했다.
“힘이 강할 때는 더없이 좋은 방법입니다. 시일이 지나면 빠르게 흡수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원정에 문제가 생기면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수탈의 대상이 되니까요. 그쯤 되면 생각 할 겁니다. 결국 점령자는 점령자구나.”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실라 공주를 부며 휘가람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는 우리도 점령자일 겁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점령을 당한 백성들이기에 반발은 적을 겁니다.”
“그럴까요?”
“그럴 겁니다. 아니라도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실라 공주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휘가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런 약탈전은 균열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시에라 제국의 울타리가 그저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지요.”
“그래서 영혼까지 턴다는 말을…….”
휘가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실라 공주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프라임 공작의 병력이 회군을 한다고 하는데 문제 없을까요?”
“안 싸울 겁니다. 당분간은.”
“예?”
휘가람의 말에 이실라 공주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덤비는 적을 피해 달아나는 진천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약탈의 기본은 치고 빠지깁니다. 그리고 약한 부분을 두드리는 게 핵심이지요. 사실 지금도 그래왔지 않습니까? 그걸 제대로 한다는 겁니다. 뭉쳐서 다니면서 말입니다.”
휘가람의 말에 이실라 공주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기동력이 어마어마했다.
휘가람의 말은 이해하기 쉬웠지만 그 여파가 어떨지 더 크게 와 닿았다. 말 위에서 내려올 시간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시에라 제국이 온전히 이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이미 지금쯤 출발 했곘군요.”
“출발이요?”
“판은 크게 벌려야 재미있는 법입니다.”
휘가람의 말에 이실라 공주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
“헉헉헉!”
“목좀 축이게.”
가우리의 마법사 하나가 탈진상태에서 헉헉거리며 주저앉자 동료 하나가 다가와 물을 건네주었다.
“내, 내가 이 짓을 또 하게 될 줄이야.”
“끙.”
물을 마시고 한탄하는 동료를 보며 또다른 마법사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래도 이렇게 쉴 시간은 있지 않은가? 이전보다는 좀 편해 진 부분도 있고.”
“리셀님 덕이긴 하지.”
숨을 돌린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나 좀 쏘이게.”
한쪽의 미닫이 문을 열어주자 시원한 바람이 안으로 들이쳤다.
“후아. 살 것 같구나.”
“허허, 꽤 풍광이 좋구나.”
그때 늙수구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불편하시지는 않습니까?”
“나야 앉아서 가는 것인데 불편할 게 무언가.”
마법사가 말을 건 곳에는 그리팔 파샤 후작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재미 있는 것은 그리팔 후작의 의자가 살짝 떠 있다는 점이었다. 일종의 부유마법이 적용된 의자였던 것이다.
“구름을 이렇게 볼 수도 있다니.”
그리팔 후작은 즐거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아래에서 올려다 보던 형태와는 좀 달랐다. 구름들이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라. 참 재미있구나.”
“끙.”
그리팔 후작의 감탄과는 달리 마법사들은 신음을 흘렸다.
그들은 고진천의 구상으로 만들어진 괴작인 이 마법 비행기를 다시 몰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개량을 거쳐 다시 몰게 되었다. 이 안에 마법사만 서른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호위로 열 명의 묵갑귀마대와 대무덕이 있었다.
“이게 열제께서 만드신 거네.”
“대단하옵니다.”
무덕과 그리팔 후작이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며 마법사들은 울상을 지었다. 진천이 원망스러웠다.
“북방은 두 번째 방문이라 들었소.”
“예. 예전에 한번 들렸었지요. 물론 별 소득은 없었지만.”
“그렇구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시에라 제국 북부에 위치한 투먼 제국이었다. 물론 제국이라지만 실제 제국으로 치는 이들은 없었다. 제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것은 광활한 초원지대 뿐이었다.
척박한 탓에 유목민족이 많았다. 실제 투먼 제국 아래쪽 초원은 그 영향력 밖이라 유목과 약탈을 병행하는 군소 부족들이 즐비했다.
물론 투먼 제국의 힘이라면 모든 부족의 병합도 가능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일종의 완충지대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시에라 제국과의 완충지대 말이다. 투먼 제국은 그 부족들의 주거래 교역국이었다.
교역 물품은 바로 시에라 제국의 국경을 넘나들며 약탈한 물품들이었다. 물론 투먼 제국에서도 초원부족의 탈을 쓰고 가끔 약탈을 행하기도 했고 말이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척박한 땅인지라 한계가 있었다.
때로 인구가 늘어나면 그들은 전투를 선택했다.
다 먹여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하느니 시에라 제국으로 상대로 약탈을 행하는 것이었다.
시에라 제국은 이들의 이런 형태를 마치 자연재해처럼 여겼다. 때 되면 오는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
시에라 제국입장에서 계륵인 것이다.
정벌을 하자니 초원지대를 지나야 하고 그렇게 되면 보급선이 길어진다. 그렇다고 먹을 게 많은 것도 아니다.
물론 유목을 하기에 말이나 양 같은 짐승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건 시에라 제국에도 널리고 널렸다.
그 이유 때문에 시에라 제국이 남부 정벌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같은 병력을 일으켜도 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투먼 제국 역시 적당함을 알았기에 시에라 제국이 열을 올리기보다는 적당히 달래는 정도로 유지를 해오기도 했다.
그런 투먼제국으로 지금 그리팔 후작이 사절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불편한 점은 없는가?”
무덕이 그리팔 후작에게 상태를 묻자 그리팔 후작이 즐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운동을 못하는 것 빼면 살 만 합니다. 또 이거 꽤 재미있습니다. 마치 땅 위에서 배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말하며 그리팔 후작이 의자 옆에 달린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떠 있던 의자가 마치 배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 졌는지 좌우로 회전을 하며 움직였다.
지팡이는 일종의 삿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바퀴를 생각했다가 이것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팔의 본질은 지휘관이었다. 야전으로 나가다 보면 울퉁불퉁한 땅이 많다.
물론 수레를 타고 다니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지형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리셀이 생각해 낸 것이 이 부유마법을 넣은 의자였다.
이동도 수월하고 이동이 급할 때는 말 한 마리가 끄는 수레마냥 쓸 수도 있었다. 거기에 부유하는 형태다 보니 무게감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삿대를 이용하거나 누군가가 밀어줘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훌륭한 탈 것인 것이다.
“조만간 리셀이 여러 가지 마법을 부여해서 움직이기가 더 쉽게 해준다 하였으니 일단은 불편해도 참게나.”
“허허, 불편이라니요. 지금도 충분하옵니다.”
웃는 그리팔 후작을 보며 무덕이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후회는 없는가.”
그 말에 그리팔 후작의 미소가 씁쓸하게 변했다.
“많습니다.”
“그런가.”
“죽어간 목숨이 그리 많은데 어찌 후회가 없겠습니까. 허나…….”
그리팔 후작이 무덕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지나간 길을 보지 말고 나아갈 길을 보라 한 제가 뒤를 돌아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팔 후작의 말에 무덕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아랫사람들에게 그리 가리켰는가?”
“아닙니다.”
“응?”
“제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보통 이런 사상을 가집니다.”
“푸하하하!”
그리팔 후작의 대답에 무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무덕에게 그리팔 후작이 말했다.
“이래보여도 제가 대륙에서 잘 나가는 소설가 아니겠습니까?”
“내 언제고 자네 소설을 꼭 읽어보겠네.”
“허허헛!”
둘의 웃음소리가 마법 비행기 안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