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1
강철의 열제 121화
제33장 동부의 무신
전쟁의 참화는 대지마저 헐벗게 만들고, 하늘의 태양마저 분노케 하는가?
너른 벌판을 내달리는 십여 명의 사내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햇살은 수십 수천 개의 비수가 되어 그들의 염장을 질러대고 있었다.
“니미럴, 드럽게 덥네!”
쉴 새 없이 달리는 삼두표의 발걸음은 온몸이 땀으로 절어있음에도 오히려 가벼웠고,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 역시 땀으로 목욕을 할지언정 그 걸음이 늦춰지거나 무거워지지는 않았다.
“헉헉헉헉헉!”
그런 가운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거칠게 몰아쉬며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열심히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비하넨 요새에서부터 합류했던 실렌 베르스 남작이었다.
“킁!”
달리다가 뒤를 바라본 두표가 콧소리를 내며 인상을 썼다.
가장 중요한 인물인 베르스 남작이 제일 몸이 약하다는 상황에 두표는 짜증이 솟았고, 병사들은 쉬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멈춘다! 여기서 잠시 쉬어간다!”
여기저기 바짝 마른 풀들이 쏟아지는 폭염에 금방이라도 재로 화할 듯 이글거리는 가운데 두표의 휴식명령은 베르스 남작에게 천사가 내미는 손과도 같았다.
“크허어어어, 허어어, 허어어, 허어어.”
“킁, 숨 넘어 가겠소.”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에서 온몸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모습에 두표는 약간이나마 동정어린 눈빛으로 물통을 건네었다.
“거 조금만 마시시오.”
갈증이 심한 상태에서 물을 급하게 많이 먹으면 독이란 소리였다. 베르스 남작도 전부 마셔버릴 듯 물을 낚아채었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양만으로 목을 축이고 나머지는 입에 물고 있으면서 입안을 식혔다.
“후우, 후우, 후우.”
“베르스 남작도 고생이우. 흘흘흘.”
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그에게 두표가 헛바람 빠지듯 웃자 베르스 남작이 마른 나무 둥치 옆에 몸을 기대었다. 눈앞에 일렁이는 열기가 마치 며칠 전의 일을 보여주는 꿈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베르스 남작은…….
“죄송합니다만,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치 자신의 귀가 막혔는지 의심을 하며 반문 하고 있었다. 그런 베르스 남작의 반문에 고진천은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했다.
“가라고.”
“…….”
진천의 대답에 베르스 남작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분명히 두 번째 들은 말은 주어 목적어가 생략된 말이었지만, 자신이 처음 들었던 말이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됩니다!”
베르스 남작의 목소리는 고음과 저음의 중간을 오가는 어설픈 파장을 울렸다. 그는 이미 무시 못 할 세력을 가진 진천에게 함부로 언성을 높일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억울함은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약간이나마 올라가는 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이어지는 진천의 한마디.
“된다.”
베르스 남작은 살아오며 이런 고집불통은 처음 본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베르스 남작 입장에서는 진천의 말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저희 병사들 잘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고 혼자 동부군 진영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 그러면 데려가던지.”
“정말입니까!”
베르스 남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일론.”
“충!”
한쪽에 있던 하일론이 재빨리 달려왔다.
진천이 베르스 남작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하일론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휘가람에게 전해서 계획이 바뀌었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하일론이 진천의 말에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 뒤에 뒤돌아 달려 나가려 하자 진천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계획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안 알릴래?”
“헉!”
의욕이 앞선 탓에 알맹이를 빼먹는 하일론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평시에는 관대함(?)을 보여주는 진천이었기에 더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변경내용은 여기 베르스 남작에게 그의 군대를 돌려주라는 것.”
그 말이 나오자 비로소 베르스 남작은 안심을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지만 안심을 한 표정이 순간 굳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따리 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나 하라고 전해라.”
“충!”
“열제 폐하!”
굳어진 얼굴이 산산조각 나며 급기야 억눌러 놓았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천이 시끄럽다는 듯 멀뚱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
“돌아가시면 어쩌십니까!”
“나 안 죽었다.”
여기에서 약간의 언어통역 마법의 부작용이 일어났지만 이내 수습을 하고 베르스 남작이 다시 매달리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달리 하이안 왕국의 이만 정병과 보급부대를 포함한 총 4만의 부대로 늘어난 가우리의 군사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할 대군이었다.
그런 대군이 발을 돌린다는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베르스 남작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진천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썼다.
처음 진천이 말한 것은 잔여병력의 흡수였다.
그리고 북 로셀린 부대를 공격할 때 양동작전을 위해 베르스 남작을 남 로셀린 동부군 본진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베르스 남작은 남아서 부대를 맡고 다른 이를 보내겠다고 한 것이고, 진천은 직접 본인이 가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누가 알리던지 알리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잔여병력이 영구히 흡수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미 북부 용병들은 가우리 군과 유사한 외모 덕에 엄청난 환영을 받으며 거의 비슷하게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와 덩달아 비하넨의 남 로셀린군 출신들은 남로군과 가우리 신병들과 융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지휘자인 자신이 빠진다면 남은 병사들이 몽땅 가우리 군으로 흡수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스 남작은 필사적이었다.
이런 필사적인 베르스 남작의 행동에도 진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미간에 선명한 두 줄기의 골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다.
“하일론.”
“충!”
“내가 말한 대로 알리도록!”
진천의 최종명령을 기다리던 하일론은 뒤도 안돌아 보며 달려 나갔고, 베르스 남작의 가슴은 미어졌다.
“안되옵니다!”
덥석!
“커컥!”
머리를 조아리던 베르스 남작은 갑자기 자신의 목덜미를 잡아 몸을 들어 올리는 진천의 얼굴을 보았다.
“크흡!”
악귀와 같은 형상이었다, 얼굴자체가 악귀라서가 아니었다.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압력보다도 눈앞의 공포가 더 두려웠다.
“네 놈의 나라는 중요하고 내 병사들의 목숨은 중요치 않더냐.”
“커컥!”
유부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멍청이 따위가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 하느냐.”
“흐흡!”
새파래진 베르스 남작은 멀어져 가는 정신을 느끼고 있었다.
“병사를 보내서 어찌 믿으라 하는 것이냐. 동부군의 수장이란 작자가 네놈이 보냈다는 병사 말만을 믿고 작전을 동조 하겠느냐.”
“허으으!”
정신은 희미하나 한마디씩 울려오는 진천의 음성은 또렷하게 뇌리 속으로 들어왔다.
펄럭.
“참으십시오.”
반쯤 정신이 나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베르스 남작의 귀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휘가람의 눈빛에 진천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털썩!
“커허헉! 허어어어어!”
땅바닥에 떨어진 베르스 남작은 숨을 크게 몰아쉬며 충혈된 눈으로 진천을 훔쳐보았다.
어느새 평온을 찾은 듯한 그의 모습에서 베르스 남작은 아까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베르스 남작, 가지요.”
“커헉, 헉헉.”
앉아있는 베르스 남작을 휘가람이 부축해주자, 그는 겨우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여 일어났다. 베르스 남작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진천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문 밖으로 나오자 휘가람의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고, 고맙습니다.”
베르스 남작은 휘가람을 보며 이 사람이라면 도와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 보아왔지만, 휘가람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열제 폐하께…….”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베르스 남작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입을 열자 휘가람의 음성이 교묘하게 끊어 내었다. 무어라 다시 입을 열려는 베르스 남작에게 휘가람의 목소리가 이어져 들려왔다.
“베르스 남작님 말씀대로 병사를 보내고 베르스 남작님은 여기서 직접 전투에 참여를 하신다니…….”
“그렇습니다.”
베르스의 눈이 번쩍 뜨이며 휘가람의 혼잣말에 끼어들었다. 휘가람의 말투에서 가능성의 빛을 본 것이었다.
“용감하시군요, 베르스 남작님…….”
휘가람의 차분한 말투에 베르스 남작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한기가…….’
밤이라지만 열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이상했다.
“그리고 동부군 본진에서는 우리가 북 로셀린의 후방을 들이칠 때 조금 타이밍을 늦춘다던지 해서 우리와 북 로셀린의 타격을 유도할 수도 있겠군요. 게다가 베르스 남작님은 우리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니 할 말이 있을 테지요.”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진천에게서는 숨이 막히게 만드는 공포를 느꼈다면, 휘가람에게서는 뼈가 시릴 한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베르스 남작은 휘가람에게서 떨어져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음, 그러고 보니 그렇게 우리의 군이 손상당하면 회유를 할 수도 있겠군요. 함께 싸우자고.”
“그게 아니라…….”
베르스 남작이 몸을 움츠리며 변명처럼 말을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휘가람의 몸을 한바퀴 휩싸고 있는 불꽃이었다.
휘류류류류.
“헉!”
베르스 남작은 눈앞의 불길에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환상같이 휘가람의 몸을 감싸며 휘도는 파란 불길은 뜨겁다기보다는 더더욱 뼈가 얼어버리는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휘가람의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 채 천천히 베르스 남작의 코앞으로 들어 올려졌다.
푸화하악!
“크헉!”
순간 손 위로 파란 불길이 솟구치자 베르스 남작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질렀다. 마치 귀화(鬼火)를 연상케 하는 불꽃이 휘가람의 손바닥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휘가람의 입이 다시금 떨어졌다.
“명심하시길. 우리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만약에 앞으로 한번만 더 우리를 이용하려 한다면, 약속드리겠습니다. 동부군의 최후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질 것이라는 것을…….”
후우우욱!
휘가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온몸을 휘감던 불길이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져 버렸다.
지휘막사로 돌아가는 휘가람의 모습을 보며 베르스 남작은 정신의 끈을 놓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킁, 잠자지 말고 다시 달립시다.”
“아! 끄응.”
전장을 숨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그와 함께 달리는 두표와 그 일행들이었다.
하나같이 뛰어난 무위를 가진 이들을 호위로 붙일 정도라면 적어도 동부군과의 합동 공격은 진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베르스 남작이 비하넨 요새에서 이끌던 병력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전력증강을 해놓은 것이리라.
결국 베르스 남작이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이 이끄는 동부군에게 확신을 심어주어서 함께 공격을 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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