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15
280화 왕창 털어라
수정구에 아는 이의 모습이 비춰지자 대신들은 물론이고 티부르 황제도 살짝 흥분한 모습이었다.
[폐하. 저는 폐하가 잘 안 보입니다. 보이십니까]
“오오! 잘 보이는 구나. 목소리도 똑똑히 들리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거 참…….]
수정구에 비춰진 대신은 뭐라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티부르 황제 역시 직접 사용해 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시연을 마친 티부르 황제는 흡족한 마음으로 치하한 뒤 무덕과 일행들이 묵을 숙소로 안내를 명했다.
그들이 나가자 대전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떤가, 그대들은.”
티부르 황제의 질문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뭔가 생각이 복잡한 모습이었다.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참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던 대신들이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렇습니다. 실리적인 측면에서 마법이라는 것은 꽤 유용하옵니다.”
“술법사의 서신이 생겨난 이후 대륙의 변화는 그야말로 엄청났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에 비할 바가 아니옵니다!”
술법사가 보내는 서신이 만들어진 지는 이제 백년이 조금 넘었다. 그러나 그 백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중앙에서 벗어난 지역의 통치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사람이 오가는데에 몇날 며칠이 걸리는 거리를 반나절 안으로 단축시킨 것이 바로 서신이었다.
특히 전장의 소식을 바로바로 받아볼 수 있는 것이 서신이었는데 이 마법통신은 그 시간을 더욱 짧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 부분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는 여기 있는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허나 마법이란 것을 그들이 쉽게 내어주겠사옵니까.”
그때 한 대신이 조심스럽게 던진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이 생각했을 때도 이런 것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가지 않았다.
“어차피 동맹도 아닌데…….”
한 대신의 표정이 은근하게 변했다.
굳이 뒷말을 듣지 않았지만 대충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을 가두어 두고 마법이라는 것을 빼내면 되지 않느냐는 의미였다.
순간 분위기가 수상해졌다.
“흘…….”
순간 티부르 황제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그 말을 한 대신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시에라 놈들이 던져주는 걸 먹고 살아도 제국이라 불리는 나라인데 대신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게군.”
티부르 황제의 말에 말을 꺼냈던 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대답을 했다.
“소신이 실언을 했사옵니다. 잠시 눈이 먼 듯 하옵니다!”
“뭐, 눈이 멀었다는 건 이해하네. 나도 솔깃할 정도였으니. 허나 그 정도로 가지고 싶은 거라는 정도에서 멈추어야지 않겠는가.”
연이은 티부르 황제의 질책에 말을 꺼냈던 대신은 땅에 고개를 처박을 정도로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던 이들도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잠깐이었지만 탐이 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물이라던지 마법을 활용한 통신이라던지 말이다.
“아직 시간은 있사옵니다. 마법 역시도 저들이 우리에게 공유를 해줄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논의를 해봐야 알 듯 하옵니다.”
“흐음.”
정석적인 답변이었지만 딱히 이보다 좋은 것도 없어 보였다. 티부르 황제가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연회부터 열지. 성대히 말이야.”
이미 연회준비는 해놓았다. 다만 그 연회의 질이 지금 이 한마디로 바뀌었다.
성대한 연회를 열기로 말이다. 황성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
사방에 시체가 가득했다.
더는 저항하는 이들도 없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고진천의 표정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었다.
“쯧.”
전투 중간에 이루어졌던 투먼 제국과의 통신 때문인 듯 했다.
“이거이 생각보다 덩어리가 클 줄 알았으면 좀 이룰 걸 그랬습네다.”
을지우루가 다가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어쩔 수 없지. 사전에 약속된 통신이었으니.”
그때 통신을 안 받았다면 마법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받은 것이다. 물론 이쪽에서 알려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이 깔리게 된다.
이런 일을 한 이유는 그들이 탐내라고 한 것이 맞았다.
그런데 그걸 시간을 미룬다면 딱히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에 강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연결하는 그 순간 시에라 제국 쪽에서 갑자기 소울아머 유저들이 진천을 요격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숫자만 다섯이었다.
물론 어려울 것도 없지만 그 순간에 맞춰 덤벼들었으니 진천 입장에서는 영 기분이 찝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장내는 무리 없이 정리가 되었다.
“기래도 이번 전투에 얻은 게 많습네다.”
“그럼 다행이고.”
작전을 변환한 이후 그들은 철저히 주변을 돌며 약탈전에 나섰다. 각기 일만씩 찢어져서 돌아다닐 때와는 달리 규모가 있는 곳만 골라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번에 친 곳은 보급을 위한 물품이 이쪽으로 옮겨져 있다는 첩보를 듣고 왔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호위병력도 적지는 않았지만, 이쪽의 병력이 더 압도적이었다. 약간의 피해는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대승이었다.
보급품을 나르는 인원들만 이만여 명이었고, 그 숫자는 고스란히 포로가 되었다. 거기에 호위병력도 만여 명이나 되었다.
기지 역할을 하는 곳의 주둔인원도 오천여 명이었다.
항복한 적병의 숫자도 팔천에 달했다.
그리고 각종 병장기와 식량 역시 엄청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족히 수만의 보급을 책임질 수 있는 분량이었던 것이다. 시에라 제국 입장에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결과를 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병력 확인하고 교체 후 이동을 준비한다.”
진천이 휘적거리며 걸음을 옮기자 우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마법사들이 꽤 고단하시겠구만 기래.”
여기서 턴 물자를 나르고 인원을 교체하는데 마법사들이 말 그대로 갈려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마법사들은 원 없이 마나석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 턴 적들의 영지와 보급기지를 합쳐 네 곳이나 되었다.
자그마한 곳들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나친 곳은 그야말로 남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진천과 일행들은 시에라 제국을 비워나가고 있었다.
***
쏜튼 폴리어 후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분노한 외침을 터트려야 했다.
“미친 이놈들은 도적떼란 말인가!”
전쟁에 승리해서 그 결과물을 거두어 가는 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지금 가우리와 동맹군이 하는 짓은 그와 달랐다.
승리를 위한 전략적인 전투가 아니라 뭔가를 털어가기 위한 전투인 것이다.
북방의 투먼 제국이나 초원의 부족들이 국경을 넘어와 하는 짓과는 그 규모자체가 달랐다.
거기에 북방은 그에 대한 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편이라 초원의 부족이 넘어오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 한다. 그런데 남부는 달랐다.
침범을 당해본 적 없는 곳이기도 하고, 또 반대로 시에라 제국이 남하정책을 피며 점령을 했던 점령지다.
그런 방비가 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점령지를 정상화시키고 시에라 제국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생산력 증대다. 전쟁에 소모된 것들을 최대한 빨리 보충하기 위함도 있었고, 또 다른 전쟁을 대비하려 함도 있었다.
거기에 그런 곳들의 영주는 이전 전쟁에서 재물이나 병력 등을 대서 공을 세운 이들이었다.
당연히 상납을 하면서도 축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생산력을 최우선으로 증대시켜왔다.
그런데 그 과실들을 지금 카말 왕국과 가우리등 밀고 올라오는 적들이 모조리 수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십만이 증발했네! 십만! 이게 말이나 되냔 말이야!”
쏜튼 후작이 바르르 떨었다.
일주일 새에 사라진 인구수가 십만이었다. 포로로 잡힌 병력도 족히 삼사만은 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병력을 급파해야 하옵니다. 황성에서도 근심이 많으십니다.”
“끄응.”
참모의 대답에 쏜튼 후작이 머리를 짚었다.
황도로 병력을 집중시킨 뒤 완편시킨 토벌대를 보내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었다. 일부 병력은 이미 가든 퍼시발 후작 측에 편제를 시켰고 말이다.
그러나 가든 후작은 일루이먼 부흥군 쪽을 맡아야 했다.
가우리 동맹군 쪽에 병력을 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일루이먼 부흥군은 그 깃발을 더욱 높이 세울 수 있었다. 그건 막아야 했다.
벌써 몇 군대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졌다는 서신이 날아왔다.
심지어 작은 산간 영지의 경우 이미 영주가 참살되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적들이 왕성하게 움직이고 시에라 제국이 그를 제압하는데 미진한 모습을 보이자 과감한게 움직인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실전용으로 눈감아 뒀던 세력들이 화근이 될 줄이야.”
쏜튼 후작이 혀를 찼다.
제국 내에 떠돌아다니는 마적이나 산적 등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항상 비슷한 수를 유지했다.
그들은 절대 시에라 제국과 섞일 수 없는 망국의 후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악착같이 척살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병사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전훈련용 사냥감으로 활용하기 위했던 것이다.
또 그들이 있어야 일반 백성들이 망한 왕조에게 불신을 비치게 되니 여러모로 활용할 가치가 있었다.
처음에야 일루이먼 부흥군 마냥 왕조재건을 위해 말을 달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먹고 사는데 급급해진다.
그 피해를 점령지 백성들에게 뻥튀기 시켜서 전달한다.
그리고 그들을 실전 훈련을 겸해 토벌한 뒤에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래야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착취에서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냥감들마저 이를 드러내 버린 것이다.
“미치겠구나.”
“그리고 이건 첩보에 불과합니다만…….”
“뭔가.”
“아래 지역에서 암시장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암시장?”
“마적이나 산적들을 대상으로 무기 등을 팔아넘기는 그런 암시장 말입니다.”
“어떤 미친놈이!”
쏜튼 후작이 그답지 않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가우리 쪽 같습니다.”
“이런 도적놈들!”
쏜튼 후작의 복장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
대무덕과 그리팔은 투먼 제국 황성에서 펼쳐지는 연회를 보며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연회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중요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거 예상보다 더 환영인사가 크구먼.”
무덕이 웃으며 중얼거리자 그리팔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전 그리팔이 방문했을 때와는 그야말로 천지가 격변한 정도였다. 그때는 그리팔만이 제대로 대접을 받았지 나머지 인사들은 그야말로 푸대접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대우를 받았었다.
심지어 일부는 동냥에 비유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무덕과 함께한 이번 사신행은 그 대접자체가 다르니 당연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많이 탐나는가 보구려.”
“꽤 직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를 하는 이들이니 말입니다.”
투먼 제국은 시에라 제국과의 마찰을 통해 실리를 취하는 형태를 고수했다. 그러다보니 대접만 봐도 일의 중요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